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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7 11:57

심미적 연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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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년 5월 부터 30개월 동안 '음악춘추'에 연재한 '심미적 연주학'입니다.
모든 음악도, 연주자, 지도교사  및 학부모께 유익할 것입니다.

 

음악적 상상과 영감

 


연주계 각 분야의 연주자 및 음악도들이 효과적인 음악적 연출(자기 표현)을 도모할 수 있는 미학적 사고의 보완으로 이완(弛緩)된 최적의 매커니즘 구사, 작품성 및 해석적 특성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구체적 접근방법을 모색할 수 있도록 여러 테마를 중심으로 다루고자한다.


음악적 상상(想像:Imagination)

 


연주행위는 작품성을 기반으로 연주자 개개인의 고유한 음악적 상념(想念)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음악이론의 학습과 연주기법의 숙달을 바탕으로 미학적 견해가 이입(移入)됨으로써 완성적이다. 각 연주회, 콩쿠르 및 교육일선 활동을 통해본 많은 연주에서 음악적 완성도는 개별적 차이가 크게 드러난다. 한편 자신의 음악적 주장이 확고한 세계적인 수많은 연주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 및 정신 세계를 확립한 면모를 가늠할 수 있었다.
상상의 세계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일반적 연주행위를 고찰할 때 물리적 속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사례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음악적 상상은 연출특성을 보다 풍요롭고 다채롭게 하는 주요 요건이다. 상상이 결여된 연주는 깊은 예술적 감흥(感興)을 주지 못하는데, 끊임없는 자신의 성찰과 작품성을 통한 자유로운 음악적 상상이 한데 어우러질 때 비로소 완성적일 수 있다.

단순히 음의 정확성만을 강요하거나 상상력을 유도하지 못하는 교육은 이런 견지에서 문제점을 지적 하지 않을 수 없다. 초보에서부터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악보를 바탕으로한 강요되지 않은 자유스런 상상의 중요성은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작품마다 시대와 양식 특성에 따른 상대적 제한은 둘 필요가 있지만, 작품이 갖는 절대적 가치와 보편적 특성에 더하여 연출자의 고유한 미적 인식이 가해질 때 보다 생명력을 갖게 된다.
작품해석에 있어 자신을 드러냄은 대단히 중요하나 절대적 가치 기준이 없거나 모호한 접근은 치우칠 우려가 크다.
음악적 사고와 예술적 감성이 내재하는 가운데 자유스런 미적 인식과 상상력이 이를 뒷받침함으로써 완성을 도모할 수 있다.
누구나 제한되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다. 자신이 연습 내지 연주할 작품을 연상하 면서 자유로운 상상을 시도하는 것은 악기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즉 악기를 연주할 때는 보다 자유로운 상상의 폭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물을 통해 고찰해 보면 필름의 한 컷은 마치 음악의 최소 단위로 간주할 수 있다. 피아노 또는 관현악의 정지된 횡적·종적 구도, 콘트라스트(Contrast)의 대비, 다양한 색감 등 그 자체로서도 완성적이나 음악의 시간적 특성과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경과됨에 따라 음악적 구성과 구도, 긴장과 이완(Tension & Relaxation), 극성(劇性) 등이 연주자의 전반적인 연출의도를 간파할 수 있는 주요 요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요셉 디힐러는 “자신의 음악적 표상에 몸을 맡기고, 그에 필요한 연주 행위(운동)에 전연 무의식적으로 시행할 때 비로소 연주의 최고도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음악적 표상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연주자가 작품을 통해 성찰하는 가운데 음악적 영상을분명히 함으로써 사려 깊은 예술성 구현이 가능한 바로 그것으로 간주된다.


영감(靈感:Inspiration)


연주되어지는 현상은 크게 물리적 속성과 예술적 정신으로 대별할 수 있다. 모든 기악은 물론 성악에 이르기까지 일반 음향적 특성과 연주자의 심연(深淵)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영적 감흥, 즉 정신이 깃들 때 청중은 최고도의 예술적 환희와 감격을 체험하게 된다. 표현의 측면에서 음악은 여타 예술에 비해 가장 순수하고 높은 예술적 이상과 깊은 감흥을 직접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인간 정신을 최상으로 또한 효과적으로 직감하게 할 수 있는 매체로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은 바로 깊은 몰입(,入)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연주자의 정신 집중을 의미한다. 단순히 소리로써 들려지고 느껴지는 상황에서는 본연(本然)의 음악적 인상을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교감할 수 없다. 마치 연못 한가운데 자그마한 돌멩이가 던져졌을 때, 그 지점을 중심으로 파문(波紋)이 형성되듯,연주자는 그 자신이 파문의 진원지가 되어야 하며, 그 일렁임은 단순한 음파(音波)가 아니라 청중의 뇌리와 가슴에 전달되어 작용되어질 때 비로소 숭고한 예술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진다.
창작은 물론 연주 역시 인간의 정신적 산물이자 행위이다. 예술적 향수(享受)는 다양한 지식과 체험이 주요 관건이다. 즉 작곡되어 연주되고 이를 감상하는 삼위일체의 긴밀한 연계 및 파악이 이뤄질 때 진정한 가치가 발휘되어진다. 이러한 정신성의 유대관계는 연주자의 음악적 사유와 정신, 악보를 통한 작품성의 통찰, 작품의 동시대적 고유한 사조와 양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나 자유스런 성찰, 무대예술이 갖는 즉흥성 구현 등 음을 구축해 나가면서 구성되 어지는 양상이 음 예술의 특성이며 여기에 연주자의 정신 및 예술적 의도가 선행되어 신체가 일체화 될 때 진정한 영감(靈感)을 구현 가능하며 연주자와 청중 모두가 흡족할 만한 예술적 향유가 가능해 질 수 있다.


음악적 상상과 영감의 일체화


음악적 사유(思惟)와 감성이 예술적 행위(연주)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거나 결여된 것은 예술이 갖는 본연의 의미를 퇴화 내지 충족시키지 못할 우려가 있다. 단지 사고영역에 국한하거나, 또는 지나친 감성적 성향의 피력만을 고집하는 것 역시 문제의 소지를 갖는다. 예를 들어 10의 요건을 갖출 때 가장 이상적이며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연출특성을 드러낸다고 가정할 때, 사고와 감성(또는 상상과 영감)의 비율은 3 + 7 = 10, 즉 사고성향 3에 감성지수 7 또는 반대로, 사고 7에 감성 3 등 연주자가 설정한 큰 틀 안에서 음악이 진행되어 감으로써 어느 한 순간도 비율의 변화를 초래하지 않거나 또한 사고와 감성이 별개로 존립하는 인상을 주는 연주는 완성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상상은 감성을 통해, 반대로 감성은 상상을 통해 제어와 상호보완의 기능을 하게 된다. 건축 구조물은 튼튼하나 실내장식이 부실 하거나 반대로 부실한 구조물에 화려한 치장의 어느 것도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정 내지 삭막함을 유발하게 할 것이다.
연주를 통해 연주자의 사고의 깊이와 예술가로서의 정신을 간파할 수 있다. 음악적 상상을 통한 건실한 구도와 풍요로운 영감이 깃들여 질 때 비로소 진정한 예술적 향수가 가능하며 책임을 다하는 연주자의 성실성과 역량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악보를 통한 성실한 작품의 성찰을 토대로 연주자의 예술 이상과 정신 구현 및 감흥과 열정을 더하려는 것이 올바른 연주자의 길로 생각된다. ■

 

 

음악적 사고와 감성의 이입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남과 다름을 파악함으로써 가능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성장단계 그리고 학습진행 과정의 차이 등 모든 것이 남과 다르다는 인식의 중요성, 절대적 가치와 객관적 인식의 차이가 상호작용함으로써 새로운 자신의 재발견이 이뤄져야 고유한 자아실현이 이뤄질 수 있다.


연주는 작품을 통해 작가정신 및 동시대적 특성의 파악을 토대로 연주자의 미적 사고와 감성이 이입됨으로써 완성적이다. 고사성어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말이 있다. 이는 작품에 작가의 예술 정신과 혼이 이입됨으로써 생동하는 화상(畵像)을 표현하는 옛말이다. 진정한 예술적 재현(연주)은 이처럼 연주자 자신의 미적 인식과 가치가 탁월함을 발휘하는데 기인한다. 비유해서 설명하면, 대본을 통해 또다른 자아를 실현하고 완성해 가는 연기자 또는 연출자를 연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으로 생각된다. 극적 상황은 분명 연기자 자신의 인생 여정은 아니지만 극중 인물의 또 다른 성격적 변신을 도모함으로써 많은 관객들로부터 주목받고 명연기자로 추앙받을 수 있는 것처럼, 연주에 있어서도 단지 소리만의 추구가 아닌 이면에 내재해야 할 그 무엇을 담아 변신을 추구해야 한다.
‘우물안 개구리와 같다’라는 표현을 일상에서 흔히 쓰곤 한다. 즉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가 밑바닥에서 올려다 볼 수 있는 하늘은 극히 제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물을 벗어나면 세상이 엄청나게 넓다는 것을 새로 인식할 수 있게 되듯, 학생이나 연주자 모두에게 있어 연주에서 요구되는 많은 사항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 고려된다면 그 연주는 제한된 면을 발견할 수 있으며 폭넓은 지지 내지 성원을 받을 수 없다. 즉 효과적인 연주를 위해서는 악보를 통해 폭넓은 음악적 성찰이 전제 조건이다. 이를 위해서 작품의 세부적 분석, 음악사적 배경, 구성 및 전개 특성 파악, 음악적 긴장과 완화 등의 재배치와 이를 효과적으로 표출 가능할 연주 기술의 습득(신체적으로 이완된-요구되는 적정한 힘이 작용하는)이 이뤄져야 진정한 가치의 실현이 가능하다.
이러한 성찰이 바로 음악적 사고의 근원이다. 아무리 많은 학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통해 작품을 재해석할 안목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이는 단지 기억되고 있는 이론에 불과하다. 연주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론은 효용 가치가 없다. 이론의 이해 및 파악을 통해 연주에 접목을 도모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유능한 연주자 및 교사는 이를 실현해 나가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1. 음악적 사고

그러면 음악적 사고는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많은 연습과 연주를 통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물론 연습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설계도면 없이 시공(施工)을 한다면 그 건축물은 원래 의도한 바를 실현할 수 없음이 분명할 것이다. 음악인이라면 한 번쯤은 빈(Wien) 교외의 숲 속을 산책하는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그림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진지한 음악적 사색을 즐기며 악상을 떠올리곤 하던 그들 습성의 일면을 담은 명화이다. 즉 그들은 사고를 통해 음을 구성하고 전개해 나갔던 것이다. 물론 베토벤이나 브람스는 모차르트와는 달리 작품을 써가면서 수많은 수정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12반음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 고심한 흔적들을 그들의 자필악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이 남긴 인류 문화의 엄청난 유산인 악보를 통해 음악적 의도를 역으로 추적함으로써 재발견하는 것이 연주자
의 사명일 것이다. 물론 당대와 현재의 모든 상황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또한 그들의 작품을 통해 구시대의 수많은 명인(비르투오소)들이 제각기 다른 어조로 작품을 재해석하여 연주하였으며, 그들이 남긴 음반을 통해 현재와 다른 음악적 옛 모습을 접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전의 루빈스타인, 켐프, 박하우스, 제르킨 등과 현재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세대 연주자들의 연주 스타일은 전혀 다른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회상이나 문화적 인식 그리고 개인적 성향의 차이에서 기인 한다. 작곡가에 따라 상이(相異)한 음의 조직과 구성을 통해 작품을 펼치며, 화성이 주는 감각적 성향으로 음악적 스케일은 물론 독자적 어법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음악의 구성을 통한 사고와 화성으로 기인하는 감성의 유발 요인으로 대별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양자는 별개의 것이 아니며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상황의 변천을 통해 음악사적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즉 복합적인 사고와 감성 성향의 필연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작품성및 동시대적 배경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또한 일부 제한적인 면도 배제할 수 없지만, 예술적 창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순 내지 형이하학적인 차원에서 복합적이고 형이상학적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무릇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사고와 감성은 제각기 다를 뿐 아니라 상당히 복잡하고 때로 미묘하기까지 하다. 음악은 그 사람의 생활 그 자체이자 자신을 대변하고 피력하는 하나의 도구이다. 악보를 통해 성찰하고 여러 차례 연습을 통해 두뇌에 입력(기억)된 작품을 다시 불러(떠올려)와 재차 자유스럽게 사고하고 이를 통해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몸으로 느끼는 가운데 진정으로 자기만의 고유한 음악적 재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2. 음악적 사고와 감성의 효과적 이입
음악적 사고와 감성을 작품을 통해 효과적으로 이입하기 위해서는 악보를 통한 작곡가의 심상을 파악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지만 또한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노력이 필연적이다. 무릇 자신을 볼 수 없는(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지 못한) 연주자는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에 역시 고통을 전파하는 진원(?)이 될 수있다. 연습 자체가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에 무대에 서는데 두려움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일상사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학습되어진 개인적 환경의 모든 것들이 그의 음악적 성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중요한 것은 음악을 비단 음악 그 자체에서만 해결하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생각을 집중함으로써 생동하는 느낌을 전달하는 연주자로서 자신을 변모 내지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비로소 작품을 통한 자신의 재발견이 이뤄진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남과 다름을 파악함으로써 가능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성장단계 그리고 학습진행 과정의 차이 등 모든 것이 남과 다르다는 인식의 중요성, 절대적 가치와 객관적 인식의 차이가 상호작용함으로써 새로운 자신의 재발견이 이뤄져야 고유한 자아실현이 이뤄질 수 있다.
많은 연주자들이 동일한 레퍼토리를 수년 내지 수십 년 후에 재차 레코딩하여 발매하곤 한다. 물론 그때마다 연주 내용이나 스타일에는 현격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동일한 작품을 대하는 연주자 자신의 사고와 감성의 변화 때문에 나타나게된 결과이다. 악보 자체에는 어느 한 음도 변화가 없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연주자 자신은 변화되기 때문이다. 일련의 시간의 연속과정에서 끊임없는 사고와 감성을 유발하게 하는 일상적 삶이 그의 예술적 행위에 작용하고 또 다른 변화를 도모하게 하는 요인으로 연주자의 사고의 범위와 감각의 폭을 넓게 하며, 이로써 그의 심연으로부터 보다 풍요롭고 사색적인 작품의 재해석이 가능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음악적 사고와 감성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것이며, 또한 스승을 포함하는 어떠한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영향은 받되 굴레를 벗어나 자유스러워져야 진정한 의미의 자아실현 단계에 이를 수 있다. 자신이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서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예술적(음악적) 자아성찰(自我省察)을 통한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적 사고와 감성을 계발하고 이를 통해 복합적 사고성향을 이루려는 자의식(自意識)에서 비롯된다. ■

 


음악적 음가의 조형

 


음악은 음과 음과의 관계에서 미적 가치를 실현하게 된다. 짧은 소절에서 구절, 작품 전체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작품성이 요구하는 성격적인 음가(音價)의 실현이 필연적이다. 역으로 준비되지 않은 음과 준비된 음과의 구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또다른 자질을 갖춰야 진정한 예술적 자아 표출이 가능하다.

 


1. 음악적 가치를 갖는 음

음악적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수많은 음들 나름대로 체계, 질서 및 형태를 갖추며 표출되는 것이 음악 연주의 일반적 특성이다. 연주자에 따라 제각기 다른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 필연적이며 다른 무엇을 찾는 것이야말로 진지한 연주자의 사명이다. 즉 책임감 있는 연주자로서 의식이 분명할 때 청중은 무언가 색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진정한 음악적 가치를 갖는 음들을 통해 작품 및 음악적 자아(自我)의 또다른 표현 가능성의 기회를 갖는 것이 바로 연주다. 연주되고 있는 작품을 통해 작곡가는 물론 연주자의 음악적 인식 및 자질 여부를 가늠하게 하는 것이 연주회다.
진정한 음악적 가치를 갖는 음을 창출하기 위해서 연주자는 음의 일반적 특성과 가능성의 파악이 전제 조건이다. 음은 물리적 속성을 갖지만 그 단순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 예술적 향취와 정감을 드러낼 수 없다. 음은 음악 속에서 상관관계와 의미가 내재할 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 음과 음과의 관계에서 작품성이 지향하고 작곡가의 의도 하는 바가 추구되어질 때 그 연주의 뛰어난 면모를 가늠할 수 있다. 연주회를 준비하기 위해 올바른 미학적 가치를 갖고 음악적 완성을 위한 오랜 시간의 연습과 이를 통한 음악적 자아의 성찰을 시도하는 것이 진정한 연습의 의미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매순간마다의 연습의 목표가 필연적이다. 음이 갖는 질서와 조화의 의미를 분명히 인식하는 과정이 바로 정확한 의미로서 연습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음악적 가치를 갖는 음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분명 연주되고 있는 음악적 자아표출의 면밀한 검토와 인식의 분명함이 요구되는데, 정신과 육체가 하나되어 일상과는 별도의 음악적 상황을 전개하고 표출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때로 서술적이나 한편 극적으로의 전환 등 매순간마다 ‘변화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게 유도(誘導)하여 청중의 관심과 호기심을 유발하고 집중시키게 하는 자질이 바로 완성적인 연주자의 표상일 것이다.
음악은 음과 음과의 관계에서 미적 가치를 실현하게 된다. 짧은 소절에서 구절, 작품 전체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작품성이 요구하는 성격적인 음가(音價)의 실현이 필연적이다. 역으로 준비되지 않은 음과 준비된 음과의 구분을 명확히할 수 있는 또다른 자질을 갖춰야 진정한 예술적 자아 표출이 가능하다. 끊임없는 작품에 대한 성찰과 이를 준비하기 위한 자신의 음악적 요구에 대한 변신의 가능성을 꾸준히 준비하고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음악적 가치, 나아가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는 의미는 그 연주자의 사려성과 깊은 관계를 갖는다. 한편 음악적 사고의 깊이는 괄목할 만하나, 이를 실현하는 기술적 한계가 느껴져서는 완성을 도모할 수 없다. 그러나 음악적 깊은 성찰을 통해 준비가 되면 신체적(테크닉적) 자유스러움을 도모할 수 있다. 이는 연주자 자신이나 교육을 통해 얼마나 음악적 가치를 갖는 음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는 중요한 관건이다.
영화 「타이타닉」이 시사하는 한 면은 거대한 유람선이라도 빙산(氷山)의 돌출된 부분만을 우습게 여기거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면 침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따사로운 햇살도 볼록렌즈를 통해 초점이 모아지면 종이를 태울 수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학습했던 사례를 다시금 인식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음악적 가치를 갖는 음은 돌출된 빙산의 이면(裏面)이나 초점으로 모아지기 전에 수많은 가시광선이 있다는 의미의 중요성이다. 이처럼 연주할 음의 음악적 가치를 주기 위해서는 바탕의 중요성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연주자가 준비한 만큼의 가치를 갖는 것이 음의 속성과 절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음의 조형

비록 개개의 음들이 철저한 사전 준비를 통해 음악적 가치를 획득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체계적으로, 한편 건축적으로 재정립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예술성의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
이는 건물의 골조와 연관하여 의미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부분은 전체 속에서 상관관계가 정립되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 다시말해 음악은 부분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뤄나간다는 말이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예컨대 회화나 조각 또는 건축물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이끌어 내는 완성도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임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음악적 구도의 횡·종적 요건을 두루 만족시킬 정도의 입체적인 음의 조형이 필연적인 관건이다. 교육을 잘 받은 음악도나 뛰어난 연주자에게서 우리는 이런 면을 분명히 찾을 수 있다.
음악은 거듭되는 사고와 인식 내지 인지의 과정을 통해 성숙되고 완성되어진다. 이런 견지에서 목표 없는 연습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며, 한편 목표가 분명해 질수록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며 무엇이 결여되었는지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음의 조형도 자신의 성찰에서 비롯된다. 이는 자신이 작품을 통해 작품성을 분석하고 작가정신을 파악함으로 연주자 자신이 비로소 작품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음의 조형 역시 단면적 내지 단편적이어서는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 사람의 귀는 좀더 고급화하려는 성향을 갖는다. 더욱 세련되고 완성적인 연주를 체험하고 그런 성향에 관심을 기울이는 청중은 연주자 자신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연주에 식상하기 마련이다. 다각적 고찰이 이런 관점에서 필연적이다. 음들을 조형해 나가는 과정 역시 보다 다각적이고 복합적 성향을 드러낼 때 청중은 예술적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 무언가 줄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연주는 음악적 가치를 갖는 음들이 또 다른 질서와 체계를 드러낼 때 깊은 음악에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한편으로 음악적 시간의 여정(旅程)을 성공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연주자(연출자)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갈 수 있게 된다.
서구의 오랜 역사성을 갖는 건축물을 보면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상당히 완성적인 면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그러한 건축물을 보기 위해 많은 시간과 금전적 출혈 그리고 노력을 마다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체험하기 위해 여행을 주저하지 않는다.
음악적 음가의 획득 및 음의 조형은 이런 견지에서 연관성을 갖는다. 자신이 연주하고 있는 음악이 과연 청중이 함께 함으로써 충족시키고 깊은 예술적 체험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지 수시로 자문하는 연주자가 진정으로 양심적이고 책임을 다하는 음악인으로 사료된다. “로마는 하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

 


연주에서의 즉흥성 및 극성

 


한 편의 음악 작품을 통해 전체에서의 클라이맥스는 물론 각 프레이즈에서 절정 역시 항상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개개의 차이와 변화의 속성을 보다 강화하되 넘쳐나는 생명력과 강한 극성의 제고는 진정한 연출자 모두가 절대적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관건이다.


음악에 있어 연주행위는 일차적으로 연주자 자신이 예술적 향유자이며, 이차적으로 이를 수용하고 향유할 대상인 청중이 필연적이다. 이는 드라마,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일반적 자매예술과도 동일한 속성을 갖는다. 이를 제작하고 무대에 올림에 있어 청중이나 관객을 대상으로 보다 심도 있고 예술성 높은 양질의 완성도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음반이나 비디오와는 달리 무대 연주는 속성상 일회적 양상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어느 연주자도 동일한 레퍼토리의 연주일지라도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완벽한 재현은 불가능한 것이다. 이는 연주회장의 모든 조건 및 연주자의 개별적 상황이 필연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연주 내용의 근본 방향설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재현과정(연주)은 필시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무대 연주에 접목을 시도하려는 의도를 갖는 것도 현명한 방안일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두 가지 요건은 바로 즉흥성 및 극성이다.

 


1. 즉흥성(卽興性)

무릇 인간의 특성은 단순 반복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습성을 갖고 있다. 이는 연습과정이나 연주에 있어서도 동일한 양상을 드러낸다. 또한 시간적·공간적 특성의 영향도 이에 작용한다. 그만큼 변화하기를 좋아하고 필연적으로 변화를 시도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면에서 기록성을 갖는 음반이나 비디오와는 차이가 있다. 연주자의 그때마다의 상황은 동일하지 않다. 그에 따른 심리적 요건도 다르게 작용한다. 작품 자체는 변화 없이 동일하지만, 이를 연출하는 연주자의 제반 상황 및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준비했던 음악적 해석을 실제 연주에서 절대적으로 동일시하고자 한다면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즉 시시각각으로 다가올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 가능함을 준비하는 것도 유능한 연주자의 몫이며 한편 또다른 음악적 변신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음악사상 많은 작곡가들은 그들 자신이 뛰어난 연주자였다. 그들 즉흥연주에도 훌륭한 자질을 보였던 사실 문헌적 기록을 통해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비단 즉흥연주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에 항상 새로운 해석적 변화를 시도 가능한 것은 즉흥성과 끊임없는 작품성에 대한 통찰로 가능한 것이다. 악보 자체는 변화되지 않지만 이를 재현하는 연주자는 항시 변화되고 있다. 그만큼 음악적 사고나 감성 등 체험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즉흥성을 오해하고 남발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도 내재한다. 미미한 탄력적 변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지 기준 없이 흔들림을 초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음악적 사고가 자연스럽고 경직되지 않으며 제한됨 없을 때 비로소 신체적으로 자유스러움 체험 가능하다. 작품성에 깊이 몰입하되 경직되지 않는 진정한 사고의 자유 실현 가능할 때 즉흥정신 실현 가능하다. 많은 부분에서 시간과 에너지의 소모적인 연습이 필요 없는 진정하고 본질적인 음악과의 만남에서 자유스럽고 즉흥적인 음악적 기운을 드러낼 수 있다. 즉 필요한 최소한의 테크닉적 연습이 요구되나 많은 부분에서 음악적 성찰을 통해 제한됨 없이 자신을 표출 가능하다. 때로 악기를 통한 즉흥연주를 시도하고 그럼으로써 진정한 자유스러움을 체험해 보는 것은 연주의 또다른 상황을 접하는 중요한 시도가 될 수 있다.
즉흥성은 해석적 접근의 또다른 가능성을 시도하는 한 방안이기도 하다. 자신의 음악적 표현에서 절대적이고 완전히 충족할 가치를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예술적으로 100%의 완전을 추구한다는 것은 인간 속성의 제한 때문에 실현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완전을 지향하는 것이 진정 예술가의 길이다. 학습(연습을 포함하는)되어진 악보를 통해 진정으로 자유스런 음악적 표상을 정립한 후에 즉흥정신으로 자신을 표출할 때 즉흥성은 발휘되는 것이다.

“손과 손가락 등 테크닉적 관건을 생각한다든지 의식해서는 그의 음악적 개성을 전개하는 데 도리어 방해가될 수 있다.(요젭 디힐러)”

 


2. 극성(極性)

인간의 삶은 그야말로 변화 무쌍하다. 희로애락이 점철되는 것이 삶 바로 그 자체인 것이다. 소설이나 희곡의 문단 구성을 보더라도 기승전결로 이뤄짐을 알 수 있다.
음악에서도 이는 상당한 부분에서 동일한 양상을 드러낸다. 연극과 음악이 조화를 이룬 오페라는 또다른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나가듯, 오페라 이외의 모든 음악에서도 극적인 상황의 전개 내지 극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물론 각 작품마다 음악사적 배경과 성향에 따른 차이는 분명히 있을 수 있지만, 그냥 서술하듯 일관하는 것은 음악적 내용을 진지하게 파악하지 못함에 근거한다.
음악적 연출은 때로 극성(Dramatic)을 표출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이는 상반된 대조(콘트라스트)성향을 폭넓게 드러냄에 근거한다. 대체적으로 미세하게 변화되나 한편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작곡가와 작품 내지 연출자의 성향에 크게 좌우된다. T.V 드라마나 연극 또는 오페라에서 보듯 시청자나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극적 변화를 통해 성공 여부가 좌우된다.
연주자는 음악을 통해 또 다른 체험의 폭넓음을 실현함으로써 청중에게 깊은 감명을 드러내게 된다. 흔히 말하는 단순 쇼(Show)적 부풀림이 아닌, 절대적으로 작품성의 실현 과정에서 실감할 수 있는 진지한 재해석 가운데 극화하는것이 극성을 살린 연출로 간주될 수 있다. 작품의 극적 전개는 작품성 및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큰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관건이다. 음악가(예술가)일지라도 인간적 속성을 갖는 작곡가나 연주자 모두 근본적으로 동일한 일상적 삶을 영위하기 마련이다. 단지 그들의 예술적 행위를 통해 남다른 역할을 실행할 뿐이다.
보편적 삶의 특성인 시시 각각의 변화 속에서 한층 폭넓은 적극적 변화의 의지와 이의 시도를 통해 청중에게 깊은 감동 및 체험의 폭을 넓게 가져갈 수 있다. 진함과 연함, 깊음과 얕음, 중량감과 경량감 등 표현의 차이를 실현하는 것은 전적으로 연주자가 작품을 어떻게 파악하고 이를 보다 설득력있는 언어로 전달하는가 하는 주요 관건이다.

웅변을 예로 들어보더라도, 원고를 단지 읽는 듯한 연사와 구구 절절이 자신의 생각과 감동이 실린 연사의 그것은 절대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연기력이 풍부한 탤런트나 영화배우, 오페라 가수 및 성악가 등 쉽사리 우리 주변에서 극적 상황의 상이한 가능성을 체험 가능하다. 단순 외적인 크고 작음이 아닌, 깊이와 무게를 수반하는 극적 상황의 전개가 바로 진정으로 극성을 제고하는 연출로 파악되고 간주될 수 있다.
동일한 음악작품도 어느 수준의 연주자가 연주하는가에 따라 제각기 다른 예술적 감흥을 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익히 체험한 바다. 작품성이 갖는 각 부분의 진정한 가치와 차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에 따라 다른 등급과 점수를 메기는 것이 콩쿠르나 실기시험이기도 하지만, 한 편의 음악작품을 통해 전체에서의 클라이맥스는 물론 각 프레이즈에서 절정 역시 항상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개개의 차이와 변화의 속성을 보다 강화하되 넘쳐나는 생명력과 강한 극성의 제고는 진정한 연출자 모두가 절대적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관건이다. ■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음악적 준비

 


연주자는 작품을 통해 효과적으로 작곡가와 자신의 예술적 의도를 담아낼 방안을 항상 연구하는 제2의 습성을 갖추어야 진정으로 발전적인 연주가 상을 정립할 수 있다. 이로써 효과적인 음악적 준비가 가능해 진다. 효과적인 준비는단지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에서 완성을 도모할 수 있다.


일상사 모든 것에서 어떻게 계획하고 준비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다. 인생, 여정(旅程), 취업, 결혼, 입시… 음악에 있어 준비의 중요성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준비는 즉 바탕을 말한다. 필자가 말하는 바탕은 사고와 감각, 물리적, 역학적, 신체적, 심리적 및 심미적 요건들을 포함하는 모든 것을 지칭한다. 바탕이 확립되기 위해서는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음악적 준비’가 가능해야 한다. 여기서 작품성을 통한 자신의 객관적 통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나아가 다각적이고 예술적인 자아표출이 가능한 상태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성적인 음악가 대열에 우뚝 설수 있다.

 


효과적인 음악적 준비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경제원칙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기악 성악, 어떤 연주 형태를 막론하고 필요로 하는 적정한 힘과 에너지 그리고 신체적 뒷받침이면 충분한 것이다. 즉 불필요한 힘이 가해지지 않아야 하지만 신체 모든 부분에서 감지되고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효과적인 준비는 단지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에서 완성을 도모할 수 있다. 기술적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례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기술적 관건을 해결하지 못하고는 올바른 연주를 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때로 음악적 이해와 분석 등 악곡 파악이 선결되지 않아 더욱 기술적으로 어렵게 느끼거나 한계에 봉착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기술적인 문제는 개개인마다 제각기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 역시 개인적 특성을 고려하여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연주할 악곡을 통한 음악적 상(像)의 정립이 우선하여야 할 것이다. 작품을 얼마나 빠른 시간에 효과적으로 파악하느냐 하는 것이 완성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의 방안이다. 효과적이지 못한 일련의 작업은 자신은 물론 주변 및 이웃에까지 소음의 피해를 줄 수 있다. 물론 과정 없이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없지만, 각자에게 적합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식과 안목 없이 진행되는 연습은 단지 소모적인 시간으로 기대하는 이상의 결과를 초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곡가는 악보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의도(메시지)를 연주자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이를 올바르게 파악하여 재현함으로써 작품성이 갖는 최대한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연주자의 사명이다. 그렇다면 연주자는 작품을 통해 효과적으로 작곡가와 자신의 예술적 의도를 담아낼 방안을 항상 연구하는
제2의 습성을 갖추어야 진정으로 발전적인 연주가상을 정립할 수 있다. 이로써 효과적인 음악적 준비가 가능해 진다.

 


바람직한 음악적 준비

 


효과적이지 못한 것은 한편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 있어 반드시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것 역시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즉 자신의 머리와 능력만 믿고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책임 있는 연주자라고 말할 수 없다. 올바른 연주가 상(像)의 정립 및 음악적 준비는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추구하려는 자세를 확립할 때 가능하다. 세상 모든 것은 변화의 속성을 갖는다. 이는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해야 할 마음 가짐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연주자의 심상(心狀)은 시시각각으로 변화되기 마련이다. 음악적 이해 및 파악의 정도가 날이 갈수록 깊고 넓어져야 하듯, 자신의 내·외적 변화를 음악적 연출에 적극 반영하려는 부단한 시도가 연주자가 실행해야 할 주요 관건이다.
성경 한 구절을 처음 읽을 때, 또한 회를 거듭하여 읽었을 때 느껴지는 새로움의 깊이에 차이가 있음을 경험해 본 사람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문학사상 고전이나 예술성 있는 영화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거나 감상하였을 때 새록새록 깊이 있게 다가서는 것을 느꼈을 수도 있다. 더욱 우리에게 밀접한 체험 사례는 한 곡의 음반을 수 차례 또는 수십 번 되풀이해서 들었을 때 새로운 면면이 발견되는 것을 진지한 음악인이라면 익히 경험했을 것이다. 이는 완성도의 차이가 주요 관건인데, 훌륭한 연주일수록 새롭게 느껴지고 파악되는 깊이와 정도에 차이가 있다. 역으로 자신의 연주에 바람직한 음악적 준비를 실행함으로써 이를 향유할 청중에게 예술적 깊이 및 감흥의 구체화를 실현 가능함을 의미한다. 앞서 말한 효율적인 음악적 준비가 ‘방법적인 것’이라면, 바람직한 준비는 ‘연주자의 자세’ 또는 ‘마음가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양자는 분리될 수 없으며 음악적 자아를 형성해 감에 있어 항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양대 국면이다.

‘음악적 준비’를 언급하면서 ‘효율성’ 내지 ‘바람직함’을 운운하는 것은 그만큼 준비의 의미가 음악인에게 있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성의 가치와 품격을 격상 내지 고양시키거나 역으로 격하 내지 실추시키는 중요 요인이다. 선천적 자질도 중요하지만, 후천적 노력에 의한 자질향상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연주자는 자신이 보고 파악된 이상의 연주가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흔히 예술가의 길을 지향하는 음악인 및 음악도에게 예도(藝道)를 닦는다고 말한다. 그만큼 자기 수련의 과정이 도에 이르는 과정과 유사함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을 드러냄이 중요하지만 또한 자신을 비우는 것 역시 못지 않게 중요하다. 진정한 음악적 준비는 마치 작품을 통한 자아의 재정립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정신과 연주자 인식이 교차하는 고도의 경지에 다다르려는 숭고한 작업이자 소산이다. 자아 및 개성 표출이 중요하나 자신의 주장만을 피력하려 고집해서는 안 되며, 작품이 의도하는 바 구체적 실현 여부가 중요한 관건이다. 베토벤은 “인간은 음악을 통해서만이 신과 가까워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 형이하학적 관건들만 해결하려고 하는 우를 범할 것이 아니라, 작품이 갖는 진정한 의미, 가치, 본질을 찾아 구체화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바람직한 음악적 준비를 가능하게 한다.
음악인들은 부단히 연습하고 연주하며 교육하는 일상적 삶을 영위해 나간다. 이 모든 과정은 외견상 각각 다른 영역으로 간주되어질 수 있으나, 자신들의 음악적 체험의 폭을 넓히는 일련의 과정으로 보아야 바람직할 것이다.
“I think, therefore I am”(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한 데카르트의 말처럼, 진정한 음악적 준비야말로 음악인으로써 자신의 위상과 가치, 존재의 의미를 명확히 실현하는 방안임을 강조하고 싶다. ■

 


음악적 세부와 전체의 독자성 및 연계성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특정 부분에 한정된 미시적 안목으로 전체를 통찰하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화가가 화폭(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 전체적 구도와 연관하여 세부적으로 그려나가듯, 음악에 있어서도 부분과 전체는 항상 독자성을 갖되 상호 연관성을 고려해야 타당할 것이다.

 


1. 음악적 세부(細部)의 독자성

로마 가톨릭 성당의 전면 및 벽면을 장식하는 스테인드 글라스(색유리)의 전체를 보고 세부적으로 각각의 조각(편린;片鱗)을 보는 것은 전체적 분위기로 인한 경건 내지 경외스러움과 작가의 섬세한 표현 의지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갤러리를 찾은 많은 인파들 가운데 유독 한 작품에 주목하여 멀리서 또는 근접하여 전후로 오가며 작품을 통찰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화가나 조각가 등 미술관련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예외 없이 전체적인 구도와 윤곽을 설정한 다음에 세부적으로 정밀 묘사하는 작업을 행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음악적 세부의 독자성’은 하나하나의 음의 조각들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되 상대적으로 연관성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다. ‘음의 미적 가치’는 음과 음의 상호 관계에서 형성된다. 이는 횡적 내지 종적 요건 모두에 관련된 것으로, 횡적인 것은 선율성을, 그리고 종적인 것은 화성적 특성을 의미한다. 이는 비단 피아노뿐만 아니라 성악이나 여타 기악 솔로 작품 연주에서 필히 수반되는 반주(피아노 또는 오케스트라)와의 관계를 포함하는 모든 것을 지칭한다. 악곡이 갖는 특성을 최고도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음악적 세부의 성격(캐릭터)을 얼마나 구체화하느냐 하는 것이 주요 관건 중 하나다. 회화와 음악 연주는 매체 성격적 측면에서 상이함을 드러내지만, 한편 유사한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회화는 점점 정밀한 창작적 행위가 누적됨으로써 완성을 도모하지만, 음악은 준비과정(연습)과 연주라는 다른 국면을 갖는다. 공간적 및 시간적 속성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상이함을 부인할 수 없으나, 화가의 붓이 한 획씩 가해져 점차 완성적이듯, 연주 역시 무대에 올려지기까지 부단한 작품성의 성찰을 토대로 연주자의 해석적 의지가 점차 명확하여 짐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세부적인 면을 무시하고 전체적 완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즉 앞서 소개한 바 있는 바람직한 음악적 세부의 완벽을 기하려는 준비(Preparation)가 선행되어야 비로소 듣는 청중으로 하여금 예술적 감흥을 느끼게 하며 공연장 전체가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음악적 세부의 독자성을 주도면밀하게 연출하려는 의지는 연주자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이다. 개별적 성격 매김을 얼마나 작품성에 합당하면서도 개성적 성향을 드러내는지 파악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TV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하는 현장을 찍어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간혹 볼 수 있다. 불과 몇 초의 컷을 위해 때로 십여 차례 이상 재촬영하는, 즉 NG(No Good) 장면을 통해 그 자체가 시청자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하게 하지만, 한편 연출자나 감독의 작품 완성도를 도모하기 위한 섬세함 및 극적 분위기와 성격을 확실하게 가져가려는 철저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는 선생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미구에 확실한 음악적 자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귀(鬼)가 진정한 자신의 스승이 되어야 불필요한 연습으로 인한 소음 내지 피곤을 면하는 최선의 방안이다. 음악의 작은 한 부분을 소홀히 하는 연주자는 진정으로 뛰어난 음악가가 될 수 없다. 음악적 세부는 이런 관점에서 독자성을 드러내야 한다.

 


2. 음악적 세부와 전체의 상호 연계성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예전의 아날로그 시계의 수많은 상이한 부품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 못한다면 이미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함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태엽을 감아줌으로써 그 힘은 각각의 톱니바퀴에 전달되어 최종적으로 초침을 움직이게 한다. 물론 이 사실은 음악에서의 연주와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시사하는 바 크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호 연계성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짧은 프레이즈와 작품 전체의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이는 하나의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악곡형식에 따라 악상의 전개나 반전 등 상황이 제각기 다른 양상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는 하나의 전체로 간주되고 파악되어야 한다. 조화 내지 대조의 묘미도 구성미를 제고하는 차원에서 시도되는 것으로 이것이 전혀 별개의 것은 아니다.
우리 삶의 일상과 관련하여 생각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하루가 시작되어 잠자리에 들기까지 그야말로 변화 무쌍한 다양한 상황이 전개되지만 이 모든 것은 개인적 일상으로 일기에 기록되거나 또는 소설로 재구성되어 출판되거나 각색되어 드라마 내지 영화화가 시도되기도 한다. 일상의 삶이나 음악작품에서 요구되는 다양성은 일맥상통한 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작품은 작곡가가 별다른 의미 없는 상황을 나열하지는 않는다. 각각의 세부는 무언가 내용과 의도가 내재하기 마련이다. 즉 일상의 삶의 과정에서 그다지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삭제하고 역점을 두고자 하는 사항(주제)들에 대한 일련의 사실을 다뤄나가듯, 음악에 있어 각 부분들이 동일성내지 확 연한 상이성을 드러내더라도 이는 전체적으로 큰 음악의 틀 속에서 이해되고 파악되어야 바람직한 작품성의 재현이 가능하다.
다른 비유로 예를 든다면, 여정(旅程)과도 관련이 깊다. 비교적 평탄한 서울을 출발하여 다소 굴곡이 있는 경기도를 경유하여 강원도 한계령, 미시령, 대관령 등 절정을 거쳐 양양, 속초, 강릉에 이르는 과정처럼 점차 굴곡이 확실해지며 변화무쌍한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훌륭한 연주자는 이 과정에서 마치 유능한 운전자(연주자)처럼 동승자(청중)를 편안하고 안정적인 여정 가운데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즐기고 사색하게 할 수 있는 음악가 부류다. 대부분의 음악형식이나 구조도 이와 동일 내지 유사성을 갖는다. 시간적 흐름 속에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 음악이다. 글머리에 예로 제시했던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한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며, 화가가 작품을 그려나갈 때처럼 관객도 전체를 보면서도 이곳 저곳 시선을 주목해 가며 때로 거리를 가까이 또는 멀리하면서 세부와 전체를 번갈아 가며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음악에서 역시 줄기와 가지를 구분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이며 일체화를 시도하려는 의지가 정착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줄기를 떠난 가지는 이미 생명력을 잃고 만다. 곧바로 시들고 말라 비틀어져 주위의 싱싱한 잎사귀, 줄기와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전체 속의 부분’ ‘부분을 통한 전체’의 향방을 상호 연계하여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연주와 호흡의 긴밀한 연관

 


연주는 분명 복잡하고 난해한 행위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악보를 통해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성찰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표상을 정립한다. 그 후 음향을 상상하며 자연스럽게 호흡하고 그림을 그려 나가듯 풀어나가면 보다 쉽고 최적의 연주 상태를 체험 가능할 수 있다.

 


호흡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각종 구기(球技)및 예술적 활동에서 호흡과의 연관성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필연적이다.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체험하듯,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와 역으로 불편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호흡의 상태는 크게 달라진다. 자신이 인식하던 인식하지 못하던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호흡을 한다. 신선한 공기는 우리 신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공해로 찌든 도심을 벗어나 맑고 푸른 청정지역에서 깊은숨을 들이쉬며 생존(生存) 자체를 감사하게 느껴본 경험이 누구나 있었을 것이다. 일상적 호흡과 예술적 활동을 위한 호흡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인식 내지 인지하지 않은 상태이며, 후자는 반대로 호흡의 조정(調整;Control)을 필요로 한다.

 


1. 연주에서 호흡의 작용 (프레이징과 그룹핑, 에너지의 뒷받침)

성악은 물론 악기연주와 지휘 등 모든 음악적 활동에서 호흡 조정은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음악의 세부적 성격 및 특성의 차이와 힘의 뒷받침에서 호흡의 깊이와 빠르고 느림의 상태가 달라진다. 느리고 빠른 프레이즈(악절; 樂節)에서 어떻게 호흡하고, 나아가 어떤 호흡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악곡 진행의 안정성 및 성격적 확실성을 유지하게 된다. 시종 변화무쌍한 음악의 특성처럼 그에 상응할 호흡의 조절이 필연적이다. 경험이 많은 음악가들은 호흡의 조절이 또다른 천성처럼 습관화되었지만, 초보자나 완성적이지 못한 연주자들에게서는 불안정 내지 부적절한 호흡의 상태를 파악하게 된다. 호흡의 유지는 물론 악상의 특성에 따라 어떻게 심리적 및 신체적으로 유지하고 받쳐주느냐에 따라 악상의 세부적 뉘앙스의 차이뿐만 아니라 프레이즈 구성 및 다이내믹 등 해석적 특성 매김에 현격한 영향을 주게 된다. “연주는 바로 호흡이다!”

 


2. 악상에 따른 심리상태와 호흡의 조정

사람의 심리상태와 감정은 시시때때로 변화한다. 악곡에서 요구하는 악상의 변화는 단지 강약이 아닌 보다 폭넓은 인간의 지적 정서적 나아가 심리적 요인의 작용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즉 악곡의 세부에서 어떤 음악적 성격 매김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악보를 성찰하면서 전후 상황을 통해 특성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바로 연습이다. 연습은 비단 악기와 더불어서만이 아니라 진정한 연습은 악기에서 떠나 있을 때 자유스럽고 제한 받지 않는다. 드라마, 연극, 영화 등 극적(劇的) 특성을 갖는 공연과 연주는 공통성과 유사성을 갖는다. 연주의 특성이 단순 물리적 음량의 차이만을 드러낸다면 분명 문제다. 인간이 살아 숨쉬고 시시때때로 감정이 변화하듯, 음악적 특성 역시 계속적으로 호흡이 조정되면서 악상에 따른 심리적 정서적 상태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바로 연주의 속성이다. 작품성을 바탕으로 어떠한 감정과 사고를 펼쳐낼 것인가 의지함에 따라 호흡의 조정은 다르게 작용한다.

 


3. 올바르고 안정적 호흡으로 무대공연의 안전성 유지

모든 예술적 활동은 함께 교감할 대상이 필요하다. 우선 연주자 자신이 최고의 청중이 되어야 하며, 나아가 이를 통해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눌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연주회다. 그러나 무대는 때로 많은 연주자들에게 심리적 긴장으로 인해 근육이 경직되어 연주의 실패 내지 불안정을 초래하기도 한다. 긴장된 상황에서는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때로 긴장을 이완하기 위해 심호흡으로 자신을 가다듬기도 하는 것이다. 자신의 평정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호흡이다. 단전호흡·기공체조 모두 호흡 조정과 관련된 수련인 것처럼, 올바르고 안정적 호흡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연주 나아가 무대공연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불안정한 호흡을 가다듬고 이로써 정신적 안정을 취한 다음에 자신이 연주할 악곡의 특성 및 성향에 따른
호흡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연습을 거듭함으로써 정신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으며, 작품을 자신의 의도대로 펼칠 수 있다.

 


4. 연주와 호흡의 긴밀한 연관

앞서 필자는 “연주는 바로 호흡이다!”라고 전제하였다. 호흡은 바로 심리적 상황과 직결되기 때문에 작품을 어떻게 파악하고 이해하며 이를 통한 자신(정신 및 신체)과의 일체화를 효과적이고 완성적으로 도모하느냐에 따라 연주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호흡조절은 정신적 안정은 물론 연주활동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연주에 있어 올바른 호흡의 여러 가능성을 인식하고 인지하는 수많은 경험이 요구된다. 이는 자신의 음악적 준비는 물론 교육을 진행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건이다. 예컨대 가볍고 깊게 들이마시는 숨, 가볍고 빠르고 짧게 들이마시는 숨, 느리고 깊게 들이마시는 숨, 짧고 빠르며 깊게 들이마시는 숨 등 여러 호흡의 상태를 연습을 통해 실행하는 것이 전술한 견지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넓게는 작품에 따라 좁게는 음악적 세부에 따라 또한 호흡 횟수 빈도, 짧거나긴 호흡의 유지, 복식호흡(여성은 일상생활에서 흉식호흡을 하지만 연주에서는 반드시 복식호흡을 체득해야 함), 호흡하면서 신체 전체에 활력(생기)을 준다는 상상 등 호흡 연습은 필수불가결의 요건이다.
모든 예술적 활동은 인간의 정신 활동이 탄생시키는 숭고한 산물이자 결과다. 인간만이 끊임없는 자아성찰을 통해 진정으로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 특히 예술인들 가운데 진지한 음악가는 다각적으로 자신의 한계 내지 결여됨을 찾아 이를 보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나간다.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연주자들은 이 시대에 분명 촉망받는 아티스트의 대열에 우뚝 서 있다. 연주는 자매예술은 물론 여러 학문과 교양이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며 다각적 사고와 고찰을 통해 그물처럼 엮여져야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 연주를 준비하는 수많은 과정 가운데 음악적 상상을 통해 분명한 상(象)을 정립하고 그에 적절한 호흡을 준비함으로써 자신이 의도했던 상(象)이 예술적 음향으로 전환된다. 호흡 조정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들숨(들이마시는)과 날숨(내쉬는)이다. 이것 역시 수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연주를 준비하면서 호흡과의 연관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시도하는 가운데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자신만의 호흡방법을 습득하는 것이다.
연주는 분명 복잡하고 난해한 행위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악보를 통해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성찰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표상을 정립한 후 음향을 상상하며 자연스럽게 호흡하고 그림을 그려 나가듯 풀어나가면 보다쉽고 최적의 연주 상태를 체험 가능할 수 있다. 인간은 심상(心狀)에 따라 호흡이 달라지며 이는 곧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최적의 호흡과 근육을 포함한 신체의 이완(弛緩;Relaxation) 상태에서 비로소 자유스런 음악적 표상을 재현 가능하다.■

 


음악적 긴장과 이완

 


연주에서의 긴장과 이완의 재현은 자신은 물론 이웃의 삶을 관조 내지 살펴보는 노력과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드러나는 인간적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쉽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 즉 음악만이 아닌 음악 외적인 삶의 과정이나 자연 등을 성찰하려는 폭넓은 안목이 자신의 음악적 연출력의 폭을 넓히는 또다른 중요한 관건임을 강조하고 싶다.


인간의 삶의 여정에서 순탄함만을 기대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흔히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해였다는 말을 한다. 이러한 인생을 살아나가는 것이 일반적 내지 보편적 삶의 특성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일반인은 물론 예술가의 삶 역시 이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삶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그의 예술적 창작물(작곡)역시 해당하는 시대적 배경 및 개인적 환경의 영향이 지배적이기 마련이다. 자신이 처한 현실 상황을 극복하고 음악사에 기리 남을 족적(足炙)을 남긴 수많은 음악가들의 작품에는 인간적 삶을 예술적 숭고한 형태로 그려내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즉 음악은 인간적 삶을 표현하는 하나의 장르임이 확실하다.

 


1. 긴장과 이완의 상태

1) 긴장의 상태는 삶에 있어 흥분, 불안, 슬픔, 초조, 감격, 쟁취, 환희, 승리, 당당함, 설레임, 가슴 벅참 등 생기와 활력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폭넓게 대조되는, 즉 긍정적 내지 부정적 삶의 변화 요인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을 말한다.
2) 이완의 상태는 역으로 평정한 심상(마음의 상태)을 드러내는 것으로 평정, 위안, 안락, 평화, 안정, 순탄, 진정, 평안등 앞서 소개한 긴장의 요소와는 상반 또는 대조되는 인간적 심상의 변화를 주는 요소들이다.

 


2. 창작에서의 긴장과 이완
이를 효과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형식, 구조, 내용, 작곡가의 성향 및 시대적 배경의 파악이 전제 조건이다. 또한 선율 내지 화성 역시 작품에서의 긴장과 이완을 어떻게 도입하고 전개해 나가는지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중요한 관건이다. 예컨대 동일한 음이 연속되더라도 이는 앞뒤 상황에 따라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판단에 따라 해석의 또다른 가능성을 드러낸다. 하물며 계속적으로 변화되는 악상을 추구하는 작품성에서는 말할 나위가 없다. 작품을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서는 악보를 통해 작곡가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절대적 관건이다. 작곡가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음상이나 영감을 통해 작품을 구성해 나간다. 작품 스타일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오선 위에 자신의 심상을 그려나가는 것이 일반적 창작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작곡가의 생애를 통해 초기, 중기 그리고 후기의 작품 성향에 따라 완성도나 지향하는 창작 의도에 큰 차이가 있음을 음악사 및 문헌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작품을 통해 많은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작곡가의 의지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악곡을 통한 자아실현이 궁극의 목적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작곡가의 작품이 현존한다. 제각기 다른 어법 구조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어쨌든 자기 표현이라는 관점에서는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일부 특정 목적을 위해 작곡된 작품은 제외) 선율과 화성으로(고대 및 중세 일부 교회음악은 제외) 구성되는 다성음악 또는 단성음악에서도 끊임없이 음악적 긴장과 이완을 추구하려는 의도를 작품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악상 또는 다이내믹의 대조를 통해서, 선율적 진행의 상향 내지 하향을 통해, 화성적 구조 및 진행을 통해 좁게 또는 넓게 이를 다뤄 나간다. 즉 시종 변화의 의지를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창작은 연주를, 연주는 감상을 전제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작곡자, 연주자, 청중 모두는 지적 내지 정서적으로 갖추고 성장해 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로써 예술적 창작 및 향유가 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작품도 뛰어난 재해석자(연주자)를 만나지 못하면 빛을 발하지 못하며 또한 이의 가치를 파악하고 향유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감상자(청중)가 있을 때 예술적 순기능을 다할 수 있다. 서두에 언급하였듯 인간의 심상은 시시각각 변화하기 마련이다. 작품 특성 역시 인간적 산물이기에 이의 속성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 변화의 중요한 요건은 긴장과 이완으로 대별되며 작품성에서 이는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관건이다.

 


3. 연주에서의 긴장과 이완의 재현

훌륭한 연주자는 작품 재해석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마치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총체적으로 연출하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재현을 말한다. 물론 장르나 악기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하나의 전체로 파악되는 연주라는 관점에서 예외일 수 없다. 입시, 콩쿠르, 콘서트 등 다양한 연주의 기회 및 형태가 있지만 이를 통해 교수 및 평론가들이 연주자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 등을 파악하여 점수를 매기거나 그에 대한 평론을 작성하게 된다. 제2의 창작이라고 말하는 연주는 작품이 갖는 최고 최상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필연적이다. 악보를 통해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를 자신의 안목에서 재해석하여 생명력을 갖도록 정서와 감각이 배어나는 연출의 시도가 가능해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이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음악적 긴장과 이완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긴장은 활기 있는 템포로 압축되어지고 이완은 느슨하게 풀어지는 다소 템포의 느려짐을 수반하는 것이 일반적 해석의 양상으로 드러난다.
이는 연주자가 어떠한 상상(想像)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심적 상태 및 신체적 심장 박동에 영향을 줌으로써 작품의 극적 분위기의 상승 내지 하강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악장의 변화에 따른 상대적 차이도 있지만 프레이즈마다 또는 악장 내에서 작품 구성에 따른 변화에 크게 작용하고 필연적으로 이입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즉 긴장과 이완은 연주의 재해석 과정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건이며 이를 어느 정도 구체화하느냐에 따라 극적 구성력의 차이는 상이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청중으로 하여금 연주에 주목하게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요건들은 상당히 다양하지만 악상의 미세한 변화에서 극적 대조에 이르기까지 긴장과 이완은 작품의 성격에 따라 언급 내지 의도되어야 할 중요한 관건이다. 여기에는 템포와 다이내믹의 변화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선율적 특성에 따른 변화도 중요하지만, 화성적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를 구체화하느냐 역시 음악적 긴장과 이완에 있어 중요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관건이다. 이의 파악 여부는 필연코 작품의 재해석 능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연주를 할 수 있지만, 훌륭한 자질을 갖춘 능력있는 연주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전자이건 후자이건 간에 누구나 보다 완성 지향의 노력이 필연적이며, 제1의 창작인 작곡뿐만 아니라 제2의 창작인 연주에서 연출능력 여하에 따라 음악적 가치 및 완성도에 큰 차이를 흔히 실감하곤 한다. 10개를 갖추었을 때 완성적이라면 자신이 몇몇 요건을 갖춘 연주자인지 성찰하는 자세와 갖춰야 할 새로운 요소를 파악하는 노력은 필수적이다. 연주에서의 긴장과 이완의 재현은 자신은 물론 이웃의 삶을 관조 내지 살펴보는 노력과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드러나는 인간적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쉽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 즉 음악만이 아닌 음악 외적인 삶의 과정이나 자연 등을 성찰하려는 폭넓은 안목이 자신의 음악적 연출력의 폭을 넓히는 또다른 중요한 관건임을 강조하고
싶다. ■

 


미적 현상의 다양성 및 갈래

 


인간만이 미적 가치와 현상에 대한 다양성을 느끼고 체험하며 생활화한다. 자신이 모든 주변 활동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이상의 예술적 성향의 가능성을 펼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만큼 예술적 삶에 있어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활동 영역이다.


미적 현상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미적 가치관과 인식을 가지고 표출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또한 삶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는 욕구를 드러낸다. 옷차림, 헤어스타일, 화장 등 외적 양상은 물론 언어, 가치관, 품위등 내적 요건의 양면을 고루 갖춰야 비로소 완전한 품격을 드러낼 수 있다. 나아가 예술적 이상 및 정신세계의 실현이 가능하다면 고품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미적 현상은 인간의 본연적 욕구이자 자신의 삶의 품격을 다른 사람과 구분 가능하게 하는 주요 요건이다. 이러한 미적 현상은 하나의 결과로 나타나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람의 독자성 및 취향을 인식하게 하는 데 작용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통해 주택에서 가구 배치, 의상 코디네이션, 언어적 품격을 통한 대화의 질, 다양한 예술적 활동을 통한 자아실현 등 실로 인간의 삶과 미적 현상과는 상당히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음악활동을 통해서 역시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물론 삶과 음악을 반드시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그 사람의 품성이나 취향에 따라 음악적 성향과 연계성을 고려할 수 있다. 연주의속성이 작품을 통한 자기 표현방식의 한 갈래인 만큼 미적 현상의 가능성에 대한 다각적 성찰이 필수적 관건이다. 어떤 성격이나 형태의 미적 현상을 추구하던 연주자 및 작곡가에게 있어 미적 성찰의 중요성은 간과해서는 안 될 주요 요건임이 확실하다.
이러한 미적 인식과 현상은 동시대 상황 및 현실과 직·간접적인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모든 예술 형태에서 각각의 시대적 구분이 가능하며, 다른 장르일지라도 상당 부분에서 동일한 양상 내지 성향을 드러내 후대에서 이를 시대적으로 구분하는 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예술가 또는 일반인들의 삶의 형태 모두 각기 자신의 한계 및 가능한 범위 내에서 미적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 성향이다.


음악에 있어 미적 현상의 다양성


이는 물론 간단하게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무궁한 표현 가능성의 범위를 갖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드러내거나 담아야 할 다양한 가능성을 고찰해 보기로 한다. 음악의 창작과 연주에서 고유한 영역의 차이로 인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작곡이나 연주 모두 예술적 활동의 한 갈래이므로 동일한 안목에서 고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1) 작품 구성력
제1의 창작인 작곡과 제2의 창작인 연주 모두 제각기 다른 입장에서 자신의 작품 구성력을 드러내게 된다. 작품 구성의 중요 요건이 형식적 특성을 바탕으로 이의 파악을 통해 견고한 구성을 펼치며 나아가 예술적 속성을 드러내는것이 주요 관건이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작곡가와 연주가의 미적 인식 및 가치관이 작용하게 되는데, 창작 및 재현 의지를 여기서 간파할 수 있다. 이는 하나의 결과물로 제각기 다른 양상으로 실현될 여지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기에 이를 향유하는 감상의 과정에서 미적 다양성을 체험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연주에서는 해석이라는 용어로 이를 표현하기도 하는데, 자기 주관적 입장에서(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성찰할 필요성 역시 중요하게 작용함) 자신의 고유한 미적 인식을 바탕으로 재구성해 나감으로써 미적 인식 및 현상의 또다른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2) 논리적 성향
음악에 있어 논리적 성향만을 강조하거나 치우쳐서는 안 되지만, 음악 역시 학문적 근거와 바탕을 중요하게 다뤄야 하며, 이는 음악인의 학문적 자세와 작품성의 바탕을 지탱하는 주요한 근거다. 음악은 무수한 세기를 걸쳐 정립된 학문적 적립의 결과이며, 이를 학습하고 작품을 재구성함에 있어 이는 판단의 근거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너무 노골화된다면 다소 차갑고 자칫 비예술적이란 오해를 초래할 우려를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작품을 대하는 논리적 바탕과 근거는 음악가가 자신을 확립하고 지탱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건임을 다시금 강조한다.


3) 감각성 성향
논리적 성향과는 다소 대립적이나 이는 반드시 상호 보완적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주요 요건이다. 작품을 보다 풍성하게 인식되어지도록 작용한다. 감각적 성향의 뛰어남과 풍부함은 예술이 예술적 가치를 발휘하는 데 없어서 안 될 필수 고려 사항이다. 물론 이는 학습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신의 감각을 세련되고 풍부하게 유지 내지 개발하도록 실천함에서 비롯된다.
학문적 속성의 범주에서가 아니라 삶의 주변을 대하는 관찰과 체험의 다양성에서 감각은 항시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매 예술, 문학 그리고 자연 등 삶을 호흡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감각적 풍부함이 보존되고 성장될 수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그의 예술적 미적 현상의 다양성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4) 음악적 사고 성향
전술한 논리적 성향과 감각적 성향을 보다 구체화하는 것은 자신의 예술적 사고를 어떻게 개발하고 펼쳐나가는가에 달려 있다. 작곡·연주·감상 모두가 인간의 지적 내지 정서적 활동의 범주에서 이뤄지는 활동이다.
작품을 연구하는 연주자 역시 끊임없는 사고를 통한 성찰이 필연적이다. 작품을 분석하고 재현하는 과정에서 매 순간 최선의 결과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모든 동물 가운데 무릇 인간만이 독보적인 사고 가능성의 존재로 일컬어지고 있다.

음악적 활동의 근거도 이러한 음악적 사고 성향과 정도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넓은 안목에서 고찰하면 인간 활동의 모든 근거는 사고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고 성향을 다각적이고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학습되어지고 체험해야 미적 현상의 다양성을 꾸준히 개발하고 펼쳐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적 현상의 다양성에 대한 고찰


무릇 인간만이 미적 가치와 현상에 대한 다양성을 느끼고 체험하며 생활화한다. 자신이 모든 주변 활동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이상의 예술적 성향의 가능성을 펼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만큼 예술적 삶에 있어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활동 영역이다. 특히 각 시대의 고품위의 문화적 산물인 음악을 창작하고 연주하며 감상함에 있어 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미적 현상을 비단 음악에서만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인간은 출생하고 성장하면서 또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생활 주변에서 많은 것을 학습하고 체험하고 사고하면서 생활하게 된다. 즉 한 사람의 성향을 특징적으로 하는데 무수한 요인들이 연루되어 작용하게 된다.
인간의 오감(五感) 역시 이의 중요한 한 요건으로 간주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모든 인간은 변화 및 발전에 대한 욕구를 추구하며 생활하고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물론 환경의 변화 역시 도모하고자 한다. 세계의 모든 문화 및 예술사 나아가 인류사를 통해 보더라도 지속적으로 변화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연주의 성향을 고찰하더라도 시대적 상황 및 배경에 따라 항시 새로운 가능성이 추구됨으로써 발전적 결과를 초래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과거, 현재 나아가 미래의 역사적 연계성과 관계의 속성에서 항상 변화의 역사로 인식되고 판단되어져 진행되어 나가고 있다. 무릇 진정으로 자신의 변화·발전 가능성을 꾸준히 실현하지 않는 예술가는 본인은 물론 사회에 기여할 수 없는 초라한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삶의 주변 환경을 통한 미적 현상의 다양성을 학습, 인식, 파악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의 미적 가치관의 변화를 초래하며 이는 변모된 예술적 자아 형성에 크게 작용할 것이다. 연주는 음을 통한 자신의 또다른 표현 가능성의 한 갈래다. ■

 


작품의 해석·연출과 연주

 


연주를 통한 작품의 완성도를 가늠하게 하는 것 역시 어떻게 해석하고 연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연주자마다 상이한 연주 특성을 드러내곤 하는데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며 타당한 것이다. 다분히 개인적인 작품의 이해·파악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이와 결과로 드러난다.


‘훌륭한 연주자는 뛰어난 작품의 해석 및 연출자다.’ 바꿔 말하면 뛰어난 작품의 해석력을 드러내는 것이 훌륭한 연주의 주요 요건 가운데 하나다. 연주를 통한 작품의 완성도를 가늠하게 하는 것 역시 어떻게 해석하고 연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연주자마다 상이(相異)한 연주 특성을 드러내곤 하는데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며 타당한 것이다. 다분히 개인적인 작품의 이해·파악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이와 결과로 드러난다. 연주자들이 일상적으로 고민하는 부분도 바로 이처럼 정확한 작품의 해석과 효과적 연출을 통해 청중과 더불어 예술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깊은 감흥의 영향력을 실현할 수 있는 음악을 재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1)해석·연출
세월이 경과할수록 사람은 변화되기 마련이다. 예컨대 시(詩)나 성경(聖經)의 한 구절을 처음 읽을 때와 그 후 여러번 반복하여 읽었을 때, 읽는 이의 이해와 파악, 이로 인한 심상의 변화나 깨달음의 정도가 달라지는 체험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또한 소설이나 명화 역시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점차 나이가 들면서 다시 읽거나 감상할 기회가 있었을 때 분명 차이가 있었다는 것도 인지상정일 것이다. 음악에 있어서도 이와 동일한 속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연주자일지라도 단 한 번에 음악적 완성을 도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수 있지만, 악보를 처음 대했을 때와 재차 연습을 통해 작품의 성찰을 반복 진행하면서 앞서 인지 내지 파악하지 못했었던 또다른 가능성이 존재함을 인식하게 되고 표현의 깊이를 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해석은 지적 활동을 통해 작품성의 가치를 올바르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파악해 나가는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를 통한 자기화(自己化)가 최고의 목표인 것이다. 연주에 앞선 선행 작업인 작품의 해석과 연출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연주자가 고민하고 생각을 거듭해야 할 중요한 관건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효과적인 해석과 연출의 방법일까? 이것은 바로 ‘다름=상이성(相異性)’과 ‘자기 발견’의 참 의미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게 된다. 다음으로 작곡가와 연주자 자신이 매체(악기 또는 신체)를 통해서 합일되는 일치점을 확인하거나 발견하는 시점일 것이다.
흔히 각 분야에 출중한 사람에게 ‘그 분야에 정통했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작품을 처음 대하여 완성의 경지에 다다르는 과정은 마치 산을 뚫어 관통해야 뒤쪽 저편의 세상을 보게되듯, 과정은 너무도 고통스럽고 암울하지만, 터널이 뚫린 뒤에는 이제까지의 암흑의 상태에서 벗어나 빛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 즉 한 작품에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그 작품에 정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좀더 세부적으로는 구도, 색채 대비, 대조(콘트라스트), 장식, 변화, 활력, 극성, 호흡 나아가 예술적 감성 이입 등 다양한 요건들이 재현되도록 다각적인 고찰이 필연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요건들이다. 연출은 이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세부에서 전체에 이르기까지 관조하고 관찰하면서 실현해 나가는 일련의 작업 특성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잘 발달되고 고도로 훈련된 귀의 최종적인 확인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자연스러움과 뛰어난 예술성의 실현이 최종 목표일 것이다. 마치 연기자가 연기가 아닌 또다른 삶의 가능성을 표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해석과 연출은 예술이 예술로써 향(香)과 정신성을 담기 위한 선행(…行) 작업이자 대단히 중요한 자신의 가치 실현을 위한 목표이기도 하다.


2)연주
해석과 연출이 원인적 요건이라면 연주는 그의 결과가 빚어내는 산물이다. 또다른 예술적 행위를 통해 자신을 표현 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기회이자 선택받은 사람들의 몫이란 확신을 갖는다. 즉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고 무대를 통해 나눌 기회를 마련한다는 것은 신의 축복으로 간주할 수 있다. 왜냐하면 또다른 방식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위안, 휴식, 활력 그리고 삶의 소중한 가치를 재인식하게 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바쁘고 혼돈(混沌)의 와중(渦中)에서 일상적 삶을 영위해 나가는 세상살이다. 심신이 지쳐 허덕이는 가운데 연주회장을 찾는 기회를 마련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 역시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한다면 분명 보다 인간적이고 숭고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성향의 발전적인 생활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기에 한 세기의 예술과 문화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연주자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고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다. 삶의 방식과 환경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연주회장에서 모든 이를 충족할 연주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의 이해 및 파악의 능력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또한, 비록 음악적 체험이 많지 않거나 교육받지 못한 청중일지라도 뛰어난 연출력을 드러내는 연주자의 음상(音像)에는 그들조차 감화 내지 감동하게 하는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를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즉 연주는 연주자 본인이 일차적이고 청중, 즉 함께 할 이차적 대상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을 전적으로 의식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예술적 향수(享受)가 가능하게 사전에 치밀하고 책임 있는 준비가 선행되어야 함을 말한다. 이러한 선행 작업인 해석과 연출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무대에서 함께 감흥을 공유하는 진정한 가치를 발(發)하는 연주가 가능해진다.
연주를 평가하는 것은 복잡하고 난해한 활동이다. 오랜 학습, 폭넓은 경험, 음악특성의 이해 및 파악 등이 가능해야 진정한 평가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조차 기준은 아무리 공정을 기한다고 해도 개인적 성향이 전혀 개입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연주자는 자신이 아닌 또다른 관점에서 파악된 견해를 주시하지 않으면 진정한 발전을 초래할 수 없다. 연주는 시간적 속성을 갖기 때문에 여타 공간예술과는 다른 특수성을 갖는다. 음의 발생과 지속, 리듬의 변화, 화성적 다양성, 작품구조 그리고 쉼 등 일단 연주가 시작되고 나면 어느 한 순간도 방심하거나 태만하게 작업에 임할 수 없는 속성을 갖는다. 그림이나 건축은 작업 도중 잠시 주의를 환기할 여유를 가질 수 있지만, 연주에서 악장 사이의 또다른 준비가 아닌 중단은, 즉 음악적 사고(事故)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기에 짧게는 수 내지 수십 분에 이르는 연주시간 동안 지체 없이 전개해 나가야 한다. 아무리 세부적 완성도가 뛰어나더라도 작품 전체를 일정시간 동안 변화무쌍하게 전개해 나갈 수 있는 집중력이 부족해서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연주에서 요구되는 것은 선행 작업인 해석과 연출의 뒷받침과 이를 겸비한 전반적 운영능력이 필수적인 관건이다. 그러므로 양자를 충족시킬 다각적인 연습과 매순간의 집중 그리고 심적 준비가 반드시 준비되고 훈련되어야 비로소 성공적인 연주가 가능해진다.
청중은 이제 여행(음악감상)을 떠나기 위해 차량 좌석(객석)에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리잡고 앉은 승객(청중)이다. 어떤 코스(작품)를 선택하여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체험(폭넓은 악상)이 가능하게 사고(내용적 결함이나 메모리 슬립)없이 안정된 여정(연주회 전반)을 마무리하는 능력 있는 운전자(연주자)에 비유할 수 있다. 거대한 대자연의 변화무쌍함은 예술성의 근간이자 인간이 인간적이고 본연의 품성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기여하는 바 크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 많은 것을 학습하고 터득할 수 있다. 자연은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다!! ■

 


효과적 연습·연주 위한 단계 및 순환

 


예술적 창의의 목표를 지향하는 연주자들이 지향해야 할 연습·연주를 위한 과정은 연주를 위한 사전적 지각(知覺)으로 형상화된 음상(音像)의 자각(自覺) 행위인 내귀와 상상을 통한 내적 청취, 이를 구체화할 신체적 준비를 통한 연주 및 확인 등의 단계를 거치고 순환을 거듭함으로 생성된다.


고래(古來)로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악곡들이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도 새로운 창작적 시도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다. 또한 시대적 변화와 연주자마다 개성적 차이는 상이성(相異性)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이는 필연적이다. 예술적 창의의 목표를 지향하는 모든 연주자들이 지향해야 할 연습·연주를 위한 과정은 다음과 같은 단계와 순환을 거듭함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1) 내귀(內耳:Inner Ear)
우리는 생활하면서 무수한 소리를 접하게 된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우리의 삶 주변에는 온갖 음향(소음에서부터 예술적 가치를 획득한 음까지)이 항상 공존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내귀(內耳)는 자연발생적 음향의 청취가 아닌, 연주자가 음악적 상상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연주를 위한 사전적 지각(知覺)으로 형상화된 음상(音像)의 자각(自覺)행위를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고찰하면 창작과 연주는 유사성을 내포하기도 하지만 한편 연주는 창작시기와 상상의 폭에서 다소 제한적인 면이 있음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작곡가든 연주자든 소위 악상을 떠올리고 이를 악보에 기록하는 작업 또는 악보를 통해 음상을 떠올리고 음악적 사고를 통해 정리된 악상을 악기 또는 성대를 통해 표출하는 연주는 창작적 속성에서 일맥상통하는 유사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창작 또는 연주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음악적 체험(연습 및 감상)을 통한 내귀를 소유하는 것이 주요 관건이다. 이는 향후 자신이 펼칠 음악적 변화 및 가능성을 확대할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화가와 건축가는 상상을 통해 시각화하지만, 작곡가와 연주자는 상상을 통해 내귀로 형상화되어 들려지는 음상을 기록 또는 재현하는 역할 및 기능의 차이를 드러낸다.


2) 상상을 통한 내적 청취
자신이 상상을 통해 인지(認知)·인식(認識)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창작(작곡, 연주 및 감상) 활동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흔히 듣게 되는 ‘상상의 날개를 펴다’는 말은 모든 예술가들의 창의적 활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상상의 세계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므로 음악활동에 있어 제한되지 않는 가능성을 추구할 자신의 폭넓은 수련이 필연적이다. 이는 단지 연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적·정서적 폭넓은 수행(修行)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예컨대 독서, 회화, 조각, 영화 및 장르를 제한하지 않는 폭넓은 음악감상, 자연을 가까이 접하면서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체험하는 것 등이 자신의 음악적 상상을 제한되지 않고 폭넓게 펼쳐갈 확실한 방안이다. 여기서 중요한 관건은 앞선 체험을 음악과 연계성을 도모하며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직물(織物)을 짜나가듯 주변의 자연 및 자매 예술과의 동질성 및 상이성을 항상 생각하는 제2의 습성을 지녀야 이를 강화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악보를 통해 음상을 명확하게 정립하면 내적 청취가 가능하고 이는 연주를 위한 충분한 사전 준비의 역할에 손색없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내적 청취(內耳)가 가능하게 되면 불필요한 연습을 배제함으로써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아울러 누구나 염원하는 최상의 단계인 연습이 불필요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연주사상 천재로 간주되었던 많은 연주자들은 이러한 음악적 성찰을 통해 연습을 진행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것이다. 물론 진지한 연습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목표 없는 연습은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단지 신체적 활동 영역에 제한되는 많은 사례를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게 된다. 즉 상상을 통한 내적 청취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습득하게 교육한다면 이는 유태인들이 행하듯 ‘고기 낚는 법’을 가르치는 효율적이고 스스로 발전을 도모하게 할 최선의 교육방식으로 간주할 수 있다.


3) 내적 청취를 통한 표현과 이를 구체화할 신체적 준비 (근육의 이완 및 긴장)
진지한 내적 청취를 통해서 이를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한 교육자의 소양을 갖춘 사람이며, 나아가 이를 구체화할 신체적 준비가 가능한 사람은 뛰어난 연주자의 대열에 서게 될 가능성을 갖춘 사람이다.
음악교육에 남다른 가능성을 실현한 유능하고 자질 있는 교수의 성공사례(세계적 명성을 갖는 연주자를 무수히 배출한)를 볼 수 있다. 또한 체육계에서 뛰어난 리더십으로 구단(球團)을 성공적으로 이끈 코치와 감독의 성공사례를 보도를 통해 흔히 접하곤 한다. 학생이나 연주자 모두 예술적 삶의 과정에 있는 것이다. 예술세계에서 완성은 절대 불가능하다! 단지 완성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이고 예도(藝道)를 닦아 나가며 인격적 내지 예술적 자아를 실현하려는 동일한 목적과 방향을 갖는 것이 예술가적 삶이다. 성악 또는 기악을 막론하고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악보를 통해 충분히 준비된 모든 면을 실현 가능할 신체적으로 경직되지 않는 준비가 필연적이다. 흔히 성공자의 대열에 선많은 연주자들의 음악을 접하면서 그들이 난곡(難曲)의 난제들을 테크닉적으로 너무 쉽게 풀어나가며 이제까지 체
험하지 못했던 풍부한 악상·상념들을 제한 없이 전개해 나가는 것을 체험하였을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서조차 일반적으로 언론이나 매체에서 전하는 완벽과는 다른 불완전성을 여전히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예술적 변화 가능성을 발견하고 벅찬 예술적 감흥을 체험하며 공유하게 되는 것이므로 좋은 연주를 많이 접하는 것의 중요성이 항상 강조되곤 하는 것이다. 연주는 신체적·정신적 행위의 산물이다.
삶은 어느 순간이나 ‘긴장과 이완’의 연속이다. 이러한 삶의 양상을 표출하는 또다른 가능성은 작곡과 연주로 대별된다.
음악적 사고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경직되어서는 효과적인 연출이 불가능하다. 역으로 이완, 즉 한없이 풀어져 있어도 탄력, 압축 내지 신선미를 줄 수 없다. 충분한 음악적 상상으로 정리된 악상을 내적 청취로 검증하고 확립한 후에 비로소 이를 악기 또는 성대를 통해서 구체화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으며, 폭넓은 음악적 상념을 전개할 최적의 신체적 준비가 가능해야 성공적이고 좋은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즉 어느 단계가 배제 내지 소홀하다면 이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콩쿠르, 입시 그리고 연주회를 통해 누구에게서나 다소간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진지하게 자신의 음악적 행위 및 결과를 확인하려는 의지와 능력의 유무 및 정도에 따라 그 연주자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견이 가능하게 된다.


4) 음악적 상상, 내적 청취, 연주 및 확인
앞서 언급하였듯 음악적 상상과 이를 기반으로 내적 청취를 통한 검증, 이를 제한됨 없이 실현 가능한 신체적 준비와 효과적이고 내실 있는 악상을 펼칠 연주는 일맥상통하며 최종적으로 이를 확인함으로써 자유로운 음악적 상상에 이를 수 있다. 즉 이는 바람직한 순환(循環)으로 작용하게 되나, 과정에서 어느 하나라도 충실성이 배제되면 발전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례를 통해 보면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소홀한 채 무의미한 연습만을 진행하거나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즉 연습 및 준비(작품특성 파악, 성찰 등)의 목표가 없는 것을 말한다.
연주는 매순간 최고도의 음악적 완성의 조각들이 모여 변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음악적 시간의 흐름을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일련의 바람직한 순환과정은 악보를 통한 음악적 상상 - 작품 특성의 성찰 - 내적 청취(內耳의 활동) - 최적의 신체적 준비 및 행위 - 이성적·감성적 안목에서 고찰하는 검증, 즉 확인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과정이 발전적인 연습이자 최상의 연주목표에 다다르는 길이다. 이는 작품의 부분 또는 전체에 해당하는 것으로 매순간 이를 의식하지 않는 한 연습 그 자체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며 당연히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이는 반복적으로 수련하여 음악적 행위를 앞두고 습관화함으로써 ‘제2의 천성’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이로써 진정한 예술적 자아를 발견하고 점차 확립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모든 음악가들이 추구해야 할 최상의 목표이자 음악인으로서 선택받은 삶의 가치를 실현할 일련의 과정으로 생각한다. ■

 


효과적인 연주를 위한 정신적·신체적 조건(작용)


효과적인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충분하고 바람직한 사전 준비가 선행되어야 괄목할 연주의 성과를 드러낼 수 있다. 효과적인 연주는 작품 특성에 상응할 최적의 정신적·신체적 준비가 전제 조건이다.


인간의 다양한 활동 가운데 연주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창작적 행위는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훌륭한 연주와 이를 준비하기 위한 연습과정에서 진정한 가치와 희열을 만끽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음악인 모두는 선택받은 삶으로 간주할 수 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충분하고 바람직한 사전 준비가 선행되어야 효과적이고 괄목할 연주의 성과를 드러낼 수 있다. 효과적인 연주는 작품 특성에 상응할 최적의 정신적·신체적 준비가 전제 조건이다.


1)정신적 조건
정신적 작용의 상이(相異)함으로 남과 다른 창의적 특성을 구분하게 된다. 인간은 그의 외모, 습성, 사고 그리고 가치관 등 필연적으로 차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역으로 남과 다른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진정한 예술적 자아를 형성하게 되고 이는 그의 예술성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적 숭고한 가치를 음악을 통해 재현하려는 의지는 연주자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준비과정이다. 이를 통해 그 연주자의 연출 의지를 파악하게 되며 나아가 음악적 완성도를 가늠하게 된다. 정신적 가치 실현을 통해 청중과 더불어 교감하고 예술적 감흥을 전달하는 것이 연주자의 사명이자 작곡가에 대한 책임이다. 작품성이 갖는 특성과 가치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성찰(省察)은 대단히 중요한 관건이다. 성찰은 작품의 전체에서 세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며 이를 자기화(自己化)하는 과정이다. 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진정한 연습이며 파악되지 못한 그 이상의 연출을 도모한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 연습에 앞서 눈과 내귀(內耳)를 통해 악보를 읽고 파악하며 사고를 통해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 적절한 감성의 이입이 이루어지면 이는 자연적으로 효과적인 신체적 준비가 가능하게 된다. 이 과정이 충분하지 못하거나 적절하지 못하면 내용적 빈곤은 물론 함량 미달의 완성적이지 못한 재현에 그치게 된다. 작품 특성의 성찰을 통해 정신과 신체가 하나 되어야 음악적 자아를 구현할 수 있으며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실현하게 된다. 흔히 인간의 정신적 기능과 역할은 다양한 갈래로 구분하지만 상호보완적으로 연계성을 드러내야 바람직할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정신적 활동이 지속되는 순간까지를 말한다. 음악가가 삶을 통해 습득하고 관찰한 모든 것은 자연히 그의 예술성의 바탕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고 맑은 정신을 소유한 사람만이 드높은 예술적 이상을 구현 가능하게 되며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옛말이 시사하는 바처럼 정신적 풍요(豊饒)의 부재는 순수 예술분야에서는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까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정신적 풍요로움을 갖춰나가는 것이 예술가들에게 절대적이다. 이를 위해 비단 음악에 한정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주변에 가능한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필연적이다. 자매예술(미술, 연극, 영화, 무용 등), 독서, 현재 자신이 처한 주변 상황에 대한 관심, 자연(自然)에의 여행 등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작용하는 요인은 부지기수다. 즉 우리가 삶을 영위하면서 체험한 모든 것들은 정신적 토양이 되고 좋은 토양에서 비로소 훌륭한 예술적 가치를 갖는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맹목적인 연습 또는 교사의 일방적인 해석이 음악도에게 강요되는 것은 이런 견지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즉 어린 학생이나 성인 모두 자아 형성과정이 제각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교사의 역할은 안내자 이상이 되어선 자칫 학생의 예술적 자아 형성에 위해요인(危害要因)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학생은 교사의 판박이가 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흔히 이러한 사례를 목격하곤 한다. 즉 예술성 신장을 위한 진정한 개개인의 정신적 발달을 제한하는 교수행위를 말한다. 물론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성과를 거둘 수는 있지만, 입학이나 콩쿠르 입상만을 위해 학생의 정신성 발달을 제한한다면 장기적 안목에서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정신적으로 자유스러움을 구가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비록 신체적 제한이 있더라도 정신적으로 자유를 느낀다면 그것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자유다. 틀에 제한되지 않는 신체적 자유는 정신적 자유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학생이나 연주자들의 경직된 상황은 그가 정신적 관건을 충분히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파악되곤 한다. 이를 풀어줄 해답은 바로 자유스런 예술성의 표출을 위한 정신적 자유다.


2)신체적 조건
인간은 신체를 통해 움직이고 모든 예술적 활동이 가능하다. 물론 특정인은 연주를 위한 신체적 조건의 우월성이나 편리함을 갖고 태어난 것은 큰 행운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개개인마다 신체적 조건의 차이는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극단적인 제한은 피할 수 없지만 일반적인 제반 문제는 해결 가능한 것이다. 이를 효과적이고 발전적으로 성취 가능하도록 돕는 것이 교사이며, 나아가 본인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교육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한 곡의 연주를 위해서는 다양한 신체적 준비가 필수적이다. 곡의 세부에 따라 필요한 신체적 운동은 제각각이다. 음상(音像)에 따라 호흡과 신체의 대응이 달라지는데, 결론적으로 신체는 연주를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때에 따라 신체적 강화를 위한 트레이닝의 필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것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의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 점이다. 물론 아무런 목표 없이 어떤 행위가 이뤄지지는 않지만, 충분하고 확실한 목표를 염두에 두고 연습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연습의 효과가 없음은 물론 시간과 체력적 낭비를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연습하는 방법을 보면 그 연주자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것이 훌륭한 교수들의 견해다. 필자 역시 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흔히 맹목적이라고 표현되는 연습을 감행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물론 이런 편협한 연습도 실행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편이 낳을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연습이나 신체적 조건의 준비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경직되지 않은 어린 시기에악기를 접하는 것이 세계적인 경지의 연주자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정신적·신체적 조건의 함수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면 발전에 한계를 초래하지는 않을 수 있다. 실제로 테크닉적인 문제로 난관에 처한 많은 초등·중·고교, 대학생 및 기성인들을 지도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많이 있다. 다시 되풀이 말한다면 신체는 자신의 예술적 창의를 실현할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체적 활동이 인식되고 부담으로 작용된다면 이는 분명 앞서 해결해야 할 그 무엇이 있음을 감지하고 즉시 연습을 중단함은 물론 다시 작품성의 성찰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란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조건적인 노력보다 지혜와 슬기로움의 기지가 진정한 발전을 도모할 방안이다. 큰 얼음 덩어리를 쪼갤 때 커다란 해머(Hammer)보다 작은 바늘이 효과적인 것을 경험적으로 익히 알고 있다. 즉 문제의 관건을 스스로 성찰하려는 습성을 지닌다면 그 발전 가속화는 기대 이상으로 나타난다. 물론 신체적 조건과 바람직한 자세는 어느 정도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연주자의 스타일과 성향에 따라 신체적 준비는 다르게 나타난다. 물론 절대적으로 어떤 것이 해답이라고 간주할 수 없는 것이나, 어떤 면으로든 예술성을 실현함으로써 예술적 감흥을 전달 가능해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물론 100%의 완전한 충족은 절대 불가능하다. 신체적 조건과 작품성에 따른 적절한 준비는 상응할 기본이 필연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그렇지만 테크닉적으로 음악적 관건을 해결하기 보다(물론 때에 따라 이의 필요성도 있을 수 있지만) 작품이 갖는 정신적 요건을 해결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 필연적이며 보다 효율성을 높이는 연습방법이자 최고도의 예술적 가능성을 표출하는 척도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신체는 우리의 정신을 담고 표출해 내는 그릇이자 도구일 뿐이다! ■

 


음악적 진행과 동적·정적 특성

 


음악은 시간의 흐름과 미적 사유(思惟)를 통해 내용을 구성하여 전개하는 특성을 지니며 음악에 있어 진행은 음악적 시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재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음악적 시간을 어떤 관점, 가치, 주관을 가지고 실현하느냐에따라 연주자마다 해석상 차이를 드러낸다.


음악은 시간의 흐름을 통해 미적 사유(思惟)를 통해 내용을 구성하여 전개하는 일반적 특성을 갖는다. 자매예술인 미술이 갖는 공간적·색채적 특성과 이질적인 면도 존재하지만 상호보완적으로 고려해야 함이 필수적이다. 작품 전체를 통찰(洞察)하는 데 요구되는 시간적 내지 공간적 방식의 차이일 뿐 음가(音價)의 이면(裏面)에 내재해야 할 공간성과 색채감도 필연적으로 다뤄져야 할 부분이다. 음악에 있어 진행은 음악적 시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재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음악적 시간을 어떤 관점, 가치, 주관을 가지고 실현하느냐에 따라 연주자마다 해석상 차이를 드러낸다.


음악적 진행


물리적(기계적-메트로놈을 통한 시간) 시간과 달리 음악적 시간은 연주자가 재해석 과정에서 정신, 정서, 사유 및 리릭(Lyric)한 성향에 따른 깊이와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실현됨으로써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물론 견고한 음악적 틀(리듬과 박자의 정확성을 도모하기 위한)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보조적으로 메트로놈을 활용함이 필수적일수 있지만, 틀을 벗어나 자유스러워 질 때 비로소 음악적이라는 평가와 내재된 폭넓은 다양성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음악적 시간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속성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메트로놈을 통해 작품과 개개 음가의 정확한 시간의 가치와 인식을 정립하기도 하지만 이는 절대적으로 보조적인 기능과 역할 이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사람마다 보행 속도의 차이 또는 개개인의 성격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즉 상대적인 속성을 갖는다.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연주자마다 템포와 전체 연주시간에서의 차이가 이를 입증한다. 또한 말의 속도도 제각기 다르듯 상대적으로 다른 시간성(템포의 차이)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 나름대로 인정받아야 함은 이런 관점에서다. 이렇듯 음의 진행에서 요구되는 시간성은 어떤 성향의 사유와 감성을 통해 작품을 이해 및 파악의 정도(程度)와 절대적으로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여기서 말하는 음악적 진행이란 작품 특성의 세부 및 전체적 고찰을 통한 다변화의 시간적 운용을 의미한다.
음악적 상황에 따라 때로 탄력적 압축 내지 상대적 완화를 도모함이 필연적이다. 예컨대 도로의 상황을 살펴보면, 고속도로처럼 기능적인 빠르고 편리함 위주로 제한된 규정속도를 요구하는 도로가있는가 하면, 국도 내지 지방도로처럼 상승 및 하강의 기복이 많고 변화무쌍한 도로를 주행할 때처럼 자유스런 속도의 가감이 가능한 도로를 주행할 때의 상황을 연상해 보면, 단지 빠른 속도감 내지 시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자가, 진정한 드라이브의 묘미를 만끽하기 위해선 후자가 더욱 자연적인 체험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이로써 청중이 풍성한 미적 체험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음악적 진행은 마치 드라이브를 위한 여행길 같은 음악적 진행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질적인 편의성 위주보다 다채로운 대자연을 체험 가능한, 즉 도로 상황에 따른 변화의 다양성을 편안한 상태에서 만끽하게 하는 유능한 운전자가 운행하는 차량에 동행하는 즐거움에 견줄 수 있다. 여기서 차량의 속도는 음악에 있어 템포의 변화를, 그리고 변화무쌍한 자연은 음악에 있어 악상의 다채로움으로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상대적이어야 하며, 음악교육에 있어 학생이 이해, 파악 그리고 동감하지 못하는 한 강요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음악적 진행에서의 불안정 및 흔들림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적 진행은 작품 특성의 진지한 성찰이 선행되고 이를 자기화 함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와 정신을 실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동중정·정중동


동중정(動中靜)은 활기 있는 무궁동(無窮動)적 악상(소나타의 빠른 1·3악장에서 제1주제 또는 다양한 춤곡 또는 악장등)에서 흔들림이나 불안정성을 드러내지 않는 진행을, 그리고 정중동(靜中動)은 느리고 노래부르듯 한 악상(소나타의 제2악장 또는 리릭한 성향의 악곡 등)에서 정체되거나 지루함을 주지 않는 움직임을 구현하는 상반되는 음악적 진행 특성을 말한다.


앞서 자동차 운행의 예를 들었는데, 운전자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주행하더라도 동승자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유능한 운전자가 있는가 하면 운행 내내 동승자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게 운행하는 미숙한 운전자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유능함은 연주자의 역량 및 연주의 속성과도 유사성을 갖는다. 빠른 진행 속에서도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완성적인 연주와 불안감을 주는 미완성적인 연주가 능력에 따라 차이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다른 연주자가 도저히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템포로 연주하면서도 청중이 편안한 가운데 시종 예술적 가치를 만끽하게 하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템포가 흔들리거나 연주 자체에서 불안정성을 드러내 실패할 것 같은 불안감을 주는 연주자도 없지 않다. 즉 상당히 빠른 템포에서도 안정적으로 맥을 짚어주고 프레이즈를 정리해 줌으로써 한층 고조 및 상승감을 유발시키는 연주 스타일이 전자의 동중정과 맥을 같이한다. 한편 상대적으로 풍부한 서정과 감각을 살려 심금(心琴)을 울리듯 노래하는 악절에서 노래하면서도 적절한 움직임을 가함으로써 정중동을 실현하는 연주가 있다.

움직임을 표면화하지 않고 유려한 진행을 드러내면서 내적으로 생명력을 감지하게 하는 진행이다.
음악적 진행은 대별할 때 앞서 언급한 양면으로 대조(Contrast), 변화 및 대립의 양상을 드러내며 이를 효과적이고 구체적으로 표출할 때 각각의 악구 및 악절에 생명력을 이입하게 되어 풍요롭고 다채로운 음상(音像)의 실현이 가능하게 된다.
물론 이의 양 국면을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서는 연주에 필요한 기술적·예술적 제반 관건을 학습하여 체득함은 물론 나아가 자신의 조정 및 제어가 가능해야 하며 아울러 음악적으로 발전적 자아 형성을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작품성의 깊이를 고찰하고 자아를 성찰하면서 내면적 표현의지를 구체화하는 일상 및 예술적 삶을 통해 성숙해짐으로써 완성도를 더할 수 있다. 전해지는 악보는 일점일획(一點一劃)도 변화할 수 없지만, 해석적 가능성은 연출자의 내적 성숙과 사유의 깊이 그리고 진정한 예술가적 수련의 삶을 통해 점차 농익게 된다. 즉 자신의 예술적 이상과 거시적 안목을 통해 작품의 연출 가능성의 다양성을 발견함으로써 자유스럽고 완성적인 예술성 실현이 가능하게 된다. 과거의 수많은 명연주자들의 연주계의 발자취를 통해 확인할 때 동일한 악곡을 수차례에 걸쳐 재차 레코딩한 음반을 남기고 있음과 매 연주에서 또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펼침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것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또한 음악적 진행 역시 변화의 가능성을 항상 연구하고 완성지향적인 목표를 갖는 연주자의 자세가 반드시 전제 조건이다. 사람은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동일한 것의 반복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에서의 진행도 연주자 자신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고찰하며 이의 결과를 무대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음악적 진행은 때로 동적이고 정적이면서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게 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음악적 진행과 동적·정적 특성은 불가분의 관계다. 작곡가들은 작품의 가치를 최대한 실현할 것을 연주자들에게 요청한다. 내적 가치의 실현과 더불어 외적 끊임없는 동적·정적 움직임을 통해 살아 숨쉬는 듯한 재현으로 제1의 청자
(聽者)인 연주자 본인은 물론 제2의 청자인 청중과 더불어 작품세계의 완성도를 함께 향유하고자 하는 것이 음악세계가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일 것이다. ■

 


음상(音像)의 가치와 예술성 및 생명력

 


음상의 신선한 가치와 더불어 빛나는 예술성의 추구 및 감화를 줄 생명력을 어떻게 드러내어야 할 것인지 항상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연주자의 역할이자 사명이다. 이로써 빛을 발하는 진정한 음상의 가치와 생명력의 내재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연주자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이자 이상은 작곡가에 의해 창작된 악곡을 통해 최상의 예술적 가치를 지닌 음상(音像)으로 재현하려는 것이다. 음을 소재로 자신의 음악적 상념(想念) 내지 표상(表象)을 구체화하고자 주력하는 것이다. 연주자마다 성향이나 자질 및 능력 여하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나는 연주는 작품에 제각기 다른 해석적 가능성으로 항상 새로운 변화의 의미와 상이한 가치를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개개 음들의 수평적·수직적 조합인 음악적 구조와 형식 파악 정도에 의해 해석적 결과는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연출자의 의지와 성향에 따라, 한편 동일한 연주자라도 세월의 경과에 따른 자신의 예술적 안목의 변화 노력 및 의지에 따라 충분히 발전되고 성숙된 모습으로 청중에게 다가설 수 있다. 악곡의 충분한 성찰을 통해 연출 가능성의 시야를 넓히는 것이 모든 연주자의 중요한 책무로 간주된다. 음상의 신선한 가치와 더불어 빛나는 예술성의 추구 및 감화를줄 생명력을 어떻게 드러내어야 할 것인지 항상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연주자의 역할이자 사명이다. 이로써 빛을 발하는 진정한 음상의 가치와 생명력의 내재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예술적 이상 및 자아 정체성 확립

 


진지한 음악가들은 자신 및 타인의 연주를 통해 완성도와 이면의 바탕을 가늠할 수 있다. 그만큼 음과 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많은 가능성의 고찰, 직·간접적인 다양한 체험 그리고 자신의 음악적 해석을 뒷받침할 학문적 적립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연주자 자신의 폭넓은 예술적 이상 및 분명한 자아의 정체성 확립이다. 때로 논리적으로 자신의 해석적 특징 및 성향을 설명 내지 분명한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어야 하나, 한편 자신의 음악적 견해와 상이(相異)한 해석적 가능성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겸허함으로 예술가로서 예도(藝道)의 실천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의 의미와 내적 정신성의 가치 실현을 중요시하고,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책임감과 아울러 연출자로서 사명의식을 분명히 하려는 정신자세야말로 모든 연주자가 갖춰야 할 바람직한 덕목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분명한 자세 및 마음가짐에서 비로소 진정한 예술적 가치와 정신 및 풍부한 정서의 실현이 가능하게된다. 이는 작품이 요구하는 음상의 가치와 생명력이 감지되는 완성도 높은 예술적 이상의 실현에 다다르는 정도(正道)로 감히 제언하고자 한다.
악곡에서 음상은 매순간 변화가 추구되어져야 하고, 이에 최적 내지 최고도의 완성 지향 및 내적 충실성을 실현하려고 주력함으로써 예술적 가치와 살아 숨쉬는 듯한 생명력을 드러낼 수 있으며, 이는 정신적·예술적 활동의 결과로 맺는 꽃으로 간주된다.
무릇 예술가들은 그들 각자의 고유한 활동을 통해 가치를 추구하며 특히 예술적 이상 실현의 독자성 내지 특수성을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염원하기 마련이다. 절대적으로 중요시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지만 작품 해석에 있어 지나친 인위성의 조작을 배제하고 연주자 본연(本然)의 인식 및 내적 정신성의 발로(發露)가 되어야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단편적 사고 또는 의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술성 실현 그 자체로써 진솔하고 명확한 자아 실현이 가능해야 함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개 음들이 갖는 최적의 가치 실현에 주력하는 것이며 이로써 예술적 완성을 지향하게 되고 아울러 생명력이 감지되는 이상적이고 연계성을 갖는 정신 및 감각의 활동 및 적용을 의미한다.


예술성 및 생명력


연주에서 예술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연주자의 지적·정서적 활동이 근간이 되어야 하며, 창의적 정신 역시 드높은 예술적 이상 실현에 있어 작용되어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연주를 통해 작품성에 내재한 가치의 발굴과 실현 및 이와 연계하여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 진지한 연주자의 자세이자 궁극의 목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통찰하는 능력과 자질을 어려서부터 신장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바람직한 교육방식을 통해 연주의 다양한 가능성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도록 이끌어져야 하며, 강요되는 식으로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고 습성화됨으로써 진정한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올바르고 효과적으로 예술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각과 안목으로 작품성을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자신을 어떻게 이입할 것인지 해석적 다양성의 접근방식을 일찍부터 체험할 수 있도록 사려 깊게 안내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자 자유스럽고 방해받지 않는 예술성 및 창의성 실현의 최대 관건이다. 아울러 악곡을 파악하고 연습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항시 새로운 표현 가능성의 추구 및 이상 실현을 목표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연습방법을 체득하고 생활화하는 습성을 지니도록 교육되어져야 향후 예술성 실현 및 작품의 최대 가치를 실현 가능할 성공적인 예술가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매일 저녁 각 공연장에서는 다양한 음악회가 펼쳐지고 있다. 내용이나 완성도 면에서 역시 큰 차이를 드러내는데,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정신 및 창의성을 충족할 만큼 재현된 연주회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는 자기 계발의 의지와 노력의 부재에도 기인하지만 많은 사례를 통해 파악한 결과는 잠재된 자신의 예술성 및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였거나 또는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예술성 실현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넓히는 것이다. 이는 연습에 할애되는 시간 내지 노력의 양에 비례하거나 단순히 이로써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은 절대 아니다. 물론 시간과 노력에 의해 조금씩 발전을 초래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진정한 연습의 가치와 의미의 발견 그리고 효과적인 방법을 체득하지 않으면 ‘연습=고통’의 연속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상적인 연습과정은 매순간 작품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이로써 창의성 실현의 목표에 주력하고 이를 확인하는 시간들이 되어야한다. 작품을 통해 작곡가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고 이를 자기화하며 그 과정에서 꾸준히 자기의 잠재된 예술성을 이끌어내어 연마하는 창의적 정신의 실현 및 계발이 목표이자 자신의 습성으로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모든 예술가들은 그들의 창의적 목표와 의지의 실현을 통해 높은 예술성을 추구하는 일련의 과정과 삶을 통해 진지하게 자신을 표출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관심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예술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 가는 음악가가 있는가 하면 한계에 봉착하여 허덕이는 듯한 양상을 드러내는 초라한(?) 연주자도 비일비재하다. 이는 정신적 한계 및 이와 직결되는 신체적 제한 때문에 양자에 저해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이를 극복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은 재차 강조되지만 자아성찰을 통한 자신의 재발견이 최대 관건이다. 물론 작품을 토대로 실행되어야 하며 때로 악기와는 별도로 끊임없이 생활화를 도모해야 가능한 것이다.
연습은 오직 악기와 더불어 진행하는 것으로만 제한하거나 인식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이는 설계도를 갖지 않고 바로 시공에 착수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작품의 음악사, 양식, 예술사조 및 정신 성향의 파악을 토대로 자유스럽게 구상하고 이를 악기 또는 인성을 통해 재현하는 것이 이상적인 접근 방식이자 단계로 간주된다. 여기서 본인의 고유한 예술성이 작용하게 되며 이는 자연스럽게 생명력을 드러내게 된다. 이따금 지극히 냉철하고 차가우며 기계적 성향의 연주를 접할 때가 있다. 이는 그 연주자가 음악을 바라보고 대하는 관점이 치우쳐 있거나편협하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예술은 논리 또는 감성에 극단적으로 치우쳐서는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없으며, 본연의 인간 정신세계가 갖는 자유스럽고 창의적인 사고와 이를 풍부하게 할 정서와 감각이 보완되어야 비로소 예술성의 높은 경지를 체험 가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재현이 가능하리란 생각이다.
모든 연주는 호흡을 통해 작품에서 요구하는 각양각색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정신·신체의 선행 준비와 이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있는 음상의 재현이 가능하게 작용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활동의 근간은 바로 호흡에서 비롯되고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화가가 화폭에 가해지는 수만 내지 수십 만에 달하는 상이한 행위를 통해 한 폭의 예술적 창의의 소산인 작품이라는 결실을 이루게 된다. 연주 역시 각각의 다른 음악적 준비를 통해 부분과 전체를 연계하며 각각의 음상이 지니는 최고 가치의 해석과 이를 조합하여 완성을 지향하는 예술성 및 생명력을 갖는 창의성 실현이 최대의 관건이자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정신과 신체의 일체화


연주의 근본이자 바탕은 연주자의 미적 정신세계의 표출과 이를 효과적으로 실현시켜 나갈 신체적 제반 조건의 뒷받침이다. 작품(악보)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여 이를 자신과의 일체화를 통해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자기를 표출하는 것은 고도의 정신적 작용과 신체적 활동이 일체화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연주의 근본이자 바탕은 연주자의 미적 정신세계의 표출과 이를 효과적으로 실현시켜 나갈 신체적 제반 조건의 뒷받침이다. 양자 가운데 어느 한 면이 결여되거나 부족하면 높은 예술성 및 이상 실현에 다다를 수 없다. 일반적으로 예술성의 면면으로 가늠되어지는 정신적 측면 그리고 자연스럽고 최적의 결과를 이끌어낼 원활한 기술적(메커니즘) 구사 능력이 모든 연주자가 지향하며 또한 갖춰 나가야 할 주요 관건이다. 즉 작품(악보)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여 이를 자신과의 일체화를 통해 실현 또는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자기를 표출하는 것은 고도의 정신적 작용과 신체적 활동이 일체화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정신적 측면
삶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체험함으로써 새로운 자아의 형성 및 인격적 완성을 도모하게 된다. 직·간접적인 모든 경로(예술 내지 일반 교육, 대인 및 사회적 관계를 통한 폭넓은 대화, 각종 다양한 서적,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 음악회, 무용공연, 미술 전람회, 연극, 영화, 드라마, 인터넷 등)를 통해, 또한 주변환경 및 시류(時流)의 변화 속 에서 역시 많은 생각을 갖게 되며, 이를 통해 종종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되고 또한 재형성되어지는 과정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예술가로서의 삶을 영위하고자 선택한 사람들은 그의 삶 속에서 예술적·미적 생각과 체험의 깊이와 폭을 넓혀야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자신의 정신적 사고의 영역이나 틀을 벗어난 그 이상의 작품성 실현이나 연출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고를 통해 감각적 세련됨을 추구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자연스럽고 무리 없는 연주를 위한 첩경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사고나 성찰 등 정신적 작용으로 모든 예술적 결정과 이를 실현할 구체적 행위인 연주가 이뤄지고 펼쳐지기 때문이다. 나날이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넓혀 나가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자신의 성찰이 요구된다. 물론 연주의 결과로써 또다른 변화의 과정 및 가능성을 점검 및 재확인 하는 것도 이 과정에서 필수 요건이다. 이의 효과적인 방안으로는 다양하고 폭넓은 예술 및 일반 체험의 중요성을 들 수 있다. 한편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예술적 견해가 비롯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육하원칙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왜’라고 하는 끊임없고 지속적인 사고를 통해 인지와 인식 수준 및 역량의 겸비가 필수적이다. 물론 끊임없는 연습과 이론적 내지 학문적 적립을 통해 자신의 계발이 가능할 수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음악을 접하는 모든 연령층, 그리고 아마추어에서 전문 연주자에 이르기까지 제각기 적합한 눈높이에서 출발하여 단계적으로 발전 지향적 사고 내지 인지능력을 발달시키고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관건이다. 항상 새로운 인식과 지각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안목을 펼쳐 나가려는 지적 내지 정신적 성장이 모든 예술적 창의의 근간으로 간주(看做)된다.


신체적 측면
신체적 조건(신장, 체중, 건강상태, 폐활량, 손가락 및 팔의 길이, 근력 등)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물론 기악이나 성악을 포함하는 모든 연주활동에 필요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사람과 어느 면에서든 제각기 다른 불리한 여건에 처해 있으면서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사례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효과적인 연주를 실행하기 위해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은 바로 신체적 ‘유연성’이다. 즉 연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악상이 변화됨으로써 매순간 다른 복잡하고 다양한 운동을 행해야 하는 필연성을 갖고 있다.
생각과 느낌의 변화에 따라 다른 신체적 행동 및 심리적 결과를 초래하는 예를 상상하여 보자. ‘귀여운 강아지’, ‘사납게 짖어대는 커다란 개’를 연상하여 보면 극히 상반된 행동의 결과를 우리는 인식하게 될 것이다. 전자는 안아서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겁을 먹게 되고 자칫 물리지 않을까 염려하게 된다. 또한 강아지를 만지면서 평온하며 사랑스러운 마음상태를 유지하게 되나, 큰 개(犬)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며, 이로써 신체적으로도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모든 교육 특히 음악교육에 있어서 ‘지나치게 엄한 교사’ 보다 ‘학생의 상태를 파악하고 이해하며 진정으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자상한 교사’가 상대적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위축되지 않고 자연스런 심리상태에서 개인적 창의성의 실현과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 및 자질의 함양을 배가(倍加)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진정한 교사상으로 생각된다.
연주자를 포함하여 모든 예술적 활동을 펼치는 예술가들은 그들의 신체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피력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적인 다양한 기본적 훈련과 가능성을 습득해야 할 필요성이 중요하지만 한편, 본연(本然)의 자연스럽게 이완(弛緩)된 신체의 조건 내지 상태의 이해를 통한 파악이 가능하게 된다면 보다 효과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사람마다 신체적 조건과 유리함 내지 불리함의 상태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상이(相異)한 접근과 교육방식을 필요로 함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제한됨 없는 완벽한 신체적 조건을 갖춘 사례는 극히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작곡가들 역시 연주자들이 편안하게 연주하도록 작곡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난제들을 스스로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 나가 궁극적으로 홀로 설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효과적인 최선의 교육의 방식이다. 그러기 위해서 어느 정도 정형화된 보편적 요건들을 파악하게 하고 나아가 개인적 특수성에 따른 문제를 찾아 해결해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사의 중요한 책임이다.
뛰어난 연주자들의 연주회에서는 제각기 다른 작품의 연주를 통해 일반적으로 부각되는 테크닉적 관건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또는 관객들이 부담감을 갖지 않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무난히 연주되어지는 것을 확인하였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 역시 준비(연습) 또는 연주과정에서 어느 작품이든 기술적으로 난관을 거쳤을 것이며, 신체적 제한을 극복하지 않고 그 경지에 다다른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블로 카잘스 같은 세기적 명첼리스트도 전성기를 지나 은퇴한 후 매일 악기 연습을 통해 나날이 더욱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듯, 신체적 조건 및 준비의 또다른 가능성을 시도하고 체험함으로써 다양한 방법을 구사해 보는 것도 신체적 조건을 강화하고 보완하는 좋은 과정으로 생각한다.


정신과 신체의 일체화
악상에 따라 고도(高度)의 정신적 집중 상태를 유지하면서 신체적으로 편안하고 최적의 자연스런 연주를 행하는 것이 이상적인 연주를 위한 ‘정신과 신체의 일체화’로 간주된다. 흔히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고 말하곤 한다. 이를 연주에 접목하여 풀이해 보면, 즉 지적 성찰(생각)을 통해 형성된 미적 가치관 및 감각을 실제 행위(행동)를 통해 실현하는 것이 연주다. 물론 여기서 작품특징의 제반 가능성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적절한 감각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신체적으로 연계성을 시도하는 것이 좋은 연습 방법이자 훌륭한 연주를 실현 가능한 방안이다.
작품성의 성찰로 새롭게 형성된 자신의 감각과 느낌을 신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표출할 수 있도록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주회에 앞서 지나치게 불안한 심리적 상태에서 올바른 지적(知的) 또는 정신성의 작용 및 판단이 불가능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신체적 긴장과 근육의 경직(硬直) 상태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극복한 연주자들은 무대를 통해 어느 정도의 정신적 긴장을 보다 효과적인 예술적 감흥 내지 구성력으로 적절히 이용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실수가 전혀 없거나 흔히 말하듯 완벽한 상태로 한 무대를 끝내는 연주자는 필자가 단언하지만 단 한 사람도 없다. 이는 연주자가 최고의 상태 및 조건에서 녹음하여 출반한 음반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이 점이 인간적 한계이며,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금 재도전을 시도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예술적 안목이 넓혀짐으로써 또다른 가능성을 찾아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세계가 지향하는 것은 예술가의 고유한 정신, 예술적 견해를 포함하는 자기 주장, 각기 다른 미적 가치관의 표출 등 이는 정신적 측면으로 대별되며, 자유스럽고 제한되지 않는 편안함은 신체적 측면으로 간주된다. 양자는 유리(遊離)되지
않고 일체화함으로써 제한됨 없이 자신의 예술성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자 모든 연주자들이 추구하는 이상일 것이다! ■

 


예술적 가치 실현과 미적 체험의 상관관계


작품에 내재하는 예술적 가치를 충실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연주자 개개인의 교육환경 및 정도, 다양하고 세부적인 예술적 가치실현에 관한 관심과 선험(…驗)적 체험의 다양성 및 폭이 주요 관건이다. 나아가 생애를 통해 지속적으로 미적·예술적 가치 실현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품에 내재하는 예술적 가치를 충실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연주자 개개인의 교육환경 및 정도, 다양하고 세부적인 예술적 가치실현에 관한 관심과 선험(…驗)적 체험의 다양성 및 폭이 주요 관건이다. 무릇 인간은 출생 이전(태교를 통하여)부터 이후까지 일생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체험하는 일상적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이러한 생활 주변의 경험적 기반은 그의 예술성으로 드러나게 되며, 경험의 폭과 넓이에 따라 생각과 안목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 차이는 현격히 다르며, 때로 연륜이나 경험의 정도와 상관없이 어린 나이에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거나 보여지는 일부 사례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외부적으로 보여지고 회자(膾炙)되는 단면일 뿐이지 어느 누구도 이에 예외가 없다는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처럼 앎이란 것은 이해의 단계를 거쳐 정확하게 인식 또는 파악하게 될 때 진정한 자기화가 가능하게 되며 이를 통해 확신과 자기신뢰, 즉 자신감(自信感)를 확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육 과정도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생활 속에서 접하는 것 역시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나아가 생애를 통해 지속적으로 미적·예술적 가치 실현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관건으로 생각한다.


1. 예술적 가치 실현
1)일반성향(보편적 관건)
예술세계는 분명 개인적 성향을 드러내며 자신의 미적·예술적 가치를 실현하는 또 한 가지 방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극히 편향(偏向)된 예술성의 가치가 인정받거나 보편화되기에는 일반의 인식이 전환되기 위한 오랜 시간이 요구되거나 또는 절대 실현이 불가능해 보이는 사례들을 목격하게 된다.
최근의 연주 스타일을 보면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양극화된 양상을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물론 개인적 상황에 따라 차이가 분명히 있지만 흔히 말하듯 미국적 또는 서구적 스타일로 대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떤 성향의 우월성을 쉽사리 단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이것 역시 교육환경의 차이 내지 개인적 취향이나 관심에 따는 것), 어느것이든 일반적으로 갖춰야 할 보편성의 굴레는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일반 성향은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할 예술적 바탕의 기본적 요건들이 갖춰진 상태를 말한다. 나아가 개인적 요건들이 첨가되어질 때 비로소 완성적이고 진정한 예술적 자아 실현의 단계에 이르게 되지만, 분명한 것은 보편적 내지 일반적 그리고 상식적인 인식의 작용으로 충분히 동의 내지 동감할만한 가치성의 유무로 확인 가능한 요건들이다. 즉 예술적 가치 실현의 큰 줄기
내지 맥(脈)을 형성하는 것이 일반 성향으로 간주할 수 있다.


2)특수상황(개인적 관건)
일반 성향(보편적 관건), 특수상황(개인적 관건)이 자연스럽게 한데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예술적 자기화의 성공적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개인적 성향은 자기 본위나 중심적인 편향된 아이디어, 과장 내지 확대되고 부풀려진 해석적 성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때로 위험성을 수반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류의 연주자일 것이다. 물론 연주나 해석에 있어 모든 사람의 지지나 동감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진지한 청중이나 음악가들은 각 연주의 해석적 당위성에 대해 나름대로 개인적 판단의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아울러 각자 자신의 취향에 따른 가치판단이 작용되어 나름대로 연주의 결과를 가늠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연주자는 지극히 세심하고 신중하면서도 작품의 작곡의도를 최상의 가치로 실현하려는 책임감과 사명의식으로 작품성의 해석적 다양성 및 변화 가능성을 사려 깊게 판단하여 연주에 새로운 활기와 생명력을 이입하려는 재해석자(연주자)로서의 기본적 자세가 갖춰져야 할 것이다.
새로 구입한 의상(악곡)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거추장스럽거나(작품의 이해 및 파악의 불충분), 또는 연기자가 새로 담당한 배역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해 극(劇) 중에서 이질적(異質的)이거나 전체적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는, 즉 극중의 또다른 인생이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실현하지 못하는 사례 역시 연기자 본인은 물론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이나 연주회의 청중 모두에게 실망감 또는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음을 가늠 내지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연주에 있어 개인적 표현욕구나 의지를 분명하게 소신을 가지고 피력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이의 남용은 부족함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도 있다.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옛 격언은 악곡을 해석하는 가운데 개인적 관건의 이입 단계에서 자신을 가늠할 척도이어야 할 것이다.


2. 미적 체험
1)직접적 요인 - 예술관련 교육, 지적·정서적 체험 등
인간은 태어나기 이전부터(태교) 살아가면서 가정, 학교 및 사회교육, 매체(신문, 잡지, 방송, 인터넷 등)를 통해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학습하고 경험하며 살아간다. 특히 예술가 및 음악가들의 삶 역시 보편적 굴레에서 벗어난 삶을 영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을 받아들일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적 사항이기는 하지만, 미적 체험의 다양성은 어린 시절에는 부모나 선생으로부터 영향받고, 자의식이 뚜렷해지는 시기에는 본인이 주도적으로 삶의 방식을 이끌어 나가게 된다. 즉 모든 것에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시사하는 바 그대로다.
바람직한 좋은 교육의 필요성은 특히 자질이 뛰어난 우수한 선생(교사 및 교수)을 만나야 함은 필연적이며, 지적·정서적 다양한 체험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안내할 수 있는 것도 예술적 안목을 갖고 있는 부모나 선생의 역할일 것이다. 교육의 부재나 지적·정서적 체험의 빈곤 상태를 연상해 보면, 숭고한 예술적 가치 실현은 절대 불가능할 것임을 즉각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부모와 선생의 도움에 의해서든, 자신의 선택적 의지에 따른 결과이든 간에 다양하고 폭넓은 학문적 수련과 지적·정서적 체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2)간접적 요인 - 생활 주변의 모든 것
인간의 삶의 주변 모든 것(개인적 환경,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적 제반 여건 및 자연 등)은 본인의 의지 내지 관심의 유무에 상관없이 자신의 인격이나 예술성 형성에 작용함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즉 생활을 통해 그 토양에서 모든 자양분을 흡수하며 점차 완성되어 가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미적 체험 역시 이와 직접적 연관을 항상 인식해야 할것이다.
전자의 직접적 요인과 관련하여 간접적 요인, 즉 생활 주변의 모든 것이야말로 연주자의 미적 체험에 있어 선험적(…驗的)인 것을 더욱 풍성하게 완성시켜 나갈 중요한 관건으로 간주할 수 있다. 즉, 생활 그 자체가 예술적 삶이 되어야 하며 생활 속에서 항상 미적 체험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문화·예술적 관건들을 호흡(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미적 체험의 폭을 넓혀 가려는 의지가 모든 연주자에게 중요하다. 그러므로 오로지 연습목표의 지향만이 아닌, 때로 삶의 주변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미적 체험의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고 싶다.


3. 예술적 가치 실현과 미적 체험의 상관관계
양자는 절대적이라는 결론부터 내리고 이의 상관관계를 정리하고자 한다. 앞서 각 부분적 특성들에서 언급하였듯, 미적 체험의 다양함과 풍부함은 연주자의 예술적 가치 실현에 있어 중요한 바탕을 형성하는 주요 요건이다. 동일한 작품(악곡)일지라도 어떤 연주자의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가치나 완성도에 있어 현격한 차이가 드러난다. 연주자가 어떤 인식, 안목, 가치관,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이냐에 따라 순수한 예술작품조차 숭고함 내지 천박함(?)의 결과를 드러내게 되어 예술적·미적 가치유무를 가늠할 수 있다. 예술적 가치 실현과 미적 체험의 관계는 정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술적 이상과 안목을 넓히는 것이 예술적 가치의 내재 및 실현 가능성을 고도 성장이 가능하게 할 대단히 중요한 열쇠(Key)임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즉 예술적 이상과 안목을 넓히기 위해서는 미적 체험의 다양성과 폭넓음이 절대적이다. 자신이 학습 내지 체험하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예술적 가치 실현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사고의 유연성, 폭넓은 다양성에 대한 이해 및 수용 자세, 자신과 타인의 동질성 내지 상이성에 대한 인정 그리고 삶을 관조하며 자신의 정신, 정서 및 감각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살찌우려는 마음가짐에서 자신의 미적 체험의 다양성이 제한 받지 않게 되며, 이로써 보다 완성적이고 이상적인 자신의 고유한 예술적 가치 실현의 단계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라는 말이 있듯, 열(다양성의 폭과 깊이)을 가지고 하나(작품의 전체 또는 세부적 부분)를 관조하고 성찰하면 자신의 진지한 표현을 통한 예술성 신장(伸長)의 효율을 최고도로 높일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음악적 해석과 신체적 조건, 준비 및 작용


창작된 모든 예술적 작품은 각기 다른 성향의 연출자에 따라 해석의 방향 및 가능성에 있어 제각기 다른 결과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음악에 있어서도 어떤 관점에서 재해석되었느냐에 따라 표현의 차이는 크게 나타나며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실현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신체적 조건, 준비 및 작용에 달려 있다.


창작된 모든 예술적 작품은 각기 다른 성향의 연출자에 따라 해석의 방향 및 가능성에 있어 제각기 다른 결과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음악에 있어서도 어떤 관점에서 재해석되었느냐에 따라 표현의 차이는 크게 나타나며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실현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신체적 조건, 준비 및 작용에 달려 있다. 물론 정신적 신체적 모든 요건은 연주자의 또다른 천성으로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하며, 이의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신체적으로 자연스럽고 제한되지 않는 폭넓은 연출이 가능한 것이다. 이를 위해 끊임없는 연습과정을 거치지만, 이의 효율성을 기하려는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가능성을 추구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성악과 기악을 포함하는 모든 연주행위는 신체적인 조건과 이의 일체화가 절대적 관건이다. 아울러 호흡은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 등 음악적 세부와 특성에 직결되는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다.


1. 음악적 해석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작품에 내재된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여 이를 바탕으로 연주자 자신의 표현의도를 이입(移入)함으로써 완성된다. 이의 과정에서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해석적 깊이와 완성도 등 제반 가능성의 차이는 크게 달라진다. 물론 작품성이 갖는 본연의 가치는 진정으로 존중되어야 하며, 이를 왜곡하거나 확대 해석하는 것은 금해야 하지만, 한편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서는 또다른 해석적 가능성으로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어떤 해석적 결과를 드러내느냐는 전적으로 연주자 자신의 음악적 안목과 직결된다. 이에 대한 당위성이나 표현의도를 분명히 할 자신의 명확한 견해를 피력할 수 있어야 타당성이 입증될 수 있다. 작품해석의 폭은 각 시대 및 양식에 따라 다소 제한해야 하거나 또는 확대해야 할 필요성의 양면으로 구분된다. 해석은 작품성이 갖는 최대한의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과정이며 이의 완성도를 가늠할 척도이다. 일차적으로 연주자가 어느 정도의 예술적 가치를 실현하느냐가 중요하며, 이차적으로 일반 청중의 호응 및 음악전문가에 의해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하고 공감하는지의 여부가 관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이입하는 것이므로 치밀하고 구체적인 그러면서도 최대한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책임의식 및 마음자세가 작품을 대하는 기본적 정신이어야 할 것이다.


2. 신체적 조건, 준비 및 작용
인간의 모든 예술적 활동은 신체를 통해 표출되고 완성된다. 무용(고전 및 발레, 현대), 미술(데생, 조각 등) 그리고 음악(성악 및 기악)의 모든 영역에서 신체적 작용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갖고 있다. 성악이나 기악의 모든 영역에서 선천적으로 좋은 또는 유리한 조건을 타고난 연주자도 있지만, 누구나 각자 나름대로 신체적 한계를 극복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신체적인 불리한 조건에 대해 크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나아가 이를 발전적으로 적용시킬 나름대로의 방안을 모색함이 타당하다.
누구나 모든 영역에서 완전한 조건을 갖춘 연주자는 없다. 또한 어느 작곡가도 연주자의 편의를 고려하여 작곡하지는 않는다. 신체적 조건의 해결은 악곡을 대하면서 기능적으로 극복해야 할 관건이지만, 다음으로 신체적 준비는 ‘기술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의 양면으로 고찰할 수 있다. 즉 테크닉적 문제 해결을 통해서 또는 해석에 따른 자연스런 신체적 대응의 양면이 그것이다. 물론 후자가 가장 효과적인 연습의 방법이자 이상임은 분명하지만, 부분적으로 요구되는 기술적 문제 또는 타인을 교육함에 있어서는 전자에 대한 고려와 연구가 때에 따라 요구되기도 하지만, 결과 적으로는 자신의 음악적 상념에 따른 신체적 자연스런 대응이 가능하게 교육되고 이를 실현할 단계에 이르도록 준비되어야 진정으로 폭넓고 바람직한 예술적 행위의 실현이 가능하게 된다.
신체적 모든 관건은 필요에 따라 때로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연습이 진행되어야 하지만, 이는 앞에서 언급하였듯 개인마다 그리고 각 작품에 따라 제각기 다를 수 있으며, 또한 기능적인 면에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세부적인 관찰을 통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실행이 가능하도록 연습이 진행되고 아울러 교육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작품이 요구하는 다양한 신체적 세부의 작용은 단순 물리적 속성에서 벗어나 연주자 자신의 음악적 상념을 내귀(內耳:Inner Ear)를 통해 듣고 이의 실현이 가능하도록, 즉 자신의 음악적 상상(想像)을 통해 신체적으로 긴밀하게 작용하도록 하는 데 주안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앞서 고찰하였듯 신체적인 모든 관건들은 연주자가 자신을 표출하기 위한 과정이다. 해석적, 신체적 측면 모두 중요 하지만, 탁월한 테크닉의 과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담아 재현하느냐에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제반 활동이 신체를 통해 가능한 것은 인지상정이나, 신체를 지배하고 활동하도록 작용하는 것이 바로 정신이기 때문이다.


3. 음악적 해석에 따른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신체적 대응
경직되지 않은 유연한 사고와 신체가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연주를 실현 가능하게 할 주요 관건이다. 다양하고 폭넓은 악상의 변화에 신속하고 긴밀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탄력적이고 순발력있는 신체적 대응이 필수적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음악적 아이디어와 해석의 제반 가능성을 신체(성악) 또는 악기(기악)를 통해 재현하는 것이 연주의 실체다. 아울러 심리적 안정을 기반으로 호흡을 통한 다양한 음상(音像)이 준비되어야 음악적 진행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다. 즉 사고와 신체의 일체화가 이뤄져야 자유스럽고 제한되지 않은 음상의 다변화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악곡을 세부적으로 성찰하고 분석하여 이를 통해 자신과의 일체화가 도모되어야 바람직한 것이다. 겉돌지 않고 마치 자신의 또다른 분신과도 같은 연주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일체화’인 것이다. 악상이 단지 사고에 국한되어 신체와의 연계성을 도모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표출하는 데 지극히 한계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음악적 사고와 감성이 신체와 완전히 하나될 때 비로소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담아낼 수 있는 재현이 가능한 것이다. 각각의 음의 조각들을 해체하고 조합하여 하나의 음악적 상념으로 표출되도록 주의 깊고 세밀한 사전 작업이 바로 진지한 연습의 단계이다. 음악적 사고(思考)로 선행되지만 반드시 신체를 통해 ‘자기화’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음악적 해석을 건축의 설계에 비유한다면 시공과 실내장식은 바로 연주인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해석적 아이디어와 풍부하고 예술적인 감성과 기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를 구체화할 다음 단계인 기능적인 능력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좋은 연주는 불가능한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뛰어난 테크닉적 능력을 소유하였다 하더라도 예술적 해석의 제반 관건이 불충분하면 완전한 연출로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의 양자를 발전적으로 도모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예술적 자아의 성찰과 이의 확인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해석을 신체를 통해 이상적으로 재현이 가능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모든 단계는 기악에서조차 단순히 연주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노래(Singing-Tone)되는 음색의 실현이 바람직하며 이를 위해서는 호흡의 조절이 필수적이다.
호흡은 음악적 흐름과 성격 그리고 프레이징에 따라 크게 달라져야 하는데, 이 역시 음악적으로 명확한 상(像)이 정립되어 있다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흔히 호흡의 조절이 잘못되어 음악적 진행이 불안정해지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솔로는 물론 앙상블에서 호흡조절의 일체화는 필연적으로 이뤄져야 할 중요한 관건이다.
결론적으로, 자신을 표출할 명확한 음악적 해석을 정립하는 것이 일차적인 단계이며, 다음으로는 이를 실현할 도구의 역할을 하는 신체를 효과적으로 조정하여 그에 상응하게 이끌어 나가는 것이 정확하고 완성도 높은 연주를 실현 가능하게 할 중요한 이차적 단계인 것이다. 악보를 통해 정신과 신체가 제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성을 기반으로 자유스러운 상상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연주자가 체득해야 할 가장 중요한 방법임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사고와 감각 그리고 이를 현실화하는 신체의 이상적인 조화와 균형이야말로 연주자 자신의 음악적 상념(想念)을 명확하게 실현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지탱하며, 다음 단계인 예술적 이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음악적 시각의 증대


처음으로 악보를 대하여 작품성을 관조하는 것이야말로 실제적인 연주의 부담없이 오직 작품을 통한 성찰로 해석적 가능성이 제한받지 않으며 완성을 지향할 수 있게 된다. 거듭되는 작품성의 재조명은 또다른 시각적 가능성으로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모든 일상적·예술적 활동을 보다 폭넓고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관조(觀照)하는 시각과 안목에 따라 결과 및 완성도는 큰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 다양한 연관성을 갖는 요건들에 대한 성찰이야말로 연주자의 예술성 증대로 귀결되는 확실한 방법으로 생각하는데, 실상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연습과정에서는 이와 같은 음악적 시각을 넓히는 데 많은 제한이 있다. 그러므로 연습 이전에 행해지는 다양하고 폭넓은 미적 고찰이야말로 음악적 시각과 안목을 넓힐 수 있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 즉 자신의 미적사고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적극적 의지의 실현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려는 자세와 정신에 투철한 연주자만이 진지한 연주자 대열에 서게될 것이다.
여기서 시각(視角)이라 함은 일반적인 눈(眼)의 기능이 아니라, 사고의 폭과 깊이와 관련되는 제반사항을 말한다. 흔히 말하듯 ‘우물안 개구리 식’이 아닌 우물을 벗어났을 때 세상의 변화무쌍함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작품을 대하는 연주자의 시각이 이처럼 우물 안에 한정되어 있는지 또는 보다 광활한 사고의 넓이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작품성의 완성도와 깊이는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물론 형성된 음악적 시각을 자신이 연습 또는 연주하는 과정에 어떻게 적용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 역시 중요하게 대두되는 과제다.
수학적으로 연관지어 생각하면 일차함수에서 선의 기울기의 각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시각과 연관성이 있다. 즉 어떤 각도(角度)로 출발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를 넓히려는 의지보다는 단순 또는 심지어 맹목적인 연습에 시간을 보내는 것은 효율성이 제한되고 체력 및 시간의 큰 손실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음악적 시각을 넓히려는 일차적인 문제를 놓고 많은 고심을 거듭함으로써 문제해결이 원활하고 진정한 연습과정을 만끽할 수 있으며 연주에 즐거움이 배가(倍加)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1. 작품성 재조명
어떤 성향과 어느 정도의 음악적 시각을 갖춘 연주자인지 각기 다른 상황에 따라 동일한 작품일지라도 음악적 특성은 상이(相異)한 결과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것은 연주자의 선천적 내지 교육적 환경과도 직결되지만, 후천적으로 자신의 음악적 안목의 발전을 위한 적극 의지와 다양한 체험의 정도에 따라 충분히 보완될 여지가 있다. 단순적 사고가 아닌 복합적 사고성향의 계발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교육방법 역시 이처럼 실행되어야 바람직한 것이다.
작품의 해석 및 연주는 많은 부분에서 보편성 내지 일반성의 관건들이 있다. 이는 정확한 토대가 확립되도록 선생으로부터 계승·전수되어져야 하나, 개성적 특수성은 진정으로 개개인의 특성적인 부분이 존중되고 연주를 통해 실현되도록 안내되어져야 한다. 이미 형성된 시각을 통해 작품성을 어떻게 재조명하는가 하는 것이 주요 관건이다.
작품성을 재조명하는 것은 사전적(事前的)인 의미의 작품성 파악의 과정을 말한다. 여기서는 이미 학습한 다양한 음악이론과 실기를 바탕으로 체득한 경험을 통해 작품성을 관조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程度) 내지 다양성(多樣性)을 가지고 작품을 대하느냐에 따라 작품성의 실체는 천차만별로 연주자에게 다가서게 된다. 즉 정확하고 효과적인 파악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역으로 작품성이 지닌 내적 가치를 충분히 고찰하지 못하는 정도에 한정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연주자가 작품(악보)을 대하는 순간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며 더 이상 인쇄물로 여겨져서는 안 될 것이다. 악보를 통해 숨쉬고 노래되어져야 하며, 나아가 내용이 다양하고 풍부한 정서 내재(內在)하도록 그리고 극성(劇性)을 드러내도록 음악적 상(象)을 정립시키는 과정이 바로 작품성의 재조명의 단계로 볼 수 있다.
여기서도 앞서 언급한 다양하고 폭넓은 음악적 시각이 작용하고 이를 통해 복합적인 사고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함으로써 사전 연습에 임할 준비를 행해야한다. 이러한 사고가 습관화되면 이후에는 악보를 통해 초견으로도 충분히 괄목할 만한 연주가 가능하지만 이 또한 자신의 음악적 시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 역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처음으로 악보를 대하여 작품성을 관조하는 것이야말로 실제적인 연주의 부담없이 오직 작품을 통한 성찰로 해석적 가능성이 제한받지 않으며 완성을 지향할 수 있게 된다. 거듭되는 작품성의 재조명은 또다른 시각적 가능성으로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이로써 책임있는 작품성의 재조명이 이뤄질 수 있다.


2. 재해석 및 연주
자신의 음악적 시각으로 작품성을 충분히 재조명한 후 비로소 일반(보편)적 내지 개인(특수)적 성향의 해석적 활동이 시작되고 이뤄질 수 있으며 실현 가능하게 된다. 작품을 해석하는 것 역시 형성된 자아의 실현을 염두에 둔 정신적·예술적·미적 활동이자 고찰이다. 교육에 의해서 어느 정도 해석적 가능성과 제한 그리고 다양성을 체득하게 될 수 있지만, 이는 전적으로 작품성을 바탕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이자 완성에 이르는 단계인 것이다. 음악적 사고와 감각을 포함하는 음악적 시각과 안목이 이미 성찰을 통해 작품성 재조명의 단계를 거쳐 자신의 고유한 음악관 및 상념을 이입(移入)하는 것이 바로 재해석의 단계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단순히 해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재해석으로 표현한 것은 연주자가 작품을 대하는 매 순간마다 항시 새로운 가능성 그리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세밀한 부분과 전체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다가서는 마음가짐을 가져야한다는 전제에서다.
해석은 자연적인 것(일반적 내지 학구적 성향)과 의도된 것(개인적 성향이 특별히 강조된 전문적인 콘서트 연주자 성향)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양자는 적절하게 보완함으로써 작품의 재해석 특성이 청중으로부터 적극적인 호응과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지나치게 편향된 해석적 스타일은 문제의 소지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때로 특별한 연주 스타일로 각광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몇몇 스페셜리스트에 해당하는 연주자에 한정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품을 재해석하는 것은 항시 신선하고 새로운 생명력을 실현할 제반 가능성의 고찰이 전제 조건이다. 물론 기본적인 틀 자체가 매번 흔들리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며 불안정한 연주자로 인식되지만, 또다른 해석적 가능성은 시간이 흐르고 연주자의 음악적 시각이 증대됨으로써 항상 변화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연주자들이 동일한 작품을 일정 기간의 차이를 두고 녹음하여 출반하는 이유이다.
작품 자체는 변화되지 않지만, 연주자는 항상 변화되기 마련이다. 이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발전을 전제로 한 적극적 변화를 의미한다. 어찌 보면 인간성 자체는 모든 면에서 대단히 불안정하여 흔들림을 갖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인간은 단순 반복적인 것에 염증을 느끼고 항상 자신의 변화를 추구하려는 습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이 예술적으로 연계되어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는 데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듯, 인간의 모든 것 역시 되돌릴 수 없으며, 항시 변화의 속성을 갖는다. 이런 면을 작품의 재해석에 적극 이용한다면 이는 상당히 긍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음악적 시각을 증대시키려 노력하지 않는 연주자는 이미 연주자의 사명을 망각했거나 책임감 없는 부류에 속한다고 단언한다. 작품성의 재해석을 통해 확립된 음악적 상은 연주자의 신체를 통해 재현(연주)된다.
연주자의 사고가 유연하고 탄력적이며 감각적으로 풍부하면 신체도 자연스럽게 이완(Relaxation)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해석의 필요성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한 채 맹목적이고 비효율적인 연습만을 강행하는 안타까운 많은 학생들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물론 상당히 많은 음악회에서 역시 이러한 면이 노출됨을 간파할 수 있다. 작품의 재해석은 이미 작품의 재조명을 통해 작곡가의 작곡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고 시대, 양식, 가치 등 모든 면을 충분히 고찰한 뒤에 이뤄지는 작품과 연주자 자신과의 합일(合一)을 이뤄가는 과정이다.
물론 연주자 자신만을 드러내기 위한 연주는 지양되어야 하며 작품성이 갖는 최대한의 예술성 및 가치를 실현하여 청중에게 작곡가와 작품 나아가 연주자 자신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으로 재 탄생한 모습을 실현하려는 목표와 이의 실현이 정상적인 단계로 생각한다. 작품성의 재조명 및 재해석 이전에 연주자 자신의 음악적 시각(안목)을 증대하려는 사전적 노력과 관심이 필연적인 관건이다. 연주자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이상의 음악을 표현한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미적 성찰을 통한 자기발견


어제와 오늘의 연습에서 작품성을 보는 안목이 동일하게 느껴지거나 발전이 전제되지 못한다면 이는 필시 비극이라고 간주하여도 될 것이다. 연주(연습)는 연주자 자신이 우선적으로 만족스런 결과를 확인하고 이를 타인과 나눔을 실현하려는 목표로 진행되어야 한다.


모든 예술적 활동은 궁극적으로 끊임없는 자기발견 및 계발을 통한 자기표현으로 귀결된다. 인간은 삶의 과정에서 포괄적 의미로의 재교육 및 주변환경의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변화되며 이를 통해 자기 완성을 추구함으로써 도모하게 된다. 이런 견지에서 또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것을 예술적 삶의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 역사의 과정이 그러하듯 개인적 속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예술, 그 중에서도 모든 음악활동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계성을 드러내며, 이는 자신의 미적 성찰을 통해 자기발견 및 실현 가능성은 현격한 차이를 나타나게 된다. 현 시점에 이르기까지의 제반 경험 및 누적된 활동을 통해 예술적 자아가 형성되며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미적 성찰이다. 공자는 ‘하루에 세 번 반성하라’(一日三省)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음악작품에서 요구되는 끊임없는 다양한 변화는 단 한 순간도 악곡을 통한 미적 성찰이 이뤄지지 않고서 이를 제대로 실현하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내용과 특성의 부재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작품성에 대한 진지하고 심도있는 고찰과 이를 통한 자기화의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무대에 올릴 준비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누구나 무대를 가질 수 있지만, 작품성 최대의 가치를 실현하는 연주는 그다지 많지 않음을 많은 이들이 실감할 것이다. 예술을 통한 환희의 체험과 공감대를 형성하게 이끌 자신의 충분한 미적 성찰은 모든 음악인들에게 필수적 조건이다.


1. 예술적 자아의 재발견
연주자는 악보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적 가능성과 완성을 지향한다. 일반적으로 악보를 읽음으로써 작가 정신 및 의도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단계를 거쳐 자신의 해석 의지를 이입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반복적인 연습과정에서 이를 실현하려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물론 대단히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자기 자신에 대해 눈을 뜨는 것(성찰)이야말로 선행되어야 할 주요 요건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신은 잠재된 가능성의 맥(脈)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아가 무수한 가능성 및 다양성을 네트웍으로 묶어 연계성을 갖는 고찰을 의미한다. 즉 단편적 고찰 내지 성찰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누구나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술적 자아를 재발견하려는 노력 없이 자신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미적 체험을 통해 형성된 예술적 자아를 단편적으로 규정하거나 한정하는 것은 예술성의 최대한 가능성 실현에 그야말로 많은 부분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자신(自信), 즉 자기 신뢰는 진지한 자기 성찰로 이뤄질 수 있는 단계이자 영역이다. 자기 신뢰를 통한 자기 확신에 이르러야 비로소 진정한 자아의 재발견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적 자아에 대해 눈을 뜨는 것이야말로 모든 연주자들이 필연적으로 이뤄내야 할 숙원이자 염원이 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2. 작품을 통한 예술적 자아의 실현
모든 연주는 작품성을 근간으로 행해지고 이뤄진다. 즉 작품(악보)을 통해 또다른 가능성의 새로운(거듭난) 자아의 실현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작품의 재해석으로 표현되는 예술적 자아의 실현은 작품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가운데 자신과의 일체화가 도모되어야 하며, 마치 또다른 분신(分身)처럼 느껴지고 생각되며 확신이 들 때 비로소 가능하다. 아울러 각 시대, 장르, 양식, 사조… 등 다양한 악곡 특성처럼 자신의 또다른 예술적 상념과 가치의 실현을 목표로 상이성(相異性)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동일한 악곡에서도 무수한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성, 감성, 감각, 신체 등 모든 요건이 악곡 특성에 따라 변화되어야 하며, 또다른 가능성을 찾아 떠나는 예술기행과 마찬가지로 음악적 여정(旅程)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예술적 자아 이상의 폭넓은 특성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무리 내적 정신성의 깊이와 안목을 지녔다 하더라도 이를 작품을 통해 자아의 실현을 도모하지 못하는 것은 역시 예술적 자아의 발견에 소홀함과 마찬가지의 결과다. 이의 현실적 실현성 여부가 중요한 관건인데, 여기에는 철저한 자기 제어와 조정 등 관리와 실현의 목표가 분명히 작용하여야 한다. 예술적 이상과 목표 설정에 투철하고 이를 현실화하는 과정에 충실하여야 그에 따른 만족스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철저하게 작품성의 관조와 내재한 정신성의 발견을 토대로 이뤄지게 되는데, 이의 역할의 투철한 의식이야말로 작곡가와 연주자 자신을 정확하게
드러내게 할 초석임을 다시금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자의성이 강한 연주자들은 때로 너무 편향적으로 그야말로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작품성이 갖는 본연의 특성을 왜곡시키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이는 다행으로 간주될 만큼 작품성이 갖는 특질을 현실화하는 데 소홀하고 역량 부족인 사례를 우리는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해석적 가능성은 연주자마다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것만큼 폭넓은 변화의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편일률적(?)인 성향의 연출 결과 이상의 무엇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연주자 본인은 물론 청중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양상이 못 된다. 예술적 자아실현은 그야말로 책임감 있는 연주자의 의식에서 비롯되며, 작품 및 작가정신에 대한 존경과 아울러 철저한 프로의식으로 이의 충실한 실현을 목표로 하는 연주자에게만 길이 열려지는 것을 다시금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3. 자기 표현의 가능성 확대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예술가에게 있어 자기 표현의 영역을 확대하는 이상 충족감을 실현하는 길은 없을 것이다. 물론 진지하고 진정한 예술가에 한정되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이들 예술가들에게 있어 조그마한 성장은 세상 모든 것에 견줄 바가 아닌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모든 것을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단지 시간이 경과되었다고 모든 성장과 발전이 정비례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프로 의식이 자신의 발전에 직결되는 사항일 것이다. 어제(과거)와 오늘(현재)이 똑같다면 이는 예술가에게 있어 비극적인 사실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어제와 오늘이 단지 연장선상에 존재할 뿐이라면 이런 예술가는 예술가로서의 길을 접는 것이 어찌 보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표현하였지만, 연주자는 자기 표현의 가능성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을 항상 인식하여야 하며,매순간 자기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철저한 책임 의식과 프로 의식의 확립이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자신의 또다른 가능성을 펼칠 수 있음을 확신하고 이를 위해 철저히 자신을 관리하고 책임감 있게 보완 내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예술적 자아를 정립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기 위해서 앞서 언급한 예술적 자아의 재발견, 작품을 통한 예술적 자아의 실현이 선행되어야 할 필수적 과정이며, 나아가 예술적 안목을 신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많은 가능성들을 고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물론 주변의 도움도 필요하겠지만, 이는 철저하게 자신을
직시(直視)하고 자신의 소중함을 재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즉 자신은 어느 누구의 복제판이 되어서는 안 되며, 필연적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를 충분히 펼치려는 어느 정도의 욕구도 작용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모든 관건들은 자신의 내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의 전제 조건은 작품성에 내재된 가치와 작가 정신의 철저한 확인 및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람들은 제각기 모습, 성격, 성향, 취향 등 서로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어찌 예술적 특성과 속성이 비슷 하거나 동일화하는 성향에 마음 편히 가질 수 있겠는가? 자기 표현은 상대와의 차이를 실감하는 데서 비롯된다고도볼 수 있다. 즉 너와 나의 다름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다르게 표출하려는 의지에서 자기 표현의 가능성에 한 단계 진일보할 수 있겠다. 물론 작품해석의 보편성의 관점에서 보면, 유사성 내지 동일성의 면면도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이보다 자신만의 고유한 특수성을 찾으려는 프로 의식이 작용할 때 비로소 자신의 또다른 가능성이 전면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신장시키는 것이 효율적인 방안이다. 물론 이의 효과 내지 결과를 직시하는 철저한 귀(耳)의 작용이 선결조건이지만, 어쨌든 어제와 오늘의 연습에서 작품성을 보는 안목이 동일하게 느껴지거나 발전이 전제되지 못한다면 이는 필시 비극이라고 간주하여도 될 것이다. 연주(연습)는 연주자 자신이 우선적으로 만족스런 결과를 확인하고 이를 타인과 나눔을 실현하려는 목표로 진행되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연주 기회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이상에 동의하고 충족할 청중을 가진 연주자는 이런 견지에서 행복한 예술가이다. ■

 


음가의 시간적·공간적 특성


모든 예술적 활동(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자매예술의 영역)은 보편성(일반성) 및 특수성(개별성)의 양면으로 나뉘고, 대체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일반적 특질은 공유되며, 각 예술적 영역의 개별적 상이성은 그 예술의 또다른 가능성의 영역으로 존재함으로써 특수성을 발견하게 된다.


음의 수평적(선율적)·수직적(화성적) 결합 및 상관관계의 고찰에서 음의 특성과 고유한 가치가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작품의 해석은 이의 효과적이고 타당할 근거를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가는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 자매예술인 미술 가운데 회화(繪畵)와 연관지어 고찰하여, 캔버스에 화가가 붓으로 그림을 점차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을 연상해 보면 이의 유사성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음악은 시간적 예술이고 미술은 공간적 예술이라고 한정하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거시적 안목에서 보면 이의 과정은 상당히 유사하며, 보편적 특성의 한 굴레에 속한 것으로 결론 지을 수 있다.
모든 예술적 활동(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자매예술의 영역)은 보편성(일반성) 및 특수성(개별성)의 양면으로 나뉘고, 대체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일반적 특질은 공유되며, 각 예술적 영역의 개별적 상이성은 그 예술의 또다른 가능성의 영역으로 존재함으로써 특수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적 활동의 결과만을 고려한다면 앞서 언급한 일반적 견해(음악은 시간적 예술이고, 미술은 공간적 예술이다)에 타당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술적 창의의 실현 과정을 엄밀히 고려하면 비단 음악과 미술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적 활동의 속성은 궁극적으로 시간적·공간적 특성을 어느 정도 심도있게 연관성을 모색하여 펼쳐내느냐에 달려 있다.


1. 음의 시간적 특성-흐름
음의 시간적 특성은 널리 이해되고 있으며, 이는 ‘흐름’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시간적 특성의 고유한 가능성 실현 면모는 연주자마다 동일한 작품에서조차 연주시간의 차이로 드러남에서 알 수 있다. 전체 시간의 차이뿐만 아니라 세부의 음악적 편린(片鱗:조각)에서도 실감하게 된다. 시간적 특성은 밀도, 즉 압축적으로 진행하거나 또는 상반되게 풀어 가는 양면성으로 대별하게 된다. 탄력성과 완화(음악적 긴장과 이완)로 음의 시간적 특성이 작품해석상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며, 이는 작품성의 철저한 고찰과 이의 효과적인 재현을 목표로 악곡을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성격과 특성을 구현하게 된다.
음의 시간적 특성을 실현하는 과정은 부분과 전체를 연계하며, 악곡의 세부(아티큘레이션과 프레이즈)와 악곡 전체(음악형식과 장르 등)에 어떤 연관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도, 즉 연출자(연주자)의 의지에 따라 각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흔히 콘서트 아티스트(전문 연주자)들에게서 시간적 특성의 과장 내지 심지어 극단적(?)으로까지 생각될 만한 해석적 양상을 접할 수 있는데, 이는 청중의 첨예한 관심과 열정적 환호를 불러일으키려는 그들만의 의도가 내재하는 남다른 시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반 연주자와 학생들이 이를 무분별하게 흉내내거나 감행하려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 있는 자칫 무모하며 위험스런 상황으로 치닫게 되어 악곡진행에 불안정성을 초래할 가능성이 우려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전문 연주자들은 그야말로 특별한 소수의 카 레이서(Car Racer)의 사례로 간주되어야 하며,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반적이지만 생의 활력과 자연의 변화를 만끽할 보편적 드라이버(Driver)로서의 역할로도 충분히 자신의 예술적 가능성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변화 가능성 역시 작품성을 충분히 사고하고 성찰하여 자신과의 일체화를 실현할 시간의 구체적 언급이 가능해야 함은 필연적이다. 최근 각 입시나 콩쿠르에서 누가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연주할 수 있느냐가 주된 관심사인 듯한 양상이 팽배함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시간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필연적일 수도 있다. 악곡에서 개별화된 시간적 적용이야말로 자신과 타인의 해석상 다름을 실현하는 한 방안임을 고려할 때, 연주자 자신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진행할 음악적 시간은 분명 차이가 실현되도록 안배되어야 한다. 리듬적(Rhythmic) 특성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나아가 음악적 흐름을 효과적이고 완성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 개별적 음상(音像)의 시간적 안배를 적극 실현할 목표로 진행되어야 바람직할 것이다.


2. 음의 공간적 특성 - 넓이
음악사적으로 고찰할 때 오늘에 이르기까지 화성적 변화(초기의 대위적 선율의 추가에서 수직적으로 다양하고 폭넓게 실현되는 오늘날 복잡 미묘한 음의 구조에 이르기까지)가 현격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화성악을 통해 학습하였으며, 수많은 악곡들을 접하고 감상하면서 파악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음의 공간적 특성은 비단 음의 구성에서 수직적인 면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음들이 갖는 특성, 즉 공간 내지 넓이에 관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악상의 다변화를 위해 작곡가가 악상기호를 악보에 그려놓고 있지만, 이의 실현에 단순히 ‘크고 작게’ 하는 식의 단편적 이해 내지 파악으로는 그 이상의 폭넓은 음악적 상념이나 정서 그리고 깊이를 실현할 수 없다. 진지하고 예술적인 연주자들은 이에 대해 이미 학문적·경험적으로 실현 가능한 수준에 다다른 면면들을 파악할 수 있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대다수의 그렇지 못한 연주자 또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임을 각 연주회, 입시 및 콩쿠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음의 공간적 특성은 음상(音像)의 넓이 또는 양적(量的) 가치의 기준이나 근거를 어떻게 현실화하는가가 주요 관건이다. 공간적 특성은 물론 에너지를 수반해야 하지만 그 이상의 공간과 넓이(부피)의 개념과 인식이 작용해야 실현 가능한 특성을 갖는다. 음은 물리적 속성을 가지며 오실로스코프 등 물리적 계측장비를 통해 제각기 다른 음들이 갖는 변화를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적인 음의 공간적 특성은 그 이상의 생명력과 시간적 특성이 수반되고 아울러 호흡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감각적으로 풍부하고 세련된 연주자들은 음의 진행과 연관하여 음상과 음폭 등 다변화의 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다. 여기서 이성(理性) 작용이 선행되고 감성(感性) 작용이 이입됨으로써 보다 완성적인 음의 질량감과 이를 채울 공간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단순 물리적 크기로 이해한다면 지극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생활 주변에서 작거나 큰 공간적 차이에 따라 심상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 즉 공간의 크고 작은 상상(Imagination)에서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시도가 실제적으로 연주할 음상의 공간적 특성으로 작용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다변화의 크고 작은 공간적 인식에 차이를 둠으로써 음악적 준비를 어떻게 다르게 실현할지 목표로 작용해야 한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것은 지휘를 통해 속도, 질량 및 공간성을 확보함으로써 단원들로 하여금 그가 표현 하고자 하는 음악적 의도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만약 연주자의 연주는 들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의 제스처를 통해 무언가 끊임없이 다른 준비를 실행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듯, 공간성의 확보를 악곡을 통해 끊임없이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질량을 담을 그릇의 크기를 설정하는 안목을 신장시키는 것이 주된 관건이다.


3. 음가의 시간적·공간적 특성의 재현 (상호 연관성의 고려를 통한 충실한 음악적 준비)
앞서 개별적으로 언급한 음가의 시간적 및 공간적 특성은 실제 연주를 통해 일체화의 접목이 시도되어야 바람직한 음악적 연출이 가능하다. 즉 상호 연관성의 고려를 통해 충실한 음악적 준비가 비롯될 수 있다. 이는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하며, 나아가 자신의 또다른 천성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연습이 진행되어야 한다. 음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많은 준비(음악적 사고와 감성, 상상, 영감, 신체조건 등)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는 궁극적으로 시간적 및 공간적 특성으로 차이를 드러내며 연주자마다 개별적 특성으로 파악하게 된다. 많은 음악학자 겸 연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실제 연주에 앞서 악보를 통한 성찰의 중요성을 마스터 클래스나 저술을 통해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진지하게 악보를 통해 작곡가의 의도와 작품특성을 파악하면서 이를 연주할 연주자 자신이 이해와 파악을 통해 자신의 또다른 분신처럼 악곡이 다가설 수 있도록 주력하는 과정이 필연적이다. 여기서 그의 음악적 바탕이 해석에 작용하며 새로운 악곡을 통해 접하는 또다른 가능성이 자신의 예술성을 신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도록 연구하고 체험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진정한 예술가적 면모로써 연주자의 위치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시간적 및 공간적 특성은 연주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최종 결과물이며, 이는 합리적 및 예술적 사고를 통해 효과적 음상의 실현을 목표로 꾸준히 진행되어야 할 주요 관건이다. 시간적·공간적 특성은 연습과 연주를 통해 무한히 달라질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될 부분인데, 일반적으로 해석적 상이성은 각 연주자마다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연주자에게 있어서도 해를 거듭하면서 또다른 차이를 발견하게 되는 구체적인 요인이 연주에 있어 시간적·공간적 특성의 차이 때문에 드러나게 된다. 작품(악보)은 변화되지 않지만, 연주자는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필연적으로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악곡을 대하면서 시간적·공간적 특성의 연계성을 고려하며 작가 정신을 토대로 자신의 음악적 의도와 해석의 방향을 추구하는 것이 진지한 연주자의 사명이자 예술가로서 선택받은 삶이란 생각이다. ■

 


예술성 및 생명력을 드러내는 연주

 


연주는 표현을 추구하는 과정 및 이의 결과를 무대에 올리는 순간까지 연주자가 작품을 통해 탐구함으로써 체득한 다채로운 음악적 상념 및 연출 가능성이 그의 연주에 내재하게 된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자기 표현의 과정이다. 갓난아기도 태어나면서부터 울음 또는 웃음으로 다양한 심상(심리상태)과 욕구를 표출한다. 점차 성장하면서 주변환경이나 교육을 통해 많은 것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학습하면서 표현력의 정도와 깊이를 더하게 된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문화적·예술적 체험이 필수적이며, 이는 어떤 삶의 길을 선택하든지 필수 요건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음악가를 포함하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이는 절대적인 관건이다. 역사상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각각의 고유한 문화와 풍습이 있기 마련이다. 다양한 문화예술(고급 및 대중), 일상적 삶의 양식, 주변환경 등의 요인에 따라 역사적·예술적·문화적으로 동시대 성향을 구분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음악가들은 음을 소재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한다. 작곡은 음들을 어떻게 배열하고 조합할 것인가, 연주는 작의(作意)를 바탕으로 자기화(自己化)하여 또다른 가능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 주된 목표이다. 인간들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창의적 예술활동들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연주자들은 끊임없는 자신의 수련을 통해 예술적 완성도와 깊이를 추구해 나간다. 끊임없는 예술적 사고와 자아성찰을 통한 창의정신의 실현이 최대 관건으로, 이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며 진지한 예술가로서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주력하는 것이 음악가의 길이다. 매일 저녁, 각기 다른 공연장에서 다양한 연주회가 펼쳐지지만, 각각의 예술적 완성도와 수준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크거나 작은 연주회를 막론하고 전적인 책임은 연주자 자신의 몫이다. 기술적 완성이 뒷받침되어 예술적인 속성을 드러내며, 아울러 생명력이 감지되는 그런 음악적 연출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 예술적 환희와 감격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1. 감각
감각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현상을 느끼거나 파악하는 정신의 작용이나 능력, 센스’로 정의되어 있다. 서양음악을 전공하는 많은 음악도들은 좋은 선생의 가르침과 상이한 문화·예술환경을 접하기 위해 유학을 결정한다. 또한 유학 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새로운 언어, 문화, 풍습, 환경 및 자매 예술 등 폭넓은 직·간접적 체험을 통해 점차 예술적으로 성숙되고 풍요롭게 변화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음악에서 감각적 특성은 리듬, 선율, 조성 등 구성적 요소와 이의 균형 및 조화 등 각각의 요건들이 제각기 다른 특성을 갖지만 총체적으로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뤄 상호 연계성을 도모함으로써 견고한 구성적 뒷받침이 실현되며, 이로써 감각적으로 세련된 음악적 연출이 가능하게 된다.
이런 감각적 성향을 오직 연습을 통해 계발하려는 것은 무지 내지 무모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양악(洋樂)이 전래된 초기(백년 전)와 최근 현대화 및 세계화가 이뤄져 가는 현실과는 엄청난 변혁이 진행됨을 역사적 기록과 최근 각종 보도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다양한 매스 미디어와 인터넷 발달 그리고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인해 획기적인 변화의 가속화가 이뤄지고 있는 시기여서 시간적·공간적 제한이 없을 만큼 세계는 하나되어 가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와 동반 상승하여 예술적 감각 역시 새로워지는 양상을 연주계의 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주변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부응한 새로운 개념의 도입과 구체적 접근방식을 통한 체계적인 교육의 뒷받침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악보(樂譜)라는 체계와 질서는 음의 현상을 기록한 것이어서 앞서 언급한 사전적 정의처럼 ‘느끼고 파악하는 정신적 작용이나 능력 그리고 센스’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여성의 화장(化粧) 기술이나 의상(衣裳) 코디 수준을 보면 각자의 또다른 예술적 감각을 파악할 수 있는 한 방편이기도 하다. 또한 집을 어떻게 장식하고 있는지 방문하여 보면 주인의 취향이 드러난다.
음악적 감각 역시 세련의 정도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또한 음악은 구조, 억양 등 언어 및 문학과 유사한 속성을 갖기 때문에 품격, 품위, 교양 및 성향까지도 연주자의 연주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악보는 음악적 사고와 성찰을 통한 상념으로 인지되고 이를 신체와 악기를 통해 실현하며 감각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완성된다. 감각은 다양한 문화·예술의 직·간접 체험을 통해 형성되어지기 때문에 연습 이외의 시간에 주변에 대한 깊은 관심이 필수적이며, 이로써 형성된 예술적 감각을 음악적으로 연계성을 도모할 수 있도록 또다른 차원의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이의 음악적 및 예술적 연관성을 모색하고 실현하지 못하면 개별적이어서 총체적 완성을 도모할 수 없다.

 


2. 감성
인간은 삶을 영위하며 무수히 많은 직·간접적 체험을 통해 심적으로 제각기 다른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언어 또는 예술적 수단과 방법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는다. 자연(自然)을 예로 들면, 각 계절 마다 나무는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환경적 변화를 체험하게 한다. 봄의 신록(新綠), 여름의 무성한 녹음(綠陰), 가을의 결실과 오색으로 단장한 화려한 단풍, 겨울의 벌거벗은 나뭇가지의 황량함과 무상함 등 각양각색의 변화는 다양한 형용사(形容詞)로 표현될 수 있다.
감성의 사전적 의미는 ‘감각적 자극이나 인상을 받아들이거나, 경험을 수반하는 자극에 반응하는 마음의 능력. 의지나 지성과는 구별, 감각적 충동의 욕구·감정·정서를 포함하는 마음의 능력’으로 정의되는데, 누구나 계절적 변화에 따른 차이를 느낄 수 있지만, 관심의 정도에 따라 어떻게, 어느 정도로 실감(實感)하느냐는 분명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감성이 풍부하거나 또는 그렇지 못한 차이는 그 사람의 예술적 관심 내지 미적 체험의 깊이가 인정할 수준인지 그렇지 못한 상태인지 연주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교육 역시 기능적인 실기지도에 앞서 자기 삶의 주변적 변화에 관심을 갖도록 인식시키고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며, 나아가 연주자 역시 자신부터 앞서 이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전적 의미에서처럼, ‘주변의 자극이나 인상을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과 자극에 반응하는 마음의 능력’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있어도 보지 못하거나, 들려도 듣지 못하는 무관심 내지 마음이 열리지 않는 상태는 음악가로서 발전이 제한되기 마련이다. 감성이 의지 또는 이성과 구별되는 것은 후자는 사고(思考)의 영역이기 때문에 양자가 상호 보완됨이 바람직할 것이지만, 감성은 그 나름대로 소중하게 키워나갈 필요와 중요성이 있다. 아나운서는 사실을 보도하는 역할을 하지만, 연기자(배우, 탤런트 등)는 다른 삶을 펼쳐나가는 역할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지극히 냉철해야 하지만, 후자는 또다른 인생과 삶을 펼쳐나가기 때문에 기복을 갖는 연출을 시도해야 관객이나 시청자들로부터 뛰어난 연기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즉 보는 이들이 무수한 심상(心狀)에 젖어들도록 유도해 나가야 한다. 연기자가 아나운서처럼 대사를 읽거나, 또는 아나운서가 연기자처럼 뉴스를 보도한다면 이는 필시 역할에 적절하지 못한 사례로 지적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연기와 연주의 속성을 보면 상당한 부분에서 유사성이 있고 또다른 차이점도 존재할 수 있다. 양자는 작품의 구성적 특성, 리드믹한 부분, 억양, 긴장과 이완 등 많은 면에서 유사성을 갖는다. 삶의 주변에서 펼쳐지는 감각적 자극이나 인상 등을 적극 수용하려는 자세와 이를 통해 단지 사고 영역에 국한하는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반응함으로써 감성적 제요건이 욕구, 감정, 정서에 대한 ‘마음 밭(心田)’을 일궈나가야 후일 풍성한 결실을 내어 수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감각이나 감성에 치우치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이
성적 판단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성적 성향은 자칫 냉철하고 차가운 인상을 줄 수 있고, 감성 내지 감각에만 치우 친다면 이는 자칫 천박해질 우려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특성의 부분과 전체에 상응할 균형적이고 적절한 안배가 요구되는 것이다.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해석과 연출의 결과를 드러낼 가능성이 있으며,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준비되지 못한 감각 및 감성을 어떻게 연습을 통해 실현할 수 있겠는가! 즉 악기에서 이탈하였을 때 비로소 자신의 예술적 감성과 감각을 신장시킬 중요한 또다른 차원의 연습시간임을 반드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바탕이 확립되지 못한 채 맹목적인 연습에 치닫는 것은 단지 기술적 연마에 한정될 것이며, 이는 단지 외적 현란함에 한정될 우려가 있다. 즉 격언에서처럼 ‘빈 수레가 요란하다’ 내지 ‘속 빈 강정’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벼에서 이삭을 지탱하여 주는 줄기가 사고의 영역이라면, 풍성한 열매는 감각 내지 감성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줄기(음악적 사고)가 건강하지 못하면 풍성한 열매(감각 및 감성)를 맺을 수 없다. 연습에 임하면서 기술적 또는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고 제한됨을 느끼는 순간 더 이상의 연습은 그야말로 체력과 시간의 손실이며, 생활 주변의 소음(?)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청중에 앞서, 연주자 본인조차 예술적 흥취를 만끽하지 못할 때 가장 가까운 청중의 하나인 가족들조차 소음공해를 겪을 수밖에 없다.
연주자 자신이 구체적인 작품 전개의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철저하게 준비하여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적 환희를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이끌어 가는 것이 진지한 연주자의 자세일 것이다. 풍부한 감각 및 감성을 지니기 위해서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고, 온 몸으로 모든 가능성을 체감함으로써 큰 발전상을 도모할 수 있다. ■

 


여백의 미


인간의 다양한 삶을 각기 다른 매체나 표현수단을 통해 표출하고자 함이 예술의 목적이다. 삶 역시 또다른 차원의 예술로 간주할 수 있는데, 대인관계를 위한 언어나 다양한 일상적 삶을 통해 ‘여백의 미’를 실감하는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분명 행복한 삶일 것이다.


동양화에서 사군자나 풍경화를 보면, 주제 또는 대상 이외 부분은 하얀 여백으로 존재한다. 심지어 때로 몇 개의 선(線)·점(點) 등 그려진 부분보다 여백이 훨씬 넓게 분포되어질 때도 부지기수다. 왜 가득 채우지 않았을까? 불성실한 창의적 자세 때문일까? 아니다!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전통적 사고와 가치관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 정도만으로도 충족할 만한 표현이 가능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예술적 이상 및 판단에 근거한 성향 때문일 수 있다. 서양화에 있어서 동양화의 여백과는 상이한 차원으로 존재하는데, 이를 반드시 여백이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좋을 듯싶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분명한 사실은 중심이 되는 주제나 대상물 이외에 색(色), 선 또는 명암 등 바탕과 확실한 대조성향을 드러내고있다. 비단 미술 분야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무용 등 그 밖의 자매예술 역시 ‘여백의 미’를 어떻게 재현하고 해석하느냐 성향 및 정도에 따라 극적(劇的) 내지 상반된 구성력의 차이를 실현하는 데 작용하도록 연출하고 있다.
‘폭풍전야(暴風前夜)’는 큰 재앙이나 자연재해가 엄습하기 전의 고요함 내지 정적이 이후 상대적으로 극한 대조를 드러냄을 시사하는 사자성어다. 많은 작곡가들이 이와 같은 극적 대비 또는 반전을 작품을 통해 구성하고 표출함으로써 강한 인상을 드러내고자 의도하고 있음을 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술분야에서 쉼, 무언(無言), 공백(空白), 공간(空間) 등으로 표현되는 여백(餘白)은 연출 및 표현에 있어 세심한 통찰과 엄격한 자기 제어 및 절도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부분이다. 크고 작은 여백의 차이는, 흐름 또는 대조의 극한 대립적 양상을 초래하기 때문에, 연주자·연기자·연출자 모두 철저하게 이를 도모하도록 최선을 다함으로써 진정한 여백의 미와 효과를 예술적 활동에서 제각기 상이하게, 그러나 일맥상통한 연출성향 및 의도를 실현할 수 있다. 때로 많은 말보다 말을 아끼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빠른 말보다 느리지만 적절한 리듬을 갖고 억양을 드러내는 말이 강력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인간의 다양한 삶을 각기 다른 매체나 표현수단을 통해 표출하고자 함이 예술의 목적이다. 삶 역시 또다른 차원의 예술로 간주할 수 있는데, 대인관계를 위한 언어나 다양한 일상적 삶을 통해 ‘여백의 미’를 실감하는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분명 행복한 삶일 것이다.


1) 음악에서의 여백
모든 종류의 쉼표, 프레이즈와 아티큘레이션, 악장(樂章), 변주, 조곡 등으로 외형상 분리되는 음악에서의 여백은 변화를 드러내지만, 그것은 계속되는 흐름 또는 성격적 전환의 대조 및 상반된 상황으로 대별(大別)하게 된다. 연주자는 연주를 시작하면서부터 마치는 순간까지 시종 변화무쌍한 수많은 음상(音像)들을 토해 낸다. 느리고 빠른 템포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시점에 반드시 호흡하고, 프레이즈를 정리하며, 작품의 윤곽을 구성력있게 조형하고자 한다. 마치 한 편의 모노 드라마(솔로) 또는 연극(앙상블)을 연상함이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연기자는 극적 상황을 혼자 또는 여럿이 함께 전개해 나간다. 수많은 대사를 대화, 독백, 방백 등 여러 방법과 수단을 통해 관객과 함께 교감하게 된다. 연기자는 아나운서와 달리 또다른 인간의 삶을 재현하기 때문에 작품에서 주인공의 심상에 따라 표정·억양·분위기를 달리해 나간다. 일률적으로 고르고 정확하며 안정된 톤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형태와 상황에 적합한 어조(語調)를 드러내도록 주력한다. 이의 과정에 지극히 짧거나 또는 상당히 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휴지(休止)를 갖는다. 이는 연기자 또는 연출자에 의해 상대적으로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 앞 뒤 상황을 통해 현재의 적절한 판단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주에 있어서 여백은, 연주자의 작품분석, 해석, 앞뒤 프레이즈의 성격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을 판단의 근거로 적절한 공백을 둠으로써 연출상의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 물론 사전 구상 및 의도로써 해석적 준비가 가능하지만 연주에 있어서는 자신의 또다른 변화가 도모되고 실현되는 차원의 자연스런 재현이 되어야 한다. 음악에있어 여백은 연주자와 청중이 작품성을 공감할 만한 여유와, 안정되고 편안하게 통찰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말한다. 거침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악곡에 따른 적절한 시기와 분위기에 따른 변화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여백이 갖는 진정한 가치와 효과를 파악하여야 괄목할 만한 연출이 가능해질 수 있다.

 


2) 여백의 가치와 변화
벽면(壁面)을 포함하는 실내를 장식함에 있어 적절한 공간배치 및 여백을 두는 것은 전적으로 장식가의 예술적 안목에 달려 있다. 미술에서는 공간성으로, 음악에서는 시간성으로 차이를 드러내지만, 이와 같은 여백의 진정한 가치와 변화는 상호 이질적인 예술분야에서조차 공통적 특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개인적 성향이나 취향, 스타일로 구분되지만, 타인과 다른 예술적 안목과 판단에 근거로 작용된다. 예술세계에서 여백의 가치는 무엇인가? 또한 이로 인한 변화는 어떻게 다르게 인식되어지는가? 이성적이고 감각적인 양면을 두루 갖춘 사람들은 예술적 변화와 가치가 분명하게 파악되며, 이에 흥미와 관심을 갖는 예술적 안목과 성향을 갖춘 사람으로 간주할 수 있다. 비단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 모두에게 이는 진정한 인간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흔히 사람들을 지칭하면서 그가 예술적인 끼와 감각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평가하곤 한다. 여백이 갖는 진정한 가치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를 가늠하는 판단력의 근거다. 음악을 연주하면서 쉼 없이 지속적으로 앞을 향해 질주하듯 나아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시기에 리듬과 활성적 분위기를 놓치지 않을 정도의 휴지는 필연적이다. 오히려 이를 통해 연주자와 청중 모두가 명확한 흐름과 성격파악 및 연주의 안정성 실현에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 연주자와 초보 연주자 사이에 안정성 및 작품특성의 파악 정도 및 전달 가능성이 다르게 나타남을 파악할 수 있다. 여백은 비단 짧거나 긴, 그리고 느리고 빠른 작품의 시간적 차이에도 어느 순간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가능한 자연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여백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있는 연주자는 필연적으로 이로 인한 결과로써 폭넓은 변화를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3) 여백과 쉼(Rest)의 차이
삶이 일련(一連)의 과정인 것처럼, 우리 주변의 모든 일상사 및 예술적 창의 역시 연속적인 진행 과정 중에 각각의 다른 상황들이 존재한다. 벽면을 장식하는 것도 비단 한쪽만이 아니라 사방(四方) 그리고 천장과 바닥까지 상호 연계하여 장식한다. 즉 질서와 조화의 흐름이 지속되고 끊기지 않는 것이다. 만약 사방의 다른 벽면을 각기 다른 장식가가 제각기 장식하였다면 무질서 및 부조화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각자 다른 성향을 갖고 있지만 사전에 충분한 대화를 통해 공통된 아이디어와 컨셉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장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특색을 갖는 이색적인 장식이 가능할 수 있다. 이처럼 예술세계에서 여백은 외견상 공백처럼 보여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면면히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 생활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전기의 예를 들면, 각 방과 거실, 화장실 등 집안의 모든 장소에 조명시설과 스위치 그리고 콘센트 등이 설치되어 있다. 외견상 각각 다른 공간에서 모양과 분위기 및 용도의 차이를 드러내지만, 보이지 않는 벽 속의 전선을 통해 전기가 연결되어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일맥상통하는 가운데 변화를 도모해야 하는 것이다. 작가(소설가)가 작품의 구성을 위한 방향설정 지도를 갖지 않고 작품을 그것도 간헐적으로 시간 날 때마다 계획없이 써나간다면 무질서하고 구성력 없는 졸작이 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악곡은 각각의 세부적 아티큘레이션과 프레이즈, 나아가 음악형식의 틀에서 존재한다.
흔히 악곡의 쉼표에서 맹목적으로 박을 세며 쉬는 듯한 연주를 들을 수 있는데, 음악에 있어 여백과 쉼의 차이가 분명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파악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장 질서를 위해 모음곡이나 소나타의 각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연주자가 흐름과 맥이 끊기기 때문이다. 하물며 프레이즈 또는 악구 내지 악절에서 나타나는 음악적 여백, 즉 휴지부를 어떤 고려나 생각 없이 단순히 쉬는 것은 음악적 흐름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됨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물론 대다수의 식견 있는 음악가들은 이의 연계성을 실현하지만, 실상 많은 연주자 및 학생들에게 드러나는 문제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진행상의 여백과 관련된 부분이다. 물론 기술적 문제의 노출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깊이 고려하지 않거나 크게 문제시하지 않는 것이 일반화된 관행이다.
전후상황이 고려되지 않은 맹목적인 쉼(Rest)은 음악적 흐름을 단절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상호 연관성 내지 상반된 차이를 실현하고자 의도하는 여백으로 외견상 드러나지 않더라도 연계성을 고려하여 도모함으로써 진정한 여백을 갖는 음악적 진행이 가능한 것이다. ‘여백의 미’, 이는 삶에 있어 망중한(忙中閑)처럼 때로 복잡한 일상에서 이탈함으 로써 삶의 변화 또는 재충전의 기회가 되듯, 삶의 연속적인 과정에서 잠시 동안의 여백을 통해 새로운 또는 변화되는 또다른 삶이 가능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의 여백이 바로 짧거나 긴 여행이다. 생명이 지속되는 동안 인간은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발전하기를 염원한다. 그러나 행동하기만 하고 삶의 방향에 대한 생각과 반성이 결여된다면 자신이 추구하는 진정한 목표를 성취할 수 없다. 즉 생활의 여백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점검하듯, 음악에 있어 여백은 그 나름대로 정확하게 음악적 진행이나 특성을 새롭게 재현이 가능하도록 작용하는 중요한 공간인 것이다. <계속>

 


음의 형상화 및 신체적 작용

 


연주자가 어떤 악곡을 처음으로 접하여, 악보를 읽고 분석하고 파악하면서 점차 구체적이고 명확한 음악적 상을 정립하게 된다. 이는 마치 오랫동안 살던 정든 동네를 떠나 새로운 동네로 이사했을 때 일반적으로 겪게 되는 상황과 유사하다.


조각가는 대리석이나 화강암 등 때로 자연적인 소재를 가지고 자신이 형상화하려는 창의적 시도를 펼친다. 그는 원석(原石)에서 자신이 상상하고 형상화를 추구하는 이외의 부분을 쪼아냄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형태가 점차 드러나게 되어 결과적으로 하나의 예술적 작품으로써 완성을 이루게 된다. 즉 원석을 대하면서 조각가 자신이 이미 어떤 형상을 완성할 것인지 명확한 설계를 가지고 불필요한 부분을 점차 떼어내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해머(Hammer)가 가해져야 하며, 이의 강도(强度) 역시 천차만별로 작용하게 됨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연회장에 선보이는 얼음조각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작가의 숙련도에 따라 작품을 완성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 및 예술적 가치가 현격하게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음(音)을 형상화하는 것 역시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되짚어 보았으면 한다. 과정, 방법 및 결과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수 있지만, 음이나 조각(회화를 포함)의 형상화 역시 유사성 내지 공통분모가 많은 예술적 활동임을 분명히 재인식하였으면 한다.


1) 음의 형상화
연주자가 어떤 악곡을 처음으로 접하여, 악보를 읽고 분석하고 파악하면서 점차 구체적이고 명확한 음악적 상을 정립하게 된다. 이는 마치 오랫동안 살던 정든 동네를 떠나 새로운 동네로 이사했을 때 일반적으로 겪게 되는 상황과 유사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날이 갈수록 예전에 살던 동네처럼 점점 익숙해져 주변상황은 물론 동네 구석구석까지 세세하게 파악 가능하였던 체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생활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따끔 자신이 살던 고향마을을 회상(回想)하면서 추억에 잠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향집, 정원, 마을 길, 주변 상황 등 모든 것을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을지언정 상상은 제한없이 가능한 것이다.
음상(音像) 역시 악곡(작품)을 대하고 연습과정이 거듭됨으로써 점점 자신에게 친숙한 형상으로 기억하게 된다. 연주에 있어 개인적 환경 및 요건에 따른 차이는 분명 드러나기 마련이다. 개인적 성향 및 특성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 이전에 예술적 가치, 표현의 타당성 내지 당위성에 대한 자신의 성찰이 필수적이다.
개성적인 연주와 제멋대로 식의 연주는 분명 다르다. 보편적이고 타당한 바탕(객관적 요소) 위에 자신(주관적 요소)이 존립해야 한다. 즉, 나뿐만 아니라 남들 역시 인정할 만한 보편적 근거가 작용해야 한다. 때에 따라 남들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흔들릴 필요는 없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작품을 어느 정도 진지하게 파악하고자기화를 도모하였느냐가 주된 관건이다. 연주자는 음을 매체로 자신을 표출한다. 이의 앞선 과정 및 작업은 명확하고 건실(健實)한 음을 구사할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모든 기악은 물론 성악 역시 각 음악적 세부(細部) 및 전체(全體)에 이르기까지 음상이 정확하고 명확할 때 비로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음의 특질을 실현할 수 있다. 성공적인 대열에 선 연주자의 연주를 떠올려보면 이의 확실성을 볼 수 있는데, 그가 연주하는 음상, 내용, 특징, 세부와 전체, 구성, 전개 등 연주에 필요한 모든 요건을 충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악상의 다변화(多變化) 추구를 통해 확연히 드러나는 상이(相異)한 성격적 접근과 이의 실현 면모 및 폭넓은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다. 정확한 음상을 정립할 가능성 및 바탕을 다지는 것이 연주자의 일상(日常)이다. 즉, 작품을 대하는 매순간 그리고 악기에서 떨어져 있는 이외 시간들 역시 음악적 상념을 정리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의 연속이어야 한다.

흔히 지적하듯 표현의도가 불분명한 연습은 명확한 음의 형상화를 도모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음, 화성(和聲)및 진행 등 각각의 특성 역시 정확한 음상으로 정립(定立)되어야 한다. 앞서 조각가의 창의적 활동을 예로 들었는데, 연주자와의 차이는 개개 단편을 조각하는 것처럼 사전에 음의 형상을 분명하게 가져야 함에 있다. 즉, 상(像)이 정립되지 못하였거나, 이에 소홀한 연주는 마치 목표 없이 흘러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든 음악작품은 각 부분에서 전체에 이르기까지 각기 상응하는 명확한 음상의 정립이 필연적이다. 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에 따라 연주자 성향이 구분되며 나아가 완성적인 또는 비완성적인 면면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세부적(Detail)인 특성으로 드러나는 음의 형상화의 가능성은 연주자의 역량과 비례한다. 즉, 연주에서 음상의 다변화는 연주자의 예술적 속성, 특성, 의지, 견해를 파악하는 데 작용한다. 각 작품 및 작곡가의 시대, 사조 성향에 따른 차이를 드러내는 것 역시 음의 형상화를 어떤 관점 및 각도에서 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폭넓게 변화무쌍한 가능성을 꿈꾸고 실현할 가능성 있는 연주자는 분명 남다른 면모를 가늠하게 된다. 이는 비단 음악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역시 차이를 실감하게 되는 절대적이며 아울러 예술적 관건이다.
때로 악기에서 떠나, 명상하듯 눈을 감고 자신이 연주할 악보의 세부 및 전체의 음상을 형상화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진정한 연습의 한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런 진지한 태도와 자세를 갖춘 연주자와 그렇지 않은 연주자는 그의 예술적 품격이나 가치의 실현에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게 됨이 필연적이다. 어떤 음을 어떻게 형상화하느냐에 따라 작품성의 완성 및 예술적 자아실현성 여부가 좌우되는 대단히 중요한 관건인데, 이는 바로 음의 형상화다.


2) 신체적 작용
인간은 신체를 움직여 모든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연주에 있어 신체적 움직임에 앞서 음의 형상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구체화하는 것은 바로 신체 각 부분의 작용, 연계(連繫) 그리고 호흡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신체적 조건 및 제반 가능성을 파악하고 체험하는 것은 효과적 연주를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신체적인 것과 관련된 요건(테크닉적)만을 크게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교육의 양상이다. 무엇이 선행되어야 할 것인지 각 상황 및 필요에 따라 적합한 판단을 내리고 실행하는 것이 효율적인 연습이고 교육이다. 귀여운 어린 아기 또는 사랑하는 동물을 보았을 때 어떤 마음(心狀)을 갖게 되며, 아울러 신체적으로 어떻게 느끼고 작용하게 되는지 상상해보자!
심적으로 상기되고 흥분되며 사랑스런 마음을 가지고 쓰다듬거나 가슴으로 안을 것이며, 가슴은 넓게 펼쳐지고 깊은 호흡이 수반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逆)되는 상황을 가정하면, 말을 잘 듣지 않고 고집스럽게 떼만 쓰는 어린아이를 대할 때 또는 자기가 싫어하는 동물이 가까이 다가올 때 어떻겠는가? 심적으로 상대하기 귀찮거나 싫은 감정 또는 분노하거나 놀람으로써 신체 및 가슴은 굳어지고(경직) 다소 움츠러들며 아울러 호흡은 거칠게 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위의 두 상황을 가정할 때, 어떤 연상(聯想)을 하느냐에 따라 심적 및 신체적인 다른 대응이 이뤄짐을 체험할 수 있다. 인간은 오욕칠정(五慾七情)을 갖고 느끼며 삶을 영위해 나간다. 즉, 우리의 일반적 삶은 다변화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감성, 분위기, 느낌, 감정, 감각 등으로 생활하게 된다.
모든 예술적 창의 및 재현 역시 인간의 삶 속에서 이를 바탕 및 근간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의 유사성 파악 및 연관성을 이해 또는 고려한 접근이 필연적일 수 있다. 각 음악의 성격, 장르, 시대 및 사조 성향에 따라 제각기 다른 가능성과 차이를 파악하고 실감하며 이를 바탕으로 실현하게 되지만, 근원적으로 음악은 작곡가 및 연주자 삶의 또다른 표현영역 및 굴레에 속한다. 그러므로 악곡의 세부적 특성에 따라 그에 상응할 정서, 감각, 심리상태 등 다양한 특성의 언급 및 고려가 필수적 관건이다.
물론 이에 따라 제각기 다른 신체적 작용이 동반 내지 수행하게 됨을 진지한 연주자들은 익히 경험 내지 체험하였을 것이다.
음을 어떻게 형상화하느냐가 선행해야 할 주된 관건이며, 이를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신체활동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다. 그렇지만 신체적 움직임을 전적으로 의식하지 않더라도 연주에 필요한 적정 ‘최소의 힘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확실한 방법은, 가급적 신체 각 부위의 활동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추구 하고자 하는 음상에 따라 몸을 준비하고 맡기는 것이다. 여기서 신체적 이완의 상태 및 감각을 항상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때로 부분적으로 또는 실행 목적에 따른 결과를 얻기 위해 철저하고 분명한 신체적 움직임의 파악과 이의 실효성 여부를 확인 및 관찰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정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3) 음의 형상화 및 신체적 작용의 상관관계
사람은 정신과 이를 담을 신체를 가졌기에 생각할 수 있고 이를 근거로 행동 또는 실천한다. 삶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인간만이 가능한 특성이다. 목표 없는 삶은 흔히 ‘나침반 없는 항해(航海)’에 비유되기도 한다. 즉, 삶의 계획이든 음의 형상화를 추구하든, 이는 다음으로 이어질 행동과 특정한 결과를 도출(導出)하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음의 형상화는 정신적 작용의 결과이며 이를 재현하는 것은 신체적 작용으로 실현 및 완성된다. 음상의 명확한 청사진을 갖지 않은 채 연습을 진행하거나 연주를 행하는 것은 시간과 체력의 손실 및 낭비에 불과하다. 즉, 연주를 위한 사전 준비(음의 형상화)와 이의 실현(신체적 작용) 그리고 양자의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연속적으로, 연습 및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도 습관적으로 연주를 행하려는 습성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연습 및 연주가 실행되고 있는 매순간 은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고 제어하고 조정함으로써 변화무쌍한 다채로움 음상의 실현이 이뤄질 수 있다. 어느 순간이라도 집중에서 벗어나 해이 내지 방심 또는 습관적으로 행동이 이뤄진다면 이는 자신이 조절 내지 제어 가능한 영역을 벗어난 결과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습하는 매순간 고도의 집중으로 임하되, 그 자체를 즐기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

 


적극적인 작품해석의 접근 및 가능성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어떤 연주자의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는 그야말로 천차만별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현 상태를 초월하려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도전을 시도하는 것이 프로정신의 실현이며, 진정한 예술가이자 음악을 사랑하는 연주자의 면모로 간주할 수 있다.

 

장르 내지 악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수많은 악곡들 가운데 어느 곡을 선정하여 무대에 올릴 것 인지 연주자들은 고심한다. 연주회를 준비하기 위해 악곡 선정을 끝낸 것은 흔히 전체 준비과정의 절반가량을 마쳤다고 간주되곤 한다. 선곡된 악곡을 통해 작곡가의 작가정신·의도 파악, 작품의 특성 및 연출 가능성 등 여러 관점에서 작품을 탐구함으로써 집중적인 재조명을 시도하게 된다. 작품을 선정하여 우선 광의적(廣義的) 안목에서 전반을 성찰하고, 나아가 협의적(狹義的) 관건인 작품성의 세부적 요소들에 대한 성찰을 시도하게 된다. 즉 악곡의 세부와 전체의 독자성 및 연계성에 대한 고려가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연주자의 성향 및 역량에 따라 작품해석의 접근성 및 실현 가능성은 현격하게 차이를 드러낸다.
좋은 연주가 가능하기 위해서 연주자가 갖춰야 할 수많은 요건들, 체험 및 경험으로 가능한 부분 등 폭넓은 안목과 세부적 관점을 통해 비로소 작품성의 연출 가능한 이상세계가 연주자에게 현실처럼 가시화(可視化)되는 것이다. 사회전반 모든 활동에서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가 요구되듯, 작품을 해석함에 있어 역시 적극적인 자세와 학구적 바탕을 통해 작품성의 깊이를 가늠하고 파악하려는 의지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소극적이거나 학문적 깊이와 음악적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에게 악곡의 높은 완성도를 기대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상당한 수준의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경험이 풍부한 연주자들은 악곡을 대하면서 동시에 작품성의 분석은 물론 머리와 가슴, 그리고 신체가 하나 되어 즉각 연주를 실행할 준비가 가능한 단계에 이른 사람들이다.
물론 작품성의 깊이와 연출 가능성의 폭넓음은 항상 새롭게 시도 및 접근하려는 연주자로서 투철한 자세와 안목에서 비롯되며 아울러 가능하게 된다.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어떤 연주자의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는 그야말로 천차만별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현 상태를 초월하려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도전을 시도하는 것이 프로정신의 실현이며, 진정한 예술가이자 음악을 사랑하는 연주자의 면모로 간주할 수 있다.

 

1. 작품해석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연주자 자신이 작품에 대한 정확한 파악으로부터 비롯된다. 이의 접근 방향 내지 방식에 따라 해석적 성향에 큰 차이가 드러나며, 이의 당위성 여부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여기서 암보능력에 뛰어난 자질을 갖춘 사람들은 여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짧은 시간 안에 메모리가 가능한 유리한 조건을 갖춘 연주자로 그렇지 못한 연주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단시간에 악보를 파악하고 암보하였기에 자칫 악곡의 깊이와 작곡의도를 깊이 성찰하지 못하는 사례들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작품해석에 대해 대화를 해보면, 많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기성 연주자들 역시 이에 대해 명확한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펼치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해석하는 것은 연주자의 적극적인 자기표현의 의지가 선행되어야 하며, 더불어 작곡가에 대한 존경과 작품성 재현에 대한 책임의식이 가장 우선해야 할 주요 요건이다. 즉 작곡가가 작곡하기 위해 고심하였을 전체적 및 세부적 수많은 관건들에 대해 연주자 역시 그에 상응할 깊이 있는 파악이 가능하도록 연구하고 분석함으로써 가능하다. 이의 바탕은 학문적 뒷받침이다. 즉 음악이론의 각 영역이 자신이 탐구할 대상 악곡을 관조하고 성찰하는 데 적극적으로 작용하여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드러나는 일반적인 문제점은 이론과 연주가 상호 연관성을 드러내도록 작용하지 않는, 즉 맹목적(?)인 연습 내지 연주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직· 간접적으로 해석적 상이성에 대한 검토 및 검증을 음반이나 연주회를 통해 비교 체험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연주자 자신과 주변 환경적 요인 모두가 작품을 해석하는데 있어 중요하게 작용하는 주요 요소들이다. 즉 자신 및 삶의 또다른 표현 가능한 영역이 연주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전체적인 형식과 틀을 확인하고, 세부적인 음상 및 조직체계와 질서를 파악하는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출판사 또는 편집자에 따라 제각기 다른 성향으로 나타난다. 때로 원전판(原典版)이나 작곡가의 필사본, 복사본 등 수집 가능한 여러 자료를 비교 분석하며 검토하는 것이 치우치지 않고 작품성을 통찰하는
데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출판사마다 제각기 다른 해석을 덧붙여 때로 혼란을 가중시키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동일한 악곡 및 악보라 할지라도 연주자마다 해석적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의 정도 및 차이는 연주자마다 제각기 다른 조건 및 환경 요인에 기인하지만, 미적 안목과 성향의 차이 역시 상이성(相異性)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즉 일반적으로 심미안(審p眼)이라고 일컬어지는 ‘미를 살펴 찾는 안목’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해석은 악보에서 단순히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것뿐만 아니라, 세부적 조각들에 대한 파악에 몰입함으로써 정확한 해석활동이 이뤄지고 이로써 작품성에 대한 확신이 가능하게 된다.
때로 한 음반(音盤)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감상하되 각기 다른 시각 및 관점에서 연주성향, 내용 그리고 특성을 관찰하는 것도 이의 다각적 체험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전적으로 타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참고하는 데 주력할 것이지 이를 모방할 필요는 없다.(때로 실기지도에 있어 다른 연주자의 성향을 비교 연주를 통해 설명하는 것은 해석적 가능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작품해석에 있어 현재 자신이 가능한 부분을 바탕으로 또다른 가능성 실현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점이다.
물론 즉각적으로 어떤 방법 내지 가능성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단히 이를 추구해 나간다면 어느 순간 해결의 실마리가 풀려나가는 것을 진지한 연주자들은 익히 체험하였을 것이다. 의학도(醫學徒)들이 후일 어떤 전공을 선택하든 기본적으로 신체해부학을 공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완성된 악곡의 세부적 음상 및 이의 연계성을 고려하는 것은 작품의 해석에 있어 중요한 과정이자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주요 관건이다.

 

2. 작품연출
연출이라는 용어는 각본이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는 드라마를 포함하는 방송, 연극 그리고 영화 등 종합적 영상 매체의 효과적인 작품성 실현을 도모하기 위해 각각의 세부 요인(연기, 무대 및 무대장치, 의상, 분장, 조명, 소품, 음악 등)들의 일체화를 이루기 위한 총괄적인 작업과정을 의미하며, 또한 어떠한 일이나 효과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의미하기도 한다. 앞서 선행된 작품해석을 통해 형성된 다채로운 음상(音像)을 악기(또는 인성)를 통해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최대한의 효과적인 가능성을 실현하는 연습 내지 연주과정 역시 연출의 한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음악은 건축적 및 실내장식적인 양면을 동시에 갖는다. 악곡형식은 전자에 그리고 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 세부적인 캐릭터 등은 후자에 속한다고 비유할 수 있다. 즉 연주자가 작품을 해석하여 이를 무대를 통해 청중 및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활동은 또 하나의 연출활동이다. 진지한 연주자는 작품의 세부와 전체를 연계하고 고려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찾기에 주력한다. 음색, 선율선, 성부의 균형 및 조화, 프레이징… 여기서 앞서 타 영역(연극, 영화, 드라마등)에서 소개한 세부적인 요소들과 연주에 있어 필요한 각각의 요소들은 유사성 내지 동일한 속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필자는 때로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드라마 내지 영화촬영 과정(무수한 NG를 거쳐 각각의 컷을 완성해 나감)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연주자는 혼자서 타 장르의 모든 세부관건들과 이의 가능성 및 효과적인 연계성의 고려를 도모해 나가는 총체적인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어찌 보면 일인다역(一人多役)의 막중한 사명을 수행해야한다. 음색만 하더라도 밝음에서 흐림, 선명함에서 불투명함 등 폭넓고 다양한 음색 특성의 표현이 가능하다. 피아노음악에 있어 선율선은 극중에서의 주인공, 그리고 화성적인 부분은 조연 또는 보조 연기자 등, 역할에 상응한 부각 내지 드러나지 않으면서 주연을 부각시키는 연기와 같은 맥을 이룸을 알 수 있다. 즉 악곡분석을 통해 해석하여 이를 연출을 통해 완성시켜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무대연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 및 요인들에 대한 인식과 안목을 가지고 연습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준비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연주를 들어보면, 음악적 변화 내지 가능성의 폭이 제한되고 단지 악곡을 읽어 나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태반이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연주자의 연주가 상대적으로 빛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기자가 대본이나 시나리오를 전해 받고 처음에는 자신의 역할을 파악하기 위해 전체적인 내용을 제3자적인 입장에서 단순히 읽기를 시도한다.
이를 통해 극의 전체적인 스토리와 내용전개 등 특성이 파악되면 자신의 역할을 집중 조명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또다른 인생 또는 삶을 펼쳐나가고자 몰입하여 연기한다. 즉 연주자는 연기자와 마찬가지로 제3자적인 입장이 아니라 자신의 삶처럼 연주를 통해 실감나게 재현해야 한다.(물론 작품의 특성에 따라 다른 속성을 고려해야 할 때도있지만)
작품에 따라 변신의 폭은 제한이 없다. 연기처럼 중년의 연기자가 때로 노년의 역할을 담당하거나, 심지어 성을 전환하는 연기를 펼쳐야 할 때도 있다. 비단 표제음악이 아닌 절대음악이라 할지라도, 또한 바로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하고 다양한 형태의 음악작품이 존재하지만, 각각의 다른 의상 내지 시대상을 바탕으로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그리고 변신의 폭을 넓히려는 생각을 가지고 작품성을 성찰하고 관조한다면 이른바 ‘연기하듯’ 생생한 연주가 가능할 것이다. 악곡을 통해 연주자 자신의 또다른 변신 가능성을 도모하고자 주력하는 것이 모두가 공감하고 설득력있는 무대 연주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는 초석임을 다시금 강조한다. ■

 

 

작품의 예술적 완성

 

각 분야의 예술가들은 궁극적으로 예술적 완성을 지향하는 삶을 추구한다. 광대(廣大)한 구조에서 세밀(細密)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양자를 고찰하며 끊임없이 수정 및 보완을 도모하고자 주력하는 모습이 예술가들의 공통적인 예술적 창의실현의 과정이자 단계이다. 모든 부분에서 완성을 지향하는 것은 예술가의 집념과 안목 그리고 예술성에 크게 기인한다. 창작(작곡)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이를 재현하는 연주는 더불어 책임의식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철저하게 연주자의 작품성을 통한 가치의 발견 및 이의 적극적 재현이 중요한 몫이다. 누구나 완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마음내지 갈망을 갖고 있지만, 이의 실현은 천차만별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람은 사고, 감성, 감정, 욕망, 열정, 성향 등 모든 면이 제각기다. 또한 그의 성장과정, 교육환경, 사회적 ? 지역적 특색, 출생 및 여건 등 주변적 요인들 역시 그의 예술성을 이루는 바탕으로 작용하여 상이(相異)한 성향으로 드러나게 된다. 모든 작품은 장르에 구분없이 보편성(일반성)으로 추구되어야할 사항들이 있으며, 나아가 각각의 개별적 특성에 상응하는 특수성(독자성)의 영역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의 상관관계를 통찰하거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완전한 작품의 재현을 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즉 연주자 자신이 어느 정도의 능력과 자질을 습득하고 소유하였느냐에 따라 연주의 결과는 큰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그럼에도 맹목적인 연습을 감행하는 것은 발전의 한계를 초래함은 물론 완성지향적인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양상들을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게 된다. 연주자 누구나 작품에 따른 한계는 분명히 있지만, 작품성 성찰의 노력이나 깊이를 추구하는 안목에 따라 예술적 완성에는 크게 좌우됨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완성 지향적인 연습 및 연주를 실현하느냐 하는 과제는 연주자 모두가 항상 주력하여 해결해야할 중요한 과제이다.

 

 

1. 분석 및 파악
의사 또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해부학이 필수과목이다. 피아노 조율사가 되기 위해서는 현(鉉)을 감는 것에서부터 조립하는 전 과정을 습득하고 설계하는 과정까지 습득하여야 진정한 조율사로 배출된다. 또한 현악기를 수리하거나 제작하는 사람 역시 악기의 세부적인 면에서부터 전체적인 관건에 이르기까지 전수받지 않고는 진정한 장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주자 역시 작품을 대하면서 전체적인 작품성의 파악 및 세부적인 분석을 병행함으로써 특성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또한 이를 자기화함으로써 작품의 예술적 완성에 이르게 된다. 과거 학창시절 학습했던 화학, 물리, 수학뿐만 아니라 국어, 영어 등 모든 교과목 역시 파악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음을 익히 경험하였을 것이다. 일반인과 전문가들이 예술품을 감상하는 성향이나 자세를 생각하면 분명 다른 면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자는 자체를 보고 즐기면 되지만, 후자는 거시적 및 미시적으로 작품을 분석하고 파악하려는 태도 및 자세를 갖고 있다. 물론 어느 학생이나 연주자를 막론하고 작품을 나름대로 파악 내지 분석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의 가능성의 폭과 깊이가 중요한 관건이다. 분석적 성향 및 안목을 갖춰 나가는 것은 연주자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다. 즉 정확한 분석을 거치지 않고 작품성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다. 분석은 단지 화성, 구조 등 단편적인 고찰보다 다각적인 분석의 실현이 바람직하다. 즉 악보의 짧고 긴 부분을 각각 깊이 관찰하면서 작곡가의 작곡의도 및 심상을 역(逆)으로 읽고 파악해야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작품을 통해 작곡가의 심연(深淵) 깊숙이 정통(正統)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품의 가능성 및 완성을 도모하려 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할 것이란점을 확실히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한다.

 

2. 재조형(再造形)
앞서 선행된 작품의 분석을 통한 파악으로 작품성을 재 조형(구성)함으로써 나름대로 틀의 형성 및 정립(定立)이 가능하게 된다. 여기서 템포(아고긱, 루바토 등)와 다이내믹, 해석 및 표현 등 다양한 개인적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물론 다음 항목에서 언급할 ‘음상(표상)의 정립’ 역시 중요한 요건으로 상호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즉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세부적으로 해체(解體)한 후 이를 바람직하고 효과적으로 재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악보 그 자체는 전혀 움직임이 없는 단지 인쇄물에 불과하나, 이를 대하는 연주자의 음악적 사고(思考)가 이를 해체하기도 하고 또한 결합 하기도 하는 것이다. 선율 악기 또는 성악 역시 반주를 동행하므로 전체를 통한 분석의 과정을 필히 거쳐야한다. 흔히 선율(멜로디)만을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기악 연주자들은 전체의 중요성을 때로 간과하는 것을 보게 된다.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는 악보(총보)를 보면서 전체와 부분의 중요성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찰한다. 솔로파트와 반주파트는 하나로 연계함으로써 비로소 제대로 파악이 가능하다. 즉 솔로를 담당하는 연주자들은 반주파트(반주자)를 자신의 연출의도에 따라 적합하게 동행(반주)이 이뤄지는지, 그렇지 못하다면 명확하게 자신의 음악적 표출의지에 상응하게 동반하도록 요구할 수 있어야한다. 즉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분과 전체는 언제나 상호 유기적 연대(連帶)를 형성하도록 개별적 내지 통합적으로 다뤄져야 이상적인 결과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작곡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음상을 이미 악보라는 수단을 통해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연출 성패(成敗)의 여지는 전적으로 연주자의 몫으로 남는다. 연주자가 다각적(多角的)으로 어느 정도 바탕이 확립되었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는 제각기일 수밖에 없다. 음과 음의 결합(수평적 및 수직적)을 해체한 후 다시 재조합함으로써 작곡가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연
주자의 또 다른 연출의지를 실현할 또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3. 음상(표상)의 정립
선율적 흐름, 화성적 구도, 형식적 틀과 윤곽 등 모든 요건은, 작품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때로 개별적(독자적) 또는 전체적(통합적)으로 연계성을 가지고 통찰(洞察)하여야 한다. 선율적 흐름은 몸(신체)과 마음에서 비롯되며, 이를 포함하여 화성적 및 형식적 틀과 윤곽은 음상으로 정립된다. 서양음악은 ‘음과 음’의 상관관계에서 미학이 출발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국악(전통음악)과는 큰 차이를 드러낸다. 미술, 건축, 자연 등 생활 주변의 모든 것을 보면서 사람 마다 제각기 다른 상념, 감각, 분위기, 기운(氣運)을 느끼게 된다. 즉 개별화의 요인으로 크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음상의 정립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사항들 역시 다른 면모로 작용할 각각의 요인들이지만, 어떤 음상으로 정립하거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상이성의 폭이 넓어지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작곡가가 의도하고 요구하는 성향에 접근을 시도하느냐 하는 관건이다. 즉 작곡가의 주장, 표현의지, 작품성의 의도 및 관점을 작품을 읽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연주자의 중요한 사명이다. 자신을 드러내려하기 보다 작품성의 가치와 작곡가의 진정한 작곡의도를 파악하여 이를 재현하려는 연주자는 진실하고 책임감 있는 연주자로 평가될 것이다. 방향성이나 좌표의 인식 없이 자기 관점대로 상상하고 성격을 조형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못한 항해(航海)와 같이 표류하다 좌초될 우려가 큰 것이다. 예술세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자기방식만을 고집하거나, 작곡가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고 배제한 상태에서 해석을 시도하거나 음상을 정립해 나가는 것은 대단히 무모하고 치우칠 우려가 있음을 항시 인식하여야 한다.

 

4. 자기 표출(연출)의 구체화
같은 화장품이나 물감을 가지고 화장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더라도 사람마차 큰 차이가 있다. 동일한 석고상을 스케치하면서도 다른 질감과 구도를 드러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물며 음표로 기록된 악보를 보고 이를 해석, 연주성향, 감각 및 대조 등 모든 면에서 연주자 마다 크게 다른 양상을 드러내리란 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으며, 또한 제각기 다른 연주의 결과를 초래함을 연주회나 음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미국, 유럽, 러시아 등 지역과 학파에 따른 차이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개별적 성향에 크게 좌우됨을 알 수 있다. 동일한 지역적 특성에서도 제각기 다른 연출의 특성을 담아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하게 짚어 나가야할 사항은 보편성(일반성)과 특수성(개별성)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 및 적용이다. 보편성을 무시하고 특수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치우칠 우
려가 크다. 작품을 학습하거나 연주함에 있어 보편성의 굴레는 항시 존재하며 이를 바탕으로 개별적 특성을 이입(移入)함으로써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이 가능한 사실이다. 학생이거나 전문 연주자 누구라도 다른 사람의 복제(연주스타일 및 해석 등)를 원하지 않는다. 물론 학습 과정에 음반이나 선생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은 때로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가능성을 표출하는 연주에서 언제까지 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극적일 것인지 상상할 수 있다. 즉 선생의 시범 연주나 여러 음반을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타진하고 참고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어느 시기에 이르면 자신의 목소리와 연출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내적 갈망(渴望)이 절실해지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런 자의식을 갖도록 선생은 이끌어 나가야하며, 학생이나 연주자들은 자신의 표출을 목표로 항상 새로운 가능성 발견 및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귀(耳)가 열려있어야 한다. 또한 작곡가와 작품을 통해 연주자 자신의 성찰과 이의 실현 가능성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매진해 나가야한다. 연주자마다 제각기 다른 성향으로 나타나며 지금까지 전혀 시도되지 않았던 재해석 면모를 창출할 뛰어난 연출가를 발견할 수도 있다. 연주자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초월 하는 예술적 완성을 도모하는 것은 전혀 실현 불가능하다. 즉 작품성을 근간으로 자신의 예술적 시각을 넓히는 길이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자신의 연출력 신장(伸長)에 이바지할 중요한 방안임을 다시 강조한다.

 

작품성의 미적 탐색

 

작품성의 미적 탐색은 작품성을 통찰함으로써 각각 세부의 독자성 및 작품 전체를 통합하여 성격을 규정함에 있어 책임 있게 실현해야 할 주요 사항이며, 이로써 작곡가의 작품을 재현함에 있어 보다 명확하고 정통할 해석 및 연출의 시도가 가능할 수 있다.

 

빈(Wien)의 숲 속을 산책하며 작품을 구상하는 베토벤의 모습을 스케치한 회화 작품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에 앞서 곡의 테마, 구성 및 전개 등 총체적으로 작품성의 제반 관건들에 대한 설계 및 구상을 시도하기 위한 작곡가의 선행(…行) 활동이다.
연주자는 악보를 통해 작곡가를 접하게(만나게)되며, 그가 요구하는 음악적 의도를 파악하는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동일한 작품일지라도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재현(再現)되기 마련이다. 한편 이는 필연적인 사항으로 간주(看做)할 수 있다. 연주자가 자신이 연주할 작품을 선정하여 악보를 대하면서 전체적인 구성 면에서부터 세부적인 디테일에 관한 제반 사항까지 관조(觀照)하고 성찰(省察)하면서 비로소 작품성 파악 및 탐색의 과정이 이뤄 지게 된다.
연주자마다 출생, 성장, 교육 등 제각기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 이런 연유(緣由)로 악곡의 분석, 해석 및 표현의 상이성(相異性)이 드러나게 된다. 같은 의상을 입더라도 각자 다른 모습을 드러냄과 마찬가지로, 음악작품도 또다른 예술적 창작물과 마찬가지로 이를 대하는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해석, 연출 및 연주성향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인지(認知)해야 한다. 효과적인 연주를 위한 작품성의 미적 탐색은 연주자가 지향해야 할 최고의 목표이자 작품을 통한 자기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깊이 이뤄져야 할 주요 관건이다.

 

1. 음상(音像) 구조 파악
작곡가는 5선 위에 자신의 음악적 의도를 펼친다. 성악적 또는 기악적 양상이 혼재(混在)하는 가운데 고유한 음악미를 담아 실현되기를 갈망(渴望)한다. 역으로 작품을 대하는 연주자는 작품을 통해 작곡가가 실현하고자 하는 예술적 이상을 깊이 탐구하고 이를 통한 자기화를 도모해 나간다.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적 구도(構圖), 구조(構造)를 어떻게 파악하여 재구성해 나가느냐 하는 관건은 전적으로 연주자의 예술적 안목(眼')에 달려 있다. 즉, 작품성이 지닌 다양하고 폭넓은 각각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여 이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의 효율성 내지 성과 여부(與否)는 연주자의 작품 성찰의 깊이와 연관이 있다.
연주자마다 제각기 다른 성향을 드러내지만, 작품성의 근간은 보편성 내지 일반성의 양상을 드러내는 부분과 각자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낼 특수성 내지 개별성으로 대별하게 된다. 작품에서 요구하는 각각의 음상은 다변화의 양상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상의 설계 및 구조 파악이 미비함으로써 작품성의 진정한 가치가 실현되지 못하는 사례를 종종 확인하게 된다.
마치 영화 필름의 한 컷 한 컷이 상(像)을 드러내듯, 음악적 상 역시 이와 같이 연주자의 뇌리에 정립되고 스케치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작품성의 가치를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냉철하고 예리하면서도 지적인 이성과 풍부한 예술적 감성의 작용이 병행되어야 한다. 음상의 구조 파악은 연주자의 작품성에 대한 세부적 및 전체적인 통찰 및 성찰 등 그의 예술적 안목에 의해 결정된다. 즉, 좁은 안목(h視的)으로 작품성을 대하면 편협하고 상상력이 결여되어 이상적인 가치 실현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넓은 안목(巨視的)이 형성된 연주자는 폭넓고 다채롭게 구상함으로써 작품성을 효과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즉, 지적 그리고 정서적 활동이 병행됨으로써 각각의 음상은 본연(本然)의 가치를 드러내게 된다.
연주를 위한 선행 과정인 음상의 구조 파악은 화성학, 대위법, 음악형식 등 제반 이론의 학습으로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머리와 가슴이 함께 작용하여야 비로소 완성적 음상의 구조 파악과 이의 자기화가 가능하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기악작품들에서 성악적 내지 기악적 특성이 공존함을 알 수 있다. 즉, 리릭(Lyric)한 부분과 메카닉(Mechanic)한 부분이 어우러지고 양자가 교차됨으로써 반전(反轉)이 시도되어 작품성은 커다란 변화의 가능성을 펼치게 된다.
작품을 대하면서 각각의 부분을 어떤 성향으로 정리할 것인지 사려 깊고 분별력 있게 구분함으로써 작품성의 가치는 빛을 발하며 폭넓은 대조의 양상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나날이 새롭게 음상을 관조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음악적 안목을 넓히려는 끊임없는 정진이 필연적임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2. 수평적·수직적 요건
음의 순차(順次) 내지 도약(跳躍)으로 구성되는 선율선(Melodic-Line)은 대선율과 더불어 수평적 구조의 특성을 갖는다. 이는 악곡의 테마와 곡을 구성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아울러 시대적 변천에 따른 화성의 변화 및 발전은 선율을 지탱하고 보완하는 두터운 받침의 역할 및 색채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즉, 선율이 진행하면서 이를 색채감 있게 옷을 입혀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변화의 속성을 드러낸다.
선율선을 연주하는 솔로악기 또는 성악은 반주(피아노 또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때 비로소 완성을 도모하게 된다.(무반주 조곡 등 제외) 오케스트레이션 악기인 피아노는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구조와 틀이 확립되어 있다. 선율은 특수한 현대음악(12음 기법을 바탕으로 한 무조음악 등)을 제외하고 노래되어질 때(Singing-Tone) 선율이 갖는 흐름과 그에 따른 다이내믹, 템포, 음폭 등 다양한 변화 가능성을 표출할 수 있다.
테마 내지 주제 선율에 어떤 의상을 입혀 보완 내지 완성을 도모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 화성적, 즉 수직적인 관심의 성향을 갖는데, 이는 화성감으로 감각성향을 드러내 선율을 풍요롭게 보완 내지 완성을 도모할 수 있도록 작용한다.
예컨대 드라마 또는 영화에서 주연(선율)을 제외한 조연(대선율 및 화음), 그리고 엑스트라(음색, 분위기 등 다양한 변화 가능성)가 제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극(劇)이 완성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모든 음악적 흐름과 특성 변화의 중심은 선율이 담당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화성 변화의 세심한 관찰과 이의 적절한 표현 역시 중요하게 취급되고 각별하게 주목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양자를 어떻게 결합 내지 조화를 도모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음과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은 연주자의 미적 안목이 반영되는 것이며, 이로써 연주자의 역량 및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게 작용하는 것이다.

 

3. 프레이즈와 아티큘레이션
모든 악곡은 대체적으로 특정한 형식을 전제로 작곡된다. 극의 구성처럼 기·승·전·결의 형태를 갖는 사례가 일반적이다.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眺望)하면 형식과 구조와 틀이 드러나지만, 이를 구성하는 세부적인 관건이 바로 프레이즈와 아티큘레이션이다. 때로 거시적(巨視的) 및 미시적(h視的) 안목으로 작품을 고찰함으로써 작품의 진정한 위상 정립과 작곡가 본연의 의도를 파악하여 실현할 수 있다.
형식과 틀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성의 고찰과 함께 미세하거나 작은 소그룹의 ‘음과 음’의 결합에 대한 세부적인 고찰역시 연주를 준비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과정의 작업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 것은 작은 부분들에 대한 관심과 연계하여 악곡 전체와의 연관, 연계에 대한 고찰이 필연적 관건이다. 이는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한다’는 격언에서처럼 어리석음을 범치 않아야 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악곡은 세부적인 음들의 연계(아티큘레이션) 및 이를 프레이즈로 구성함으로써(프레이징) 정리해 나갈 수 있다. ‘음과 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에서 미적·지적·감각적 활동이 전개된다. 한 음(音)을 준비하여 소리를 낸 후 음의 지속과정 그리고 음의 마무리까지 일련(一連)의 작업을 자신의 의도대로 정확하게 진행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음과 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명확한 정립이 가능하다.
언어에서도 몇 개의 짧은 어절(語節)이 모여 한 문장(Sentence)을 형성함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언어적 속성과 유사성을 드러내고 있다. 즉, 문장을 단순하게 읽는 것이 아니라 연기자가 대사를 적절한 분위기를 표출하여 연기하듯, 음악의 세부(細部)와 이를 연결하여 한 문장으로 엮어지는 프레이즈를 분명하게 정리함으로써 특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표현의 완성을 도모하여 설득력 있는 음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악곡의 각 부분에 대한 명확한 성격의 정립이 필수적이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가가 조각을 할 때, 붓과 조각칼의 움직임은 전체를 고려하면서 각각의 부분을 스케치 하거나 조각하는 행동이 지속적으로 이뤄짐을 알 수 있다. 이로써 그림이나 조각품이 점차 완성을 도모하게 된다.
물론 연주하는 것은 회화 또는 조각과 속성상 상이(相異)한 점도 있으나, 전체와 연계하여 세부적인 변화를 도모함에 있어 유사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훌륭한 연주는 작품의 전체적 특성을 고려하되, 세부적 사항들에 대한 적절한 표현과 변화를 도모할 때 가능하다. 즉, 매 순간 음악적 내용과 특성의 변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연주자의 적극적인 의지가 실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소극적인 연주는 부분에만 집착하거나 또는 세부적인 것에 대한 관심 소홀이 문제점이다.
한편, 적극적인 연주는 전체와 부분을 상호 연계하여 세부적인 표현에서부터 이의 전체적 연관과 연계를 성격적으로 명확하게 재현할 수 있는 연주를 말한다. 프레이즈와 아티큘레이션 등 악곡을 구성하는 세부적 요건들에 대한 구체적이며 명확한 음상의 정립은 각각의 미적 특성을 강화함으로 시작하여 전체를 총괄하는데 이르기까지 상호 작용 및 구체화 실현을 목표로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할 사항으로 간주할 수 있다.
작품성의 미적 탐색은 작품성을 통찰함으로써 각각 세부의 독자성 및 작품 전체를 통합하여 성격을 규정함에 있어 책임 있게 실현해야 할 주요 사항이며, 이로써 작곡가의 작품을 재현함에 있어 보다 명확하고 정통할 해석 및 연출의 시도가 가능할 수 있다. ■

 

 

마음(心的)의 평정

 

세상의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변화된다. 계절, 인간, 세상 등 어느 것 하나 변화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전무(全無)하다. 성공적인 연주와 실패한 연주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연주자가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깊이 자신을 성찰하고 이를 효과적이고 안정적으로 펼치느냐에 달려 있다.

 

세상살이를 비롯, 모든 인간의 활동을 바람직하고 정상적으로 펼쳐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체득(體得)해야 한다. ‘정신일도(精神一到) 하사불성(何事不成)’이란 옛 격언이 시사하는 바처럼, 정신을 한데 모으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 이룰 수 없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고도(高度)의 집중력은 모든 학문 및 예술적 활동을 펼침에 있어 중요한 근간(根幹)이다. 악곡을 접하여 이를 파악하고 연주하는 활동 역시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즉, 두뇌(머리)는 명철하고 이성적이되 가슴(마음)은 풍부하고 정신적 평정(平靜)을 유지해야 한다. 매순간 변화되는 악상에 신체적 대응(對應)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관건이다. 작품성을 성찰하는 과정이나 이를 악기(또는 인성)를 통해 표현을 준비해 나가는 모든 과정에서 심적 안정은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음악이 진행되면서 악상은 매순간 변화를 도모해 나간다.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창작의 기본 이념으로 간주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변화된다. 계절, 인간, 세상 등 어느 것 하나 변화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전무(全無)하다. 성공적인 연주와 실패한 연주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연주자가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깊이 자신을 성찰하고 이를 효과적이고 안정적으로 펼치느냐에 달려 있다.
템포가 빠르거나 느린 제각기 다른 악곡에서 악상의 변화무쌍함이 항상 요구된다. 연주자는 그에 따른 변화의 특성을 실현해야 하겠지만, 이 때문에 자신의 심적 평정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진행하지 않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참담(慘憺)한 실패를 초래하는 사례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연주자도 이런 상황이나 과정을 전혀 겪지 않고 완성 단계에 다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과정을 통해 점차 완성을 도모해 나가는 것이 인간의 속성으로 간주할 수 있다.

 

1. 출생 및 환경
사람은 제각기 다른 출생 및 환경에 처한 삶을 영위한다. 가족, 학교, 사회 등 어느 누구도, 심지어 쌍둥이라 하더라도 유사성이 많을 수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무언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어떤 환경에서 출생하여 성장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인격 내지 인품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 필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환경론을 주창(主唱)하는 교육학자들은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흐가 음악가계(音樂家系)를 이룬 것도 이를 시사하는바다. 또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역시 교육에서 출생 및 환경의 중요성을 역설(力說)하는 한 예로 간주되곤 한다. 그렇지만 누구나 음악적 환경에서 출생하여 음악가로 성장하지 않으며 전혀 그렇지 않은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후천적으로 또는 어떤 특별한 영향으로 인해 음악에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하더라도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면 실상 음악가로서 무대를 갖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무대는 작품을 통해 또다른 예술적 자아를 표출해 나가는 특별한 장소다. 즉, 자신의 출생이나 환경을 바탕으로 형성된 자아를 깊이 성찰하고, 나아가 무대 예술인으로서 자질과 성향을 갖춰 나감으로써 비로소 완성적인 예술가의 대열에 설 수 있게 된다. 제각기 유리함 내지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어느 누구도 온전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후천적으로 좋은 교육적 환경과 인격형성 과정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상을 정립해 나갈 수 있지만, 그보다 가정, 학교, 사회의 바람직한 환경의 정립이 이뤄지면 보다 효율적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인간의 정서적 성향은 가정에서 비롯되며 유년기 시절의 환경적 영향은 평생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그러므로 음악적 활동, 그 중에서도 연주를 지향하는 또는 자녀가 그 길을 걸어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환경을 조성(造成)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과거 음악사적으로 비중있는 음악가들 중에서도 자신의 소심함 때문에 연주가로서의 길을 중도 포기했던 사례를 익히 접할 수 있다. 또한 현 시대 역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함으로써 심한 무대 공포에 사로잡혀 결국 무대를 갖지 못하거나 또는 음악에의 길을 포기하는 사례 역시 비일비재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상황에 처하더라도 정신적 안정과 심적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습성을 갖추도록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스스로 자신을 정립해 나갈 수 있는, 즉 바람직한 자아형성이 가능하도록 끊임없는 자아 성찰이 중요한 요건임을 강조한다.

 

2. 정신과 신체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비록 출생이나 환경에 다소 문제점이 있다 하더라도 후천적으로 자신을 바로 세우고 창의적 사고와 풍부한 예술적 감성을 갖춘 예술가로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극복함으로써 또다른 예술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데, 이는 모든 음악가들이 이르러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다시 말하면 예도(藝道)를 수련함으로써 예술가로서 고매한 인격을 형성하고 자질 면에서 완성 지향적으로 정진해야 한다. 종교적 차원에서 정신을 수양하거나 또는 기도하는 것은 한편 이와 유사한 특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좋은 연주를 위해서는 신체적인 조건이나 체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 극도로 피로하거나 그야말로 연주가 불가피한 조건에서 어쩔 수 없이 연주를 감행해야 할 상황도 없지 않다.
항상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주력하고 애쓰지만, 인간은 신체의 바이오리듬이나 정신적 집중상태가 시시각각으로 변화되기 때문에 때로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당일 연주회 전 리허설할 때와 실제 무대 연주를 할 때조차 현격하게 다른 것이 인간이다. 물론 탁월한 연주자들은 무대에서의 설렘과 긴장을 음악적으로 승화하여 보다 생동하거나 또는 고도의 집중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이용(?)하는 사례들을 무대에서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 작품을 통한 철저한 자아 성찰과 완성 지향적인 예술성 실현이 가능하도록 주력해야 함이 필수적이다. 정신과 신체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또한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되 끊임없이 상승작용이 이뤄지도록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 즉, 모든 면에서 자신을 관리하는 습성이 이뤄져야 비로소 프로다운 면모를 드러낼 수 있다. 이런 상태 내지 상황에 이를 수 있도록 자아형성 및 심적 평정이 습관화되어야 비로소 무대연출에서 안정궤도에 진입 할 수 있게 된다.

 

3. 예도(藝道)
종교 또는 심신수련을 통해 상당한 경지에 다다른 사람을 대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속(世俗)의 범인(凡人)과는 큰차이를 발견하거나 느낄 수 있다. 즉, 철저히 자신을 비워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를 체험함으로써 심적 평정에 이르게 된다. 때로 예술의 상업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즉 예술성의 가치를 확대 해석하여 흔히 말하듯 쇼업(Show-Up)하는 성향의 연주자들이 적지 않은 것이 오늘날 공연예술계의 현실이다. 물론 해석상 어느 정도까지가 적당하고 통념상 적정한 한계일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제각기 다른 견해를 드러낼 수 있다. 이를 생각하는 기준이나 정도에 대한 개인적 차이는 실로 제각기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예도(藝道)는 작품 본연(本然)의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진지한 음악가의 예술적 완성을 도모하기 위한 준비 내지 진행 과정을 말한다. 즉, 예술적 순수성이 배제된 순간부터 그 아티스트가 행하는 모든 예술적 행위 또는 준비과정은 여기서 말하는 예도와는 거리가 멀다. 좋은 연주를 준비하기 위해서 기술적 완성을 도모하고자 제반 테크닉적 관건을 해결함으로써 풀어 나가는 것은 물론 중요한 요건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작품성을 성찰하는 과정이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摸索)하는 과정을 통해 연주자가 수련하는 길 내지 방법은 진지하고 순수한 마치 구도자(求道者)의 심성(心性)으로 이뤄져야 한다. 물론 종교는 사랑의 실천과 믿음을 통한 구원이나 깨달음을 위한 또 하나의 방편으로 간주할 수 있다.
무언가를 지향하는 끊임없는 갈구(渴求) 내지 자신 수련을 통해 거듭나기를 염원하는 것이 종교를 갖는 일반적 이유일 것이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소원이 성취되거나 또는 내세의 구원이 이뤄지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진정한 연습과정을 통해 자신을 갈고 닦는 수련의 과정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작품성에 접근을 도모할 연습이 진행된다면 이는 바로 예(藝)를 통해 도(道)에 이르는 또 한 과정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런 상태의 연습 시간은 상당히 의미 있는 연습이 되고 정신적·신체적 안정을 도모할 또다른 방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방향이 설정되지 않고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거의 맹목적이고 반복적인 연습은 심신을 피곤하게 하며 음악적 완성을 도모하는 길과는 전혀 다른 비효율적이고 체력, 정신 및 시간의 낭비에 머무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거나 또는 신체적인 성장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그때마다 끊임없이 변화 가능성을 인식 내지 파악 능력을 겸비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형이하학(形而下學)적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이는 정체 내지 지체가 아니라 바로 퇴보를 의미하게 된다.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연습, 비효율적이고 발전적이지 못한 연습은 큰 차이가 있다. 물론 연주자들은 자신을 때로 발견하지 못하고 오직 연습의 노예(?)가 되는 사례들을 종종 무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연습의 중요성을 간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수행하는 마음으로 일관하되,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모든 관건들에 대한 철저하고 완벽을 지향하는 마음가짐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진정으로 실현되는 연습과정은 예도를 실천하는 과정으로서 이를 통해 희열(喜悅)과 충족감으로 갖게 되며, 이로써 정신과 마음의 평정을 깊이 체감할 수 있게 된다. ■

 

 

새로운 해석적 가능성의 추구

 

‘변화’는 21세기의 화두(話頭)이다.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변화의 넓이와 깊이는 급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현실이다. 정치·경제·사회·과학은 물론 음악을 포함하는 모든 예술세계에서조차 예외가 아니다. 과거 비르투오소로 간주(看做)되던 연주자들과 오늘날 국제적인 콩쿠르를 석권하여 무대 및 음반을 통해 새롭게 선보이는 젊은 연주자들의 음악적 표현, 해석적 성향, 고도로 완벽한 기술성의 실현 등, 비단 대중예술과 음악뿐만 아니라 고전음악의 모든 양상도 현격한 차이를 드러냄을 무대 또는 음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되는 이 시기에 연주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가능성의 실현을 목표로 정진해야 한다.

 

 

1. 음악적(예술적) 안목(眼')의 광대(廣大)
이의 핵심은 바로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넓혀가는 것이다. 이는 지적, 정신적, 감각적 성장과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끊임없이 많은 시간을 연습에 할애하지만 실제적으로 연습량과 음악적 발전은 반드시 정비례한다고 볼 수 없다. 즉, 무의미한 시간과 체력의 소모에 불과(?)한 사례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진정한 연습은 시간 대비(對比) 음악적 완성도의 효율을 높이며, 항상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추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때 가능하다. 단지 한 음(音)을 소리내기 위해서도 사전(事前)에 자신이 음상을 설계하고 스케치하는 정신적인 작용, 음이 진행하면서 화성적, 구조적, 형식적인 차원의 감각(감성)적 풍부함의 실현, 그리고 작품 전체를 통해 악상을 대별하고 세부적인 특성 및 가치의 표현 등 거시적(巨視的), 미시적(h視的) 안목에서 작품성을 고찰하는 마무리 단계까지 어느 한 가지 또는 단계도 소홀히 다뤄져서는 안 될 중요한 요건들이다.
완성도 높은 연주를 위한 기술적(테크닉적) 발전 역시 소홀해서는 안 될 부분이지만, 자칫 맹목적인 연습인지 발전 지향적 연습을 시행하고 있는지 매 순간 확인하고 점검해야 한다. 즉, 매 순간 연습의 목표가 분명하고 확실해야 한다. 이런 진지한 연습 시간들이 축적되면서 점차 예술적 안목은 넓혀지게 된다. 그보다 연습시간 이외에 많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연습시간은 여러 면에서 다소 제한적일 수 있다. 즉,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실현보다 자신이 현재까지 완성한 단계에 이르거나 또는 약간 상회하는 정도에 그칠 우려가 많다. 새로운 가능성의 실현은 삶 자체가 예술적인 관심과 갈증이 끊임없어야 하며, 음악 = 삶 또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
‘생활화’가 보다 적절한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음악가 또는 음악도들은 생활 가운데 끊임없이 자신이 연습하거나 연주할 악곡 및 자신의 진정한 음악적 발전을 지향하는 생각과 느낌들로 충만한 하루하루의 삶이 지속되어야 한다. 인간 누구에게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존재한다. 자연적인 변화 이외에 인간 자체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는 것이 속성이다. 즉, 생리적·심리적·신체적 등 모든 조건이 달라지는 것이 필연적이다. 이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내적 외적 변화 내지 변모를 확인하는 것 역시 새로운 가능성을 표출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2. 작품을 통한 자아 성찰 및 발견
작품을 탐구하면서 작곡가의 표현의도, 작가정신, 예술적 가치를 최고도(最高度)로 실현하는 것이 연주자의 책임이다. 그러나 인간의 속성은 개인적 차이가 필연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작품을 통해서도 다양한 연출 가능성이 이뤄지게 된다. 즉, 자신과 상이(相異)한 타인의 음악적 성향을 통해서, 또한 그들과 한데 어우러지면서 점점 자기의 실체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연주, 음반 등 직·간접적 체험을 통해 음 내지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점차 눈을 뜨게 된다. 즉, 작품의 특성 및 상황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끊임없이 변화되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자신을 작품과 상통(相通) 내지 일치하는 초점(焦點)을 이루고 또한 공감대를 형성하느냐가 작품을 통한 자아를 재발견하는 중요한 관건이다. 자신의 상태와 변화에 따라 연주는 필연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이른바 완성도(完成度)와 관련된 부분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한 작품을 여러 번 연주하더라도 그 때마다 내적·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요인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를 부정적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 연주 시의 컨디션 조절의 문제에 기인하는 불안정성 때문이 아니라면, 또 다른 변화를 냉철하게 고찰하여 요인과 적합성 여부를 진지하게 되짚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연주를 위해 작곡가와 그의 작품을 선정하여 악보를 읽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작품은 연주자의 성향, 능력, 자질에 따라 때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연주자에 따라 자신과 비슷한 성향이나 표현양상을 발견하게 되고 미처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거나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 연주에 깊은 감흥을 느끼게 되며 선호(選好)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 연주자와 자신 사이에 공감할 부분과 상이한 부분이 어떤 요인들 때문인지 판단할 안목을 갖춰야 비로소 자아 형성에 도움이 되는 체험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맹목적 수용 내지 비판은 음악가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덕목(德')으로 생각된다.
작품은 무수한 음들의 조합(組合)으로 이뤄진다. 뿐만 아니라 악상 및 음의 다양한 변화 등, 그리고 수많은 다른 출판으로 인한 해석적 상이성도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악보를 선택하는지 여부도 연주자의 성향을 가늠할 한 요인이다. 이런 조건들 이외에도 연주자의 감성, 감각, 개성 등 연주의 바탕을 확립하는 데 작용하는 요건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이런 모든 관건들이 연주자가 작품을 통해 예술적 자아를 성찰하고 발견하면서 점차 구체화되고 표현양상으로 드러나는 연주의 실상(實像)으로 간주된다.

 

3. 작품성의 자기화
연기자(탤런트, 연극배우, 영화배우 등)는 대본을 받아서 여러 번 읽으면서 전체 극의 내용, 전개, 특성, 분위기 등,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상대를 점차 파악하고자 주력한다. 그러나 연기자는 극중 역할의 비중과는 상관없이 전체에서한 부분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를 총괄하여 지휘하고 세부적으로 점검하며 의도하는 연출을 시도하는 것이 연출가 또는 감독이다.
그 밖에 무대세트, 촬영지 선정, 조명, 엑스트라 등 한 편의 영화 또는 드라마를 촬영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인원은 작게는 10여 명 안팎에서 수백 내지 수천 명 심지어 그 이상에 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촬영하면서 감독이 NG(No Good) 사인을 주는 것은 전체적으로 모든 상황을 판단할 때 어느 한 부분이라도 만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려지는 결정이다. 때로 불과 몇 초를 방영 내지 상영할 분량을 촬영하기 위해 하루 또는 그 이상이 소요될 때도 있다. 그만큼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하기 위한 감독의 집념이자 완성을 지향하는 예술가로서 투철한 정신으로 간주되곤 한다.
음악의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이처럼 총체적 내지 세부적 고찰이 요구되지 않는 분야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비록 새로운 해석적 가능성의 차원에는 못 이른다 할지라도, 현재 자신의 안목에서 작품성 통찰을 통해 판단한 근거를 재현하는 과정에서도 이처럼 냉철한 고찰은 필연적이다. 물론 시간이 경과하면서 연주자의 음악적 경험, 사고, 판단력, 감각 등 모든 면이 변화되면 그에 따라 해석적 특성 역시 다르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작품성을 자기화하는 것은 그만큼 작품에 대한 깊고 정확한 이해 및 파악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물론 연주자의 개성, 능력과 자질 여부에 따라 또다른 변수로 작용하고 완성도에 현격한 차이가 드러날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완성도 높지 않고 표현력이 부족한 것, 그리고 작품을 통해 청중과 연주자 자신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거나 이해시키지 못하는 연주는 연주자 자신이 작품성의 자기화가 이뤄지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즉, 자신부터 우선적으로 작품에 대한 확신과 신념이 부족하므로 진정한 작품성의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의 웅변하는 모습 또는 정치인들의 선거를 대비한 후보자 연설을 보고 들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우선 대본이 잘 짜여지고 내용도 충실해야 하며 소신과 신념을 드러내는 음성으로 기복도 있어야 청중은 몰입하게 되고 그에게 찬사를 보내며 그를 지지하게 된다. 이를 작품과 연주에 연계하여 생각해 보는 것도 연주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한편 도움이 될 수 있다.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연주에서 이성 내지 감성 성향으로 차이가 드러나지만, 보다 완전한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의 상호 보완적이고 각각의 상황에 따른 탄력적인 변화 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실현하면서 풍부하고 깊은 감흥을 체험하게 할 연주 스타일로 생각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 및 해석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진지한 연주자야말로 작품성을 점점 자기화하고 이로써 많은 청중에게 예술적으로 깊고 다양한 체험을 선사할 능력 있는 연주자다. 연주자나 학생 모두 자신의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하고 염원한다. 또한 완성도 높은 음악적 표현이나 해석을 시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평생을 연주자의 삶을 살았던 어떤 누구도 완벽의 경지에 다다른 적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이는 인간 속성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한편 항상 무언가 다르게 변화 내지 발전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컨대 모차르트의 어느 작품을 연령 별로 연주하고 녹음한 연주자가 있다고 가정할 때, 필연적으로 다르게 나타날 것임을 진지한 연주자는 누구나 체험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변화 가능성을 긍정적 내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변화의 깊이와 폭을 넓히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면 발전은 가속화를 도모하게 될 수 있을 것이며,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함으로써 변화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할 연주자로 추앙받고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

 


작품의 해석과 영감


사람은 제각기 다른 환경에 처한 삶을 살아 나가는 것이 숙명이다. 타인(他人)은 물론 가족 심지어 쌍둥이조차 유사성은 있을지언정 동일한 삶의 형태를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사물이나 예술작품을 관조(觀照)하더라도 이에 대한 생각이나 반응 그리고 표현이나 느낌 등 모든 면이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화장, 헤어디자인, 의상코디 및 가구선택과 실내 인테리어 등 일상적 삶의 모습에서도 제각기 다른 양상과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연주자에 있어 연주에 초점을 맞춰 관찰하더라도 동일한 속성을 드러냄을 파악할 수 있다. 작품을 입수(入手)하여 연구하고 분석하여 자신의 예술적 가치와 판단에 따라 완성된 결과를 무대에 올리는 것이 연주의 속성이다. 그러나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연주를 위해 전후에 작용하는 해석과 영감의 작용은 상이성(相異性)을 드러내지만 이는 보완되어야 비로소 완성지향적인 작품성의 가치와 자신의 예술적 정신 및 창의성을 지향 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


1. 해석(解釋)
작곡가는 작품을 쓰기 전에 주제(부주제, 에피소드 등)를 생각하고 이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고심하며 아울러 적합한 형식을 선택하여 창작을 시도한다. 무(無)에서 유(有)를 지향하는 창작 본연의 활동으로 간주할 수 있다.
과거 비르투오소 연주자 겸 작곡가의 시대를 지나, 작곡과 연주의 영역이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대에는 작품을 재해석하여 제각기 다른 안목에서 재현을 시도하는 연주자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게 부각된다. 영화의 시나리오, 연극 및 드라마의 대본 역시 어느 정도 역량을 갖춘 감독이나 PD에 의해 제작되느냐에 따라 완성도는 제각기임을 실감할 수 있으며, 흥행이나 시청률에서 크게 좌우됨을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각기 다른 성향과 역량을 가진 연주자에 따라 연주의 내용 및 특성도 제각기 다른 양상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작품을 해석하는 과정은 연주자가 작품을 직시(直視)하는 관점, 표현의 다양성, 자질, 기술적 완성도, 음악적 기반 등 모든 요건에 의해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모든 면에서 완성된 조건을 갖춘 연주자는 없다. 연주에 있어 그 시기에 가능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예술적 완성은 절대 있을 수 없으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비르투오소적인 연주자 역시 동일한 레퍼토리를 끊임없이 성찰함으로써 연주하고, 기존 출반한 음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해석을 담아 재출반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해석은 연주자의 이성적인 사고와 논리의 영역이며 이론적 바탕이 작용하여 작품성을 파악하고 관조하고 성찰하는 작용으로 간주할 수 있다.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작곡가의 의도를 깊이 있게 파악하는 것이 주요 관건이다. 이는 수평적(선율) 내지 수직적(화성) 고찰,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 구성 및 전개 등 작품성과 관련된 총체적인 해부작업이 이뤄짐으로써 가능한 단계다. 즉, 작곡가가 작곡한 작품을 역(逆)으로 깊이 있게 재조명하는 작업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의 효율 및 효과에 따라 작품성은 제각기 다른 양상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즉, 연주자의 역량이 파악되고 가늠되는 중요한 첫 단계인 것이다. 이에 따라 작품성이 제대로(작곡가의 의도대로) 드러나 완성에 이를 수도 있고, 반대로 작품성을 연주자 임의대로(작곡가의 의도와 상반되게) 재현될 수 있는 중요한 갈림길로 드러남을 있음을 인식해야한다.
여기서 악곡의 ‘부분과 전체’를 어떻게 상호 연계성을 이해하느냐가 주된 관건이다. 즉, ‘나무(부분)를 보고 동시에 숲(전체)을 파악하는’ 지혜가 발휘되어야 한다. 지역과 환경에 따라 서식하는 식물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작곡가마다 제각기 다른 시대, 예술사조 및 환경 영향에 따라 작품성은 큰 차이를 드러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석적으로 뛰어난 역량을 갖춘 연주자라도 그 밖에 다른 요건을 실현하지 못하면 그의 연주는 냉철하고 차가운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즉, 또다른 그 무엇이 갖춰져야 비로소 완성을 지향할 수 있다.

 


2. 영감(靈感)
앞서 언급한 해석은 앞선 악보의 성찰을 통해서, 그리고 연습을 통해 악보를 읽어 나가면서 점차 깊이 있게 이뤄지는 활동이다. 이 과정에서 맹목적 연습 내지 연주는 발전의 가속화를 도모하지 못하고 한계를 드러내기 쉽다. 창의적 연주를 위해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악보의 파악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사례를 많은 학생들의 연습과정을 관찰함으로써 쉽게 엿볼 수 있다. 즉, 훌륭한 선생은 학생의 연주를 통해 효과적인 방안을 점검하고 바르게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연주자 역시 자신의 문제를 항상 직시하는 태도와 발전 지향적 성향을 갖춰 나가도록 끊임없이 연구하여
개선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악보를 성찰함으로써 작품성 및 작의(作意)가 파악되면, 이를 토대로 생명력을 이입(移入)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도록 다음 단계의 정신적 및 예술적 작용이 이뤄져야 비로소 완성을 도모할 수 있다. 즉, 작품을 성찰한 후 연주자는 이를 자유스럽게 상상하고 마음으로 노래함으로써 영감을 얻고, 이를 연습을 통해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고 나아가 무대연주를 통해 청중과 함께 공유 내지 공감할 수 있다.
교육의 단계에 있어 처음에는 선생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모방을 거쳐 또다른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될 수 있지만, 나아가 연주자로서 진정으로 홀로서기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이의 방법 및 향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학생 스스로 자신이 연출하고자 하는 연주 스타일과 내용을 채워 나갈 수 있도록 교육됨이 이상적이고 바람직할 것이다. 앞선 해석 과정을 통해 세부적인 많은 정보(악보에서의 많은 가능성들)를 연주자의 두뇌에 기억하게 된다. 또한 연습을통해 이를 명확하게 확인하는 과정도 거치게 된다. 그리고 난 후 악보와 악기(또는 인성)에서 이탈하여 연주 자체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스럽게 악보를 세부적으로 아울러 연계성을 도모한 성찰을 통해 음악적 상상의 날개를 활짝펼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재해석의 주된 관건인 영감(靈感)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즉, 작곡가가 작품 구상을 위해 상상의 날개를 펼치듯, 이와 반대로 작품성을 기반으로 연주자의 상상력이 이뤄지는 풍부한 상상과 영감이 가(加)해져야 비로소 단순 악곡의 재현이 아닌, 완성을 지향하고 도모할 수 있는 예술적 가치 실현의 차원에 근접할 수 있다.
연주를 제2의 창작이라고 일컫는 것이 바로 이의 작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연주자 성향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어떤 선생의 여러 제자들에게서 음색이나 표현 등 여러 면에서 유사성이 드러남을 어떻게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인가!
즉, 연주에 있어 획일화된 틀에 학생들을 끼워 맞추지 않고 개개인의 취향이나 특성을 고려한 제각기 다른 모습이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실기교육의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바람직할 것이다. 영감은 인간의 모든 지적 정서적 활동 최고의 이상이자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연습 자체를 목표처럼 생각하는 학생이나 선생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진지하고 철저한 연습 자체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정한 연습은 해석과 영감을 통해 정립된 음악적 상을 악기(또는 인성)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연습이 지속적으로 진행됨으로써 또다른 표현, 해석 그리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즉, 고정된 관점이 아니라 항상 열려있는 새로운 가능성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의 한계는 항상 작품성 및 작곡가의 의도에 주안하되 그 한계를 임의대로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즉, 작품의 해석 및 연주에 있어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연주자의 진정한 발전과 가속화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3. 해석과 영감
이는 ‘바늘과 실’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양자 중 어느 한 부분이 결여되거나 공존하지 않으면 쓸모없거나 불완전한 속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때로 잘 하는 듯 보이나 무언가 비어 있는 감을 느끼게 되는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물론 인간의 모든 활동은 완성을 지향하는 과정임을 우리는 이해하고 때로 기다림의 미덕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프로 아티스트를 지향하는 학생이나 연주자는 자신의 발전을 가속화(加速化)하여 진정한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주목될 수 있다.
연주의 내용이 상품(?)가치를 가진 예술적 이상의 목표에 근접하고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 정확한 작품성 및 작곡가의 의도 파악을 토대로 연주자 자신의 예술적 이상과 가치를 실현할 영감이 작용하여야 비로소 완성적인 단계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즉, 해석만을 추구하거나 또는 감각이나 감성 그리고 영감만을 추구하는 편향된 방식으로는 절대 완성을 도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한계에 봉착하게 되고 실망 내지 좌절을 맛보게 되어 결과적으로 연주자의 길을 포기하게 될 우려조차 없지 않다.

해석을 통해 영감을 이입하고 때로 영감을 임의대로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하게 해석적 바탕을 근거로 때로 축소 내지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즉, 양자는 상호 보완 내지 견제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함으로써 정상적인 작품성의 가치와 작곡의도 실현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 상반되는 두 개념이며 활동이지만 진정한 예술적 창의의 실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잣대를 통해 어느 정도 깊이 넓이 가능성 등을 실현할 것인가 하는 목표와 이상을 향해, 연주자는 항상 자신 및 작곡가와 작품을 성찰함으로써 자신의 몫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끊임없는 자성(自省)과 새로운 목표를 지향하는 연주자만이 이 시대에 진정한 연주자이자 아티스트로서 주목되고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다시금 생각했으면 한다. ■

 

음악적 심미안


내적·정신적 그리고 자신의 예술적 성향에 적합하게 표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기화에 주력해야 비로소 자신의 고유한 예술적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게 되며 나아가 음악적 심미안이 형성될 수 있다.


심미안의 사전적(辭典的) 의미는 ‘미(p)를 살펴 찾는 안목’으로 풀이되어 있다. 미적 안목(眼')은 음악가(모든 연주자 및 작곡가)의 폭넓은 관심과 세부적 고찰을 통한 체험에 의해 형성되고 이를 실현 가능하게 된다. 작품의 ‘세부(細部)와 전체의 상관관계를 통찰(洞察)’함으로써 작품특성을 통한 작곡의도를 파악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심미안이 작용할 때 비로소 ‘작품성 파악 및 가능성 실현’ 경지에 다다를 수 있게 되어 완성도 높은 연주가 가능하게 된다. 동일한 작품의 재현(연주)에서 모든 연주자의 특성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심미안’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즉, 동일한 사물을 데생(素描)하더라도 제각기 다른 화가의 성향 및 취향에 따라 현격(懸隔)한 차이가 드러남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연습과정을 통해 메커니즘(테크닉적 문제)의 해결 또는 악보에 드러나 있는 소극적인 표현에 국한(局限)할 것이 아니라, 작품성의 심미적 고찰을 통해 작곡가와 자신의 높은 차원에서의 합일(合一)을 이루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바람직한 연주자의 태도이자 사명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를 폭넓고 깊게 체험함으로써 또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것이 바로 연주자의 길이다.
작품의 분석(해체) 및 조합(통합)을 통한 작곡가의 의도 파악한 점의 미술작품(회화 또는 조각 등)을 자세히 감상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손길이 가(加)해져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술가는 우선 형상(形象)을 스케치(構想)하고 점차 세부적 완성을 지향(指向)함으로써 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게(出品) 된다. 역(逆)으로 이를 감상하는 사람들은 ‘멀리 때로 가까이(遠近)’ 작품의 전체와 세부를 통찰하며 작품성 파악 및 작품의도를 파악하고자 주력하게 된다. 연주자 역시 작품을 통해 ‘세부와 전체를 통찰’함으로써 작곡의도를 정확히 파악 가능하게 된다. 이런 과정들을 끊임없이 반복 시행하고 또다른 가능성 여부를 사고함으로써 심미안을 확대할 수 있다. 즉, 연주자가 선택하여 탐구(探究)하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통해 수많은 변화의 요인 및 가능성을 접할 수 있으며, 이는 연주자의 폭넓은 음악적 체험으로 정립된다. 연주자는 ‘작품과 작곡가의 상관관계’의 고찰(考察)을 통해 가능할 모든 특성을 파악하여 이를 연주를 통해 실현해야 한다. 즉, 작품을 직시(直視)하여 무한한 예술적 표현 가능성의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에서 음악적 심미안은 폭넓게(廣大) 실현될 수 있게 된다.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음악이론(악곡의 분석 및 형식에 대한 이해와 파악)의 선행(…行) 학습이 필연적이며 충분한 뒷받침이 되어야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활동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비단 이론에 해박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지 악곡을 파악하고 재현(연주)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활동으로 그 이상의 예술적 이상(理想)을 실현하는 과정에 이르기 위해서는 미적 고찰과 더불어 자신 성찰이 필연적(必然的)이다. 연주의 특성과 스타일 등, 모든 관건은 심미안의 폭과 넓이 그리고 음악적 경륜에 따라 상이(相異)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비르투오소 연주자들이 동일 작품을 여러 차례에 걸쳐 녹음하여 재출반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심미안의 변화로 작품성의 가치를 새롭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으로 간주(看做)할 수 있다. 즉, 원리를 이해하고 기능특성을 파악함으로써 작품은 또다른 가능성 실현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


성향이 다른 연주자들의 음악적 특성 파악
(적극적 감상을 통한 비교분석)


음악가와 자매예술 활동을 펼치는 예술가(화가, 무용가, 연출가, 연극인, 문학인, 디자이너 등)는 물론 여타 학문, 기업, 비즈니스 등 인간과 연관된 모든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자기 분야 또는 다른 분야에까지 폭넓은 이해와 관심 그리고 나름의 전문가적 안목을 표출함을 대화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즉, 지체(肢體)는 여러 갈래로 세분화 및 전문화되는 것이 이 시대의 일반적 특성이지만,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상당한 부분에서 공통분모 또는 연대(連帶)의 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패션 디자이너들은 다른 디자이너들의 패션쇼를 관람하며 특징과 독창성을 파악하고 아울러 그 시기에 유행할 정보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자신의 감각과 안목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도록 주력한다. 음악도(音樂徒)는 물론 전문 연주자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연주를 깊이 파악하며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생각된다. 물론 다른 연주나 음반을 모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다른 가능성’에 대해 눈을 뜨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인 감상이 필연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극적인 감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심미안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즉, 자신의 안목만큼 연주의 세계를 파악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깊이 있는 음악적 향수(享受)가 가능할 단계와 연주의 속성 및 특성에 대한 파악은 절대 불가분의 관계다. 그러므로 연령이나 경험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연주를 파악할 수 있는 심미안을 형성해 나가도록 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자신과 타인의 작품해석 및 연출의 상이성(相異性) 및 당위성을 인정하고 그 차이가 어느 요인으로 비롯되는지 끊임없이 고찰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과 타인의 예술적 특성의 차이를 실감하게 되며, 나아가 자신의 또다른 변화 가능성에 대해 추구하고 실현할 수 있게 된다. 폭넓게 모든 표현 및 연출의 상이성을 파악하고 체험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지향해야 할 또다른 가능성의 방향을 정립해 나가고, 향후 독자적인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를 창출할 음악적 심미안을 형성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신과 타인의 연출 특성 차이 파악 및 자신의 실현


앞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과 타인의 차이는 직·간접적 체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음악에서 이론(학습)과 실기(레슨)를 통해 기반을 쌓아 나가지만 실제적으로 많은 부분은 다른 연주의 감상을 통해 ‘또다른 가능성’에 대해눈을 뜨게 된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동일한 작품을 제각기 다른 특성을 갖는 연주 스타일을 체험하는 것이 자신의 심미안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연주자에 따라 가능성은 제각기며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또한 선천적, 환경적 내지 교육적 영향과 정도에 따라서도 큰 차이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필연적으로 제각기 다른 특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교육의 폐해(弊害)로 말미암아 마치 선생의 ‘판박이 내지 붕어빵(?)’처럼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례를 흔히 목격하곤 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철저히 자아표출 의지실현이 절대적 관건이다. 즉, 작품성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단계에 이를 수 있도록 연습과정에서 주력하고 남과 다른 자신의 표출의지를 항상 재인식해야 한다.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다른 스타일이나 해석적 특성을 모방하는것도 음악적 표현 역량이 부족한 학생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오래도록 그 상황이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같은 디자인의 의상을 누구나 입어서 멋스럽고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신체적 특징과 개성성향에 어울리도록 소화하고 연출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음악작품이라는 의상(衣裳) 역시 자신에게 적합하도록 자기화를 실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자신과 같은 의상이나 소품을 착용한 타인을 발견하면 싫은 내색을 하기 마련이다. 같은 기성복이라 할지라도 화장(化粧), 헤어디자인 및어떤 소품을 부착하여 연출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여지듯, 연주는 외견상의 그것과는 물론 차이가 있지만, 내적·정신적 그리고 자신의 예술적 성향에 적합하게 표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기화에 주력해야 비로소 자신의 고유한 예술적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게 되며 나아가 음악적 심미안이 형성될 수 있다.


작품을 통한 작곡가·자신의 재발견 및 자기화


모든 유형(스타일, 표현의 디테일, 해석적 특성 등) 연주의 근본은 작품에서 비롯된다. 그만큼 작품을 통해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절대적이다. 모든 가능성은 작품의 특성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한계를 갖는 것도 때로 필연적 이다. 그러나 그 밖의 ‘변화 가능성’은 무수히 존재한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철저하게 작품을 파악함으로써 작곡가의 영역에 대한 존엄성을 갖고 출발해야 한다. 이로써 정확하게 작품의 본질과 특성에 접근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다음 단계인 자기화의 과정이 이뤄지게 된다. 물론 작품성이 뛰어나지 못한 작품을 접할 때도 간혹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편곡(編曲)이나 개작(改作)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흔히 지칭하듯 완성적인 불후의 명곡들에서조차 완성도는 제각기다. 때로 연주자의 테크닉적 또는 표현의 한계가 요인일 수도있다. 이를 완성하고 표현의 가능성의 폭을 넓히려는 끊임없는 추구가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음악을 보는 안목, 즉 심미안의 폭을 넓혀야 정상적인 단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작곡가와 자신의 재발견이 가능하게 되며 나아가 작품성을 자기화하여 분명한 자기표현이 이뤄질 수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단순 맹목적인 연습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작품은 작곡가의 이성과 감성을 담은 그릇과 그 안에 담긴 재료(식품)이다. 이를 어떻게 가공하고 장식함으로써 손님(청중)에게 맛깔스럽고 품위 있게 제공할 수 있을까 고심하고 연구하는 것이 연주자의 몫일 것이다. 요리사의 역량에 따라 맛이 제각기 달라지듯, 작품이라는 재료를 통해 어떤 스타일과 취향의 요리가 만들어지느냐가 결정되기 마련이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켜 나가도록 정진하는 자세로부터 자신 가능성의 한계를 초월하는 세계에 도달할 수 있으며, 비로소 자신을 재발견하고 자기화할 심미안의 세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음악적 상상과 영감


연주계 각 분야의 연주자 및 음악도들이 효과적인 음악적 연출(자기 표현)을 도모할 수 있는 미학적 사고의 보완으로 이완(弛緩)된 최적의 매커니즘 구사, 작품성 및 해석적 특성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구체적 접근방법을 모색할 수 있도록 여러 테마를 중심으로 다루고자한다.


음악적 상상(想像:Imagination)
연주행위는 작품성을 기반으로 연주자 개개인의 고유한 음악적 상념(想念)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음악이론의 학습과 연주기법의 숙달을 바탕으로 미학적 견해가 이입(移入)됨으로써 완성적이다. 각 연주회, 콩쿠르 및 교육일선 활동을 통해본 많은 연주에서 음악적 완성도는 개별적 차이가 크게 드러난다. 한편 자신의 음악적 주장이 확고한 세계적인 수많은 연주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 및 정신 세계를 확립한 면모를 가늠할 수 있었다.
상상의 세계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일반적 연주행위를 고찰할 때 물리적 속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사례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음악적 상상은 연출특성을 보다 풍요롭고 다채롭게 하는 주요 요건이다. 상상이 결여된 연주는 깊은 예술적 감흥(感興)을 주지 못하는데, 끊임없는 자신의 성찰과 작품성을 통한 자유로운 음악적 상상이 한데 어우러질 때 비로소 완성적일 수 있다. 단순히 음의 정확성만을 강요하거나 상상력을 유도하지 못하는 교육은 이런 견지에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초보에서부터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악보를 바탕으로한 강요되지 않은 자유스런 상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작품마다 시대와 양식 특성에 따른 상대적 제한은 둘 필요가 있지만, 작품이 갖는 절대적 가치와 보편적 특성에 더하여 연출자의 고유한 미적 인식이 가해질 때 보다 생명력을 갖게 된다.
작품해석에 있어 자신을 드러냄은 대단히 중요하나 절대적 가치 기준이 없거나 모호한 접근은 치우칠 우려가 크다.
음악적 사고와 예술적 감성이 내재하는 가운데 자유스런 미적 인식과 상상력이 이를 뒷받침함으로써 완성을 도모할 수 있다.
누구나 제한되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다. 자신이 연습 내지 연주할 작품을 연상하면서 자유로운 상상을 시도하는 것은 악기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즉 악기를 연주할 때는 보다 자유로운 상상의 폭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물을 통해 고찰해 보면 필름의 한 컷은 마치 음악의 최소 단위로 간주할 수 있다. 피아노 또는 관현악의 정지된 횡적·종적 구도, 콘트라스트(Contrast)의 대비, 다양한 색감 등 그 자체로서도 완성적이나 음악의 시간적 특성과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경과됨에 따라 음악적 구성과 구도, 긴장과 이완(Tension & Relaxation), 극성(劇性) 등이 연주자의 전반적인 연출의도를 간파할 수 있는 주요 요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요셉 디힐러는 “자신의 음악적 표상에 몸을 맡기고, 그에 필요한 연주 행위(운동)에 전연 무의식적으로 시행할 때 비로소 연주의 최고도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음악적 표상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연주자가 작품을 통해 성찰하는 가운데 음악적 영상을 분명히 함으로써 사려 깊은 예술성 구현이 가능한 바로 그것으로 간주된다.


영감(靈感:Inspiration)
연주되어지는 현상은 크게 물리적 속성과 예술적 정신으로 대별할 수 있다. 모든 기악은 물론 성악에 이르기까지 일반 음향적 특성과 연주자의 심연(深淵)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영적 감흥, 즉 정신이 깃들 때 청중은 최고도의 예술적 환희와 감격을 체험하게 된다. 표현의 측면에서 음악은 여타 예술에 비해 가장 순수하고 높은 예술적 이상과 깊은 감흥을 직접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인간 정신을 최상으로 또한 효과적으로 직감하게 할 수 있는 매체로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은 바로 깊은 몰입(,入)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연주자의 정신 집중을 의미한다. 단순히 소리로써 들려지고 느껴지는 상황에서는 본연(本然)의 음악적 인상을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교감할 수 없다. 마치 연못 한가운데 자그마한 돌멩이가 던져졌을 때, 그 지점을 중심으로 파문(波紋)이 형성되듯, 연주자는 그 자신이 파문의 진원지가 되어야 하며, 그 일렁임은 단순한 음파(音波)가 아니라 청중의 뇌리와 가슴에 전달되어 작용되어질 때 비로소 숭고한 예술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진다.
창작은 물론 연주 역시 인간의 정신적 산물이자 행위이다. 예술적 향수(享受)는 다양한 지식과 체험이 주요 관건이다. 즉 작곡되어 연주되고 이를 감상하는 삼위일체의 긴밀한 연계 및 파악이 이뤄질 때 진정한 가치가 발휘되어진다. 이러한 정신성의 유대관계는 연주자의 음악적 사유와 정신, 악보를 통한 작품성의 통찰, 작품의 동시대적 고유한 사조와 양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나 자유스런 성찰, 무대예술이 갖는 즉흥성 구현 등 음을 구축해 나가면서 구성되어지는 양상이 음 예술의 특성이며 여기에 연주자의 정신 및 예술적 의도가 선행되어 신체가 일체화 될 때 진정한 영감(靈感)을 구현 가능하며 연주자와 청중 모두가 흡족할 만한 예술적 향유가 가능해 질 수 있다.


음악적 상상과 영감의 일체화


음악적 사유(思惟)와 감성이 예술적 행위(연주)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거나 결여된 것은 예술이 갖는 본연의 의미를 퇴화 내지 충족시키지 못할 우려가 있다. 단지 사고영역에 국한하거나, 또는 지나친 감성적 성향의 피력만을 고집하는 것 역시 문제의 소지를 갖는다. 예를 들어 10의 요건을 갖출 때 가장 이상적이며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연출특성을 드러낸다고 가정할 때, 사고와 감성(또는 상상과 영감)의 비율은 3 + 7 = 10, 즉 사고성향 3에 감성지수 7 또는 반대로, 사고 7에 감성 3 등 연주자가 설정한 큰 틀 안에서 음악이 진행되어 감으로써 어느 한 순간도 비율의 변화를 초래하지 않거나 또한 사고와 감성이 별개로 존립하는 인상을 주는 연주는 완성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상상은 감성을 통해, 반대로 감성은 상상을 통해 제어와 상호보완의 기능을 하게 된다. 건축 구조물은 튼튼하나 실내장식이 부실 하거나 반대로 부실한 구조물에 화려한 치장의 어느 것도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정 내지 삭막함을 유발하게 할 것이다.
연주를 통해 연주자의 사고의 깊이와 예술가로서의 정신을 간파할 수 있다. 음악적 상상을 통한 건실한 구도와 풍요로운 영감이 깃들여 질 때 비로소 진정한 예술적 향수가 가능하며 책임을 다하는 연주자의 성실성과 역량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악보를 통한 성실한 작품의 성찰을 토대로 연주자의 예술 이상과 정신 구현 및 감흥과 열정을 더하려는 것이 올바른 연주자의 길로 생각된다. ■

 

음악적 사고와 감성의 이입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남과 다름을 파악함으로써 가능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성장단계 그리고 학습진행 과정의 차이 등 모든 것이 남과 다르다는 인식의 중요성, 절대적 가치와 객관적 인식의 차이가 상호작용함으로써 새로운 자신의 재발견이 이뤄져야 고유한 자아실현이 이뤄질 수 있다.


연주는 작품을 통해 작가정신 및 동시대적 특성의 파악을 토대로 연주자의 미적 사고와 감성이 이입됨으로써 완성적이다. 고사성어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말이 있다. 이는 작품에 작가의 예술 정신과 혼이 이입됨으로써 생동하는 화상(畵像)을 표현하는 옛말이다. 진정한 예술적 재현(연주)은 이처럼 연주자 자신의 미적 인식과 가치가 탁월함을 발휘하는데 기인한다. 비유해서 설명하면, 대본을 통해 또다른 자아를 실현하고 완성해 가는 연기자 또는 연출자를 연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으로 생각된다. 극적 상황은 분명 연기자 자신의 인생 여정은 아니지만 극중 인물의 또 다른 성격적 변신을 도모함으로써 많은 관객들로부터 주목받고 명연기자로 추앙받을 수 있는 것처럼, 연주에 있어서도 단지 소리만의 추구가 아닌 이면에 내재해야 할 그 무엇을 담아 변신을 추구해야 한다.
‘우물안 개구리와 같다’라는 표현을 일상에서 흔히 쓰곤 한다. 즉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가 밑바닥에서 올려다 볼 수 있는 하늘은 극히 제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물을 벗어나면 세상이 엄청나게 넓다는 것을 새로 인식할 수 있게 되듯, 학생이나 연주자 모두에게 있어 연주에서 요구되는 많은 사항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 고려된다면 그 연주는 제한된 면을 발견할 수 있으며 폭넓은 지지 내지 성원을 받을 수 없다. 즉 효과적인 연주를 위해서는 악보를 통해 폭넓은 음악적 성찰이 전제 조건이다. 이를위해서 작품의 세부적 분석, 음악사적 배경, 구성 및 전개 특성 파악, 음악적 긴장과 완화 등의 재배치와 이를 효과적으로 표출 가능할 연주 기술의 습득(신체적으로 이완된-요구되는 적정한 힘이 작용하는)이 이뤄져야 진정한 가치의 실현이 가능하다.
이러한 성찰이 바로 음악적 사고의 근원이다. 아무리 많은 학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통해 작품을 재해석할 안목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이는 단지 기억되고 있는 이론에 불과하다. 연주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론은 효용 가치가 없다. 이론의 이해 및 파악을 통해 연주에 접목을 도모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유능한 연주자 및 교사는 이를 실현해 나가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1. 음악적 사고
그러면 음악적 사고는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많은 연습과 연주를 통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물론 연습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설계도면 없이 시공(施工)을 한다면 그 건축물은 원래 의도한 바를 실현할 수 없음이 분명할 것이다. 음악인이라면 한 번쯤은 빈(Wien) 교외의 숲 속을 산책하는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그림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진지한 음악적 사색을 즐기며 악상을 떠올리곤 하던 그들 습성의 일면을 담은 명화이다. 즉 그들은 사고를 통해 음을 구성하고 전개해 나갔던 것이다. 물론 베토벤이나 브람스는 모차르트와는 달리 작품을 써가면서 수많은 수정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12반음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 고심한 흔적들을 그들의 자필악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이 남긴 인류 문화의 엄청난 유산인 악보를 통해 음악적 의도를 역으로 추적함으로써 재발견하는 것이 연주자
의 사명일 것이다. 물론 당대와 현재의 모든 상황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또한 그들의 작품을 통해 구시대의 수많은 명인(비르투오소)들이 제각기 다른 어조로 작품을 재해석하여 연주하였으며, 그들이 남긴 음반을 통해 현재와 다른 음악적 옛 모습을 접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전의 루빈스타인, 켐프, 박하우스, 제르킨 등과 현재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세대 연주자들의 연주 스타일은 전혀 다른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회상이나 문화적 인식 그리고 개인적 성향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작곡가에 따라 상이(相異)한 음의 조직과 구성을 통해 작품을 펼치며, 화성이 주는 감각적 성향으로 음악적 스케일은 물론 독자적 어법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음악의 구성을 통한 사고와 화성으로 기인하는 감성의 유발 요인으로 대별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양자는 별개의 것이 아니며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상황의 변천을 통해 음악사적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즉 복합적인 사고와 감성 성향의 필연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작품성 및 동시대적 배경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또한 일부 제한적인 면도 배제할 수 없지만, 예술적 창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순 내지 형이하학적인 차원에서 복합적이고 형이상학적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실현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무릇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사고와 감성은 제각기 다를 뿐 아니라 상당히 복잡하고 때로 미묘하기까지 하다. 음악은 그 사람의 생활 그 자체이자 자신을 대변하고 피력하는 하나의 도구이다. 악보를 통해 성찰하고 여러 차례 연습을 통해 두뇌에 입력(기억)된 작품을 다시 불러(떠올려)와 재차 자유스럽게 사고하고 이를 통해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몸으로 느끼는 가운데 진정으로 자기만의 고유한 음악적 재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2. 음악적 사고와 감성의 효과적 이입
음악적 사고와 감성을 작품을 통해 효과적으로 이입하기 위해서는 악보를 통한 작곡가의 심상을 파악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지만 또한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노력이 필연적이다. 무릇 자신을 볼 수 없는(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지 못한) 연주자는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에 역시 고통을 전파하는 진원(?)이 될 수 있다. 연습 자체가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에 무대에 서는데 두려움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일상사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학습되어진 개인적 환경의 모든 것들이 그의 음악적 성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중요한 것은 음악을 비단 음악 그 자체에서만 해결하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생각을 집중함으로써 생동하는 느낌을 전달하는 연주자로서 자신을 변모 내지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비로소 작품을 통한 자신의 재발견이 이뤄진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남과 다름을 파악함으로써 가능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성장단계 그리고 학습진행 과정의 차이 등 모든 것이 남과 다르다는 인식의 중요성, 절대적 가치와 객관적 인식의 차이가 상호작용함으로써 새로운 자신의 재발견이 이뤄져야 고유한 자아실현이 이뤄질 수 있다.
많은 연주자들이 동일한 레퍼토리를 수년 내지 수십 년 후에 재차 레코딩하여 발매하곤 한다. 물론 그때마다 연주 내용이나 스타일에는 현격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동일한 작품을 대하는 연주자 자신의 사고와 감성의 변화 때문에 나타나게된 결과이다. 악보 자체에는 어느 한 음도 변화가 없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연주자 자신은 변화되기 때문이다. 일련의 시간의 연속과정에서 끊임없는 사고와 감성을 유발하게 하는 일상적 삶이 그의 예술적 행위에 작용하고 또 다른 변화를 도모하게 하는 요인으로 연주자의 사고의 범위와 감각의 폭을 넓게 하며, 이로써 그의 심연으로부터 보다 풍요롭고 사색적인 작품의 재해석이 가능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음악적 사고와 감성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것이며, 또한 스승을 포함하는 어떠한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영향은 받되 굴레를 벗어나 자유스러워져야 진정한 의미의 자아실현 단계에 이를 수 있다. 자신이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서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예술적(음악적) 자아성찰(自我省察)을 통한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적 사고와 감성을 계발하고 이를 통해 복합적 사고성향을 이루려는 자의식(自意識)에서 비롯된다. ■

 

음악적 음가의 조형


음악은 음과 음과의 관계에서 미적 가치를 실현하게 된다. 짧은 소절에서 구절, 작품 전체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작품성이 요구하는 성격적인 음가(音價)의 실현이 필연적이다. 역으로 준비되지 않은 음과 준비된 음과의 구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또다른 자질을 갖춰야 진정한 예술적 자아 표출이 가능하다.


1. 음악적 가치를 갖는 음
음악적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수많은 음들 나름대로 체계, 질서 및 형태를 갖추며 표출되는 것이 음악 연주의 일반적 특성이다. 연주자에 따라 제각기 다른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 필연적이며 다른 무엇을 찾는 것이야말로 진지한 연주자의 사명이다. 즉 책임감 있는 연주자로서 의식이 분명할 때 청중은 무언가 색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진정한 음악적 가치를 갖는 음들을 통해 작품 및 음악적 자아(自我)의 또다른 표현 가능성의 기회를 갖는 것이 바로 연주다. 연주되고 있는 작품을 통해 작곡가는 물론 연주자의 음악적 인식 및 자질 여부를 가늠하게 하는 것이 연주회다. 진정한 음악적 가치를 갖는 음을 창출하기 위해서 연주자는 음의 일반적 특성과 가능성의 파악이 전제 조건이다. 음은 물리적 속성을 갖지만 그 단순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 예술적 향취와 정감을 드러낼 수 없다. 음은 음악 속에서 상관관계와 의미가 내재할 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 음과 음과의 관계에서 작품성이 지향하고 작곡가의 의도하는 바가 추구되어질 때 그 연주의 뛰어난 면모를 가늠할 수 있다. 연주회를 준비하기 위해 올바른 미학적 가치를 갖고 음악적 완성을 위한 오랜 시간의 연습과 이를 통한 음악적 자아의 성찰을 시도하는 것이 진정한 연습의 의미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매순간마다의 연습의 목표가 필연적이다. 음이 갖는 질서와 조화의 의미를 분명히 인식하는과정이 바로 정확한 의미로서 연습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음악적 가치를 갖는 음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분명 연주되고 있는 음악적 자아표출의 면밀한 검토와 인식의 분명함이 요구되는데, 정신과 육체가 하나되어 일상과는 별도의 음악적 상황을 전개하고 표출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때로 서술적이나 한편 극적으로의 전환 등 매순간마다 ‘변화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게 유도(誘導)하여 청중의 관심과 호기심을 유발하고 집중시키게 하는 자질이 바로 완성적인 연주자의 표상일 것이다. 음악은 음과 음과의 관계에서 미적 가치를 실현하게 된다. 짧은 소절에서 구절, 작품 전체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작품성이 요구하는 성격적인 음가(音價)의 실현이 필연적이다. 역으로 준비되지 않은 음과 준비된 음과의 구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또다른 자질을 갖춰야 진정한 예술적 자아 표출이 가능하다. 끊임없는 작품에 대한 성찰과 이를 준비하기 위한 자신의 음악적 요구에 대한 변신의 가능성을 꾸준히 준비하고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음악적 가치, 나아가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는 의미는 그 연주자의 사려성과 깊은 관계를 갖는다. 한편 음악적 사고의 깊이는 괄목할 만하나, 이를 실현하는 기술적 한계가 느껴져서는 완성을 도모할 수 없다. 그러나 음악적 깊은 성찰을통해 준비가 되면 신체적(테크닉적) 자유스러움을 도모할 수 있다. 이는 연주자 자신이나 교육을 통해 얼마나 음악적 가치를 갖는 음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는 중요한 관건이다.
영화 「타이타닉」이 시사하는 한 면은 거대한 유람선이라도 빙산(氷山)의 돌출된 부분만을 우습게 여기거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면 침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따사로운 햇살도 볼록렌즈를 통해 초점이 모아지면 종이를 태울 수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학습했던 사례를 다시금 인식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음악적 가치를 갖는 음은 돌출된 빙산의 이면(裏面)이나 초점으로 모아지기 전에 수많은 가시광선이 있다는 의미의 중요성이다. 이처럼 연주할 음의 음악적 가치를 주기 위해서는 바탕의 중요성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연주자가 준비한 만큼의 가치를 갖는 것이 음의 속성과 절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음의 조형
비록 개개의 음들이 철저한 사전 준비를 통해 음악적 가치를 획득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체계적으로, 한편 건축적으로 재정립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예술성의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
이는 건물의 골조와 연관하여 의미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부분은 전체 속에서 상관관계가 정립되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 다시말해 음악은 부분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뤄나간다는 말이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예컨대 회화나 조각 또는 건축물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이끌어 내는 완성도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임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음악적 구도의 횡·종적 요건을 두루 만족시킬 정도의 입체적인 음의 조형이 필연적인 관건이다. 교육을 잘 받은 음악도나 뛰어난 연주자에게서 우리는 이런 면을 분명히 찾을 수 있다.
음악은 거듭되는 사고와 인식 내지 인지의 과정을 통해 성숙되고 완성되어진다. 이런 견지에서 목표 없는 연습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며, 한편 목표가 분명해 질수록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며 무엇이 결여되었는지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음의 조형도 자신의 성찰에서 비롯된다. 이는 자신이 작품을 통해 작품성을 분석하고 작가정신을 파악함으로 연주자 자신이 비로소 작품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음의 조형 역시 단면적 내지 단편적이어서는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 사람의 귀는 좀더 고급화하려는 성향을 갖는다. 더욱 세련되고 완성적인 연주를 체험하고 그런 성향에 관심을 기울이는 청중은 연주자 자신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연주에 식상하기 마련이다. 다각적 고찰이 이런 관점에서 필연적이다. 음들을 조형해 나가는 과정 역시 보다 다각적이고 복합적 성향을 드러낼 때 청중은 예술적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 무언가 줄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연주는 음악적 가치를 갖는 음들이 또 다른 질서와 체계를 드러낼 때 깊은 음악에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한편으로 음악적 시간의 여정(旅程)을 성공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연주자(연출자)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갈 수 있게 된다.
서구의 오랜 역사성을 갖는 건축물을 보면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상당히 완성적인 면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그러한 건축물을 보기 위해 많은 시간과 금전적 출혈 그리고 노력을 마다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체험하기 위해 여행을 주저하지 않는다.
음악적 음가의 획득 및 음의 조형은 이런 견지에서 연관성을 갖는다. 자신이 연주하고 있는 음악이 과연 청중이 함께 함으로써 충족시키고 깊은 예술적 체험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지 수시로 자문하는 연주자가 진정으로 양심적이고 책임을 다하는 음악인으로 사료된다. “로마는 하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

 

연주에서의 즉흥성 및 극성


한 편의 음악 작품을 통해 전체에서의 클라이맥스는 물론 각 프레이즈에서 절정 역시 항상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개개의 차이와 변화의 속성을 보다 강화하되 넘쳐나는 생명력과 강한 극성의 제고는 진정한 연출자 모두가 절대적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관건이다.


음악에 있어 연주행위는 일차적으로 연주자 자신이 예술적 향유자이며, 이차적으로 이를 수용하고 향유할 대상인 청중이 필연적이다. 이는 드라마,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일반적 자매예술과도 동일한 속성을 갖는다. 이를 제작하고 무대에 올림에 있어 청중이나 관객을 대상으로 보다 심도 있고 예술성 높은 양질의 완성도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음반이나 비디오와는 달리 무대 연주는 속성상 일회적 양상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어느 연주자도 동일한 레퍼토리의 연주일지라도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완벽한 재현은 불가능한 것이다. 이는 연주회장의 모든 조건 및 연주자의 개별적 상황이 필연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연주 내용의 근본 방향설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재현과정(연주)은 필시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무대 연주에 접목을 시도하려는 의도를 갖는 것도 현명한 방안일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두 가지 요건은 바로 즉흥성 및 극성이다.


1. 즉흥성(卽興性)
무릇 인간의 특성은 단순 반복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습성을 갖고 있다. 이는 연습과정이나 연주에 있어서도 동일한 양상을 드러낸다. 또한 시간적·공간적 특성의 영향도 이에 작용한다. 그만큼 변화하기를 좋아하고 필연적으로 변화를 시도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면에서 기록성을 갖는 음반이나 비디오와는 차이가 있다. 연주자의 그때마다의 상황은 동일하지 않다. 그에 따른 심리적 요건도 다르게 작용한다. 작품 자체는 변화 없이 동일하지만, 이를 연출하는 연주자의 제반 상황 및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준비했던 음악적 해석을 실제 연주에서 절대적으로 동일 시하고자 한다면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즉 시시각각으로 다가올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 가능함을 준비하는 것도 유능한 연주자의 몫이며 한편 또다른 음악적 변신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음악사상 많은 작곡가들은 그들 자신이 뛰어난 연주자였다. 그들 즉흥연주에도 훌륭한 자질을 보였던 사실 문헌적 기록을 통해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비단 즉흥연주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에 항상 새로운 해석적 변화를 시도 가능한 것은 즉흥성과 끊임없는 작품성에 대한 통찰로 가능한 것이다. 악보 자체는 변화되지 않지만 이를 재현하는 연주자는 항시 변화되고 있다. 그만큼 음악적 사고나 감성 등 체험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즉흥성을 오해하고 남발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도 내재한다. 미미한 탄력적 변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지 기준 없이 흔들림을 초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음악적 사고가 자연스럽고 경직되지 않으며 제한됨 없을 때 비로소 신체적으로 자유스러움 체험 가능하다. 작품성에 깊이 몰입하되 경직되지 않는 진정한 사고의 자유 실현 가능할 때 즉흥정신 실현 가능하다. 많은 부분에서 시간과 에너지의 소모적인 연습이 필요 없는 진정하고 본질적인 음악과의 만남에서 자유스럽고 즉흥적인 음악적 기운을 드러낼 수 있다. 즉 필요한 최소한의 테크닉적 연습이 요구되나 많은 부분에서 음악적 성찰을 통해 제한됨 없이 자신을 표출 가능하다. 때로 악기를 통한 즉흥연주를 시도하고 그럼으로써 진정한 자유스러움을 체험해 보는 것은 연주의 또다른 상황을 접하는 중요한 시도가 될 수 있다.
즉흥성은 해석적 접근의 또다른 가능성을 시도하는 한 방안이기도 하다. 자신의 음악적 표현에서 절대적이고 완전히 충족할 가치를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예술적으로 100%의 완전을 추구한다는 것은 인간 속성의 제한 때문에 실현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완전을 지향하는 것이 진정 예술가의 길이다. 학습(연습을 포함하는)되어진 악보를 통해 진정으로 자유스런 음악적 표상을 정립한 후에 즉흥정신으로 자신을 표출할 때 즉흥성은 발휘되는 것이다. “손과 손가락 등 테크닉적 관건을 생각한다든지 의식해서는 그의 음악적 개성을 전개하는 데 도리어 방해가 될 수 있다.(요젭 디힐러)”


2. 극성(極性)
인간의 삶은 그야말로 변화 무쌍하다. 희로애락이 점철되는 것이 삶 바로 그 자체인 것이다. 소설이나 희곡의 문단 구성을 보더라도 기승전결로 이뤄짐을 알 수 있다.
음악에서도 이는 상당한 부분에서 동일한 양상을 드러낸다. 연극과 음악이 조화를 이룬 오페라는 또다른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나가듯, 오페라 이외의 모든 음악에서도 극적인 상황의 전개 내지 극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물론 각 작품마다 음악사적 배경과 성향에 따른 차이는 분명히 있을 수 있지만, 그냥 서술하듯 일관하는 것은 음악적 내용을 진지하게 파악하지 못함에 근거한다.
음악적 연출은 때로 극성(Dramatic)을 표출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이는 상반된 대조(콘트라스트)성향을 폭넓게 드러냄에 근거한다. 대체적으로 미세하게 변화되나 한편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작곡가와 작품 내지 연출자의 성향에 크게 좌우된다. T.V 드라마나 연극 또는 오페라에서 보듯 시청자나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극적 변화를 통해 성공 여부가 좌우된다.
연주자는 음악을 통해 또 다른 체험의 폭넓음을 실현함으로써 청중에게 깊은 감명을 드러내게 된다. 흔히 말하는 단순 쇼(Show)적 부풀림이 아닌, 절대적으로 작품성의 실현 과정에서 실감할 수 있는 진지한 재해석 가운데 극화하는것이 극성을 살린 연출로 간주될 수 있다. 작품의 극적 전개는 작품성 및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큰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관건이다. 음악가(예술가)일지라도 인간적 속성을 갖는 작곡가나 연주자 모두 근본적으로 동일한 일상적 삶을 영위하기 마련이다. 단지 그들의 예술적 행위를 통해 남다른 역할을 실행할 뿐이다.
보편적 삶의 특성인 시시 각각의 변화 속에서 한층 폭넓은 적극적 변화의 의지와 이의 시도를 통해 청중에게 깊은 감동 및 체험의 폭을 넓게 가져갈 수 있다. 진함과 연함, 깊음과 얕음, 중량감과 경량감 등 표현의 차이를 실현하는것은 전적으로 연주자가 작품을 어떻게 파악하고 이를 보다 설득력있는 언어로 전달하는가 하는 주요 관건이다. 웅변을 예로 들어보더라도, 원고를 단지 읽는 듯한 연사와 구구 절절이 자신의 생각과 감동이 실린 연사의 그것은 절대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연기력이 풍부한 탤런트나 영화배우, 오페라 가수 및 성악가 등 쉽사리 우리 주변에서 극적 상황의 상이한 가능성을 체험 가능하다. 단순 외적인 크고 작음이 아닌, 깊이와 무게를 수반하는 극적 상황의 전개가 바로 진정으로 극성을 제고하는 연출로 파악되고 간주될 수 있다.
동일한 음악작품도 어느 수준의 연주자가 연주하는가에 따라 제각기 다른 예술적 감흥을 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익히 체험한 바다. 작품성이 갖는 각 부분의 진정한 가치와 차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에 따라 다른 등급과 점수를 메기는 것이 콩쿠르나 실기시험이기도 하지만, 한 편의 음악작품을 통해 전체에서의 클라이맥스는 물론 각 프레이즈에서 절정 역시 항상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개개의 차이와 변화의 속성을 보다 강화하되 넘쳐나는 생명력과 강한 극성의 제고는 진정한 연출자 모두가 절대적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관건이다. ■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음악적 준비


연주자는 작품을 통해 효과적으로 작곡가와 자신의 예술적 의도를 담아낼 방안을 항상 연구하는 제2의 습성을 갖추어야 진정으로 발전적인 연주가 상을 정립할 수 있다. 이로써 효과적인 음악적 준비가 가능해 진다. 효과적인 준비는 단지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에서 완성을 도모할 수 있다.


일상사 모든 것에서 어떻게 계획하고 준비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다. 인생, 여정(旅程), 취업, 결혼, 입시…음악에 있어 준비의 중요성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준비는 즉 바탕을 말한다. 필자가 말하는 바탕은 사고와 감각, 물리적, 역학적, 신체적, 심리적 및 심미적 요건들을 포함하는 모든 것을 지칭한다. 바탕이 확립되기 위해서는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음악적 준비’가 가능해야 한다. 여기서 작품성을 통한 자신의 객관적 통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나아가 다각적이고 예술적인 자아표출이 가능한 상태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성적인 음악가 대열에 우뚝 설수 있다.


효과적인 음악적 준비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경제원칙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기악 및 성악, 어떤 연주 형태를 막론하고 필요로 하는 적정한 힘과 에너지 그리고 신체적 뒷받침이면 충분한 것이다. 즉 불필요한 힘이 가해지지 않아야 하지만 신체 모든 부분에서 감지되고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효과적인 준비는 단지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에서 완성을 도모할 수 있다. 기술적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례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기술적 관건을 해결하지 못하고는 올바른 연주를 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때로 음악적 이해와 분석 등 악곡 파악이 선결되지 않아 더욱 기술적으로 어렵게 느끼거나 한계에 봉착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기술적인 문제는 개개인마다 제각기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 역시 개인적 특성을 고려하여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연주할 악곡을 통한 음악적 상(像)의 정립이 우선하여야 할 것이다. 작품을 얼마나 빠른 시간에 효과적으로 파악하느냐 하는 것이 완성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의 방안이다. 효과적이지 못한 일련의 작업은 자신은 물론 주변 및 이웃에까지 소음의 피해를 줄 수 있다. 물론 과정 없이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없지만, 각자에게 적합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식과 안목 없이 진행되는 연습은 단지 소모적인 시간으로 기대하는 이상의 결과를 초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곡가는 악보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의도(메시지)를 연주자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이를 올바르게 파악하여 재현함으로써 작품성이 갖는 최대한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연주자의 사명이다. 그렇다면 연주자는 작품을 통해 효과적으로 작곡가와 자신의 예술적 의도를 담아낼 방안을 항상 연구하는
제2의 습성을 갖추어야 진정으로 발전적인 연주가상을 정립할 수 있다. 이로써 효과적인 음악적 준비가 가능해 진다.


바람직한 음악적 준비


효과적이지 못한 것은 한편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 있어 반드시 효율성만을 강조 하는 것 역시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즉 자신의 머리와 능력만 믿고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책임 있는 연주자라고 말할 수 없다. 올바른 연주가 상(像)의 정립 및 음악적 준비는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추구하려는 자세를 확립할 때 가능하다. 세상 모든 것은 변화의 속성을 갖는다. 이는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해야 할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연주자의 심상(心狀)은 시시각각으로 변화되기 마련이다. 음악적 이해 및 파악의 정도가 날이 갈수록 깊고 넓어져야 하듯, 자신의 내·외적 변화를 음악적 연출에 적극 반영하려는 부단한 시도가 연주자가 실행해야 할 주요 관건이다.
성경 한 구절을 처음 읽을 때, 또한 회를 거듭하여 읽었을 때 느껴지는 새로움의 깊이에 차이가 있음을 경험해 본 사람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문학사상 고전이나 예술성 있는 영화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거나 감상하였을 때 새록새록 깊이 있게 다가서는 것을 느꼈을 수도 있다. 더욱 우리에게 밀접한 체험 사례는 한 곡의 음반을 수 차례 또는 수십 번 되풀이해서 들었을 때 새로운 면면이 발견되는 것을 진지한 음악인이라면 익히 경험했을 것이다. 이는 완성도의 차이가 주요 관건인데, 훌륭한 연주일수록 새롭게 느껴지고 파악되는 깊이와 정도에 차이가 있다. 역으로 자신의 연주에 바람직한 음악적 준비를 실행함으로써 이를 향유할 청중에게 예술적 깊이 및 감흥의 구체화를 실현 가능함을 의미한다. 앞서 말한 효율적인 음악적 준비가 ‘방법적인 것’이라면, 바람직한 준비는 ‘연주자의 자세’ 또는 ‘마음가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양자는 분리될 수 없으며 음악적 자아를 형성해 감에 있어 항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양대 국면이다.
‘음악적 준비’를 언급하면서 ‘효율성’ 내지 ‘바람직함’을 운운하는 것은 그만큼 준비의 의미가 음악인에게 있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성의 가치와 품격을 격상 내지 고양시키거나 역으로 격하 내지 실추시키는 중요 요인이다. 선천적 자질도 중요하지만, 후천적 노력에 의한 자질향상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연주자는 자신이 보고 파악된 이상의 연주가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흔히 예술가의 길을 지향하는 음악인 및 음악도에게 예도(藝道)를 닦는다고 말한다. 그만큼 자기 수련의 과정이 도에 이르는 과정과 유사함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을 드러냄이 중요하지만 또한 자신을 비우는 것 역시 못지 않게 중요하다. 진정한 음악적 준비는 마치 작품을 통한 자아의 재정립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정신과 연주자 인식이 교차하는 고도의 경지에 다다르려는 숭고한 작업이자 소산이다. 자아 및 개성 표출이 중요하나 자신의 주장만을 피력하려 고집해서는 안 되며, 작품이 의도하는 바 구체적 실현 여부가 중요한 관건이다. 베토벤은 “인간은 음악을 통해서만이 신과 가까워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 형이하학적 관건들만 해결하려고 하는 우를 범할 것이 아니라, 작품이 갖는 진정한 의미, 가치, 본질을 찾아 구체화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바람직한 음악적 준비를 가능하게 한다.
음악인들은 부단히 연습하고 연주하며 교육하는 일상적 삶을 영위해 나간다. 이 모든 과정은 외견상 각각 다른 영역으로 간주되어질 수 있으나, 자신들의 음악적 체험의 폭을 넓히는 일련의 과정으로 보아야 바람직할 것이다.
“I think, therefore I am”(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한 데카르트의 말처럼, 진정한 음악적 준비야말로 음악인으로써 자신의 위상과 가치, 존재의 의미를 명확히 실현하는 방안임을 강조하고 싶다. ■

 

음악적 세부와 전체의 독자성 및 연계성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특정 부분에 한정된 미시적 안목으로 전체를 통찰하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화가가 화폭(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 전체적 구도와 연관하여 세부적으로 그려나가듯, 음악에 있어서도 부분과 전체는 항상 독자성을 갖되 상호 연관성을 고려해야 타당할 것이다.


1. 음악적 세부(細部)의 독자성
로마 가톨릭 성당의 전면 및 벽면을 장식하는 스테인드 글라스(색유리)의 전체를 보고 세부적으로 각각의 조각(편린;片鱗)을 보는 것은 전체적 분위기로 인한 경건 내지 경외스러움과 작가의 섬세한 표현 의지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갤러리를 찾은 많은 인파들 가운데 유독 한 작품에 주목하여 멀리서 또는 근접하여 전후로 오가며 작품을 통찰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화가나 조각가 등 미술관련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예외 없이 전체적인 구도와 윤곽을 설정한 다음에 세부적으로 정밀 묘사하는 작업을 행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음악적 세부의 독자성’은 하나하나의 음의 조각들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되 상대적으로 연관성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다. ‘음의 미적 가치’는 음과 음의 상호 관계에서 형성된다. 이는 횡적 내지 종적 요건 모두에 관련된 것으로, 횡적인 것은 선율성을, 그리고 종적인 것은 화성적 특성을 의미한다. 이는 비단 피아노뿐만 아니라 성악이나 여타 기악 솔로 작품 연주에서 필히 수반되는 반주(피아노 또는 오케스트라)와의 관계를 포함하는 모든 것을 지칭한다. 악곡이 갖는 특성을 최고도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음악적 세부의 성격(캐릭터)을 얼마나 구체화하느냐 하는 것이 주요 관건 중 하나다. 회화와 음악 연주는 매체 성격적 측면에서 상이함을 드러내지만, 한편 유사한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회화는 점점 정밀한 창작적 행위가 누적됨으로써 완성을 도모하지만, 음악은 준비과정(연습)과 연주라는 다른 국면을 갖는다. 공간적 및 시간적 속성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상이함을 부인할 수 없으나, 화가의 붓이 한 획씩 가해져 점차 완성적이듯, 연주 역시 무대에 올려지기까지 부단한 작품성의 성찰을 토대로 연주자의 해석적 의지가 점차 명확하여 짐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세부적인 면을 무시하고 전체적 완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즉 앞서 소개한 바 있는 바람직한 음악적 세부의 완벽을 기하려는 준비(Preparation)가 선행되어야 비로소 듣는 청중으로 하여금 예술적 감흥을 느끼게 하며 공연장 전체가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음악적 세부의 독자성을 주도면밀하게 연출하려는 의지는 연주자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이다. 개별적 성격 매김을 얼마나 작품성에 합당하면서도 개성적 성향을 드러내는지 파악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TV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하는 현장을 찍어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간혹 볼 수 있다. 불과 몇 초의 컷을 위해 때로 십여 차례 이상 재 촬영하는, 즉 NG(No Good) 장면을 통해 그 자체가 시청자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하게 하지만, 한편 연출자나 감독의 작품 완성도를 도모하기 위한 섬세함 및 극적 분위기와 성격을 확실하게 가져가려는 철저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는 선생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미구에 확실한 음악적 자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귀(鬼)가 진정한 자신의 스승이 되어야 불필요한 연습으로 인한 소음 내지 피곤을 면하는 최선의 방안이다. 음악의 작은 한 부분을 소홀히 하는 연주자는 진정으로 뛰어난 음악가가 될 수 없다. 음악적 세부는 이런 관점에서 독자성을 드러내야 한다.


2. 음악적 세부와 전체의 상호 연계성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예전의 아날로그 시계의 수많은 상이한 부품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이미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함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태엽을 감아줌으로써 그 힘은 각각의 톱니바퀴에 전달되어 최종적으로 초침을 움직이게 한다. 물론 이 사실은 음악에서의 연주와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갖는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시사하는 바 크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호 연계성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짧은 프레이즈와 작품 전체의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이는 하나의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악곡형식에 따라 악상의 전개나 반전 등 상황이 제각기 다른 양상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는 하나의 전체로 간주되고 파악되어야 한다.
조화 내지 대조의 묘미도 구성미를 제고하는 차원에서 시도되는 것으로 이것이 전혀 별개의 것은 아니다.
우리 삶의 일상과 관련하여 생각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하루가 시작되어 잠자리에 들기까지 그야말로 변화 무쌍한 다양한 상황이 전개되지만 이 모든 것은 개인적 일상으로 일기에 기록되거나 또는 소설로 재구성되어 출판되거나 각색되어 드라마 내지 영화화가 시도되기도 한다. 일상의 삶이나 음악작품에서 요구되는 다양성은 일맥상통한 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작품은 작곡가가 별다른 의미 없는 상황을 나열하지는 않는다.
각각의 세부는 무언가 내용과 의도가 내재하기 마련이다. 즉 일상의 삶의 과정에서 그다지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삭제하고 역점을 두고자 하는 사항(주제)들에 대한 일련의 사실을 다뤄나가듯, 음악에 있어 각 부분들이 동일성 내지 확연한 상이성을 드러내더라도 이는 전체적으로 큰 음악의 틀 속에서 이해되고 파악되어야 바람직한 작품성의 재현이 가능하다.
다른 비유로 예를 든다면, 여정(旅程)과도 관련이 깊다. 비교적 평탄한 서울을 출발하여 다소 굴곡이 있는 경기도를 경유하여 강원도 한계령, 미시령, 대관령 등 절정을 거쳐 양양, 속초, 강릉에 이르는 과정처럼 점차 굴곡이 확실해지며 변화무쌍한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훌륭한 연주자는 이 과정에서 마치 유능한 운전자(연주자)처럼 동승자(청중)를 편안하고 안정적인 여정 가운데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즐기고 사색하게 할 수 있는 음악가 부류다. 대부분의 음악형식이나 구조도 이와 동일 내지 유사성을 갖는다. 시간적 흐름 속에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 음악이다. 글머리에 예로 제시했던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한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며, 화가가 작품을 그려나갈 때처럼 관객도 전체를 보면서도 이곳 저곳 시선을 주목해 가며 때로 거리를 가까이 또는 멀리하면서 세부와 전체를 번갈아 가며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음악에서 역시 줄기와 가지를 구분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이며 일체화를 시도하려는 의지가 정착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줄기를 떠난 가지는 이미 생명력을 잃고 만다. 곧바로 시들고 말라 비틀어져 주위의 싱싱한 잎사귀, 줄기와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전체 속의 부분’ ‘부분을 통한 전체’의 향방을 상호 연계하여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연주와 호흡의 긴밀한 연관


연주는 분명 복잡하고 난해한 행위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악보를 통해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성찰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표상을 정립한다. 그 후 음향을 상상하며 자연스럽게 호흡하고 그림을 그려 나가듯 풀어나가면 보다 쉽고 최적의 연주 상태를 체험 가능할 수 있다.


호흡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각종 구기(球技)및 예술적 활동에서 호흡과의 연관성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필연적이다.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체험하듯,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와 역으로 불편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호흡의 상태는 크게 달라진다. 자신이 인식하던 인식하지 못하던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호흡을 한다. 신선한 공기는 우리 신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공해로 찌든 도심을 벗어나 맑고 푸른 청정지역에서 깊은숨을 들이쉬며 생존(生存) 자체를 감사하게 느껴본 경험이 누구나 있었을 것이다. 일상적 호흡과 예술적 활동을 위한 호흡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인식 내지 인지하지 않은 상태이며, 후자는 반대로 호흡의 조정(調整;Control)을 필요로 한다.


1. 연주에서 호흡의 작용
(프레이징과 그룹핑, 에너지의 뒷받침)

성악은 물론 악기연주와 지휘 등 모든 음악적 활동에서 호흡 조정은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음악의 세부적 성격 및 특성의 차이와 힘의 뒷받침에서 호흡의 깊이와 빠르고 느림의 상태가 달라진다. 느리고 빠른 프레이즈(악절; 樂節)에서 어떻게 호흡하고, 나아가 어떤 호흡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악곡 진행의 안정성 및 성격적 확실성을 유지하게 된다. 시종 변화무쌍한 음악의 특성처럼 그에 상응할 호흡의 조절이 필연적이다. 경험이 많은 음악가들은 호흡의 조절이 또다른 천성처럼 습관화되었지만, 초보자나 완성적이지 못한 연주자들에게서는 불안정 내지 부적절한 호흡의 상태를 파악하게 된다. 호흡의 유지는 물론 악상의 특성에 따라 어떻게 심리적 및 신체적으로 유지하고 받쳐주느냐에 따라 악상의 세부적 뉘앙스의 차이뿐만 아니라 프레이즈 구성 및 다이내믹 등 해석적 특성 매김에 현격한 영향을주게 된다. “연주는 바로 호흡이다!”

 

2. 악상에 따른 심리상태와 호흡의 조정
사람의 심리상태와 감정은 시시때때로 변화한다. 악곡에서 요구하는 악상의 변화는 단지 강약이 아닌 보다 폭넓은 인간의 지적 정서적 나아가 심리적 요인의 작용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즉 악곡의 세부에서 어떤 음악적 성격 매김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악보를 성찰하면서 전후 상황을 통해 특성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바로 연습이다. 연습은 비단 악기와 더불어서만이 아니라 진정한 연습은 악기에서 떠나 있을 때 자유스럽고 제한 받지 않는다. 드라마, 연극, 영화 등 극적(劇的) 특성을 갖는 공연과 연주는 공통성과 유사성을 갖는다. 연주의 특성이 단순 물리적 음량의 차이만을 드러낸다면 분명 문제다. 인간이 살아 숨쉬고 시시때때로 감정이 변화하듯, 음악적 특성 역시 계속적으로 호흡이 조정되면서 악상에 따른 심리적 정서적 상태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바로 연주의 속성이다. 작품성을 바탕으로 어떠한 감정과 사고를 펼쳐낼 것인가 의지함에 따라 호흡의 조정은 다르게 작용한다.


3. 올바르고 안정적 호흡으로 무대공연의 안전성 유지
모든 예술적 활동은 함께 교감할 대상이 필요하다. 우선 연주자 자신이 최고의 청중이 되어야 하며, 나아가 이를 통해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눌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연주회다. 그러나 무대는 때로 많은 연주자들에게 심리적 긴장으로 인해 근육이 경직되어 연주의 실패 내지 불안정을 초래하기도 한다. 긴장된 상황에서는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때로 긴장을 이완하기 위해 심호흡으로 자신을 가다듬기도 하는 것이다. 자신의 평정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호흡이다. 단전호흡·기공체조 모두 호흡 조정과 관련된 수련인 것처럼, 올바르고 안정적 호흡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연주 나아가 무대공연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불안정한 호흡을 가다듬고 이로써 정신적 안정을 취한 다음에 자신이 연주할 악곡의 특성 및 성향에 따른 호흡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연습을 거듭함으로써 정신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으며, 작품을 자신의 의도대로 펼칠 수 있다.


4. 연주와 호흡의 긴밀한 연관
앞서 필자는 “연주는 바로 호흡이다!”라고 전제하였다. 호흡은 바로 심리적 상황과 직결되기 때문에 작품을 어떻게 파악하고 이해하며 이를 통한 자신(정신 및 신체)과의 일체화를 효과적이고 완성적으로 도모하느냐에 따라 연주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호흡조절은 정신적 안정은 물론 연주활동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연주에 있어 올바른 호흡의 여러 가능성을 인식하고 인지하는 수많은 경험이 요구된다. 이는 자신의 음악적 준비는 물론 교육을 진행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건이다. 예컨대 가볍고 깊게 들이마시는 숨, 가볍고 빠르고 짧게 들이마시는 숨, 느리고 깊게 들이마시는 숨, 짧고 빠르며 깊게 들이마시는 숨 등 여러 호흡의 상태를 연습을 통해 실행하는 것이 전술한 견지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넓게는 작품에 따라 좁게는 음악적 세부에 따라 또한 호흡 횟수 빈도, 짧거나긴 호흡의 유지, 복식호흡(여성은 일상생활에서 흉식호흡을 하지만 연주에서는 반드시 복식호흡을 체득해야 함), 호흡하면서 신체 전체에 활력(생기)을 준다는 상상 등 호흡 연습은 필수불가결의 요건이다.
모든 예술적 활동은 인간의 정신 활동이 탄생시키는 숭고한 산물이자 결과다. 인간만이 끊임없는 자아성찰을 통해 진정으로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 특히 예술인들 가운데 진지한 음악가는 다각적으로 자신의 한계 내지 결여됨을 찾아 이를 보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나간다.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연주자들은 이 시대에 분명 촉망받는 아티스트의 대열에 우뚝 서 있다. 연주는 자매예술은 물론 여러 학문과 교양이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며 다각적 사고와 고찰을 통해 그물처럼 엮여져야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 연주를 준비하는 수많은 과정 가운데 음악적 상상을 통해 분명한 상(象)을 정립하고 그에 적절한 호흡을 준비함으로써 자신이 의도했던 상(象)이 예술적 음향으로 전환된다. 호흡 조정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들숨(들이마시는)과 날숨(내쉬는)이다. 이것 역시 수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연주를 준비하면서 호흡과의 연관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시도하는 가운데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자신만의 호흡방법을 습득하는 것이다.
연주는 분명 복잡하고 난해한 행위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악보를 통해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성찰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표상을 정립한 후 음향을 상상하며 자연스럽게 호흡하고 그림을 그려 나가듯 풀어나가면 보다쉽고 최적의 연주 상태를 체험 가능할 수 있다. 인간은 심상(心狀)에 따라 호흡이 달라지며 이는 곧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최적의 호흡과 근육을 포함한 신체의 이완(弛緩;Relaxation) 상태에서 비로소 자유스런 음악적 표상을 재현 가능하다.■

 

음악적 긴장과 이완


연주에서의 긴장과 이완의 재현은 자신은 물론 이웃의 삶을 관조 내지 살펴보는 노력과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드러나는 인간적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쉽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 즉 음악만이 아닌 음악 외적인 삶의 과정이나 자연 등을 성찰하려는 폭넓은 안목이 자신의 음악적 연출력의 폭을 넓히는 또다른 중요한 관건임을 강조하고 싶다.


인간의 삶의 여정에서 순탄함만을 기대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흔히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해였다는 말을 한다. 이러한 인생을 살아나가는 것이 일반적 내지 보편적 삶의 특성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일반인은 물론 예술가의 삶 역시 이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삶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그의 예술적 창작물(작곡)역시 해당하는 시대적 배경 및 개인적 환경의 영향이 지배적이기 마련이다. 자신이 처한 현실 상황을 극복하고 음악사에 기리 남을 족적(足炙)을 남긴 수많은 음악가들의 작품에는 인간적 삶을 예술적 숭고한 형태로 그려내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즉 음악은 인간적 삶을 표현하는 하나의 장르임이 확실하다.


1. 긴장과 이완의 상태
1) 긴장의 상태는 삶에 있어 흥분, 불안, 슬픔, 초조, 감격, 쟁취, 환희, 승리, 당당함, 설레임, 가슴 벅참 등 생기와 활력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폭넓게 대조되는, 즉 긍정적 내지 부정적 삶의 변화 요인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을 말한다.
2) 이완의 상태는 역으로 평정한 심상(마음의 상태)을 드러내는 것으로 평정, 위안, 안락, 평화, 안정, 순탄, 진정, 평안등 앞서 소개한 긴장의 요소와는 상반 또는 대조되는 인간적 심상의 변화를 주는 요소들이다.


2. 창작에서의 긴장과 이완
이를 효과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형식, 구조, 내용, 작곡가의 성향 및 시대적 배경의 파악이 전제 조건이다. 또한 선율 내지 화성 역시 작품에서의 긴장과 이완을 어떻게 도입하고 전개해 나가는지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중요한 관건이다. 예컨대 동일한 음이 연속되더라도 이는 앞뒤 상황에 따라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판단에 따라 해석의 또다른 가능성을 드러낸다. 하물며 계속적으로 변화되는 악상을 추구하는 작품성에서는 말할 나위가 없다. 작품을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서는 악보를 통해 작곡가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절대적 관건이다. 작곡가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음상이나 영감을 통해 작품을 구성해 나간다. 작품 스타일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오선 위에 자신의 심상을 그려나가는 것이 일반적 창작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작곡가의 생애를 통해 초기, 중기 그리고 후기의 작품 성향에 따라 완성도나 지향하는 창작 의도에 큰 차이가 있음을 음악사 및 문헌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작품을 통해 많은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작곡가의 의지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악곡을 통한 자아실현이 궁극의 목적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작곡가의 작품이 현존한다. 제각기 다른 어법 구조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어쨌든 자기 표현이라는 관점에서는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일부 특정 목적을 위해 작곡된 작품은 제외) 선율과 화성으로(고대 및 중세 일부 교회음악은 제외)구성되는 다성음악 또는 단성음악에서도 끊임없이 음악적 긴장과 이완을 추구하려는 의도를 작품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악상 또는 다이내믹의 대조를 통해서, 선율적 진행의 상향 내지 하향을 통해, 화성적 구조 및 진행을 통해 좁게 또는 넓게 이를 다뤄 나간다. 즉 시종 변화의 의지를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창작은 연주를, 연주는 감상을 전제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작곡자, 연주자, 청중 모두는 지적 내지 정서적으로 갖추고 성장해 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로써 예술적 창작 및 향유가 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작품도 뛰어난 재해석자(연주자)를 만나지 못하면 빛을 발하지 못하며 또한 이의 가치를 파악하고 향유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감상자(청중)가 있을 때 예술적 순기능을 다할 수 있다. 서두에 언급하였듯 인간의 심상은 시시각각 변화하기 마련이다. 작품 특성 역시 인간적 산물이기에 이의 속성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 변화의 중요한 요건은 긴장과 이완으로 대별되며 작품성에서 이는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관건이다.


3. 연주에서의 긴장과 이완의 재현
훌륭한 연주자는 작품 재해석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마치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총체적으로 연출하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재현을 말한다. 물론 장르나 악기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하나의 전체로 파악되는 연주라는 관점에서 예외일 수 없다. 입시, 콩쿠르, 콘서트 등 다양한 연주의 기회 및 형태가 있지만 이를 통해 교수 및 평론가들이 연주자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 등을 파악하여 점수를 매기거나 그에 대한 평론을 작성하게 된다. 제2의 창작이라고 말하는 연주는 작품이 갖는 최고 최상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필연적이다. 악보를 통해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를 자신의 안목에서 재해석하여 생명력을 갖도록 정서와 감각이 배어나는 연출의 시도가 가능해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이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음악적 긴장과 이완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긴장은 활기 있는 템포로 압축되어지고 이완은 느슨하게 풀어지는 다소 템포의 느려짐을 수 반하는 것이 일반적 해석의 양상으로 드러난다.
이는 연주자가 어떠한 상상(想像)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심적 상태 및 신체적 심장 박동에 영향을 줌으로써 작품의 극적 분위기의 상승 내지 하강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악장의 변화에 따른 상대적 차이도 있지만 프레이즈마다 또는 악장 내에서 작품 구성에 따른 변화에 크게 작용하고 필연적으로 이입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즉 긴장과 이완은 연주의 재해석 과정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건이며 이를 어느 정도 구체화하느냐에 따라 극적 구성력의 차이는 상이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청중으로 하여금 연주에 주목하게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요건들은 상당히 다양하지만 악상의 미세한 변화에서 극적 대조에 이르기까지 긴장과 이완은 작품의 성격에 따라 언급 내지 의도되어야 할 중요한 관건이다. 여기에는 템포와 다이내믹의 변화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선율적 특성에 따른 변화도 중요하지만, 화성적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를 구체화하느냐 역시 음악적 긴장과 이완에 있어 중요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관건이다. 이의 파악 여부는 필연코 작품의 재해석 능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연주를 할 수 있지만, 훌륭한 자질을 갖춘 능력있는 연주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전자이건 후자이건 간에 누구나 보다 완성 지향의 노력이 필연적이며, 제1의 창작인 작곡뿐만 아니라 제2의 창작인 연주에서 연출능력 여하에 따라 음악적 가치 및 완성도에 큰 차이를 흔히 실감하곤 한다. 10개를 갖추었을 때 완성적이라면 자신이 몇몇 요건을 갖춘 연주자인지 성찰하는 자세와 갖춰야 할 새로운 요소를 파악하는 노력은 필수적이다. 연주에서의 긴장과 이완의 재현은 자신은 물론 이웃의 삶을 관조 내지 살펴보는 노력과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드러나는 인간적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쉽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 즉 음악만이 아닌 음악 외적인 삶의 과정이나 자연 등을 성찰하려는 폭넓은 안목이 자신의 음악적 연출력의 폭을 넓히는 또다른 중요한 관건임을 강조하고 싶다. ■

 

미적 현상의 다양성 및 갈래


인간만이 미적 가치와 현상에 대한 다양성을 느끼고 체험하며 생활화한다. 자신이 모든 주변 활동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이상의 예술적 성향의 가능성을 펼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만큼 예술적 삶에 있어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활동 영역이다.


미적 현상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미적 가치관과 인식을 가지고 표출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또한 삶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는 욕구를 드러낸다. 옷차림, 헤어스타일, 화장 등 외적 양상은 물론 언어, 가치관, 품위등 내적 요건의 양면을 고루 갖춰야 비로소 완전한 품격을 드러낼 수 있다. 나아가 예술적 이상 및 정신세계의 실현이 가능하다면 고품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미적 현상은 인간의 본연적 욕구이자 자신의 삶의 품격을 다른 사람과 구분 가능하게 하는 주요 요건이다. 이러한 미적 현상은 하나의 결과로 나타나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람의 독자성 및 취향을 인식하게 하는 데 작용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통해 주택에서 가구 배치, 의상 코디네이션, 언어적 품격을 통한 대화의 질, 다양한 예술적 활동을 통한 자아실현 등 실로 인간의 삶과 미적 현상과는 상당히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음악활동을 통해서 역시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물론 삶과 음악을 반드시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그 사람의 품성이나 취향에 따라 음악적 성향과 연계성을 고려할 수 있다. 연주의 속성이 작품을 통한 자기 표현방식의 한 갈래인 만큼 미적 현상의 가능성에 대한 다각적 성찰이 필수적 관건이다. 어떤 성격이나 형태의 미적 현상을 추구하던 연주자 및 작곡가에게 있어 미적 성찰의 중요성은 간과해서는 안 될 주요 요건임이 확실하다.
이러한 미적 인식과 현상은 동시대 상황 및 현실과 직·간접적인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모든 예술 형태에서 각각의 시대적 구분이 가능하며, 다른 장르일지라도 상당 부분에서 동일한 양상 내지 성향을 드러내 후대에서 이를 시대적으로 구분하는 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예술가 또는 일반인들의 삶의 형태 모두 각기 자신의 한계 및 가능한 범위 내에서 미적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 성향이다.


음악에 있어 미적 현상의 다양성
이는 물론 간단하게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무궁한 표현 가능성의 범위를 갖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드러내거나 담아야 할 다양한 가능성을 고찰해 보기로 한다. 음악의 창작과 연주에서 고유한 영역의 차이로 인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작곡이나 연주 모두 예술적 활동의 한 갈래이므로 동일한 안목에서 고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1) 작품 구성력
제1의 창작인 작곡과 제2의 창작인 연주 모두 제각기 다른 입장에서 자신의 작품 구성력을 드러내게 된다. 작품 구성의 중요 요건이 형식적 특성을 바탕으로 이의 파악을 통해 견고한 구성을 펼치며 나아가 예술적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 주요 관건이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작곡가와 연주가의 미적 인식 및 가치관이 작용하게 되는데, 창작 및 재현 의지를 여기서 간파할 수 있다. 이는 하나의 결과물로 제각기 다른 양상으로 실현될 여지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기에 이를 향유하는 감상의 과정에서 미적 다양성을 체험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연주에서는 해석이라는 용어로 이를 표현하기도 하는데, 자기 주관적 입장에서(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성찰할 필요성 역시 중요하게 작용함) 자신의 고유한 미적 인식을 바탕으로 재구성해 나감으로써 미적 인식 및 현상의 또다른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2) 논리적 성향
음악에 있어 논리적 성향만을 강조하거나 치우쳐서는 안 되지만, 음악 역시 학문적 근거와 바탕을 중요하게 다뤄야하며, 이는 음악인의 학문적 자세와 작품성의 바탕을 지탱하는 주요한 근거다. 음악은 무수한 세기를 걸쳐 정립된 학문적 적립의 결과이며, 이를 학습하고 작품을 재구성함에 있어 이는 판단의 근거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너무 노골화된다면 다소 차갑고 자칫 비예술적이란 오해를 초래할 우려를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작품을 대하는 논리적 바탕과 근거는 음악가가 자신을 확립하고 지탱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건임을 다시금 강조한다.


3) 감각성 성향
논리적 성향과는 다소 대립적이나 이는 반드시 상호 보완적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주요 요건이다. 작품을 보다 풍성하게 인식되어지도록 작용한다. 감각적 성향의 뛰어남과 풍부함은 예술이 예술적 가치를 발휘하는 데 없어서 안 될 필수 고려 사항이다. 물론 이는 학습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신의 감각을 세련되고 풍부하게 유지 내지 개발하도록 실천함에서 비롯된다.
학문적 속성의 범주에서가 아니라 삶의 주변을 대하는 관찰과 체험의 다양성에서 감각은 항시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매 예술, 문학 그리고 자연 등 삶을 호흡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감각적 풍부함이 보존되고 성장될 수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그의 예술적 미적 현상의 다양성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4) 음악적 사고 성향
전술한 논리적 성향과 감각적 성향을 보다 구체화하는 것은 자신의 예술적 사고를 어떻게 개발하고 펼쳐나가는가에 달려 있다. 작곡·연주·감상 모두가 인간의 지적 내지 정서적 활동의 범주에서 이뤄지는 활동이다.
작품을 연구하는 연주자 역시 끊임없는 사고를 통한 성찰이 필연적이다. 작품을 분석하고 재현하는 과정에서 매 순간 최선의 결과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모든 동물 가운데 무릇 인간만이 독보적인 사고 가능성의 존재로 일컬어지고 있다.
음악적 활동의 근거도 이러한 음악적 사고 성향과 정도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넓은 안목에서 고찰하면 인간 활동의 모든 근거는 사고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고 성향을 다각적이고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학습되어지고 체험해야 미적 현상의 다양성을 꾸준히 개발하고 펼쳐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적 현상의 다양성에 대한 고찰


무릇 인간만이 미적 가치와 현상에 대한 다양성을 느끼고 체험하며 생활화한다. 자신이 모든 주변 활동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이상의 예술적 성향의 가능성을 펼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만큼 예술적 삶에 있어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활동 영역이다. 특히 각 시대의 고품위의 문화적 산물인 음악을 창작하고 연주하며 감상함에 있어 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미적 현상을 비단 음악에서만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인간은 출생하고 성장하면서 또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생활 주변에서 많은 것을 학습하고 체험하고 사고하면서 생활하게 된다. 즉 한 사람의 성향을 특징적으로 하는데 무수한 요인들이 연루되어 작용하게 된다.
인간의 오감(五感) 역시 이의 중요한 한 요건으로 간주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모든 인간은 변화 및 발전에 대한 욕구를 추구하며 생활하고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물론 환경의 변화 역시 도모하고자 한다. 세계의 모든 문화 및 예술사 나아가 인류사를 통해 보더라도 지속적으로 변화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연주의 성향을 고찰하더라도 시대적 상황 및 배경에 따라 항시 새로운 가능성이 추구됨으로써 발전적 결과를 초래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과거, 현재 나아가 미래의 역사적 연계성과 관계의 속성에서 항상 변화의 역사로 인식되고 판단되어져 진행되어 나가고 있다. 무릇 진정으로 자신의 변화·발전 가능성을 꾸준히 실현하지 않는 예술가는 본인은 물론 사회에 기여할 수 없는 초라한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삶의 주변 환경을 통한 미적 현상의 다양성을 학습, 인식, 파악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의 미적 가치관의 변화를 초래하며 이는 변모된 예술적 자아 형성에 크게 작용할 것이다. 연주는 음을 통한 자신의 또다른 표현 가능성의 한 갈래다. ■

 

작품의 해석·연출과 연주


연주를 통한 작품의 완성도를 가늠하게 하는 것 역시 어떻게 해석하고 연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연주자마다 상이한 연주 특성을 드러내곤 하는데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며 타당한 것이다. 다분히 개인적인 작품의 이해·파악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이와 결과로 드러난다.


‘훌륭한 연주자는 뛰어난 작품의 해석 및 연출자다.’ 바꿔 말하면 뛰어난 작품의 해석력을 드러내는 것이 훌륭한 연주의 주요 요건 가운데 하나다. 연주를 통한 작품의 완성도를 가늠하게 하는 것 역시 어떻게 해석하고 연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연주자마다 상이(相異)한 연주 특성을 드러내곤 하는데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며 타당한 것이다. 다분히 개인적인 작품의 이해·파악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이와 결과로 드러난다. 연주자들이 일상적으로 고민하는 부분도 바로 이처럼 정확한 작품의 해석과 효과적 연출을 통해 청중과 더불어 예술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깊은 감흥의 영향력을 실현할 수 있는 음악을 재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1)해석·연출
세월이 경과할수록 사람은 변화되기 마련이다. 예컨대 시(詩)나 성경(聖經)의 한 구절을 처음 읽을 때와 그 후 여러번 반복하여 읽었을 때, 읽는 이의 이해와 파악, 이로 인한 심상의 변화나 깨달음의 정도가 달라지는 체험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또한 소설이나 명화 역시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점차 나이가 들면서 다시 읽거나 감상할 기회가 있었을 때 분명 차이가 있었다는 것도 인지상정일 것이다. 음악에 있어서도 이와 동일한 속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연주자일지라도 단 한 번에 음악적 완성을 도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수 있지만, 악보를 처음 대했을 때와 재차 연습을 통해 작품의 성찰을 반복 진행하면서 앞서 인지 내지 파악하지 못했었던 또다른 가능성이 존재함을 인식하게 되고 표현의 깊이를 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해석은 지적 활동을 통해 작품성의 가치를 올바르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파악해 나가는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를 통한 자기화(自己化)가 최고의 목표인 것이다. 연주에 앞선 선행 작업인 작품의 해석과 연출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연주자가 고민하고 생각을 거듭해야 할 중요한 관건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효과적인 해석과 연출의 방법일까?
이것은 바로 ‘다름=상이성(相異性)’과 ‘자기 발견’의 참 의미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게 된다. 다음으로 작곡가와 연주자 자신이 매체(악기 또는 신체)를 통해서 합일되는 일치점을 확인하거나 발견하는 시점일 것이다.
흔히 각 분야에 출중한 사람에게 ‘그 분야에 정통했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작품을 처음 대하여 완성의 경지에 다다르는 과정은 마치 산을 뚫어 관통해야 뒤쪽 저편의 세상을 보게되듯, 과정은 너무도 고통스럽고 암울하지만, 터널이 뚫린 뒤에는 이제까지의 암흑의 상태에서 벗어나 빛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 즉 한 작품에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그 작품에 정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좀더 세부적으로는 구도, 색채 대비, 대조(콘트라스트), 장식, 변화, 활력, 극성, 호흡 나아가 예술적 감성 이입 등 다양한 요건들이 재현되도록 다각적인 고찰이 필연적으로 고려되어야 할요건들이다. 연출은 이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세부에서 전체에 이르기까지 관조하고 관찰하면서 실현해 나가는 일련의 작업 특성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잘 발달되고 고도로 훈련된 귀의 최종적인 확인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자연스러움과 뛰어난 예술성의 실현이 최종 목표일 것이다. 마치 연기자가 연기가 아닌 또다른 삶의 가능성을 표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해석과 연출은 예술이 예술로써 향(香)과 정신성을 담기 위한 선행(…行) 작업이자 대단히 중요한 자신의 가치 실현을 위한 목표이기도 하다.


2)연주
해석과 연출이 원인적 요건이라면 연주는 그의 결과가 빚어내는 산물이다. 또다른 예술적 행위를 통해 자신을 표현 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기회이자 선택받은 사람들의 몫이란 확신을 갖는다. 즉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고 무대를 통해 나눌 기회를 마련한다는 것은 신의 축복으로 간주할 수 있다. 왜냐하면 또다른 방식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위안, 휴식, 활력 그리고 삶의 소중한 가치를 재인식하게 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바쁘고 혼돈(混沌)의 와중(渦中)에서 일상적 삶을 영위해 나가는 세상살이다. 심신이 지쳐 허덕이는 가운데 연주회장을 찾는 기회를 마련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 역시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한다면 분명 보다 인간적이고 숭고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성향의 발전적인 생활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기에 한 세기의 예술과 문화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연주자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고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다. 삶의 방식과 환경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연주회장에서 모든 이를 충족할 연주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의 이해 및 파악의 능력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또한, 비록 음악적 체험이 많지 않거나 교육받지 못한 청중일지라도 뛰어난 연출력을 드러내는 연주자의 음상(音像)에는 그들조차 감화 내지 감동하게 하는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를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즉 연주는 연주자 본인이 일차적이고 청중, 즉 함께 할 이차적 대상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을 전적으로 의식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예술적 향수(享受)가 가능하게 사전에 치밀하고 책임 있는 준비가 선행되어야 함을 말한다. 이러한 선행 작업인 해석과 연출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무대에서 함께 감흥을 공유하는 진정한 가치를 발(發)하는 연주가 가능해진다.
연주를 평가하는 것은 복잡하고 난해한 활동이다. 오랜 학습, 폭넓은 경험, 음악특성의 이해 및 파악 등이 가능해야 진정한 평가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조차 기준은 아무리 공정을 기한다고 해도 개인적 성향이 전혀 개입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연주자는 자신이 아닌 또다른 관점에서 파악된 견해를 주시하지 않으면 진정한 발전을 초래할 수 없다. 연주는 시간적 속성을 갖기 때문에 여타 공간예술과는 다른 특수성을 갖는다. 음의 발생과 지속, 리듬의 변화, 화성적 다양성, 작품구조 그리고 쉼 등 일단 연주가 시작되고 나면 어느 한 순간도 방심하거나 태만하게 작업에 임할 수 없는 속성을 갖는다. 그림이나 건축은 작업 도중 잠시 주의를 환기할 여유를 가질 수 있지만, 연주에서 악장 사이의 또다른 준비가 아닌 중단은, 즉 음악적 사고(事故)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기에 짧게는 수 내지 수십 분에 이르는 연주시간 동안 지체 없이 전개해 나가야 한다. 아무리 세부적 완성도가 뛰어나더라도 작품 전체를 일정시간 동안 변화무쌍하게 전개해 나갈 수 있는 집중력이 부족해서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연주에서 요구되는 것은 선행 작업인 해석과 연출의 뒷받침과 이를 겸비한 전반적 운영능력이 필수적인 관건이다. 그러므로 양자를 충족시킬 다각적인 연습과 매순간의 집중 그리고 심적 준비가 반드시 준비되고 훈련되어야 비로소 성공적인 연주가 가능해진다.
청중은 이제 여행(음악감상)을 떠나기 위해 차량 좌석(객석)에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리잡고 앉은 승객(청중)이다. 어떤 코스(작품)를 선택하여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체험(폭넓은 악상)이 가능하게 사고(내용적 결함이나 메모리 슬립)없이 안정된 여정(연주회 전반)을 마무리하는 능력 있는 운전자(연주자)에 비유할 수 있다. 거대한 대자연의 변화무쌍함은 예술성의 근간이자 인간이 인간적이고 본연의 품성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기여하는 바크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 많은 것을 학습하고 터득할 수 있다. 자연은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다!! ■

 

효과적 연습·연주 위한 단계 및 순환


예술적 창의의 목표를 지향하는 연주자들이 지향해야 할 연습·연주를 위한 과정은 연주를 위한 사전적 지각(知覺)으로 형상화된 음상(音像)의 자각(自覺) 행위인 내귀와 상상을 통한 내적 청취, 이를 구체화할 신체적 준비를 통한 연주 및 확인 등의 단계를 거치고 순환을 거듭함으로 생성된다.


고래(古來)로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악곡들이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도 새로운 창작적 시도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다. 또한 시대적 변화와 연주자마다 개성적 차이는 상이성(相異性)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이는 필연적이다. 예술적 창의의 목표를 지향하는 모든 연주자들이 지향해야 할 연습·연주를 위한 과정은 다음과 같은 단계와 순환을 거듭함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1) 내귀(內耳:Inner Ear)
우리는 생활하면서 무수한 소리를 접하게 된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우리의 삶 주변에는 온갖 음향(소음에서부터 예술적 가치를 획득한 음까지)이 항상 공존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내귀(內耳)는 자연발생적 음향의 청취가 아닌, 연주자가 음악적 상상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연주를 위한 사전적 지각(知覺)으로 형상화된 음상(音像)의 자각(自覺)행위를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고찰하면 창작과 연주는 유사성을 내포하기도 하지만 한편 연주는 창작시기와 상상의 폭에서 다소 제한적인 면이 있음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작곡가든 연주자든 소위 악상을 떠올리고 이를 악보에 기록하는 작업 또는 악보를 통해 음상을 떠올리고 음악적 사고를 통해 정리된 악상을 악기 또는 성대를 통해 표출하는 연주는 창작적 속성에서 일맥상통하는 유사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창작 또는 연주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음악적 체험(연습 및 감상)을 통한 내귀를 소유하는 것이 주요 관건이다. 이는 향후 자신이 펼칠 음악적 변화 및 가능성을 확대할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화가와 건축가는 상상을 통해 시각화하지만, 작곡가와 연주자는 상상을 통해 내귀로 형상화되어 들려지는 음상을 기록 또는 재현하는 역할 및 기능의 차이를 드러낸다.


2) 상상을 통한 내적 청취
자신이 상상을 통해 인지(認知)·인식(認識)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창작(작곡, 연주 및 감상) 활동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흔히 듣게 되는 ‘상상의 날개를 펴다’는 말은 모든 예술가들의 창의적 활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상상의 세계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므로 음악활동에 있어 제한되지 않는 가능성을 추구할 자신의 폭넓은 수련이 필연적이다. 이는 단지 연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적·정서적 폭넓은 수행(修行)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예컨대 독서, 회화, 조각, 영화 및 장르를 제한하지 않는 폭넓은 음악감상, 자연을 가까이 접하면서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체험하는 것 등이 자신의 음악적 상상을 제한되지 않고 폭넓게 펼쳐갈 확실한 방안이다. 여기서 중요한 관건은 앞선 체험을 음악과 연계성을 도모하며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직물(織物)을 짜나가듯 주변의 자연 및 자매 예술과의 동질성 및 상이성을 항상 생각하는 제2의 습성을 지녀야 이를 강화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악보를 통해 음상을 명확하게 정립하면 내적 청취가 가능하고 이는 연주를 위한 충분한 사전 준비의 역할에 손색없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내적 청취(內耳)가 가능하게 되면 불필요한 연습을 배제함으로써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아울러 누구나 염원하는 최상의 단계인 연습이 불필요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연주사상 천재로 간주되었던 많은 연주자들은 이러한 음악적 성찰을 통해 연습을 진행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것이다. 물론 진지한 연습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목표 없는 연습은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단지 신체적 활동 영역에 제한되는 많은 사례를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게 된다. 즉 상상을 통한 내적 청취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습득하게 교육한다면 이는 유태인들이 행하듯 ‘고기 낚는 법’을 가르치는 효율적이고 스스로 발전을 도모하게 할 최선의 교육방식으로 간주할 수 있다.


3) 내적 청취를 통한 표현과 이를 구체화할 신체적 준비(근육의 이완 및 긴장)
진지한 내적 청취를 통해서 이를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한 교육자의 소양을 갖춘 사람이며, 나아가 이를 구체화할 신체적 준비가 가능한 사람은 뛰어난 연주자의 대열에 서게 될 가능성을 갖춘 사람이다.
음악교육에 남다른 가능성을 실현한 유능하고 자질 있는 교수의 성공사례(세계적 명성을 갖는 연주자를 무수히 배출한)를 볼 수 있다. 또한 체육계에서 뛰어난 리더십으로 구단(球團)을 성공적으로 이끈 코치와 감독의 성공사례를 보도를 통해 흔히 접하곤 한다. 학생이나 연주자 모두 예술적 삶의 과정에 있는 것이다. 예술세계에서 완성은 절대 불가능하다! 단지 완성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이고 예도(藝道)를 닦아 나가며 인격적 내지 예술적 자아를 실현하려는 동일한 목적과 방향을 갖는 것이 예술가적 삶이다. 성악 또는 기악을 막론하고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악보를 통해 충분히 준비된 모든 면을 실현 가능할 신체적으로 경직되지 않는 준비가 필연적이다. 흔히 성공자의 대열에 선많은 연주자들의 음악을 접하면서 그들이 난곡(難曲)의 난제들을 테크닉적으로 너무 쉽게 풀어나가며 이제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풍부한 악상·상념들을 제한 없이 전개해 나가는 것을 체험하였을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서조차 일반적으로 언론이나 매체에서 전하는 완벽과는 다른 불완전성을 여전히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예술적 변화 가능성을 발견하고 벅찬 예술적 감흥을 체험하며 공유하게 되는 것이므로 좋은 연주를 많이 접하는 것의 중요성이 항상 강조되곤 하는 것이다. 연주는 신체적·정신적 행위의 산물이다.
삶은 어느 순간이나 ‘긴장과 이완’의 연속이다. 이러한 삶의 양상을 표출하는 또다른 가능성은 작곡과 연주로 대별된다.
음악적 사고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경직되어서는 효과적인 연출이 불가능하다. 역으로 이완, 즉 한없이 풀어져 있어도 탄력, 압축 내지 신선미를 줄 수 없다. 충분한 음악적 상상으로 정리된 악상을 내적 청취로 검증하고 확립한 후 에 비로소 이를 악기 또는 성대를 통해서 구체화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으며, 폭넓은 음악적 상념을 전개할 최적의 신체적 준비가 가능해야 성공적이고 좋은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즉 어느 단계가 배제 내지 소홀하다면 이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콩쿠르, 입시 그리고 연주회를 통해 누구에게서나 다소간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진지하게 자신의 음악적 행위 및 결과를 확인하려는 의지와 능력의 유무 및 정도에 따라 그 연주자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견이 가능하게 된다.


4) 음악적 상상, 내적 청취, 연주 및 확인
앞서 언급하였듯 음악적 상상과 이를 기반으로 내적 청취를 통한 검증, 이를 제한됨 없이 실현 가능한 신체적 준비와 효과적이고 내실 있는 악상을 펼칠 연주는 일맥상통하며 최종적으로 이를 확인함으로써 자유로운 음악적 상상에 이를 수 있다. 즉 이는 바람직한 순환(循環)으로 작용하게 되나, 과정에서 어느 하나라도 충실성이 배제되면 발전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례를 통해 보면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소홀한 채 무의미한 연습만을 진행하거나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즉 연습 및 준비(작품특성 파악, 성찰 등)의 목표가 없는 것을 말한다.
연주는 매순간 최고도의 음악적 완성의 조각들이 모여 변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음악적 시간의 흐름을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일련의 바람직한 순환과정은 악보를 통한 음악적 상상 - 작품 특성의 성찰 - 내적 청취(內耳의 활동) - 최적의 신체적 준비 및 행위 - 이성적·감성적 안목에서 고찰하는 검증, 즉 확인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과정이 발전적인 연습이자 최상의 연주목표에 다다르는 길이다. 이는 작품의 부분 또는 전체에 해당하는 것으로 매순간 이를 의식하지 않는 한 연습 그 자체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며 당연히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이는 반복적으로 수련하여 음악적 행위를 앞두고 습관화함으로써 ‘제2의 천성’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이로써 진정한 예술적 자아를 발견하고 점차 확립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모든 음악가들이 추구해야 할 최상의 목표이자 음악인으로서 선택받은 삶의 가치를 실현할 일련의 과정으로 생각한다. ■

 

효과적인 연주를 위한
정신적·신체적 조건(작용)


효과적인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충분하고 바람직한 사전 준비가 선행되어야 괄목할 연주의 성과를 드러낼 수 있다. 효과적인 연주는 작품 특성에 상응할 최적의 정신적·신체적 준비가 전제 조건이다.


인간의 다양한 활동 가운데 연주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창작적 행위는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훌륭한 연주와 이를 준비하기 위한 연습과정에서 진정한 가치와 희열을 만끽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음악인 모두는 선택 받은 삶으로 간주할 수 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충분하고 바람직한 사전 준비가 선행되어야 효과적이고 괄목할 연주의 성과를 드러낼 수 있다. 효과적인 연주는 작품 특성에 상응할 최적의 정신적·신체적 준비가 전제 조건이다.


1)정신적 조건
정신적 작용의 상이(相異)함으로 남과 다른 창의적 특성을 구분하게 된다. 인간은 그의 외모, 습성, 사고 그리고 가치관 등 필연적으로 차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역으로 남과 다른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진정한 예술적 자아를 형성하게 되고 이는 그의 예술성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적 숭고한 가치를 음악을 통해 재현하려는 의지는 연주자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준비과정이다. 이를 통해 그 연주자의 연출 의지를 파악하게 되며 나아가 음악적 완성도를 가늠하게 된다. 정신적 가치 실현을 통해 청중과 더불어 교감하고 예술적 감흥을 전달하는 것이 연주자의 사명이자 작곡가에 대한 책임이다. 작품성이 갖는 특성과 가치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성찰(省察)은 대단히 중요한 관건이다. 성찰은 작품의 전체에서 세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며 이를 자기화(自己化)하는 과정이다. 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진정한 연습이며 파악되지 못한 그 이상의 연출을 도모한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 연습에 앞서 눈과 내귀(內耳)를 통해 악보를 읽고 파악하며 사고를 통해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 적절한 감성의 이입이 이루어지면 이는 자연적으로 효과적인 신체적 준비가 가능하게 된다. 이 과정이 충분하지 못하거나 적절하지 못하면 내용적 빈곤은 물론 함량 미달의 완성적이지 못한 재현에 그치게 된다. 작품 특성의 성찰을 통해 정신과 신체가 하나 되어야 음악적 자아를 구현할 수 있으며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실현하게 된다. 흔히 인간의 정신적 기능과 역할은 다양한 갈래로 구분하지만 상호보완적으로 연계성을 드러내야 바람직할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정신적 활동이 지속되는 순간까지를 말한다. 음악가가 삶을 통해 습득하고 관찰한 모든 것은 자연히 그의 예술성의 바탕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고 맑은 정신을 소유한 사람만이 드높은 예술적 이상을 구현 가능하게 되며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옛말이 시사하는 바처럼 정신적 풍요(豊饒)의 부재는 순수 예술분야에서는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까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정신적 풍요로움을 갖춰나가는 것이 예술가들에게 절대적이다. 이를 위해 비단 음악에 한정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주변에 가능한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필연적이다. 자매예술(미술, 연극, 영화, 무용 등), 독서, 현재 자신이 처한 주변 상황에 대한 관심, 자연(自然)에의 여행 등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작용하는 요인은 부지기수다. 즉 우리가 삶을 영위하면서 체험한 모든 것들은 정신적 토양이 되고 좋은 토양에서 비로소 훌륭한 예술적 가치를 갖는 결실을 맺게되는 것이다. 맹목적인 연습 또는 교사의 일방적인 해석이 음악도에게 강요되는 것은 이런 견지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즉 어린 학생이나 성인 모두 자아 형성과정이 제각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교사의 역할은 안내자 이상이 되어선 자칫 학생의 예술적 자아 형성에 위해요인(危害要因)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학생은 교사의 판박이가 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흔히 이러한 사례를 목격하곤 한다. 즉 예술성 신장을 위한 진정한 개개인의 정신적 발달을 제한하는 교수행위를 말한다. 물론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성과를 거둘 수는 있지만, 입학이나 콩쿠르 입상만을 위해 학생의 정신성 발달을 제한한다면 장기적 안목에서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정신적으로 자유스러움을 구가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비록 신체적 제한이 있더라도 정신적으로 자유를 느낀다면 그것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자유다. 틀에 제한되지 않는 신체적 자유는 정신적 자유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학생이나 연주자들의 경직된 상황은 그가 정신적 관건을 충분히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파악되곤 한다. 이를 풀어줄 해답은 바로 자유스런 예술성의 표출을 위한 정신적 자유다.


2)신체적 조건
인간은 신체를 통해 움직이고 모든 예술적 활동이 가능하다. 물론 특정인은 연주를 위한 신체적 조건의 우월성이나 편리함을 갖고 태어난 것은 큰 행운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개개인마다 신체적 조건의 차이는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극단적인 제한은 피할 수 없지만 일반적인 제반 문제는 해결 가능한 것이다. 이를 효과적이고 발전적으로 성취 가능하도록 돕는 것이 교사이며, 나아가 본인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교육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한 곡의 연주를 위해서는 다양한 신체적 준비가 필수적이다. 곡의 세부에 따라 필요한 신체적 운동은 제각각이다. 음상(音像)에 따라 호흡과 신체의 대응이 달라지는데, 결론적으로 신체는 연주를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때에 따라 신체적 강화를 위한 트레이닝의 필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의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 점이다. 물론 아무런 목표 없이 어떤 행위가 이뤄지지는 않지만, 충분하고 확실한 목표를 염두에 두고 연습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연습의 효과가 없음은 물론 시간과 체력적 낭비를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연습하는 방법을 보면 그 연주자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 훌륭한 교수들의 견해다. 필자 역시 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흔히 맹목적이라고 표현되는 연습을 감행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물론 이런 편협한 연습도 실행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편이 낳을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연습이나 신체적 조건의 준비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경직되지 않은 어린 시기에 악기를 접하는 것이 세계적인 경지의 연주자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정신적·신체적 조건의 함수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면 발전에 한계를 초래하지는 않을 수 있다. 실제로 테크닉적인 문제로 난관에 처한 많은 초등·중·고교, 대학생 및 기성인들을 지도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많이 있다. 다시 되풀이 말한다면 신체는 자신의 예술적 창의를 실현할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체적 활동이 인식되고 부담으로 작용된다면 이는 분명 앞서 해결해야 할 그 무엇이 있음을 감지하고 즉시 연습을 중단함은 물론 다시 작품성의 성찰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란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조건적인 노력보다 지혜와 슬기로움의 기지가 진정한 발전을 도모할 방안이다. 큰 얼음 덩어리를 쪼갤 때 커다란 해머(Hammer)보다 작은 바늘이 효과적인 것을 경험적으로 익히 알고 있다. 즉 문제의 관건을 스스로 성찰하려는 습성을 지닌다면 그 발전 가속화는 기대 이상으로 나타난다. 물론 신체적 조건과 바람직한 자세는 어느 정도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연주자의 스타일과 성향에 따라 신체적 준비는 다르게 나타난다. 물론 절대적으로 어떤 것이 해답이라고 간주할 수 없는 것이나, 어떤 면으로든 예술성을 실현함으로써 예술적 감흥을 전달 가능해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물론 100%의 완전한 충족은 절대 불가능하다. 신체적 조건과 작품성에 따른 적절한 준비는 상응할 기본이 필연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그렇지만 테크닉적으로 음악적 관건을 해결하기 보다(물론 때에 따라 이의 필요성도 있을 수 있지만) 작품이 갖는 정신적 요건을 해결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 필연적이며 보다 효율성을 높이는 연습 방법이자 최고도의 예술적 가능성을 표출하는 척도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신체는 우리의 정신을 담고 표출해 내는 그릇이자 도구일 뿐이다! ■

 

음악적 진행과 동적·정적 특성


음악은 시간의 흐름과 미적 사유(思惟)를 통해 내용을 구성하여 전개하는 특성을 지니며 음악에 있어 진행은 음악적 시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재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음악적 시간을 어떤 관점, 가치, 주관을 가지고 실현하느냐에 따라 연주자마다 해석상 차이를 드러낸다.


음악은 시간의 흐름을 통해 미적 사유(思惟)를 통해 내용을 구성하여 전개하는 일반적 특성을 갖는다. 자매예술인 미술이 갖는 공간적·색채적 특성과 이질적인 면도 존재하지만 상호보완적으로 고려해야 함이 필수적이다. 작품 전체를 통찰(洞察)하는 데 요구되는 시간적 내지 공간적 방식의 차이일 뿐 음가(音價)의 이면(裏面)에 내재해야 할 공간성과 색채감도 필연적으로 다뤄져야 할 부분이다. 음악에 있어 진행은 음악적 시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재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음악적 시간을 어떤 관점, 가치, 주관을 가지고 실현하느냐에 따라 연주자마다 해석상 차이를 드러낸다.
 

음악적 진행
물리적(기계적-메트로놈을 통한 시간) 시간과 달리 음악적 시간은 연주자가 재해석 과정에서 정신, 정서, 사유 및 리릭(Lyric)한 성향에 따른 깊이와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실현됨으로써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물론 견고한 음악적 틀(리듬과 박자의 정확성을 도모하기 위한)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보조적으로 메트로놈을 활용함이 필수적일 수 있지만, 틀을 벗어나 자유스러워 질 때 비로소 음악적이라는 평가와 내재된 폭넓은 다양성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음악적 시간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속성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메트로놈을 통해 작품과 개개 음가의 정확한 시간의 가치와 인식을 정립하기도 하지만 이는 절대적으로 보조적인 기능과 역할 이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사람마다 보행 속도의 차이 또는 개개인의 성격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즉 상대적인 속성을 갖는다.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연주자마다 템포와 전체 연주시간에서의 차이가 이를 입증한다. 또한 말의 속도도 제각기 다르듯 상대적으로 다른 시간성(템포의 차이)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 나름대로 인정받아야 함은 이런 관점에서다. 이렇듯 음의 진행에서 요구되는 시간성은 어떤 성향의 사유와 감성을 통해 작품을 이해 및 파악의 정도(程度)와 절대적으로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여기서 말하는 음악적 진행이란 작품 특성의 세부 및 전체적 고찰을 통한 다변화의 시간적 운용을 의미한다.
음악적 상황에 따라 때로 탄력적 압축 내지 상대적 완화를 도모함이 필연적이다.
예컨대 도로의 상황을 살펴보면, 고속도로처럼 기능적인 빠르고 편리함 위주로 제한된 규정속도를 요구하는 도로가 있는가 하면, 국도 내지 지방도로처럼 상승 및 하강의 기복이 많고 변화무쌍한 도로를 주행할 때처럼 자유스런 속도의 가감이 가능한 도로를 주행할 때의 상황을 연상해 보면, 단지 빠른 속도감 내지 시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자가, 진정한 드라이브의 묘미를 만끽하기 위해선 후자가 더욱 자연적인 체험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이로써 청중이 풍성한 미적 체험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음악적 진행은 마치 드라이브를 위한 여행길 같은 음악적 진행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질적인 편의성 위주보다 다채로운 대자연을 체험 가능한, 즉 도로 상황에 따른 변화의 다양성을 편안한 상태에서 만끽하게 하는 유능한 운전자가 운행하는 차량에 동행하는 즐거움에 견줄 수 있다. 여기서 차량의 속도는 음악에 있어 템포의 변화를, 그리고 변화무쌍한 자연은 음악에 있어 악상의 다채로움으로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상대적이어야 하며, 음악교육에 있어 학생이 이해, 파악 그리고 동감하지 못하는 한 강요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음악적 진행에서의 불안정 및 흔들림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적 진행은 작품 특성의 진지한 성찰이 선행되고 이를 자기화 함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와 정신을 실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동중정·정중동
동중정(動中靜)은 활기 있는 무궁동(無窮動)적 악상(소나타의 빠른 1·3악장에서 제1주제 또는 다양한 춤곡 또는 악장등)에서 흔들림이나 불안정성을 드러내지 않는 진행을, 그리고 정중동(靜中動)은 느리고 노래부르듯 한 악상(소나타의 제2악장 또는 리릭한 성향의 악곡 등)에서 정체되거나 지루함을 주지 않는 움직임을 구현하는 상반되는 음악적진행 특성을 말한다.
앞서 자동차 운행의 예를 들었는데, 운전자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주행하더라도 동승자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유능한 운전자가 있는가 하면 운행 내내 동승자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게 운행하는 미숙한 운전자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유능함은 연주자의 역량 및 연주의 속성과도 유사성을 갖는다. 빠른 진행 속에서도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완성적인 연주와 불안감을 주는 미완성적인 연주가 능력에 따라 차이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다른 연주자가 도저히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템포로 연주하면서도 청중이 편안한 가운데 시종 예술적 가치를 만끽하게 하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템포가 흔들리거나 연주 자체에서 불안정성을 드러내 실패할 것 같은 불안감을 주는 연주자도 없지 않다. 즉 상당히 빠른 템포에서도 안정적으로 맥을 짚어주고 프레이즈를 정리해 줌으로써 한층 고조 및 상승감을 유발시키는 연주 스타일이 전자의 동중정과 맥을 같이한다. 한편 상대적으로 풍부한 서정과 감각을 살려 심금(心琴)을 울리듯 노래하는 악절에서 노래하면서도 적절한 움직임을 가함으로써 정중동을 실현하는 연주가 있다.
움직임을 표면화하지 않고 유려한 진행을 드러내면서 내적으로 생명력을 감지하게 하는 진행이다.
음악적 진행은 대별할 때 앞서 언급한 양면으로 대조(Contrast), 변화 및 대립의 양상을 드러내며 이를 효과적이고 구체적으로 표출할 때 각각의 악구 및 악절에 생명력을 이입하게 되어 풍요롭고 다채로운 음상(音像)의 실현이 가능하게 된다.
물론 이의 양 국면을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서는 연주에 필요한 기술적·예술적 제반 관건을 학습하여 체득함은 물론 나아가 자신의 조정 및 제어가 가능해야 하며 아울러 음악적으로 발전적 자아 형성을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작품성의 깊이를 고찰하고 자아를 성찰하면서 내면적 표현의지를 구체화하는 일상 및 예술적 삶을 통해 성숙해짐으로써 완성도를 더할 수 있다. 전해지는 악보는 일점일획(一點一劃)도 변화할 수 없지만, 해석적 가능성은 연출자의 내적 성숙과 사유의 깊이 그리고 진정한 예술가적 수련의 삶을 통해 점차 농익게 된다. 즉 자신의 예술적 이상과 거시적 안목을 통해 작품의 연출 가능성의 다양성을 발견함으로써 자유스럽고 완성적인 예술성 실현이 가능하게 된다.
과거의 수많은 명연주자들의 연주계의 발자취를 통해 확인할 때 동일한 악곡을 수차례에 걸쳐 재차 레코딩한 음반을 남기고 있음과 매 연주에서 또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펼침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것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또한 음악적 진행 역시 변화의 가능성을 항상 연구하고 완성지향적인 목표를 갖는 연주자의 자세가 반드시 전제 조건이다. 사람은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동일한 것의 반복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에서의 진행도 연주자 자신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고찰하며 이의 결과를 무대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음악적 진행은 때로 동적이고 정적이면서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게 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음악적 진행과 동적·정적 특성은 불가분의 관계다. 작곡가들은 작품의 가치를 최대한 실현할 것을 연주자들에게 요청한다. 내적 가치의 실현과 더불어 외적 끊임없는 동적·정적 움직임을 통해 살아 숨쉬는 듯한 재현으로 제1의 청자(聽者)인 연주자 본인은 물론 제2의 청자인 청중과 더불어 작품세계의 완성도를 함께 향유하고자 하는 것이 음악세계가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일 것이다. ■

 

음상(音像)의 가치와 예술성 및 생명력


음상의 신선한 가치와 더불어 빛나는 예술성의 추구 및 감화를 줄 생명력을 어떻게 드러내어야 할 것인지 항상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연주자의 역할이자 사명이다. 이로써 빛을 발하는 진정한 음상의 가치와 생명력의 내재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연주자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이자 이상은 작곡가에 의해 창작된 악곡을 통해 최상의 예술적 가치를 지닌 음상(音像)으로 재현하려는 것이다. 음을 소재로 자신의 음악적 상념(想念) 내지 표상(表象)을 구체화하고자 주력하는 것이다. 연주자마다 성향이나 자질 및 능력 여하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나는 연주는 작품에 제각기 다른 해석적 가능성으로 항상 새로운 변화의 의미와 상이한 가치를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개개 음들의 수평적·수직적 조합인 음악적 구조와 형식 파악 정도에 의해 해석적 결과는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연출자의 의지와 성향에 따라, 한편 동일한 연주자라도 세월의 경과에 따른 자신의 예술적 안목의 변화 노력 및 의지에 따라 충분히 발전되고 성숙된 모습으로 청중에게 다가설 수 있다. 악곡의 충분한 성찰을 통해 연출 가능성의 시야를 넓히는 것이 모든 연주자의 중요한 책무로 간주된다. 음상의 신선한 가치와 더불어 빛나는 예술성의 추구 및 감화를줄 생명력을 어떻게 드러내어야 할 것인지 항상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연주자의 역할이자 사명이다. 이로써 빛을 발하는 진정한 음상의 가치와 생명력의 내재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예술적 이상 및 자아 정체성 확립
진지한 음악가들은 자신 및 타인의 연주를 통해 완성도와 이면의 바탕을 가늠할 수 있다. 그만큼 음과 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많은 가능성의 고찰, 직·간접적인 다양한 체험 그리고 자신의 음악적 해석을 뒷받침할 학문적 적립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연주자 자신의 폭넓은 예술적 이상 및 분명한 자아의 정체성 확립이다. 때로 논리적으로 자신의 해석적 특징 및 성향을 설명 내지 분명한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어야 하나, 한편 자신의 음악적 견해와 상이(相異)한 해석적 가능성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겸허함으로 예술가로서 예도(藝道)의 실천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의 의미와 내적 정신성의 가치 실현을 중요시하고,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책임감과 아울러 연출자로서 사명의식을 분명히 하려는 정신자세야말로 모든 연주자가 갖춰야 할 바람직한 덕목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분명한 자세 및 마음가짐에서 비로소 진정한 예술적 가치와 정신 및 풍부한 정서의 실현이 가능하게 된다. 이는 작품이 요구하는 음상의 가치와 생명력이 감지되는 완성도 높은 예술적 이상의 실현에 다다르는 정도(正道)로 감히 제언하고자 한다.
악곡에서 음상은 매순간 변화가 추구되어져야 하고, 이에 최적 내지 최고도의 완성 지향 및 내적 충실성을 실현하려고 주력함으로써 예술적 가치와 살아 숨쉬는 듯한 생명력을 드러낼 수 있으며, 이는 정신적·예술적 활동의 결과로 맺는 꽃으로 간주된다.
무릇 예술가들은 그들 각자의 고유한 활동을 통해 가치를 추구하며 특히 예술적 이상 실현의 독자성 내지 특수성을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염원하기 마련이다. 절대적으로 중요시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지만 작품 해석에 있어 지나친 인위성의 조작을 배제하고 연주자 본연(本然)의 인식 및 내적 정신성의 발로(發露)가 되어야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단편적 사고 또는 의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술성 실현 그 자체로써 진솔하고 명확한 자아 실현이 가능해야 함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개 음들이 갖는 최적의 가치 실현에 주력하는 것이며 이로써 예술적 완성을 지향하게 되고 아울러 생명력이 감지되는 이상적이고 연계성을 갖는 정신 및 감각의 활동 및 적용을 의미한다.

 

예술성 및 생명력
연주에서 예술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연주자의 지적·정서적 활동이 근간이 되어야 하며, 창의적 정신 역시 드높은 예술적 이상 실현에 있어 작용되어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연주를 통해 작품성에 내재한 가치의 발굴과 실현 및 이와 연계하여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 진지한 연주자의 자세이자 궁극의 목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통찰하는 능력과 자질을 어려서부터 신장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바람직한 교육방식을 통해 연주의 다양한 가능성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도록 이끌어져야 하며, 강요되는 식으로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고 습성화됨으로써 진정한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올바르고 효과적으로 예술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각과 안목으로 작품성을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자신을 어떻게 이입할 것인지 해석적 다양성의 접근방식을 일찍부터 체험할 수 있도록 사려 깊게 안내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자 자유스럽고 방해받지 않는 예술성 및 창의성 실현의 최대 관건이다. 아울러 악곡을 파악하고 연습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항시 새로운 표현 가능성의 추구 및 이상 실현을 목표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연습방법을 체득하고 생활화하는 습성을 지니도록 교육되어져야 향후 예술성 실현 및 작품의 최대 가치를 실현 가능할 성공적인 예술가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매일 저녁 각 공연장에서는 다양한 음악회가 펼쳐지고 있다. 내용이나 완성도 면에서 역시 큰 차이를 드러내는데,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정신 및 창의성을 충족할 만큼 재현된 연주회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는 자기 계발의 의지와 노력의 부재에도 기인하지만 많은 사례를 통해 파악한 결과는 잠재된 자신의 예술성 및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였거나 또는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예술성 실현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넓히는 것이다. 이는 연습에 할애되는 시간 내지 노력의 양에 비례하거나 단순히 이로써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은 절대 아니다. 물론 시간과 노력에 의해 조금씩 발전을 초래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진정한 연습의 가치와 의미의 발견 그리고 효과적인 방법을 체득하지 않으면 ‘연습=고통’의 연속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상적인 연습과정은 매순간 작품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이로써 창의성 실현의 목표에 주력하고 이를 확인하는 시간들이 되어야한다. 작품을 통해 작곡가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고 이를 자기화하며 그 과정에서 꾸준히 자기의 잠재된 예술성을 이끌어내어 연마하는 창의적 정신의 실현 및 계발이 목표이자 자신의 습성으로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모든 예술가들은 그들의 창의적 목표와 의지의 실현을 통해 높은 예술성을 추구하는 일련의 과정과 삶을 통해 진지하게 자신을 표출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관심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예술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 가는 음악가가 있는가 하면 한계에 봉착하여 허덕이는 듯한 양상을 드러내는 초라한(?) 연주자도 비일비재하다. 이는 정신적 한계 및 이와 직결되는 신체적 제한 때문에 양자에 저해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이를 극복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은 재차 강조되지만 자아성찰을 통한 자신의 재발견이 최대 관건이다. 물론 작품을 토대로 실행되어야 하며 때로 악기와는 별도로 끊임없이 생활화를 도모해야 가능한 것이다.
연습은 오직 악기와 더불어 진행하는 것으로만 제한하거나 인식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이는 설계도를 갖지 않고 바로 시공에 착수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작품의 음악사, 양식, 예술사조 및 정신 성향의 파악을 토대로 자유스럽게 구상하고 이를 악기 또는 인성을 통해 재현하는 것이 이상적인 접근 방식이자 단계로 간주된다.
여기서 본인의 고유한 예술성이 작용하게 되며 이는 자연스럽게 생명력을 드러내게 된다. 이따금 지극히 냉철하고 차가우며 기계적 성향의 연주를 접할 때가 있다. 이는 그 연주자가 음악을 바라보고 대하는 관점이 치우쳐 있거나 편협하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예술은 논리 또는 감성에 극단적으로 치우쳐서는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없으며, 본연의 인간 정신세계가 갖는 자유스럽고 창의적인 사고와 이를 풍부하게 할 정서와 감각이 보완되어야 비로소 예술성의 높은 경지를 체험 가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재현이 가능하리란 생각이다.
모든 연주는 호흡을 통해 작품에서 요구하는 각양각색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정신·신체의 선행 준비와 이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있는 음상의 재현이 가능하게 작용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활동의 근간은 바로 호흡에서 비롯되고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화가가 화폭에 가해지는 수만 내지 수십 만에 달하는 상이한 행위를 통해 한 폭의 예술적 창의의 소산인 작품이라는 결실을 이루게 된다. 연주 역시 각각의 다른 음악적 준비를 통해 부분과 전체를 연계하며 각각의 음상이 지니는 최고 가치의 해석과 이를 조합하여 완성을 지향하는 예술성 및 생명력을 갖는 창의성 실현이 최대의 관건이자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정신과 신체의 일체화


연주의 근본이자 바탕은 연주자의 미적 정신세계의 표출과 이를 효과적으로 실현시켜 나갈 신체적 제반 조건의 뒷 받침이다. 작품(악보)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여 이를 자신과의 일체화를 통해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자기를 표출하는 것은 고도의 정신적 작용과 신체적 활동이 일체화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연주의 근본이자 바탕은 연주자의 미적 정신세계의 표출과 이를 효과적으로 실현시켜 나갈 신체적 제반 조건의 뒷 받침이다. 양자 가운데 어느 한 면이 결여되거나 부족하면 높은 예술성 및 이상 실현에 다다를 수 없다. 일반적으로 예술성의 면면으로 가늠되어지는 정신적 측면 그리고 자연스럽고 최적의 결과를 이끌어낼 원활한 기술적(메커니즘)구사 능력이 모든 연주자가 지향하며 또한 갖춰 나가야 할 주요 관건이다. 즉 작품(악보)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여 이를 자신과의 일체화를 통해 실현 또는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자기를 표출하는 것은 고도의 정신적 작용과 신체적 활동이 일체화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정신적 측면
삶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체험함으로써 새로운 자아의 형성 및 인격적 완성을 도모하게 된다. 직·간접적인 모든 경로(예술 내지 일반 교육, 대인 및 사회적 관계를 통한 폭넓은 대화, 각종 다양한 서적, 신문과 방송 등 언론 매체, 음악회, 무용공연, 미술 전람회, 연극, 영화, 드라마, 인터넷 등)를 통해, 또한 주변환경 및 시류(時流)의 변화 속에서 역시 많은 생각을 갖게 되며, 이를 통해 종종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되고 또한 재형성되어지는 과정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예술가로서의 삶을 영위하고자 선택한 사람들은 그의 삶 속에서 예술적·미적 생각과 체험의 깊이와 폭을 넓혀야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자신의 정신적 사고의 영역이나 틀을 벗어난 그 이상의 작품성 실현이나 연출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고를 통해 감각적 세련됨을 추구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자연스럽고 무리 없는 연주를 위한 첩경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사고나 성찰 등 정신적 작용으로 모든 예술적 결정과 이를 실현할 구체적 행위인 연주가 이뤄지고 펼쳐지기 때문이다. 나날이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넓혀 나가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자신의 성찰이 요구된다. 물론 연주의 결과로써 또다른 변화의 과정 및 가능성을 점검 및 재확인 하는 것도 이 과정에서 필수 요건이다. 이의 효과적인 방안으로는 다양하고 폭넓은 예술 및 일반 체험의 중요성을들 수 있다. 한편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예술적 견해가 비롯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육하원칙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왜’라고 하는 끊임없고 지속적인 사고를 통해 인지와 인식 수준 및 역량의 겸비가 필수적이다. 물론 끊임없는 연습과 이론적 내지 학문적 적립을 통해 자신의 계발이 가능
할 수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음악을 접하는 모든 연령층, 그리고 아마추어에서 전문 연주자에 이르기까지 제각기 적합한 눈높이에서 출발하여 단계적으로 발전 지향적 사고 내지 인지능력을 발달시키고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관건이다. 항상 새로운 인식과 지각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안목을 펼쳐 나가려는 지적 내지 정신적 성장이 모든 예술적 창의의 근간으로 간주(看做)된다.

 

신체적 측면
신체적 조건(신장, 체중, 건강상태, 폐활량, 손가락 및 팔의 길이, 근력 등)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물론 기악이나 성악을 포함하는 모든 연주활동에 필요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사람과 어느 면에서든 제각기 다른 불리한 여건에 처해 있으면서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사례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효과적인 연주를 실행하기 위해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은 바로 신체적 ‘유연성’이다. 즉 연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악상이 변화됨으로써 매순간 다른 복잡하고 다양한 운동을 행해야 하는 필연성을 갖고 있다.
생각과 느낌의 변화에 따라 다른 신체적 행동 및 심리적 결과를 초래하는 예를 상상하여 보자. ‘귀여운 강아지’, ‘사납게 짖어대는 커다란 개’를 연상하여 보면 극히 상반된 행동의 결과를 우리는 인식하게 될 것이다. 전자는 안아서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겁을 먹게 되고 자칫 물리지 않을까 염려하게 된다. 또한 강아지를 만지면서 평온하며 사랑스러운 마음상태를 유지하게 되나, 큰 개(犬)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며, 이로써 신체적으로도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모든 교육 특히 음악교육에 있어서 ‘지나치게 엄한 교사’ 보다 ‘학생의 상태를 파악하고 이해하며 진정으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자상한 교사’가 상대적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위축되지 않고 자연스런 심리상태에서 개인적 창의성의 실현과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 및 자질의 함양을 배가(倍加)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진정한 교사상으로 생각된다.
연주자를 포함하여 모든 예술적 활동을 펼치는 예술가들은 그들의 신체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피력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적인 다양한 기본적 훈련과 가능성을 습득해야 할 필요성이 중요하지만 한편, 본연(本然)의 자연스럽게 이완(弛緩)된 신체의 조건 내지 상태의 이해를 통한 파악이 가능하게 된다면 보다 효과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사람마다 신체적 조건과 유리함 내지 불리함의 상태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상이(相異)한 접근과 교육방식을 필요로 함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제한됨 없는 완벽한 신체적 조건을 갖춘 사례는 극히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작곡가들 역시 연주자들이 편안하게 연주하도록 작곡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난제들을 스스로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 나가 궁극적으로 홀로 설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효과적인 최선의 교육의 방식이다. 그러기 위해서 어느 정도 정형화된 보편적 요건들을 파악하게 하고 나아가 개인적 특수성에 따른 문제를 찾아 해결해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사의 중요한 책임이다.
뛰어난 연주자들의 연주회에서는 제각기 다른 작품의 연주를 통해 일반적으로 부각되는 테크닉적 관건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또는 관객들이 부담감을 갖지 않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무난히 연주되어지는 것을 확인하였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 역시 준비(연습) 또는 연주과정에서 어느 작품이든 기술적으로 난관을 거쳤을 것이며, 신체적 제한을 극복하지 않고 그 경지에 다다른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블로 카잘스 같은 세기적 명첼리스트도 전성기를 지나 은퇴한 후 매일 악기 연습을 통해 나날이 더욱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듯, 신체적 조건 및 준비의 또다른 가능성을 시도하고 체험함으로써 다양한 방법을 구사해 보는 것도 신체적 조건을 강화하고 보완하는 좋은 과정으로 생각한다.

 

정신과 신체의 일체화
악상에 따라 고도(高度)의 정신적 집중 상태를 유지하면서 신체적으로 편안하고 최적의 자연스런 연주를 행하는 것이 이상적인 연주를 위한 ‘정신과 신체의 일체화’로 간주된다. 흔히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고 말하곤 한다.
이를 연주에 접목하여 풀이해 보면, 즉 지적 성찰(생각)을 통해 형성된 미적 가치관 및 감각을 실제 행위(행동)를 통해 실현하는 것이 연주다. 물론 여기서 작품특징의 제반 가능성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적절한
감각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신체적으로 연계성을 시도하는 것이 좋은 연습 방법이자 훌륭한 연주를 실현 가능한 방안이다.
작품성의 성찰로 새롭게 형성된 자신의 감각과 느낌을 신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표출할 수 있도록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주회에 앞서 지나치게 불안한 심리적 상태에서 올바른 지적(知的) 또는 정신성의 작용 및 판단이 불가능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신체적 긴장과 근육의 경직(硬直) 상태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극복한 연주자들은 무대를 통해 어느 정도의 정신적 긴장을 보다 효과적인 예술적 감흥 내지 구성력으로 적절히 이용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실수가 전혀 없거나 흔히 말하듯 완벽한 상태로 한 무대를 끝내는 연주자는 필자가 단언하지만 단 한 사람도 없다. 이는 연주자가 최고의 상태 및 조건에서 녹음하여 출반한 음반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이 점이 인간적 한계이며,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금 재도전을 시도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예술적 안목이 넓혀짐으로써 또다른 가능성을 찾아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세계가 지향하는 것은 예술가의 고유한 정신, 예술적 견해를 포함하는 자기 주장, 각기 다른 미적 가치관의 표출 등 이는 정신적 측면으로 대별되며, 자유스럽고 제한되지 않는 편안함은 신체적 측면으로 간주된다. 양자는 유리(遊離)되지 않고 일체화함으로써 제한됨 없이 자신의 예술성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자 모든 연주자들이 추구하는이상일 것이다! ■

 

예술적 가치 실현과 미적 체험의 상관관계


작품에 내재하는 예술적 가치를 충실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연주자 개개인의 교육환경 및 정도, 다양하고 세부적인 예술적 가치실현에 관한 관심과 선험(…驗)적 체험의 다양성 및 폭이 주요 관건이다. 나아가 생애를 통해 지속적으로 미적·예술적 가치 실현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품에 내재하는 예술적 가치를 충실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연주자 개개인의 교육환경 및 정도, 다양하고 세부적인 예술적 가치실현에 관한 관심과 선험(…驗)적 체험의 다양성 및 폭이 주요 관건이다. 무릇 인간은 출생 이전(태교를 통하여)부터 이후까지 일생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체험하는 일상적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이러한 생활 주변의 경험적 기반은 그의 예술성으로 드러나게 되며, 경험의 폭과 넓이에 따라 생각과 안목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 차이는 현격히 다르며, 때로 연륜이나 경험의 정도와 상관없이 어린 나이에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거나 보여지는 일부 사례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외부적으로 보여지고 회자(膾炙)되는 단면일 뿐이지 어느 누구도 이에 예외가 없다는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처럼 앎이란 것은 이해의 단계를 거쳐 정확하게 인식 또는 파악하게 될 때 진정한 자기화가 가능하게 되며 이를 통해 확신과 자기신뢰, 즉 자신감(自信感)를 확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육 과정도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생활 속에서 접하는 것 역시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나아가 생애를 통해 지속적으로 미적·예술적 가치 실현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관건으로 생각한다.


1. 예술적 가치 실현
1)일반성향(보편적 관건)
예술세계는 분명 개인적 성향을 드러내며 자신의 미적·예술적 가치를 실현하는 또 한 가지 방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극히 편향(偏向)된 예술성의 가치가 인정받거나 보편화되기에는 일반의 인식이 전환되기 위한 오랜 시간이 요구되거나 또는 절대 실현이 불가능해 보이는 사례들을 목격하게 된다.
최근의 연주 스타일을 보면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양극화된 양상을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물론 개인적 상황에 따라 차이가 분명히 있지만 흔히 말하듯 미국적 또는 서구적 스타일로 대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떤 성향의우월성을 쉽사리 단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이것 역시 교육환경의 차이 내지 개인적 취향이나 관심에 따는 것), 어느것이든 일반적으로 갖춰야 할 보편성의 굴레는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일반 성향은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할 예술적 바탕의 기본적 요건들이 갖춰진 상태를 말한다. 나아가 개인적 요건들이 첨가되어질 때 비로소 완성 적이고 진정한 예술적 자아 실현의 단계에 이르게 되지만, 분명한 것은 보편적 내지 일반적 그리고 상식적인 인식의 작용으로 충분히 동의 내지 동감할만한 가치성의 유무로 확인 가능한 요건들이다. 즉 예술적 가치 실현의 큰 줄기 내지 맥(脈)을 형성하는 것이 일반 성향으로 간주할 수 있다.

 

2)특수상황(개인적 관건)
일반 성향(보편적 관건), 특수상황(개인적 관건)이 자연스럽게 한데 어우러질 때 비로소 예술적 자기화의 성공적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개인적 성향은 자기 본위나 중심적인 편향된 아이디어, 과장 내지 확대되고 부풀려진 해석적 성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때로 위험성을 수반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류의 연주자일 것이다.
물론 연주나 해석에 있어 모든 사람의 지지나 동감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진지한 청중이나 음악가들은 각 연주의 해석적 당위성에 대해 나름대로 개인적 판단의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아울러 각자 자신의 취향에 따른 가치판단이 작용되어 나름대로 연주의 결과를 가늠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연주자는 지극히 세심하고 신중하면서도 작품의 작곡의도를 최상의 가치로 실현하려는 책임감과 사명의식으로 작품성의 해석적 다양성 및 변화 가능성을 사려 깊게 판단하여 연주에 새로운 활기와 생명력을 이입하려는 재해석자(연주자)로서의 기본적 자세가 갖춰져야 할 것이다.
새로 구입한 의상(악곡)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거추장스럽거나(작품의 이해 및 파악의 불충분), 또는 연기자가 새로 담당한 배역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해 극(劇) 중에서 이질적(異質的)이거나 전체적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는, 즉 극중의 또다른 인생이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실현하지 못하는 사례 역시 연기자 본인은 물론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이나 연주회의 청중 모두에게 실망감 또는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음을 가늠 내지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연주에 있어 개인적 표현욕구나 의지를 분명하게 소신을 가지고 피력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이의 남용은 부족함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도 있다.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옛 격언은 악곡을 해석하는 가운데 개인적 관건의 이입 단계에서 자신을 가늠할 척도이어야 할 것이다.

 

2. 미적 체험
1)직접적 요인 - 예술관련 교육, 지적·정서적 체험 등
인간은 태어나기 이전부터(태교) 살아가면서 가정, 학교 및 사회교육, 매체(신문, 잡지, 방송, 인터넷 등)를 통해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학습하고 경험하며 살아간다. 특히 예술가 및 음악가들의 삶 역시 보편적 굴레에서 벗어난 삶을 영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을 받아들일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적 사항이기는 하지만, 미적 체험의 다양성은 어린 시절에는 부모나 선생으로부터 영향받고, 자의식이 뚜렷해지는 시기에는 본인이 주도적으로 삶의 방식을 이끌어 나가게 된다. 즉 모든 것에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시사하는 바 그대로다.
바람직한 좋은 교육의 필요성은 특히 자질이 뛰어난 우수한 선생(교사 및 교수)을 만나야 함은 필연적이며, 지적·정서적 다양한 체험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안내할 수 있는 것도 예술적 안목을 갖고 있는 부모나 선생의 역할일 것이다. 교육의 부재나 지적·정서적 체험의 빈곤 상태를 연상해 보면, 숭고한 예술적 가치 실현은 절대 불가능할 것임을 즉각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부모와 선생의 도움에 의해서든, 자신의 선택적 의지에 따른 결과이든 간에 다양하고 폭넓은 학문적 수련과 지적·정서적 체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2)간접적 요인 - 생활 주변의 모든 것
인간의 삶의 주변 모든 것(개인적 환경,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적 제반 여건 및 자연 등)은 본인의 의지 내지 관심의 유무에 상관없이 자신의 인격이나 예술성 형성에 작용함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즉 생활을 통해 그 토양에서 모든 자양분을 흡수하며 점차 완성되어 가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미적 체험 역시 이와 직접적 연관을 항상 인식해야 할것이다.
전자의 직접적 요인과 관련하여 간접적 요인, 즉 생활 주변의 모든 것이야말로 연주자의 미적 체험에 있어 선험적(…驗的)인 것을 더욱 풍성하게 완성시켜 나갈 중요한 관건으로 간주할 수 있다. 즉, 생활 그 자체가 예술적 삶이 되어야 하며 생활 속에서 항상 미적 체험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문화·예술적 관건들을 호흡(수용)함으로써 자신의 미적 체험의 폭을 넓혀 가려는 의지가 모든 연주자에게 중요하다. 그러므로 오로지 연습목표의 지향만이 아닌, 때로 삶의 주변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미적 체험의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고 싶다.

 

3. 예술적 가치 실현과 미적 체험의 상관관계
양자는 절대적이라는 결론부터 내리고 이의 상관관계를 정리하고자 한다. 앞서 각 부분적 특성들에서 언급하였듯, 미적 체험의 다양함과 풍부함은 연주자의 예술적 가치 실현에 있어 중요한 바탕을 형성하는 주요 요건이다. 동일한 작품(악곡)일지라도 어떤 연주자의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가치나 완성도에 있어 현격한 차이가 드러난다. 연주자가 어떤 인식, 안목, 가치관,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이냐에 따라 순수한 예술작품조차 숭고함 내지 천박함(?)의 결과를 드러내게 되어 예술적·미적 가치유무를 가늠할 수 있다. 예술적 가치 실현과 미적 체험의 관계는 정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술적 이상과 안목을 넓히는 것이 예술적 가치의 내재 및 실현 가능성을 고도 성장이 가능하게 할 대단히 중요한 열쇠(Key)임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즉 예술적 이상과 안목을 넓히기 위해서는 미적 체험의 다양성과 폭넓음이 절대적이다. 자신이 학습 내지 체험하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예술적 가치 실현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사고의 유연성, 폭넓은 다양성에 대한 이해 및 수용 자세, 자신과 타인의 동질성 내지 상이성에 대한 인정 그리고 삶을 관조하며 자신의 정신, 정서 및 감각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살찌우려는 마음가짐에서 자신의 미적 체험의 다양성이 제한 받지 않게 되며, 이로써 보다 완성적이고 이상적인 자신의 고유한 예술적 가치 실현의 단계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라는 말이 있듯, 열(다양성의 폭과 깊이)을 가지고 하나(작품의 전체 또는 세부적 부분)를 관조하고 성찰하면 자신의 진지한 표현을 통한 예술성 신장(伸長)의 효율을 최고도로 높일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음악적 해석과 신체적 조건, 준비 및 작용


창작된 모든 예술적 작품은 각기 다른 성향의 연출자에 따라 해석의 방향 및 가능성에 있어 제각기 다른 결과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음악에 있어서도 어떤 관점에서 재해석되었느냐에 따라 표현의 차이는 크게 나타나며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실현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신체적 조건, 준비 및 작용에 달려 있다.


창작된 모든 예술적 작품은 각기 다른 성향의 연출자에 따라 해석의 방향 및 가능성에 있어 제각기 다른 결과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음악에 있어서도 어떤 관점에서 재해석되었느냐에 따라 표현의 차이는 크게 나타나며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실현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신체적 조건, 준비 및 작용에 달려 있다. 물론 정신적 신체적 모든 요건은 연주자의 또다른 천성으로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하며, 이의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신체적으로 자연스럽고 제한되지 않는 폭넓은 연출이 가능한 것이다. 이를 위해 끊임없는 연습과정을 거치지만, 이의 효율성을 기하려는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가능성을 추구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성악과 기악을 포함하는 모든 연주행위는 신체적인 조건과 이의 일체화가 절대적 관건이다. 아울러 호흡은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 등 음악적 세부와 특성에 직결되는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다.
 

1. 음악적 해석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작품에 내재된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여 이를 바탕으로 연주자 자신의 표현의도를 이입(移入)함으로써 완성된다. 이의 과정에서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해석적 깊이와 완성도 등 제반 가능성의 차이는 크게 달라진다. 물론 작품성이 갖는 본연의 가치는 진정으로 존중되어야 하며, 이를 왜곡하거나 확대 해석하는 것은 금해야 하지만, 한편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서는 또다른 해석적 가능성으로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어떤 해석적 결과를 드러내느냐는 전적으로 연주자 자신의 음악적 안목과 직결된다. 이에 대한 당위성이나 표현의도를 분명히 할 자신의 명확한 견해를 피력할 수 있어야 타당성이 입증될 수 있다. 작품해석의 폭은 각 시대 및 양식에 따라 다소 제한해야 하거나 또는 확대해야 할 필요성의 양면으로 구분된다. 해석은 작품성이 갖는 최대한의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과정이며 이의 완성도를 가늠할 척도이다. 일차적으로 연주자가 어느 정도의 예술적 가치를 실현하느냐가 중요하며, 이차적으로 일반 청중의 호응 및 음악전문가에 의해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하고 공감하는지의 여부가 관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이입하는 것이므로 치밀하고 구체적인 그러면서도 최대한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책임의식 및 마음자세가 작품을 대하는 기본적 정신이어야 할 것이다.

 

2. 신체적 조건, 준비 및 작용
인간의 모든 예술적 활동은 신체를 통해 표출되고 완성된다. 무용(고전 및 발레, 현대), 미술(데생, 조각 등) 그리고 음악(성악 및 기악)의 모든 영역에서 신체적 작용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갖고 있다. 성악이나 기악의 모든 영역에서 선천적으로 좋은 또는 유리한 조건을 타고난 연주자도 있지만, 누구나 각자 나름대로 신체적 한계를 극복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신체적인 불리한 조건에 대해 크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나아가 이를 발전적으로 적용시킬 나름대로의 방안을 모색함이 타당하다.
누구나 모든 영역에서 완전한 조건을 갖춘 연주자는 없다. 또한 어느 작곡가도 연주자의 편의를 고려하여 작곡하지는 않는다. 신체적 조건의 해결은 악곡을 대하면서 기능적으로 극복해야 할 관건이지만, 다음으로 신체적 준비는 ‘기술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의 양면으로 고찰할 수 있다. 즉 테크닉적 문제 해결을 통해서 또는 해석에 따른 자연스런 신체적 대응의 양면이 그것이다. 물론 후자가 가장 효과적인 연습의 방법이자 이상임은 분명하지만, 부분적으로 요구되는 기술적 문제 또는 타인을 교육함에 있어서는 전자에 대한 고려와 연구가 때에 따라 요구되기도 하지만, 결과 적으로는 자신의 음악적 상념에 따른 신체적 자연스런 대응이 가능하게 교육되고 이를 실현할 단계에 이르도록 준비되어야 진정으로 폭넓고 바람직한 예술적 행위의 실현이 가능하게 된다.
신체적 모든 관건은 필요에 따라 때로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연습이 진행되어야 하지만, 이는 앞에서 언급하였듯 개인마다 그리고 각 작품에 따라 제각기 다를 수 있으며, 또한 기능적인 면에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세부적인 관찰을 통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실행이 가능하도록 연습이 진행되고 아울러 교육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작품이 요구하는 다양한 신체적 세부의 작용은 단순 물리적 속성에서 벗어나 연주자 자신의 음악적 상념을 내귀(內耳:Inner Ear)를 통해 듣고 이의 실현이 가능하도록, 즉 자신의 음악적 상상(想像)을 통해 신체적으로 긴밀하게 작용하도록 하는 데 주안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앞서 고찰하였듯 신체적인 모든 관건들은 연주자가 자신을 표출하기 위한 과정이다. 해석적, 신체적 측면 모두 중요 하지만, 탁월한 테크닉의 과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담아 재현하느냐에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제반 활동이 신체를 통해 가능한 것은 인지상정이나, 신체를 지배하고 활동하도록 작용하는 것이 바로 정신이기 때문이다.


3. 음악적 해석에 따른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신체적 대응
경직되지 않은 유연한 사고와 신체가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연주를 실현 가능하게 할 주요 관건이다. 다양하고 폭넓은 악상의 변화에 신속하고 긴밀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탄력적이고 순발력있는 신체적 대응이 필수적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음악적 아이디어와 해석의 제반 가능성을 신체(성악) 또는 악기(기악)를 통해 재현하는 것이 연주의 실체다. 아울러 심리적 안정을 기반으로 호흡을 통한 다양한 음상(音像)이 준비되어야 음악적 진행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다. 즉 사고와 신체의 일체화가 이뤄져야 자유스럽고 제한되지 않은 음상의 다변화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악곡을 세부적으로 성찰하고 분석하여 이를 통해 자신과의 일체화가 도모되어야 바람직한 것이다. 겉돌지 않고 마치 자신의 또다른 분신과도 같은 연주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일체화’인 것이다. 악상이 단지 사고에 국한되어 신체와의 연계성을 도모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표출하는 데 지극히 한계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음악적 사고와 감성이 신체와 완전히 하나될 때 비로소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담아낼 수 있는 재현이 가능한 것이다. 각각의 음의 조각들을 해체하고 조합하여 하나의 음악적 상념으로 표출되도록 주의 깊고 세밀한 사전 작업이 바로 진지한 연습의 단계이다. 음악적 사고(思考)로 선행되지만 반드시 신체를 통해 ‘자기화’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음악적 해석을 건축의 설계에 비유한다면 시공과 실내장식은 바로 연주인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해석적 아이디어와 풍부하고 예술적인 감성과 기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를 구체화할 다음 단계인 기능적인 능력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좋은 연주는 불가능한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뛰어난 테크닉적 능력을 소유하였다 하더라도 예술적 해석의 제반 관건이 불충분하면 완전한 연출로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의 양자를 발전적으로 도모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예술적 자아의 성찰과 이의 확인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해석을 신체를 통해 이상적으로 재현이 가능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모든 단계는 기악에서조차 단순히 연주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노래(Singing-Tone)되는 음색의 실현이 바람직하며 이를 위해서는 호흡의 조절이 필수적이다.
호흡은 음악적 흐름과 성격 그리고 프레이징에 따라 크게 달라져야 하는데, 이 역시 음악적으로 명확한 상(像)이 정립되어 있다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흔히 호흡의 조절이 잘못되어 음악적 진행이 불안정해지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솔로는 물론 앙상블에서 호흡조절의 일체화는 필연적으로 이뤄져야 할 중요한 관건이다.

결론적으로, 자신을 표출할 명확한 음악적 해석을 정립하는 것이 일차적인 단계이며, 다음으로는 이를 실현할 도구의 역할을 하는 신체를 효과적으로 조정하여 그에 상응하게 이끌어 나가는 것이 정확하고 완성도 높은 연주를 실현 가능하게 할 중요한 이차적 단계인 것이다. 악보를 통해 정신과 신체가 제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성을 기반으로 자유스러운 상상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연주자가 체득해야 할 가장 중요한 방법임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사고와 감각 그리고 이를 현실화하는 신체의 이상적인 조화와 균형이야말로 연주자 자신의 음악적 상념(想念)을 명확하게 실현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지탱하며, 다음 단계인 예술적 이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음악적 시각의 증대


처음으로 악보를 대하여 작품성을 관조하는 것이야말로 실제적인 연주의 부담없이 오직 작품을 통한 성찰로 해석적 가능성이 제한받지 않으며 완성을 지향할 수 있게 된다. 거듭되는 작품성의 재조명은 또다른 시각적 가능성으로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모든 일상적·예술적 활동을 보다 폭넓고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관조(觀照)하는 시각과 안목에 따라 결과 및 완성도는 큰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 다양한 연관성을 갖는 요건들에 대한 성찰이야말로 연주자의 예술성 증대로 귀결되는 확실한 방법으로 생각하는데, 실상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연습과정에서는 이와 같은 음악적 시각을 넓히는 데 많은 제한이 있다. 그러므로 연습 이전에 행해지는 다양하고 폭넓은 미적 고찰이야말로 음악적 시각과 안목을 넓힐 수 있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 즉 자신의 미적사고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적극적 의지의 실현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려는 자세와 정신에 투철한 연주자만이 진지한 연주자 대열에 서게될 것이다.
여기서 시각(視角)이라 함은 일반적인 눈(眼)의 기능이 아니라, 사고의 폭과 깊이와 관련되는 제반사항을 말한다. 흔히 말하듯 ‘우물안 개구리 식’이 아닌 우물을 벗어났을 때 세상의 변화무쌍함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작품을 대하는 연주자의 시각이 이처럼 우물 안에 한정되어 있는지 또는 보다 광활한 사고의 넓이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작품성의 완성도와 깊이는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물론 형성된 음악적 시각을 자신이 연습 또는 연주하는 과정에 어떻게 적용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 역시 중요하게 대두되는 과제다.
수학적으로 연관지어 생각하면 일차함수에서 선의 기울기의 각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시각과 연관성이 있다. 즉 어떤 각도(角度)로 출발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를 넓히려는 의지보다는 단순 또는 심지어 맹목적인 연습에 시간을 보내는 것은 효율성이 제한되고 체력 및 시간의 큰 손실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음악적 시각을 넓히려는 일차적인 문제를 놓고 많은 고심을 거듭함으로써 문제해결이 원활하고 진정한 연습과정을 만끽할 수 있으며 연주에 즐거움이 배가(倍加)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1. 작품성 재조명
어떤 성향과 어느 정도의 음악적 시각을 갖춘 연주자인지 각기 다른 상황에 따라 동일한 작품일지라도 음악적 특성은 상이(相異)한 결과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것은 연주자의 선천적 내지 교육적 환경과도 직결되지만, 후천적으로 자신의 음악적 안목의 발전을 위한 적극 의지와 다양한 체험의 정도에 따라 충분히 보완될 여지가 있다. 단순적 사고가 아닌 복합적 사고성향의 계발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교육방법 역시 이처럼 실행되어야 바람직한 것이다.
작품의 해석 및 연주는 많은 부분에서 보편성 내지 일반성의 관건들이 있다. 이는 정확한 토대가 확립되도록 선생으로부터 계승·전수되어져야 하나, 개성적 특수성은 진정으로 개개인의 특성적인 부분이 존중되고 연주를 통해 실현되도록 안내되어져야 한다. 이미 형성된 시각을 통해 작품성을 어떻게 재조명하는가 하는 것이 주요 관건이다.
작품성을 재조명하는 것은 사전적(事前的)인 의미의 작품성 파악의 과정을 말한다. 여기서는 이미 학습한 다양한 음악이론과 실기를 바탕으로 체득한 경험을 통해 작품성을 관조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程度) 내지 다양성(多樣性)을 가지고 작품을 대하느냐에 따라 작품성의 실체는 천차만별로 연주자에게 다가서게 된다. 즉 정확하고 효과적인 파악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역으로 작품성이 지닌 내적 가치를 충분히 고찰하지 못하는 정도에 한정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연주자가 작품(악보)을 대하는 순간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며 더 이상 인쇄물로 여겨져서는 안 될 것이다. 악보를 통해 숨쉬고 노래되어져야 하며, 나아가 내용이 다양하고 풍부한 정서 내재(內在)하도록 그리고 극성(劇性)을 드러내도록 음악적 상(象)을 정립시키는 과정이 바로 작품성의 재조명의 단계로 볼 수 있다.
여기서도 앞서 언급한 다양하고 폭넓은 음악적 시각이 작용하고 이를 통해 복합적인 사고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함으로써 사전 연습에 임할 준비를 행해야한다. 이러한 사고가 습관화되면 이후에는 악보를 통해 초견으로도 충분히 괄목할 만한 연주가 가능하지만 이 또한 자신의 음악적 시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 역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처음으로 악보를 대하여 작품성을 관조하는 것이야말로 실제적인 연주의 부담없이 오직 작품을 통한 성찰로 해석적 가능성이 제한받지 않으며 완성을 지향할 수 있게 된다. 거듭되는 작품성의 재조명은 또다른 시각적 가능성으로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이로써 책임있는 작품성의 재조명이 이뤄질 수 있다.


2. 재해석 및 연주
자신의 음악적 시각으로 작품성을 충분히 재조명한 후 비로소 일반(보편)적 내지 개인(특수)적 성향의 해석적 활동이 시작되고 이뤄질 수 있으며 실현 가능하게 된다. 작품을 해석하는 것 역시 형성된 자아의 실현을 염두에 둔 정신적·예술적·미적 활동이자 고찰이다. 교육에 의해서 어느 정도 해석적 가능성과 제한 그리고 다양성을 체득하게 될 수 있지만, 이는 전적으로 작품성을 바탕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이자 완성에 이르는 단계인 것이다. 음악적 사고와 감각을 포함하는 음악적 시각과 안목이 이미 성찰을 통해 작품성 재조명의 단계를 거쳐 자신의 고유한 음악관 및 상념을 이입(移入)하는 것이 바로 재해석의 단계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단순히 해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재해석으로 표현한 것은 연주자가 작품을 대하는 매 순간마다 항시 새로운 가능성 그리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세밀한 부분과 전체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다가서는 마음가짐을 가져야한다는 전제에서다.
해석은 자연적인 것(일반적 내지 학구적 성향)과 의도된 것(개인적 성향이 특별히 강조된 전문적인 콘서트 연주자성향)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양자는 적절하게 보완함으로써 작품의 재해석 특성이 청중으로부터 적극적인 호응과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지나치게 편향된 해석적 스타일은 문제의 소지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때로 특별한 연주 스타일로 각광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몇몇 스페셜리스트에 해당하는 연주자에 한정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품을 재해석하는 것은 항시 신선하고 새로운 생명력을 실현할 제반 가능성의 고찰이 전제 조건이다. 물론 기본적인 틀 자체가 매번 흔들리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며 불안정한 연주자로 인식되지만, 또다른 해석적 가능성은 시간이 흐르고 연주자의 음악적 시각이 증대됨으로써 항상 변화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연주자들이 동일한 작품을 일정 기간의 차이를 두고 녹음 하여 출반하는 이유이다.
작품 자체는 변화되지 않지만, 연주자는 항상 변화되기 마련이다. 이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발전을 전제로 한 적극적 변화를 의미한다. 어찌 보면 인간성 자체는 모든 면에서 대단히 불안정하여 흔들림을 갖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인간은 단순 반복적인 것에 염증을 느끼고 항상 자신의 변화를 추구하려는 습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이 예술적으로 연계되어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는 데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듯, 인간의 모든 것 역시 되돌릴 수 없으며, 항시 변화의 속성을 갖는다. 이런 면을 작품의 재해석에 적극 이용한다면 이는 상당히 긍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음악적 시각을 증대시키려 노력하지 않는 연주자는 이미 연주자의 사명을 망각했거나 책임감 없는 부류에 속한다고 단언한다. 작품성의 재해석을 통해 확립된 음악적 상은 연주자의 신체를 통해 재현(연주)된다.
연주자의 사고가 유연하고 탄력적이며 감각적으로 풍부하면 신체도 자연스럽게 이완(Relaxation)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해석의 필요성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한 채 맹목적이고 비효율적인 연습만을 강행하는 안타까운 많은 학생들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물론 상당히 많은 음악회에서 역시 이러한 면이 노출됨을 간파할 수 있다. 작품의 재해석은 이미 작품의 재조명을 통해 작곡가의 작곡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고 시대, 양식, 가치 등 모든 면을 충분히 고찰한 뒤에 이뤄지는 작품과 연주자 자신과의 합일(合一)을 이뤄가는 과정이다.
물론 연주자 자신만을 드러내기 위한 연주는 지양되어야 하며 작품성이 갖는 최대한의 예술성 및 가치를 실현하여 청중에게 작곡가와 작품 나아가 연주자 자신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으로 재 탄생한 모습을 실현하려는 목표와 이의 실현이 정상적인 단계로 생각한다. 작품성의 재조명 및 재해석 이전에 연주자 자신의 음악적 시각(안목)을 증대하려는 사전적 노력과 관심이 필연적인 관건이다. 연주자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이상의 음악을 표현한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미적 성찰을 통한 자기발견


어제와 오늘의 연습에서 작품성을 보는 안목이 동일하게 느껴지거나 발전이 전제되지 못한다면 이는 필시 비극이라고 간주하여도 될 것이다. 연주(연습)는 연주자 자신이 우선적으로 만족스런 결과를 확인하고 이를 타인과 나눔을 실현하려는 목표로 진행되어야 한다.


모든 예술적 활동은 궁극적으로 끊임없는 자기발견 및 계발을 통한 자기표현으로 귀결된다. 인간은 삶의 과정에서 포괄적 의미로의 재교육 및 주변환경의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변화되며 이를 통해 자기 완성을 추구함으로써 도모하게 된다. 이런 견지에서 또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것을 예술적 삶의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 역사의 과정이 그러하듯 개인적 속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예술, 그 중에서도 모든 음악활동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계성을 드러내며, 이는 자신의 미적 성찰을 통해 자기발견 및 실현 가능성은 현격한 차이를 나타나게 된다. 현 시점에 이르기까지의 제반 경험 및 누적된 활동을 통해 예술적 자아가 형성되며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미적 성찰이다. 공자는 ‘하루에 세 번 반성하라’(一日三省)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음악작품에서 요구되는 끊임없는 다양한 변화는 단 한 순간도 악곡을 통한 미적 성찰이 이뤄지지 않고서 이를 제대로 실현하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내용과 특성의 부재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작품성에 대한 진지하고 심도있는 고찰과 이를 통한 자기화의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무대에 올릴 준비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누구나 무대를 가질 수 있지만, 작품성 최대의 가치를 실현하는 연주는 그다지 많지 않음을 많은 이들이 실감할 것이다. 예술을 통한 환희의 체험과 공감대를 형성하게 이끌 자신의 충분한 미적 성찰은 모든 음악인들에게 필수적 조건이다.


1. 예술적 자아의 재발견
연주자는 악보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적 가능성과 완성을 지향한다. 일반적으로 악보를 읽음으로써 작가 정신 및 의도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단계를 거쳐 자신의 해석 의지를 이입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반복적인 연습과정에서 이를 실현하려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물론 대단히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자기 자신에 대해 눈을 뜨는 것(성찰)이야말로 선행되어야 할 주요 요건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신은 잠재된 가능성의 맥(脈)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아가 무수한 가능성 및 다양성을 네트웍으로 묶어 연계성을 갖는 고찰을 의미한다. 즉 단편적 고찰 내지 성찰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누구나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술적 자아를 재발견하려는 노력 없이 자신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미적 체험을 통해 형성된 예술적 자아를 단편적으로 규정하거나 한정하는 것은 예술성의 최대한 가능성 실현에 그야말로 많은 부분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자신(自信), 즉 자기 신뢰는 진지한 자기 성찰로 이뤄질 수 있는 단계이자 영역이다. 자기 신뢰를 통한 자기 확신에 이르러야 비로소 진정한 자아의 재발견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적 자아에 대해 눈을 뜨는 것이야말로 모든 연주자들이 필연적으로 이뤄내야 할 숙원이자 염원이 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2. 작품을 통한 예술적 자아의 실현
모든 연주는 작품성을 근간으로 행해지고 이뤄진다. 즉 작품(악보)을 통해 또다른 가능성의 새로운(거듭난) 자아의 실현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작품의 재해석으로 표현되는 예술적 자아의 실현은 작품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가운데 자신과의 일체화가 도모되어야 하며, 마치 또다른 분신(分身)처럼 느껴지고 생각되며 확신이 들 때 비로소 가능하다. 아울러 각 시대, 장르, 양식, 사조… 등 다양한 악곡 특성처럼 자신의 또다른 예술적 상념과 가치의 실현을 목표로 상이성(相異性)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동일한 악곡에서도 무수한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성, 감성, 감각, 신체 등 모든 요건이 악곡 특성에 따라 변화되어야 하며, 또다른 가능성을 찾아 떠나는 예술기행과 마찬가지로 음악적 여정(旅程)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예술적 자아 이상의 폭넓은 특성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무리 내적 정신성의 깊이와 안목을 지녔다 하더라도 이를 작품을 통해 자아의 실현을 도모하지 못하는 것은 역시 예술적 자아의 발견에 소홀함과 마찬가지의 결과다. 이의 현실적 실현성 여부가 중요한 관건인데, 여기에는 철저한 자기 제어와 조정 등 관리와 실현의 목표가 분명히 작용하여야 한다. 예술적 이상과 목표 설정에 투철하고 이를 현실화하는 과정에 충실하여야 그에 따른 만족스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철저하게 작품성의 관조와 내재한 정신성의 발견을 토대로 이뤄지게 되는데, 이의 역할의 투철한 의식이야말로 작곡가와 연주자 자신을 정확하게 드러내게 할 초석임을 다시금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자의성이 강한 연주자들은 때로 너무 편향적으로 그야말로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작품성이 갖는 본연의 특성을 왜곡시키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이는 다행으로 간주될 만큼 작품성이 갖는 특질을 현실화하는 데 소홀하고 역량 부족인 사례를 우리는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해석적 가능성은 연주자마다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것만큼 폭넓은 변화의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편일률적(?)인 성향의 연출 결과 이상의 무엇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연주자 본인은 물론 청중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양상이 못 된다. 예술적 자아실현은 그야말로 책임감 있는 연주자의 의식에서 비롯되며, 작품 및 작가정신에 대한 존경과 아울러 철저한 프로의식으로 이의 충실한 실현을 목표로 하는 연주자에게만 길이 열려지는 것을 다시금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3. 자기 표현의 가능성 확대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예술가에게 있어 자기 표현의 영역을 확대하는 이상 충족감을 실현하는 길은 없을 것이다. 물론 진지하고 진정한 예술가에 한정되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이들 예술가들에게 있어 조그마한 성장은 세상 모든 것에 견줄 바가 아닌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모든 것을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단지 시간이 경과되었다고 모든 성장과 발전이 정비례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프로 의식이 자신의 발전에 직결되는 사항일 것이다. 어제(과거)와 오늘(현재)이 똑같다면 이는 예술가에게 있어 비극적인 사실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어제와 오늘이 단지 연장선상에 존재할 뿐이라면 이런 예술가는 예술가로서의 길을 접는 것이 어찌 보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표현하였지만, 연주자는 자기 표현의 가능성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을 항상 인식하여야 하며, 매순간 자기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철저한 책임 의식과 프로 의식의 확립이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자신의 또다른 가능성을 펼칠 수 있음을 확신하고 이를 위해 철저히 자신을 관리하고 책임감 있게 보완 내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예술적 자아를 정립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기 위해서 앞서 언급한 예술적 자아의 재발견, 작품을 통한 예술적 자아의 실현이 선행되어야 할 필수적 과정이며, 나아가 예술적 안목을 신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많은 가능성들을 고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물론 주변의 도움도 필요하겠지만, 이는 철저하게 자신을 직시(直視)하고 자신의 소중함을 재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즉 자신은 어느 누구의 복제판이 되어서는 안 되며, 필연적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를 충분히 펼치려는 어느 정도의 욕구도 작용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모든 관건들은 자신의 내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의 전제 조건은 작품성에 내재된 가치와 작가 정신의 철저한 확인 및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람들은 제각기 모습, 성격, 성향, 취향 등 서로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어찌 예술적 특성과 속성이 비슷하거나 동일화하는 성향에 마음 편히 가질 수 있겠는가? 자기 표현은 상대와의 차이를 실감하는 데서 비롯된다고도 볼 수 있다. 즉 너와 나의 다름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다르게 표출하려는 의지에서 자기 표현의 가능성에 한 단계 진일보할 수 있겠다. 물론 작품해석의 보편성의 관점에서 보면, 유사성 내지 동일성의 면면도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이보다 자신만의 고유한 특수성을 찾으려는 프로 의식이 작용할 때 비로소 자신의 또다른 가능성이 전면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신장시키는 것이 효율적인 방안이다. 물론 이의 효과 내지 결과를 직시하는 철저한 귀(耳)의 작용이 선결조건이지만, 어쨌든 어제와 오늘의 연습에서 작품성을 보는 안목이 동일하게 느껴지거나 발전이 전제되지 못한다면 이는 필시 비극이라고 간주하여도 될 것이다. 연주(연습)는 연주자 자신이 우선적으로 만족스런 결과를 확인하고 이를 타인과 나눔을 실현하려는 목표로 진행되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연주 기회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이상에 동의하고 충족할 청중을 가진 연주자는 이런 견지에서 행복한 예술가이다. ■

 

음가의 시간적·공간적 특성


모든 예술적 활동(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자매예술의 영역)은 보편성(일반성) 및 특수성(개별성)의 양면으로 나뉘고, 대체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일반적 특질은 공유되며, 각 예술적 영역의 개별적 상이성은 그 예술의 또다른 가능성의 영역으로 존재함으로써 특수성을 발견하게 된다.


음의 수평적(선율적)·수직적(화성적) 결합 및 상관관계의 고찰에서 음의 특성과 고유한 가치가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작품의 해석은 이의 효과적이고 타당할 근거를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가는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 자매예술인 미술 가운데 회화(繪畵)와 연관지어 고찰하여, 캔버스에 화가가 붓으로 그림을 점차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을 연상해 보면 이의 유사성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음악은 시간적 예술이고 미술은 공간적 예술이라고 한정하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거시적 안목에서 보면 이의 과정은 상당히 유사하며, 보편적 특성의 한 굴레에 속한 것으로 결론 지을 수 있다.
모든 예술적 활동(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자매예술의 영역)은 보편성(일반성) 및 특수성(개별성)의 양면으로 나뉘고, 대체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일반적 특질은 공유되며, 각 예술적 영역의 개별적 상이성은 그 예술의 또다른 가능성의 영역으로 존재함으로써 특수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적 활동의 결과만을 고려한다면 앞서 언급한 일반적 견해(음악은 시간적 예술이고, 미술은 공간적 예술이다)에 타당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술적 창의의 실현 과정을 엄밀히 고려하면 비단 음악과 미술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적 활동의 속성은 궁극적으로 시간적·공간적 특성을 어느 정도 심도있게 연관성을 모색하여 펼쳐내느냐에 달려 있다.

 

1. 음의 시간적 특성-흐름
음의 시간적 특성은 널리 이해되고 있으며, 이는 ‘흐름’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시간적 특성의 고유한 가능성 실현 면모는 연주자마다 동일한 작품에서조차 연주시간의 차이로 드러남에서 알 수 있다. 전체 시간의 차이뿐만 아니라 세부의 음악적 편린(片鱗:조각)에서도 실감하게 된다. 시간적 특성은 밀도, 즉 압축적으로 진행하거나 또는 상반되게 풀어 가는 양면성으로 대별하게 된다. 탄력성과 완화(음악적 긴장과 이완)로 음의 시간적 특성이 작품해석상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며, 이는 작품성의 철저한 고찰과 이의 효과적인 재현을 목표로 악곡을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성격과 특성을 구현하게 된다.
음의 시간적 특성을 실현하는 과정은 부분과 전체를 연계하며, 악곡의 세부(아티큘레이션과 프레이즈)와 악곡 전체(음악형식과 장르 등)에 어떤 연관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도, 즉 연출자(연주자)의 의지에 따라 각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흔히 콘서트 아티스트(전문 연주자)들에게서 시간적 특성의 과장 내지 심지어 극단적(?)으로까지 생각될 만한 해석적 양상을 접할 수 있는데, 이는 청중의 첨예한 관심과 열정적 환호를 불러일으키려는 그들만의 의도가 내재하는 남다른 시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반 연주자와 학생들이 이를 무분별하게 흉내내거나 감행하려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 있는 자칫 무모하며 위험스런 상황으로 치닫게 되어 악곡진행에 불안정성을 초래할 가능성이 우려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전문 연주자들은 그야말로 특별한 소수의 카 레이서(Car Racer)의 사례로 간주되어야 하며,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반적이지만 생의 활력과 자연의 변화를 만끽할 보편적 드라이버(Driver)로서의 역할로도 충분히 자신의 예술적 가능성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변화 가능성 역시 작품성을 충분히 사고하고 성찰하여 자신과의 일체화를 실현할 시간의 구체적 언급이 가능해야 함은 필연적이다. 최근 각 입시나 콩쿠르에서 누가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연주할 수 있느냐가 주된 관심사인 듯한 양상이 팽배함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시간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필연적일 수도 있다. 악곡에서 개별화된 시간적 적용이야말로 자신과 타인의 해석상 다름을 실현하는 한 방안임을 고려할 때, 연주자 자신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진행할 음악적 시간은 분명 차이가 실현되도록 안배되어야 한다. 리듬적(Rhythmic) 특성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나아가 음악적 흐름을 효과적이고 완성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 개별적 음상(音像)의 시간적 안배를 적극 실현할 목표로 진행되어야 바람직할 것이다.


2. 음의 공간적 특성 - 넓이
음악사적으로 고찰할 때 오늘에 이르기까지 화성적 변화(초기의 대위적 선율의 추가에서 수직적으로 다양하고 폭넓게 실현되는 오늘날 복잡 미묘한 음의 구조에 이르기까지)가 현격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화성악을 통해 학습하였으며, 수많은 악곡들을 접하고 감상하면서 파악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음의 공간적 특성은 비단 음의 구성에서 수직적인 면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음들이 갖는 특성, 즉 공간 내지 넓이에 관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악상의 다변화를 위해 작곡가가 악상기호를 악보에 그려놓고 있지만, 이의 실현에 단순히 ‘크고 작게’ 하는 식의 단편적 이해 내지 파악으로는 그 이상의 폭넓은 음악적 상념이나 정서 그리고 깊이를 실현할 수 없다. 진지하고 예술적인 연주자들은 이에 대해 이미 학문적·경험적으로 실현 가능한 수준에 다다른 면면들을 파악할 수 있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대다수의 그렇지 못한 연주자 또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임을 각 연주회, 입시 및 콩쿠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음의 공간적 특성은 음상(音像)의 넓이 또는 양적(量的) 가치의 기준이나 근거를 어떻게 현실화하는가가 주요 관건이다. 공간적 특성은 물론 에너지를 수반해야 하지만 그 이상의 공간과 넓이(부피)의 개념과 인식이 작용해야 실현 가능한 특성을 갖는다. 음은 물리적 속성을 가지며 오실로스코프 등 물리적 계측장비를 통해 제각기 다른 음들이 갖는 변화를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적인 음의 공간적 특성은 그 이상의 생명력과 시간적 특성이 수반되고 아울러 호흡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감각적으로 풍부하고 세련된 연주자들은 음의 진행과 연관하여 음상과 음폭 등 다변화의 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다. 여기서 이성(理性) 작용이 선행되고 감성(感性) 작용이 이입됨으로써 보다 완성적인 음의 질량감과 이를 채울 공간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단순 물리적 크기로 이해한다면 지극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생활주변에서 작거나 큰 공간적 차이에 따라 심상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 즉 공간의 크고 작은 상상(Imagination)에서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시도가 실제적으로 연주할 음상의 공간적 특성으로 작용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다변화의 크고 작은 공간적 인식에 차이를 둠으로써 음악적 준비를 어떻게 다르게 실현할지 목표로 작용해야 한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것은 지휘를 통해 속도, 질량 및 공간성을 확보함으로써 단원들로 하여금 그가 표현 하고자 하는 음악적 의도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만약 연주자의 연주는 들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의 제스처를 통해 무언가 끊임없이 다른 준비를 실행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듯, 공간성의 확보를 악곡을 통해 끊임없이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질량을 담을 그릇의 크기를 설정하는 안목을 신장시키는 것이 주된 관건이다.


3. 음가의 시간적·공간적 특성의 재현
(상호 연관성의 고려를 통한 충실한 음악적 준비)
앞서 개별적으로 언급한 음가의 시간적 및 공간적 특성은 실제 연주를 통해 일체화의 접목이 시도되어야 바람직한 음악적 연출이 가능하다. 즉 상호 연관성의 고려를 통해 충실한 음악적 준비가 비롯될 수 있다. 이는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하며, 나아가 자신의 또다른 천성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연습이 진행되어야 한다. 음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많은 준비(음악적 사고와 감성, 상상, 영감, 신체조건 등)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는 궁극적으로 시간적 및 공간적 특성으로 차이를 드러내며 연주자마다 개별적 특성으로 파악하게 된다. 많은 음악학자 겸 연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실제 연주에 앞서 악보를 통한 성찰의 중요성을 마스터 클래스나 저술을 통해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진지하게 악보를 통해 작곡가의 의도와 작품특성을 파악하면서 이를 연주할 연주자 자신이 이해와 파악을 통해 자신의 또다른 분신처럼 악곡이 다가설 수 있도록 주력하는 과정이 필연적이다. 여기서 그의 음악적 바탕이 해석에 작용하며 새로운 악곡을 통해 접하는 또다른 가능성이 자신의 예술성을 신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도록 연구하고 체험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진정한 예술가적 면모로써 연주자의 위치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시간적 및 공간적 특성은 연주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최종 결과물이며, 이는 합리적 및 예술적 사고를 통해 효과적 음상의 실현을 목표로 꾸준히 진행되어야 할 주요 관건이다. 시간적·공간적 특성은 연습과 연주를 통해 무한히 달라질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될 부분인데, 일반적으로 해석적 상이성은 각 연주자마다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연주자에게 있어서도 해를 거듭하면서 또다른 차이를 발견하게 되는 구체적인 요인이 연주에 있어 시간적·공간적 특성의 차이 때문에 드러나게 된다. 작품(악보)은 변화되지 않지만, 연주자는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필연적으로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악곡을 대하면서 시간적·공간적 특성의 연계성을 고려하며 작가 정신을 토대로 자신의 음악적 의도와 해석의 방향을 추구하는 것이 진지한 연주자의 사명이자 예술가로서 선택받은 삶이란 생각이다. ■

 

예술성 및 생명력을 드러내는 연주


연주는 표현을 추구하는 과정 및 이의 결과를 무대에 올리는 순간까지 연주자가 작품을 통해 탐구함으로써 체득한 다채로운 음악적 상념 및 연출 가능성이 그의 연주에 내재하게 된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자기 표현의 과정이다. 갓난아기도 태어나면서부터 울음 또는 웃음으로 다양한 심상(심리상태)과 욕구를 표출한다. 점차 성장하면서 주변환경이나 교육을 통해 많은 것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학습하면서 표현력의 정도와 깊이를 더하게 된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문화적·예술적 체험이 필수적이며, 이는 어떤 삶의 길을 선택하든지 필수 요건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음악가를 포함하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이는 절대적인 관건이다. 역사상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각각의 고유한 문화와 풍습이 있기 마련이다. 다양한 문화예술(고급 및 대중), 일상적 삶의 양식, 주변환경 등의 요인에 따라 역사적·예술적·문화적으로 동시대 성향을 구분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음악가들은 음을 소재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한다. 작곡은 음들을 어떻게 배열하고 조합할 것인가, 연주는 작의(作意)를 바탕으로 자기화(自己化)하여 또다른 가능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 주된 목표이다. 인간들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창의적 예술활동들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연주자들은 끊임없는 자신의 수련을 통해 예술적 완성도와 깊이를 추구해 나간다. 끊임없는 예술적 사고와 자아성찰을 통한 창의정신의 실현이 최대 관건으로, 이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며 진지한 예술가로서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주력하는 것이 음악가의 길이다. 매일 저녁, 각기 다른 공연장에서 다양한 연주회가 펼쳐지지만, 각각의 예술적 완성도와 수준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크거나 작은 연주회를 막론하고 전적인 책임은 연주자 자신의 몫이다. 기술적 완성이 뒷받침되어 예술적인 속성을 드러내며, 아울러 생명력이 감지되는 그런 음악적 연출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 예술적 환희와 감격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1. 감각
감각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현상을 느끼거나 파악하는 정신의 작용이나 능력, 센스’로 정의되어 있다. 서양음악을 전공하는 많은 음악도들은 좋은 선생의 가르침과 상이한 문화·예술환경을 접하기 위해 유학을 결정한다. 또한 유학 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새로운 언어, 문화, 풍습, 환경 및 자매 예술 등 폭넓은 직·간접적 체험을 통해 점차 예술적으로 성숙되고 풍요롭게 변화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음악에서 감각적 특성은 리듬, 선율, 조성 등 구성적 요소와 이의 균형 및 조화 등 각각의 요건들이 제각기 다른 특성을 갖지만 총체적으로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뤄 상호 연계성을 도모함으로써 견고한 구성적 뒷받침이 실현되며, 이로써 감각적으로 세련된 음악적 연출이 가능하게 된다.
이런 감각적 성향을 오직 연습을 통해 계발하려는 것은 무지 내지 무모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양악(洋樂)이 전래된 초기(백년 전)와 최근 현대화 및 세계화가 이뤄져 가는 현실과는 엄청난 변혁이 진행됨을 역사적 기록과 최근 각종 보도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다양한 매스 미디어와 인터넷 발달 그리고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인해 획기적인 변화의 가속화가 이뤄지고 있는 시기여서 시간적·공간적 제한이 없을 만큼 세계는 하나되어 가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와 동반 상승하여 예술적 감각 역시 새로워지는 양상을 연주계의 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주변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부응한 새로운 개념의 도입과 구체적 접근방식을 통한 체계적인 교육의 뒷받침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악보(樂譜)라는 체계와 질서는 음의 현상을 기록한 것이어서 앞서 언급한 사전적 정의처럼 ‘느끼고 파악하는 정신적 작용이나 능력 그리고 센스’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여성의 화장(化粧) 기술이나 의상(衣裳) 코디 수준을 보면 각자의 또다른 예술적 감각을 파악할 수 있는 한 방편이기도 하다. 또한 집을 어떻게 장식하고 있는지 방문하여 보면 주인의 취향이 드러난다.
음악적 감각 역시 세련의 정도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또한 음악은 구조, 억양 등 언어 및 문학과 유사한 속성을 갖기 때문에 품격, 품위, 교양 및 성향까지도 연주자의 연주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악보는 음악적 사고와 성찰을 통한 상념으로 인지되고 이를 신체와 악기를 통해 실현하며 감각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완성된다. 감각은 다양한 문화·예술의 직·간접 체험을 통해 형성되어지기 때문에 연습 이외의 시간에 주변에 대한 깊은 관심이 필수적이며, 이로써 형성된 예술적 감각을 음악적으로 연계성을 도모할 수 있도록 또다른 차원의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이의 음악적 및 예술적 연관성을 모색하고 실현하지 못하면 개별적이어서 총체적 완성을 도모할 수 없다.

 

2. 감성
인간은 삶을 영위하며 무수히 많은 직·간접적 체험을 통해 심적으로 제각기 다른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언어 또는 예술적 수단과 방법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는다. 자연(自然)을 예로 들면, 각 계절마다 나무는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환경적 변화를 체험하게 한다. 봄의 신록(新綠), 여름의 무성한 녹음(綠陰), 가을의 결실과 오색으로 단장한 화려한 단풍, 겨울의 벌거벗은 나뭇가지의 황량함과 무상함 등 각양각색의 변화는 다양한 형용사(形容詞)로 표현될 수 있다.
감성의 사전적 의미는 ‘감각적 자극이나 인상을 받아들이거나, 경험을 수반하는 자극에 반응하는 마음의 능력. 의지나 지성과는 구별, 감각적 충동의 욕구·감정·정서를 포함하는 마음의 능력’으로 정의되는데, 누구나 계절적 변화에 따른 차이를 느낄 수 있지만, 관심의 정도에 따라 어떻게, 어느 정도로 실감(實感)하느냐는 분명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감성이 풍부하거나 또는 그렇지 못한 차이는 그 사람의 예술적 관심 내지 미적 체험의 깊이가 인정할 수준인지 그렇지 못한 상태인지 연주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교육 역시 기능적인 실기지도에 앞서 자기 삶의 주변적 변화에 관심을 갖도록 인식시키고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며, 나아가 연주자 역시 자신부터 앞서 이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전적 의미에서처럼, ‘주변의 자극이나 인상을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과 자극에 반응하는 마음의 능력’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있어도 보지 못하거나, 들려도 듣지 못하는 무관심 내지 마음이 열리지 않는 상태는 음악가로서 발전이 제한되기 마련이다. 감성이 의지 또는 이성과 구별되는 것은 후자는 사고(思考)의 영역이기 때문에 양자가 상호 보완됨이 바람직할 것이지만, 감성은 그 나름대로 소중하게 키워나갈 필요와 중요성이 있다. 아나운서는 사실을 보도하는 역할을 하지만, 연기자(배우, 탤런트 등)는 다른 삶을 펼쳐나가는 역할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지극히 냉철해야 하지만, 후자는 또다른 인생과 삶을 펼쳐나가기 때문에 기복을 갖는 연출을 시도해야 관객이나 시청자들로부터 뛰어난 연기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즉 보는 이들이 무수한 심상(心狀)에 젖어들도록 유도해 나가야 한다. 연기자가 아나운서처럼 대사를 읽거나, 또는 아나운서가 연기자처럼 뉴스를 보도한다면 이는 필시 역할에 적절하지 못한 사례로 지적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연기와 연주의 속성을 보면 상당한 부분에서 유사성이 있고 또다른 차이점도 존재할 수 있다. 양자는 작품의 구성적 특성, 리드믹한 부분, 억양, 긴장과 이완 등 많은 면에서 유사성을 갖는다.
삶의 주변에서 펼쳐지는 감각적 자극이나 인상 등을 적극 수용하려는 자세와 이를 통해 단지 사고 영역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반응함으로써 감성적 제요건이 욕구, 감정, 정서에 대한 ‘마음 밭(心田)’을 일궈나가야 후일 풍성한 결실을 내어 수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감각이나 감성에 치우치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판단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성적 성향은 자칫 냉철하고 차가운 인상을 줄 수 있고, 감성 내지 감각에만 치우 친다면 이는 자칫 천박해질 우려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특성의 부분과 전체에 상응할 균형적이고 적절한 안배가 요구되는 것이다.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해석과 연출의 결과를 드러낼 가능성이 있으며,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준비되지 못한 감각 및 감성을 어떻게 연습을 통해 실현할 수 있겠는가! 즉 악기에서 이탈하였을 때 비로소 자신의 예술적 감성과 감각을 신장시킬 중요한 또다른 차원의 연습시간임을 반드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바탕이 확립되지 못한 채 맹목적인 연습에 치닫는 것은 단지 기술적 연마에 한정될 것이며, 이는 단지 외적 현란함에 한정될 우려가 있다. 즉 격언에서처럼 ‘빈 수레가 요란하다’ 내지 ‘속 빈 강정’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벼에서 이삭을 지탱하여 주는 줄기가 사고의 영역이라면, 풍성한 열매는 감각 내지 감성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줄기(음악적 사고)가 건강하지 못하면 풍성한 열매(감각 및 감성)를 맺을 수 없다. 연습에 임하면서 기술적 또는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고 제한됨을 느끼는 순간 더 이상의 연습은 그야말로 체력과 시간의 손실이며, 생활 주변의 소음(?)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청중에 앞서, 연주자 본인조차 예술적 흥취를 만끽하지 못할 때 가장 가까운 청중의 하나인 가족들조차 소음공해를 겪을 수밖에 없다.
연주자 자신이 구체적인 작품 전개의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철저하게 준비하여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적 환희를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이끌어 가는 것이 진지한 연주자의 자세일 것이다. 풍부한 감각 및 감성을 지니기 위해서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고, 온 몸으로 모든 가능성을 체감함으로써 큰 발전상을 도모할 수 있다. ■

 

여백의 미


인간의 다양한 삶을 각기 다른 매체나 표현수단을 통해 표출하고자 함이 예술의 목적이다. 삶 역시 또다른 차원의 예술로 간주할 수 있는데, 대인관계를 위한 언어나 다양한 일상적 삶을 통해 ‘여백의 미’를 실감하는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분명 행복한 삶일 것이다.


동양화에서 사군자나 풍경화를 보면, 주제 또는 대상 이외 부분은 하얀 여백으로 존재한다. 심지어 때로 몇 개의 선(線)·점(點) 등 그려진 부분보다 여백이 훨씬 넓게 분포되어질 때도 부지기수다. 왜 가득 채우지 않았을까? 불성실한 창의적 자세 때문일까? 아니다!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전통적 사고와 가치관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 정도만으로도 충족할 만한 표현이 가능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예술적 이상 및 판단에 근거한 성향 때문일 수 있다. 서양화에 있어서 동양화의 여백과는 상이한 차원으로 존재하는데, 이를 반드시 여백이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좋을 듯싶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분명한 사실은 중심이 되는 주제나 대상물 이외에 색(色), 선 또는 명암 등 바탕과 확실한 대조성향을 드러내고있다. 비단 미술 분야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무용 등 그 밖의 자매예술 역시 ‘여백의 미’를 어떻게 재현하고 해석하느냐 성향 및 정도에 따라 극적(劇的) 내지 상반된 구성력의 차이를 실현하는 데 작용하도록 연출하고 있다.
‘폭풍전야(暴風前夜)’는 큰 재앙이나 자연재해가 엄습하기 전의 고요함 내지 정적이 이후 상대적으로 극한 대조를 드러냄을 시사하는 사자성어다. 많은 작곡가들이 이와 같은 극적 대비 또는 반전을 작품을 통해 구성하고 표출함으로써 강한 인상을 드러내고자 의도하고 있음을 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술분야에서 쉼, 무언(無言), 공백(空白), 공간(空間) 등으로 표현되는 여백(餘白)은 연출 및 표현에 있어 세심한 통찰과 엄격한 자기 제어 및 절도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부분이다. 크고 작은 여백의 차이는, 흐름 또는 대조의 극한 대립적 양상을 초래하기 때문에, 연주자·연기자·연출자 모두 철저하게 이를 도모하도록 최선을 다함으로써 진정한 여백의 미와 효과를 예술적 활동에서 제각기 상이하게, 그러나 일맥상통한 연출성향 및 의도를 실현할 수 있다. 때로 많은 말보다 말을 아끼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빠른 말보다 느리지만 적절한 리듬을 갖고 억양을 드러내는 말이 강력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인간의 다양한 삶을 각기 다른 매체나 표현수단을 통해 표출하고자 함이 예술의 목적이다. 삶 역시 또다른 차원의 예술로 간주할 수 있는데, 대인관계를 위한 언어나 다양한 일상적 삶을 통해 ‘여백의 미’를 실감하는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분명 행복한 삶일 것이다.


1) 음악에서의 여백
모든 종류의 쉼표, 프레이즈와 아티큘레이션, 악장(樂章), 변주, 조곡 등으로 외형상 분리되는 음악에서의 여백은 변화를 드러내지만, 그것은 계속되는 흐름 또는 성격적 전환의 대조 및 상반된 상황으로 대별(大別)하게 된다. 연주자는 연주를 시작하면서부터 마치는 순간까지 시종 변화무쌍한 수많은 음상(音像)들을 토해 낸다. 느리고 빠른 템포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시점에 반드시 호흡하고, 프레이즈를 정리하며, 작품의 윤곽을 구성력있게 조형하고자 한다. 마치 한 편의 모노 드라마(솔로) 또는 연극(앙상블)을 연상함이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연기자는 극적 상황을 혼자 또는 여럿이 함께 전개해 나간다. 수많은 대사를 대화, 독백, 방백 등 여러 방법과 수단을 통해 관객과 함께 교감하게 된다. 연기자는 아나운서와 달리 또다른 인간의 삶을 재현하기 때문에 작품에서 주인공의 심상에 따라 표정·억양·분위기를 달리해 나간다. 일률적으로 고르고 정확하며 안정된 톤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형태와 상황에 적합한 어조(語調)를 드러내도록 주력한다. 이의 과정에 지극히 짧거나 또는 상당히 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휴지(休止)를 갖는다. 이는 연기자 또는 연출자에 의해 상대적으로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 앞 뒤 상황을 통해 현재의 적절한 판단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주에 있어서 여백은, 연주자의 작품분석, 해석, 앞뒤 프레이즈의 성격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을 판단의 근거로 적절한 공백을 둠으로써 연출상의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 물론 사전 구상 및 의도로써 해석적 준비가 가능하지만 연주에 있어서는 자신의 또다른 변화가 도모되고 실현되는 차원의 자연스런 재현이 되어야 한다. 음악에있어 여백은 연주자와 청중이 작품성을 공감할 만한 여유와, 안정되고 편안하게 통찰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말한다. 거침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악곡에 따른 적절한 시기와 분위기에 따른 변화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여백이 갖는 진정한 가치와 효과를 파악하여야 괄목할 만한 연출이 가능해질 수 있다.

 

2) 여백의 가치와 변화
벽면(壁面)을 포함하는 실내를 장식함에 있어 적절한 공간배치 및 여백을 두는 것은 전적으로 장식가의 예술적 안목에 달려 있다. 미술에서는 공간성으로, 음악에서는 시간성으로 차이를 드러내지만, 이와 같은 여백의 진정한 가치와 변화는 상호 이질적인 예술분야에서조차 공통적 특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개인적 성향이나 취향, 스타일로 구분되지만, 타인과 다른 예술적 안목과 판단에 근거로 작용된다. 예술세계에서 여백의 가치는 무엇인가? 또한 이로 인한 변화는 어떻게 다르게 인식되어지는가? 이성적이고 감각적인 양면을 두루 갖춘 사람들은 예술적 변화와 가치가 분명하게 파악되며, 이에 흥미와 관심을 갖는 예술적 안목과 성향을 갖춘 사람으로 간주할 수 있다. 비단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 모두에게 이는 진정한 인간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흔히 사람들을 지칭하면서 그가 예술적인 끼와 감각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평가하곤 한다. 여백이 갖는 진정한 가치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를 가늠하는 판단력의 근거다. 음악을 연주하면서 쉼 없이 지속적으로 앞을 향해 질주하듯 나아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시기에 리듬과 활성적 분위기를 놓치지 않을 정도의 휴지는 필연적이다. 오히려 이를 통해 연주자와 청중 모두가 명확한 흐름과 성격파악 및 연주의 안정성 실현에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 연주자와 초보 연주자 사이에 안정성 및 작품특성의 파악 정도 및 전달 가능성이 다르게 나타남을 파악할 수 있다. 여백은 비단 짧거나 긴, 그리고 느리고 빠른 작품의 시간적 차이에도 어느 순간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가능한 자연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여백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있는 연주자는 필연적으로 이로 인한 결과로써 폭넓은 변화를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3) 여백과 쉼(Rest)의 차이
삶이 일련(一連)의 과정인 것처럼, 우리 주변의 모든 일상사 및 예술적 창의 역시 연속적인 진행 과정 중에 각각의 다른 상황들이 존재한다. 벽면을 장식하는 것도 비단 한쪽만이 아니라 사방(四方) 그리고 천장과 바닥까지 상호 연계하여 장식한다. 즉 질서와 조화의 흐름이 지속되고 끊기지 않는 것이다. 만약 사방의 다른 벽면을 각기 다른 장식가가 제각기 장식하였다면 무질서 및 부조화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각자 다른 성향을 갖고 있지만 사전에 충분한 대화를 통해 공통된 아이디어와 컨셉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장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특색을 갖는 이색적인 장식이 가능할 수 있다. 이처럼 예술세계에서 여백은 외견상 공백처럼 보여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면면히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 생활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전기의 예를 들면, 각 방과 거실, 화장실 등 집안의 모든 장소에 조명시설과 스위치 그리고 콘센트 등이 설치되어 있다. 외견상 각각 다른 공간에서 모양과 분위기 및 용도의 차이를 드러내지만, 보이지 않는 벽 속의 전선을 통해 전기가 연결되어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일맥상통하는 가운데 변화를 도모해야 하는 것이다. 작가(소설가)가 작품의 구성을 위한 방향설정 지도를 갖지 않고 작품을 그것도 간헐적으로 시간 날 때마다 계획없이 써나간다면 무질서하고 구성력 없는 졸작이 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악곡은 각각의 세부적 아티큘레이션과 프레이즈, 나아가 음악형식의 틀에서 존재한다.
흔히 악곡의 쉼표에서 맹목적으로 박을 세며 쉬는 듯한 연주를 들을 수 있는데, 음악에 있어 여백과 쉼의 차이가 분명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파악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장 질서를 위해 모음곡이나 소나타의 각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연주자가 흐름과 맥이 끊기기 때문이다. 하물며 프레이즈 또는 악구 내지 악절에서 나타나는 음악적 여백, 즉 휴지부를 어떤 고려나 생각 없이 단순히 쉬는 것은 음악적 흐름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됨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물론 대다수의 식견 있는 음악가들은 이의 연계성을 실현하지만, 실상 많은 연주자 및 학생들에게 드러나는 문제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진행상의 여백과 관련된 부분이다. 물론 기술적 문제의 노출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깊이 고려하지 않거나 크게 문제시하지 않는 것이 일반화된 관행이다.
전후상황이 고려되지 않은 맹목적인 쉼(Rest)은 음악적 흐름을 단절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상호 연관성 내지 상반된 차이를 실현하고자 의도하는 여백으로 외견상 드러나지 않더라도 연계성을 고려하여 도모함으로써 진정한 여백을 갖는 음악적 진행이 가능한 것이다. ‘여백의 미’, 이는 삶에 있어 망중한(忙中閑)처럼 때로 복잡한 일상에서 이탈함으로써 삶의 변화 또는 재충전의 기회가 되듯, 삶의 연속적인 과정에서 잠시 동안의 여백을 통해 새로운 또는 변화되는 또다른 삶이 가능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의 여백이 바로 짧거나 긴 여행이다. 생명이 지속되는 동안 인간은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발전하기를 염원한다. 그러나 행동하기만 하고 삶의 방향에 대한 생각과 반성이 결여된다면 자신이 추구하는 진정한 목표를 성취할 수 없다. 즉 생활의 여백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점검하듯, 음악에 있어 여백
은 그 나름대로 정확하게 음악적 진행이나 특성을 새롭게 재현이 가능하도록 작용하는 중요한 공간인 것이다. <계속>


음의 형상화 및 신체적 작용


연주자가 어떤 악곡을 처음으로 접하여, 악보를 읽고 분석하고 파악하면서 점차 구체적이고 명확한 음악적 상을 정립하게 된다. 이는 마치 오랫동안 살던 정든 동네를 떠나 새로운 동네로 이사했을 때 일반적으로 겪게 되는 상황과유사하다.


조각가는 대리석이나 화강암 등 때로 자연적인 소재를 가지고 자신이 형상화하려는 창의적 시도를 펼친다. 그는 원석(原石)에서 자신이 상상하고 형상화를 추구하는 이외의 부분을 쪼아냄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형태가 점차 드러나게 되어 결과적으로 하나의 예술적 작품으로써 완성을 이루게 된다. 즉 원석을 대하면서 조각가 자신이 이미 어떤 형상을 완성할 것인지 명확한 설계를 가지고 불필요한 부분을 점차 떼어내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해머(Hammer)가 가해져야 하며, 이의 강도(强度) 역시 천차만별로 작용하게 됨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연회장에 선보이는 얼음조각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작가의 숙련도에 따라 작품을 완성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 및 예술적 가치가 현격하게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음(音)을 형상화하는 것 역시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되짚어 보았으면 한다. 과정, 방법 및 결과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수 있지만, 음이나 조각(회화를 포함)의 형상화 역시 유사성 내지 공통분모가 많은 예술적 활동임을 분명히 재인식하였으면 한다.

 

1) 음의 형상화
연주자가 어떤 악곡을 처음으로 접하여, 악보를 읽고 분석하고 파악하면서 점차 구체적이고 명확한 음악적 상을 정립하게 된다. 이는 마치 오랫동안 살던 정든 동네를 떠나 새로운 동네로 이사했을 때 일반적으로 겪게 되는 상황과 유사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날이 갈수록 예전에 살던 동네처럼 점점 익숙해져 주변상황은 물론 동네 구석구석까지 세세하게 파악 가능하였던 체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생활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따끔 자신이 살던 고향마을을 회상(回想)하면서 추억에 잠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향집, 정원, 마을 길, 주변 상황 등 모든 것을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을지언정 상상은 제한없이 가능한 것이다.
음상(音像) 역시 악곡(작품)을 대하고 연습과정이 거듭됨으로써 점점 자신에게 친숙한 형상으로 기억하게 된다. 연주에 있어 개인적 환경 및 요건에 따른 차이는 분명 드러나기 마련이다. 개인적 성향 및 특성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 이전에 예술적 가치, 표현의 타당성 내지 당위성에 대한 자신의 성찰이 필수적이다.
개성적인 연주와 제멋대로 식의 연주는 분명 다르다. 보편적이고 타당한 바탕(객관적 요소) 위에 자신(주관적 요소)이 존립해야 한다. 즉, 나뿐만 아니라 남들 역시 인정할 만한 보편적 근거가 작용해야 한다. 때에 따라 남들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흔들릴 필요는 없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작품을 어느 정도 진지하게 파악하고 자기화를 도모하였느냐가 주된 관건이다. 연주자는 음을 매체로 자신을 표출한다. 이의 앞선 과정 및 작업은 명확하고 건실(健實)한 음을 구사할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모든 기악은 물론 성악 역시 각 음악적 세부(細部) 및 전체(全體)에 이르기까지 음상이 정확하고 명확할 때 비로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음의 특질을 실현할 수 있다. 성공적인 대열에 선 연주자의 연주를 떠올려보면 이의 확실성을 볼 수 있는데, 그가 연주하는 음상, 내용, 특징, 세부와 전체, 구성, 전개 등 연주에 필요한 모든 요건을 충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악상의 다변화(多變化) 추구를 통해 확연히 드러나는 상이(相異)한 성격적 접근과 이의 실현 면모 및 폭넓은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다. 정확한 음상을 정립할 가능성 및 바탕을 다지는 것이 연주자의 일상(日常)이다. 즉, 작품을 대하는 매순간 그리고 악기에서 떨어져 있는 이외 시간들 역시 음악적 상념을 정리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의 연속이어야 한다.

흔히 지적하듯 표현의도가 불분명한 연습은 명확한 음의 형상화를 도모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음, 화성(和聲)및 진행 등 각각의 특성 역시 정확한 음상으로 정립(定立)되어야 한다. 앞서 조각가의 창의적 활동을 예로 들었는데, 연주자와의 차이는 개개 단편을 조각하는 것처럼 사전에 음의 형상을 분명하게 가져야 함에 있다. 즉, 상(像)이 정립되지 못하였거나, 이에 소홀한 연주는 마치 목표 없이 흘러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든 음악작품은 각 부분에서 전체에 이르기까지 각기 상응하는 명확한 음상의 정립이 필연적이다. 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에 따라 연주자 성향이 구분되며 나아가 완성적인 또는 비완성적인 면면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세부적(Detail)인 특성으로 드러나는 음의 형상화의 가능성은 연주자의 역량과 비례한다. 즉, 연주에서 음상의 다변화는 연주자의 예술적 속성, 특성, 의지, 견해를 파악하는 데 작용한다. 각 작품 및 작곡가의 시대, 사조 성향에 따른 차이를 드러내는 것 역시 음의 형상화를 어떤 관점 및 각도에서 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폭넓게 변화무쌍한 가능성을 꿈꾸고 실현할 가능성 있는 연주자는 분명 남다른 면모를 가늠하게 된다. 이는 비단 음악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역시 차이를 실감하게 되는 절대적이며 아울러 예술적 관건이다.
때로 악기에서 떠나, 명상하듯 눈을 감고 자신이 연주할 악보의 세부 및 전체의 음상을 형상화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진정한 연습의 한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런 진지한 태도와 자세를 갖춘 연주자와 그렇지 않은 연주자는 그의 예술적 품격이나 가치의 실현에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게 됨이 필연적이다. 어떤 음을 어떻게 형상화하느냐에 따라 작품성의 완성 및 예술적 자아실현성 여부가 좌우되는 대단히 중요한 관건인데, 이는 바로 음의 형상화다.


2) 신체적 작용
인간은 신체를 움직여 모든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연주에 있어 신체적 움직임에 앞서 음의 형상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구체화하는 것은 바로 신체 각 부분의 작용, 연계(連繫) 그리고 호흡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신체적 조건 및 제반 가능성을 파악하고 체험하는 것은 효과적 연주를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신체적인 것과 관련된 요건(테크닉적)만을 크게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교육의 양상이다. 무엇이 선행되어야 할 것인지 각 상황 및 필요에 따라 적합한 판단을 내리고 실행하는 것이 효율적인 연습이고 교육이다. 귀여운 어린 아기 또는 사랑하는 동물을 보았을 때 어떤 마음(心狀)을 갖게 되며, 아울러 신체적으로 어떻게 느끼고 작용하게 되는지 상상해보자!
심적으로 상기되고 흥분되며 사랑스런 마음을 가지고 쓰다듬거나 가슴으로 안을 것이며, 가슴은 넓게 펼쳐지고 깊은 호흡이 수반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逆)되는 상황을 가정하면, 말을 잘 듣지 않고 고집스럽게 떼만 쓰는 어린아이를 대할 때 또는 자기가 싫어하는 동물이 가까이 다가올 때 어떻겠는가? 심적으로 상대하기 귀찮거나 싫은 감정 또는 분노하거나 놀람으로써 신체 및 가슴은 굳어지고(경직) 다소 움츠러들며 아울러 호흡은 거칠게 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위의 두 상황을 가정할 때, 어떤 연상(聯想)을 하느냐에 따라 심적 및 신체적인 다른 대응이 이뤄짐을 체험할 수 있다. 인간은 오욕칠정(五慾七情)을 갖고 느끼며 삶을 영위해 나간다. 즉, 우리의 일반적 삶은 다변화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감성, 분위기, 느낌, 감정, 감각 등으로 생활하게 된다.
모든 예술적 창의 및 재현 역시 인간의 삶 속에서 이를 바탕 및 근간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의 유사성 파악및 연관성을 이해 또는 고려한 접근이 필연적일 수 있다. 각 음악의 성격, 장르, 시대 및 사조 성향에 따라 제각기 다른 가능성과 차이를 파악하고 실감하며 이를 바탕으로 실현하게 되지만, 근원적으로 음악은 작곡가 및 연주자 삶의 또다른 표현영역 및 굴레에 속한다. 그러므로 악곡의 세부적 특성에 따라 그에 상응할 정서, 감각, 심리상태 등 다양한 특성의 언급 및 고려가 필수적 관건이다.
물론 이에 따라 제각기 다른 신체적 작용이 동반 내지 수행하게 됨을 진지한 연주자들은 익히 경험 내지 체험하였을 것이다.
음을 어떻게 형상화하느냐가 선행해야 할 주된 관건이며, 이를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신체활동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다. 그렇지만 신체적 움직임을 전적으로 의식하지 않더라도 연주에 필요한 적정 ‘최소의 힘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확실한 방법은, 가급적 신체 각 부위의 활동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추구 하고자 하는 음상에 따라 몸을 준비하고 맡기는 것이다. 여기서 신체적 이완의 상태 및 감각을 항상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때로 부분적으로 또는 실행 목적에 따른 결과를 얻기 위해 철저하고 분명한 신체적 움직임의 파악과 이의 실효성 여부를 확인 및 관찰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정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3) 음의 형상화 및 신체적 작용의 상관관계
사람은 정신과 이를 담을 신체를 가졌기에 생각할 수 있고 이를 근거로 행동 또는 실천한다. 삶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인간만이 가능한 특성이다. 목표 없는 삶은 흔히 ‘나침반 없는 항해(航海)’에 비유되기도 한다. 즉, 삶의 계획이든 음의 형상화를 추구하든, 이는 다음으로 이어질 행동과 특정한 결과를 도출(導出)하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음의 형상화는 정신적 작용의 결과이며 이를 재현하는 것은 신체적 작용으로 실현 및 완성된다. 음상의 명확한 청사진을 갖지 않은 채 연습을 진행하거나 연주를 행하는 것은 시간과 체력의 손실 및 낭비에 불과하다. 즉, 연주를 위한 사전 준비(음의 형상화)와 이의 실현(신체적 작용) 그리고 양자의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연속적으로, 연습 및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도 습관적으로 연주를 행하려는 습성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연습 및 연주가 실행되고 있는 매순간은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고 제어하고 조정함으로써 변화무쌍한 다채로움 음상의 실현이 이뤄질 수 있다. 어느 순간이라도 집중에서 벗어나 해이 내지 방심 또는 습관적으로 행동이 이뤄진다면 이는 자신이 조절 내지 제어 가능한 영역을 벗어난 결과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습하는 매순간 고도의 집중으로 임하되, 그 자체를 즐기려는 마음가 짐이 중요하다. ■

 

적극적인 작품해석의 접근 및 가능성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어떤 연주자의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는 그야말로 천차만별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현 상태를 초월하려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도전을 시도하는 것이 프로정신의 실현이며, 진정한 예술가이자 음악을 사랑하는 연주자의 면모로 간주할 수 있다.


장르 내지 악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수많은 악곡들 가운데 어느 곡을 선정하여 무대에 올릴 것인지 연주자들은 고심한다. 연주회를 준비하기 위해 악곡 선정을 끝낸 것은 흔히 전체 준비과정의 절반가량을 마쳤다고 간주되곤 한다. 선곡된 악곡을 통해 작곡가의 작가정신·의도 파악, 작품의 특성 및 연출 가능성 등 여러 관점에서 작품을 탐구함으로써 집중적인 재조명을 시도하게 된다. 작품을 선정하여 우선 광의적(廣義的) 안목에서 전반을 성찰하고, 나아가 협의적(狹義的) 관건인 작품성의 세부적 요소들에 대한 성찰을 시도하게 된다. 즉 악곡의 세부와 전체의 독자성 및 연계성에 대한 고려가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연주자의 성향 및 역량에 따라 작품해석의 접근성 및 실현 가능성은 현격하게 차이를 드러낸다.
좋은 연주가 가능하기 위해서 연주자가 갖춰야 할 수많은 요건들, 체험 및 경험으로 가능한 부분 등 폭넓은 안목과 세부적 관점을 통해 비로소 작품성의 연출 가능한 이상세계가 연주자에게 현실처럼 가시화(可視化)되는 것이다. 사회전반 모든 활동에서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가 요구되듯, 작품을 해석함에 있어 역시 적극적인 자세와 학구적 바탕을 통해 작품성의 깊이를 가늠하고 파악하려는 의지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소극적이거나 학문적 깊이와 음악적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에게 악곡의 높은 완성도를 기대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상당한 수준의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경험이 풍부한 연주자들은 악곡을 대하면서 동시에 작품성의 분석은 물론 머리와 가슴, 그리고 신체가 하나 되어 즉각 연주를 실행할 준비가 가능한 단계에 이른 사람들이다.
물론 작품성의 깊이와 연출 가능성의 폭넓음은 항상 새롭게 시도 및 접근하려는 연주자로서 투철한 자세와 안목에서 비롯되며 아울러 가능하게 된다.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어떤 연주자의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는 그야말로 천차만별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현 상태를 초월하려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도전을 시도하는 것이 프로정신의 실현이며, 진정한 예술가이자 음악을 사랑하는 연주자의 면모로 간주할 수 있다.


1. 작품해석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연주자 자신이 작품에 대한 정확한 파악으로부터 비롯된다. 이의 접근 방향 내지 방식에 따라 해석적 성향에 큰 차이가 드러나며, 이의 당위성 여부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여기서 암보능력에 뛰어난 자질을 갖춘 사람들은 여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짧은 시간 안에 메모리가 가능한 유리한 조건을 갖춘 연주자로 그렇지 못한 연주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단시간에 악보를 파악하고 암보하였기에 자칫 악곡의 깊이와 작곡의도를 깊이 성찰하지 못하는 사례들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작품해석에 대해 대화를 해보면, 많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기성 연주자들 역시 이에 대해 명확한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펼치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해석하는 것은 연주자의 적극적인 자기표현의 의지가 선행되어야 하며, 더불어 작곡가에 대한 존경과 작품성 재현에 대한 책임의식이 가장 우선해야 할 주요 요건이다. 즉 작곡가가 작곡하기 위해 고심하였을 전체적 및 세부적 수많은 관건들에 대해 연주자 역시 그에 상응할 깊이 있는 파악이 가능하도록 연구하고 분석함으로써 가능하다. 이의 바탕은 학문적 뒷받침이다. 즉 음악이론의 각 영역이 자신이 탐구할 대상 악곡을 관조하고 성찰하는 데 적극적으로 작용하여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드러나는 일반적인 문제점은 이론과 연주가 상호 연관성을 드러내도록 작용하지 않는, 즉 맹목적(?)인 연습 내지 연주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직· 간접적으로 해석적 상이성에 대한 검토 및 검증을 음반이나 연주회를 통해 비교 체험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연주자 자신과 주변 환경적 요인 모두가 작품을 해석하는데 있어 중요하게 작용하는 주요 요소들이다. 즉 자신 및 삶의 또다른 표현 가능한 영역이 연주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전체적인 형식과 틀을 확인하고, 세부적인 음상 및 조직체계와 질서를 파악하는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 동일한 악곡일지라도 출판사 또는 편집자에 따라 제각기 다른 성향으로 나타난다. 때로 원전판(原典版)이나 작곡가의 필사본, 복사본 등 수집 가능한 여러 자료를 비교 분석하며 검토하는 것이 치우치지 않고 작품성을 통찰하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출판사마다 제각기 다른 해석을 덧붙여 때로 혼란을 가중시키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동일한 악곡 및 악보라 할지라도 연주자마다 해석적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의 정도 및 차이는 연주자마다 제각기 다른 조건 및 환경 요인에 기인하지만, 미적 안목과 성향의 차이 역시 상이성(相異性)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즉 일반적으로 심미안(審p眼)이라고 일컬어지는 ‘미를 살펴 찾는 안목’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해석은 악보에서 단순히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것뿐만 아니라, 세부적 조각들에 대한 파악에 몰입함으로써 정확한 해석활동이 이뤄지고 이로써 작품성에 대한 확신이 가능하게 된다.
때로 한 음반(音盤)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감상하되 각기 다른 시각 및 관점에서 연주성향, 내용 그리고 특성을 관찰하는 것도 이의 다각적 체험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전적으로 타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참고하는 데 주력할 것이지 이를 모방할 필요는 없다.(때로 실기지도에 있어 다른 연주자의 성향을 비교 연주를 통해 설명하는 것은 해석적 가능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작품해석에 있어 현재 자신이 가능한 부분을 바탕으로 또다른 가능성 실현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점이다.
물론 즉각적으로 어떤 방법 내지 가능성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단히 이를 추구해 나간다면 어느 순간 해결의 실마리가 풀려나가는 것을 진지한 연주자들은 익히 체험하였을 것이다. 의학도(醫學徒)들이 후일 어떤 전공을 선택하든 기본적으로 신체해부학을 공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완성된 악곡의 세부적 음상 및 이의 연계성을 고려하는것은 작품의 해석에 있어 중요한 과정이자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주요 관건이다.


2. 작품연출
연출이라는 용어는 각본이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는 드라마를 포함하는 방송, 연극 그리고 영화 등 종합적 영상 매체의 효과적인 작품성 실현을 도모하기 위해 각각의 세부 요인(연기, 무대 및 무대장치, 의상, 분장, 조명, 소품, 음악 등)들의 일체화를 이루기 위한 총괄적인 작업과정을 의미하며, 또한 어떠한 일이나 효과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의미하기도 한다. 앞서 선행된 작품해석을 통해 형성된 다채로운 음상(音像)을 악기(또는 인성)를 통해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최대한의 효과적인 가능성을 실현하는 연습 내지 연주과정 역시 연출의 한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음악은 건축적 및 실내장식적인 양면을 동시에 갖는다. 악곡형식은 전자에 그리고 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 세부적인 캐릭터 등은 후자에 속한다고 비유할 수 있다. 즉 연주자가 작품을 해석하여 이를 무대를 통해 청중 및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활동은 또 하나의 연출활동이다. 진지한 연주자는 작품의 세부와 전체를 연계하고 고려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찾기에 주력한다. 음색, 선율선, 성부의 균형 및 조화, 프레이징… 여기서 앞서 타 영역(연극, 영화, 드라마등)에서 소개한 세부적인 요소들과 연주에 있어 필요한 각각의 요소들은 유사성 내지 동일한 속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필자는 때로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드라마 내지 영화촬영 과정(무수한 NG를 거쳐 각각의 컷을 완성해 나감)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연주자는 혼자서 타 장르의 모든 세부관건들과 이의 가능성 및 효과적인 연계성의 고려를 도모해 나가는 총체적인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어찌 보면 일인다역(一人多役)의 막중한 사명을 수행해야한다.
음색만 하더라도 밝음에서 흐림, 선명함에서 불투명함 등 폭넓고 다양한 음색 특성의 표현이 가능하다. 피아노음악에 있어 선율선은 극중에서의 주인공, 그리고 화성적인 부분은 조연 또는 보조 연기자 등, 역할에 상응한 부각 내지 드러나지 않으면서 주연을 부각시키는 연기와 같은 맥을 이룸을 알 수 있다. 즉 악곡분석을 통해 해석하여 이를 연출을 통해 완성시켜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바로 무대연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 및 요인들에 대한 인식과 안목을 가지고 연습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준비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연주를 들어보면, 음악적 변화 내지 가능성의 폭이 제한되고 단지 악곡을 읽어 나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태반이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연주자의 연주가 상대적으로 빛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기자가 대본이나 시나리오를 전해 받고 처음에는 자신의 역할을 파악하기 위해 전체적인 내용을 제3자적인 입장에서 단순히 읽기를 시도한다.
이를 통해 극의 전체적인 스토리와 내용전개 등 특성이 파악되면 자신의 역할을 집중 조명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또다른 인생 또는 삶을 펼쳐나가고자 몰입하여 연기한다. 즉 연주자는 연기자와 마찬가지로 제3자적인 입장이 아니라 자신의 삶처럼 연주를 통해 실감나게 재현해야 한다.(물론 작품의 특성에 따라 다른 속성을 고려해야 할 때도있지만)
작품에 따라 변신의 폭은 제한이 없다. 연기처럼 중년의 연기자가 때로 노년의 역할을 담당하거나, 심지어 성을 전환하는 연기를 펼쳐야 할 때도 있다. 비단 표제음악이 아닌 절대음악이라 할지라도, 또한 바로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하고 다양한 형태의 음악작품이 존재하지만, 각각의 다른 의상 내지 시대상을 바탕으로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그리고 변신의 폭을 넓히려는 생각을 가지고 작품성을 성찰하고 관조한다면 이른바 ‘연기하듯’ 생생한 연주가 가능할 것이다. 악곡을 통해 연주자 자신의 또다른 변신 가능성을 도모하고자 주력하는 것이 모두가 공감하고 설득력 있는 무대 연주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는 초석임을 다시금 강조한다. ■

 

작품의 예술적 완성


각 분야의 예술가들은 궁극적으로 예술적 완성을 지향하는 삶을 추구한다. 광대(廣大)한 구조에서 세밀(細密)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양자를 고찰하며 끊임없이 수정 및 보완을 도모하고자 주력하는 모습이 예술가들의 공통적인 예술적 창의실현의 과정이자 단계이다. 모든 부분에서 완성을 지향하는 것은 예술가의 집념과 안목 그리고 예술성에 크게 기인한다. 창작(작곡)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이를 재현하는 연주는 더불어 책임의식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철저하게 연주자의 작품성을 통한 가치의 발견 및 이의 적극적 재현이 중요한 몫이다. 누구나 완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마음내지 갈망을 갖고 있지만, 이의 실현은 천차만별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람은 사고, 감성, 감정, 욕망, 열정, 성향 등 모든 면이 제각기다. 또한 그의 성장과정, 교육환경, 사회적 ? 지역적 특색, 출생 및 여건 등 주변적 요인들 역시 그의 예술성을 이루는 바탕으로 작용하여 상이(相異)한 성향으로 드러나게 된다. 모든 작품은 장르에 구분없이 보편성(일반성)으로 추구되어야할 사항들이 있으며, 나아가 각각의 개별적 특성에 상응하는 특수성(독자성)의 영역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의 상관관계를 통찰하거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완전한 작품의 재현을 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즉 연주자 자신이 어느 정도의 능력과 자질을 습득하고 소유하였느냐에 따라 연주의 결과는 큰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그럼에도 맹목적인 연습을 감행하는 것은 발전의 한계를 초래함은 물론 완성지향적인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양상들을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게 된다. 연주자 누구나 작품에 따른 한계는 분명히 있지만, 작품성 성찰의 노력이나 깊이를 추구하는 안목에 따라 예술적 완성에는 크게 좌우됨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완성 지향적인 연습 및 연주를 실현하느냐 하는 과제는 연주자 모두가 항상 주력하여 해결해야할 중요한 과제이다.

 

1. 분석 및 파악
의사 또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해부학이 필수과목이다. 피아노 조율사가 되기 위해서는 현(鉉)을 감는 것에서부터 조립하는 전 과정을 습득하고 설계하는 과정까지 습득하여야 진정한 조율사로 배출된다. 또한 현악기를 수리하거나 제작하는 사람 역시 악기의 세부적인 면에서부터 전체적인 관건에 이르기까지 전수받지 않고는 진정한 장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주자 역시 작품을 대하면서 전체적인 작품성의 파악 및 세부적인 분석을 병행함으로써 특성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또한 이를 자기화함으로써 작품의 예술적 완성에 이르게 된다. 과거 학창시절 학습했던 화학, 물리, 수학뿐만 아니라 국어, 영어 등 모든 교과목 역시 파악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음을 익히 경험하였을 것이다. 일반인과 전문가들이 예술품을 감상하는 성향이나 자세를 생각하면 분명 다른 면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자는 자체를 보고 즐기면 되지만, 후자는 거시적 및 미시적으로 작품을 분석하고 파악하려는 태도 및 자세를 갖고 있다. 물론 어느 학생이나 연주자를 막론하고 작품을 나름대로 파악 내지 분석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의 가능성의 폭과 깊이가 중요한 관건이다. 분석적 성향 및 안목을 갖춰 나가는 것은 연주자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다. 즉 정확한 분석을 거치지 않고 작품성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다. 분석은 단지 화성, 구조 등 단편적인 고찰보다 다각적인 분석의 실현이 바람직하다. 즉 악보의 짧고 긴 부분을 각각 깊이 관찰하면서 작곡가의 작곡의도 및 심상을 역(逆)으로 읽고 파악해야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작품을 통해 작곡가의 심연(深淵) 깊숙이 정통(正統)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품의 가능성 및 완성을 도모하려 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할 것이란 점을 확실히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한다.

 

2. 재조형(再造形)
앞서 선행된 작품의 분석을 통한 파악으로 작품성을 재 조형(구성)함으로써 나름대로 틀의 형성 및 정립(定立)이 가능하게 된다. 여기서 템포(아고긱, 루바토 등)와 다이내믹, 해석 및 표현 등 다양한 개인적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물론 다음 항목에서 언급할 ‘음상(표상)의 정립’ 역시 중요한 요건으로 상호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즉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세부적으로 해체(解體)한 후 이를 바람직하고 효과적으로 재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악보 그 자체는 전혀 움직임이 없는 단지 인쇄물에 불과하나, 이를 대하는 연주자의 음악적 사고(思考)가 이를 해체하기도 하고 또한 결합하기도 하는 것이다. 선율 악기 또는 성악 역시 반주를 동행하므로 전체를 통한 분석의 과정을 필히 거쳐야한다. 흔히 선율(멜로디)만을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기악 연주자들은 전체의 중요성을 때로 간과하는 것을 보게 된다.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는 악보(총보)를 보면서 전체와 부분의 중요성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찰한다. 솔로파트와 반주파트는 하나로 연계함으로써 비로소 제대로 파악이 가능하다. 즉 솔로를 담당하는 연주자들은 반주파트(반주자)를 자신의 연출의도에 따라 적합하게 동행(반주)이 이뤄지는지, 그렇지 못하다면 명확하게 자신의 음악적 표출의지에 상응하게 동반하도록 요구할 수 있어야한다. 즉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분과 전체는 언제나 상호 유기적 연대(連帶)를 형성하도록 개별적 내지 통합적으로 다뤄져야 이상적인 결과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작곡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음상을 이미 악보라는 수단을 통해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연출 성패(成敗)의 여지는 전적으로 연주자의 몫으로 남는다. 연주자가 다각적(多角的)으로 어느 정도 바탕이 확립되었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는 제각기일 수밖에 없다. 음과 음의 결합(수평적 및 수직적)을 해체한 후 다시 재조합함으로써 작곡가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연주자의 또 다른 연출의지를 실현할 또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3. 음상(표상)의 정립
선율적 흐름, 화성적 구도, 형식적 틀과 윤곽 등 모든 요건은, 작품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때로 개별적(독자적) 또는 전체적(통합적)으로 연계성을 가지고 통찰(洞察)하여야 한다. 선율적 흐름은 몸(신체)과 마음에서 비롯되며, 이를 포함하여 화성적 및 형식적 틀과 윤곽은 음상으로 정립된다. 서양음악은 ‘음과 음’의 상관관계에서 미학이 출발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국악(전통음악)과는 큰 차이를 드러낸다. 미술, 건축, 자연 등 생활 주변의 모든 것을 보면서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상념, 감각, 분위기, 기운(氣運)을 느끼게 된다. 즉 개별화의 요인으로 크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음상의 정립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사항들 역시 다른 면모로 작용할 각각의 요인들이지만, 어떤 음상으로 정립하거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상이성의 폭이 넓어지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작곡가가 의도하고 요구하는 성향에 접근을 시도하느냐 하는 관건이다. 즉 작곡가의 주장, 표현의지, 작품성의 의도 및 관점을 작품을 읽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연주자의 중요한 사명이다. 자신을 드러내려하기 보다 작품성의 가치와 작곡가의 진정한 작곡 의도를 파악하여 이를 재현하려는 연주자는 진실하고 책임감 있는 연주자로 평가될 것이다. 방향성이나 좌표의 인식없이 자기 관점대로 상상하고 성격을 조형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못한 항해(航海)와 같이 표류하다 좌초될 우려가 큰것이다. 예술세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자기방식만을 고집하거나, 작곡가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고 배제한 상태에서 해석을 시도하거나 음상을 정립해 나가는 것은 대단히 무모하고 치우칠 우려가 있음을 항시 인식하여야 한다.


4. 자기 표출(연출)의 구체화
같은 화장품이나 물감을 가지고 화장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더라도 사람마차 큰 차이가 있다. 동일한 석고상을 스케치하면서도 다른 질감과 구도를 드러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물며 음표로 기록된 악보를 보고 이를 해석, 연주성향, 감각 및 대조 등 모든 면에서 연주자 마다 크게 다른 양상을 드러내리란 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으며, 또한 제각기 다른 연주의 결과를 초래함을 연주회나 음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미국, 유럽, 러시아 등 지역과 학파에 따른 차이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개별적 성향에 크게 좌우됨을 알 수 있다. 동일한 지역적 특성에서도 제각기 다른 연출의 특성을 담아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하게 짚어 나가야할 사항은 보편성(일반성)과 특수성(개별성)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 및 적용이다. 보편성을 무시하고 특수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치우칠 우려가 크다. 작품을 학습하거나 연주함에 있어 보편성의 굴레는 항시 존재하며 이를 바탕으로 개별적 특성을 이입(移入)함으로써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이 가능한 사실이다. 학생이거나 전문 연주자 누구라도 다른 사람의 복제(연주스타일 및 해석 등)를 원하지 않는다. 물론 학습 과정에 음반이나 선생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은 때로 필요할 수도있다. 그러나 자신의 가능성을 표출하는 연주에서 언제까지 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극적일 것인지 상상할 수 있다. 즉 선생의 시범 연주나 여러 음반을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타진하고 참고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어느 시기에 이르면 자신의 목소리와 연출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내적 갈망(渴望)이 절실해지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런 자의식을 갖도록 선생은 이끌어 나가야하며, 학생이나 연주자들은 자신의 표출을 목표로 항상 새로운
가능성 발견 및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귀(耳)가 열려있어야 한다. 또한 작곡가와 작품을 통해 연주자 자신의 성찰과 이의 실현 가능성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매진해 나가야한다. 연주자마다 제각기 다른 성향으로 나타나며 지금까지 전혀 시도되지 않았던 재해석 면모를 창출할 뛰어난 연출가를 발견할 수도 있다. 연주자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초월하는 예술적 완성을 도모하는 것은 전혀 실현 불가능하다. 즉 작품성을 근간으로 자신의 예술적 시각을 넓히는 길이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자신의 연출력 신장(伸長)에 이바지할 중요한 방안임을 다시 강조한다.

 

작품성의 미적 탐색


작품성의 미적 탐색은 작품성을 통찰함으로써 각각 세부의 독자성 및 작품 전체를 통합하여 성격을 규정함에 있어 책임 있게 실현해야 할 주요 사항이며, 이로써 작곡가의 작품을 재현함에 있어 보다 명확하고 정통할 해석 및 연출의 시도가 가능할 수 있다.


빈(Wien)의 숲 속을 산책하며 작품을 구상하는 베토벤의 모습을 스케치한 회화 작품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에 앞서 곡의 테마, 구성 및 전개 등 총체적으로 작품성의 제반 관건들에 대한 설계 및 구상을 시도하기 위한 작곡가의 선행(…行) 활동이다.
연주자는 악보를 통해 작곡가를 접하게(만나게)되며, 그가 요구하는 음악적 의도를 파악하는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동일한 작품일지라도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재현(再現)되기 마련이다. 한편 이는 필연적인 사항으로 간주(看做)할 수 있다. 연주자가 자신이 연주할 작품을 선정하여 악보를 대하면서 전체적인 구성 면에서부터 세부적인 디테일에 관한 제반 사항까지 관조(觀照)하고 성찰(省察)하면서 비로소 작품성 파악 및 탐색의 과정이 이뤄지게 된다.
연주자마다 출생, 성장, 교육 등 제각기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 이런 연유(緣由)로 악곡의 분석, 해석 및 표현의 상이성(相異性)이 드러나게 된다. 같은 의상을 입더라도 각자 다른 모습을 드러냄과 마찬가지로, 음악작품도 또다른 예술적 창작물과 마찬가지로 이를 대하는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해석, 연출 및 연주성향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인지(認知)해야 한다. 효과적인 연주를 위한 작품성의 미적 탐색은 연주자가 지향해야 할 최고의 목표이자 작품을 통한 자기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깊이 이뤄져야 할 주요 관건이다.

 

1. 음상(音像) 구조 파악
작곡가는 5선 위에 자신의 음악적 의도를 펼친다. 성악적 또는 기악적 양상이 혼재(混在)하는 가운데 고유한 음악미를 담아 실현되기를 갈망(渴望)한다. 역으로 작품을 대하는 연주자는 작품을 통해 작곡가가 실현하고자 하는 예술적 이상을 깊이 탐구하고 이를 통한 자기화를 도모해 나간다.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적 구도(構圖), 구조(構造)를 어떻게 파악하여 재구성해 나가느냐 하는 관건은 전적으로 연주자의 예술적 안목(眼')에 달려 있다. 즉, 작품성이 지닌 다양하고 폭넓은 각각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여 이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의 효율성 내지 성과 여부(與否)는 연주자의 작품 성찰의 깊이와 연관이 있다.
연주자마다 제각기 다른 성향을 드러내지만, 작품성의 근간은 보편성 내지 일반성의 양상을 드러내는 부분과 각자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낼 특수성 내지 개별성으로 대별하게 된다. 작품에서 요구하는 각각의 음상은 다변화의 양상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상의 설계 및 구조 파악이 미비함으로써 작품성의 진정한 가치가 실현되지 못하는 사례를 종종 확인하게 된다.
마치 영화 필름의 한 컷 한 컷이 상(像)을 드러내듯, 음악적 상 역시 이와 같이 연주자의 뇌리에 정립되고 스케치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작품성의 가치를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냉철하고 예리하면 서도 지적인 이성과 풍부한 예술적 감성의 작용이 병행되어야 한다. 음상의 구조 파악은 연주자의 작품성에 대한 세부적 및 전체적인 통찰 및 성찰 등 그의 예술적 안목에 의해 결정된다. 즉, 좁은 안목(h視的)으로 작품성을 대하면 편협하고 상상력이 결여되어 이상적인 가치 실현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넓은 안목(巨視的)이 형성된 연주자는 폭넓고 다채롭게 구상함으로써 작품성을 효과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즉, 지적 그리고 정서적 활동이 병행됨으로써 각각의 음상은 본연(本然)의 가치를 드러내게 된다.
연주를 위한 선행 과정인 음상의 구조 파악은 화성학, 대위법, 음악형식 등 제반 이론의 학습으로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머리와 가슴이 함께 작용하여야 비로소 완성적 음상의 구조 파악과 이의 자기화가 가능하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기악작품들에서 성악적 내지 기악적 특성이 공존함을 알 수 있다. 즉, 리릭(Lyric)한 부분과 메카닉(Mechanic)한 부분이 어우러지고 양자가 교차됨으로써 반전(反轉)이 시도되어 작품성은 커다란 변화의 가능성을 펼치게 된다.
작품을 대하면서 각각의 부분을 어떤 성향으로 정리할 것인지 사려 깊고 분별력 있게 구분함으로써 작품성의 가치는 빛을 발하며 폭넓은 대조의 양상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나날이 새롭게 음상을 관조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음악적 안목을 넓히려는 끊임없는 정진이 필연적임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2. 수평적·수직적 요건
음의 순차(順次) 내지 도약(跳躍)으로 구성되는 선율선(Melodic-Line)은 대선율과 더불어 수평적 구조의 특성을 갖는다. 이는 악곡의 테마와 곡을 구성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아울러 시대적 변천에 따른 화성의 변화 및 발전은 선율을 지탱하고 보완하는 두터운 받침의 역할 및 색채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즉, 선율이 진행하면서 이를 색채감 있게 옷을 입혀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변화의 속성을 드러낸다.
선율선을 연주하는 솔로악기 또는 성악은 반주(피아노 또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때 비로소 완성을 도모하게된다.(무반주 조곡 등 제외) 오케스트레이션 악기인 피아노는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구조와 틀이 확립되어 있다. 선율은 특수한 현대음악(12음 기법을 바탕으로 한 무조음악 등)을 제외하고 노래되어질 때(Singing-Tone) 선율이 갖는 흐름과 그에 따른 다이내믹, 템포, 음폭 등 다양한 변화 가능성을 표출할 수 있다.
테마 내지 주제 선율에 어떤 의상을 입혀 보완 내지 완성을 도모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 화성적, 즉 수직적인 관심의 성향을 갖는데, 이는 화성감으로 감각성향을 드러내 선율을 풍요롭게 보완 내지 완성을 도모할 수 있도록 작용한다.
예컨대 드라마 또는 영화에서 주연(선율)을 제외한 조연(대선율 및 화음), 그리고 엑스트라(음색, 분위기 등 다양한 변화 가능성)가 제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극(劇)이 완성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모든 음악적 흐름과 특성 변화의 중심은 선율이 담당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화성 변화의 세심한 관찰과 이의 적절한 표현 역시 중요하게 취급되고 각별하게 주목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양자를 어떻게 결합 내지 조화를 도모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음과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은 연주자의 미적 안목이 반영되는 것이며, 이로써 연주자의 역량 및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게 작용하는 것이다.


3. 프레이즈와 아티큘레이션
모든 악곡은 대체적으로 특정한 형식을 전제로 작곡된다. 극의 구성처럼 기·승·전·결의 형태를 갖는 사례가 일반적이다.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眺望)하면 형식과 구조와 틀이 드러나지만, 이를 구성하는 세부적인 관건이 바로 프레이즈와 아티큘레이션이다. 때로 거시적(巨視的) 및 미시적(h視的) 안목으로 작품을 고찰함으로써 작품의 진정한 위상 정립과 작곡가 본연의 의도를 파악하여 실현할 수 있다.
형식과 틀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성의 고찰과 함께 미세하거나 작은 소그룹의 ‘음과 음’의 결합에 대한 세부적인 고찰 역시 연주를 준비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과정의 작업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 것은 작은 부분들에 대한 관심과 연계하여 악곡 전체와의 연관, 연계에 대한 고찰이 필연적 관건이다. 이는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한다’는 격언에서처럼 어리석음을 범치 않아야 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악곡은 세부적인 음들의 연계(아티큘레이션) 및 이를 프레이즈로 구성함으로써(프레이징) 정리해 나갈 수 있다. ‘음과 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에서 미적·지적·감각적 활동이 전개된다. 한 음(音)을 준비하여 소리를 낸 후 음의 지속 과정 그리고 음의 마무리까지 일련(一連)의 작업을 자신의 의도대로 정확하게 진행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음과 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명확한 정립이 가능하다.
언어에서도 몇 개의 짧은 어절(語節)이 모여 한 문장(Sentence)을 형성함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언어적 속성과 유사성을 드러내고 있다. 즉, 문장을 단순하게 읽는 것이 아니라 연기자가 대사를 적절한 분위기를 표출하여 연기하듯, 음악의 세부(細部)와 이를 연결하여 한 문장으로 엮어지는 프레이즈를 분명하게 정리함으로써 특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표현의 완성을 도모하여 설득력 있는 음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악곡의 각 부분에 대한 명확한 성격의 정립이 필수적이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가가 조각을 할 때, 붓과 조각칼의 움직임은 전체를 고려하면서 각각의 부분을 스케치하거나 조각하는 행동이 지속적으로 이뤄짐을 알 수 있다. 이로써 그림이나 조각품이 점차 완성을 도모하게 된다.
물론 연주하는 것은 회화 또는 조각과 속성상 상이(相異)한 점도 있으나, 전체와 연계하여 세부적인 변화를 도모함에있어 유사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훌륭한 연주는 작품의 전체적 특성을 고려하되, 세부적 사항들에 대한 적절한 표현과 변화를 도모할 때 가능하다. 즉, 매 순간 음악적 내용과 특성의 변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연주자의 적극적인 의지가 실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소극적인 연주는 부분에만 집착하거나 또는 세부적인 것에 대한 관심 소홀이 문제점이다.
한편, 적극적인 연주는 전체와 부분을 상호 연계하여 세부적인 표현에서부터 이의 전체적 연관과 연계를 성격적으로 명확하게 재현할 수 있는 연주를 말한다. 프레이즈와 아티큘레이션 등 악곡을 구성하는 세부적 요건들에 대한 구체적이며 명확한 음상의 정립은 각각의 미적 특성을 강화함으로 시작하여 전체를 총괄하는데 이르기까지 상호 작용 및 구체화 실현을 목표로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할 사항으로 간주할 수 있다.
작품성의 미적 탐색은 작품성을 통찰함으로써 각각 세부의 독자성 및 작품 전체를 통합하여 성격을 규정함에 있어 책임 있게 실현해야 할 주요 사항이며, 이로써 작곡가의 작품을 재현함에 있어 보다 명확하고 정통할 해석 및 연출의 시도가 가능할 수 있다. ■

 

마음(心的)의 평정


세상의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변화된다. 계절, 인간, 세상 등 어느 것 하나 변화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전무(全無)하다. 성공적인 연주와 실패한 연주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연주자가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깊이 자신을 성찰하고 이를 효과적이고 안정적으로 펼치느냐에 달려 있다.


세상살이를 비롯, 모든 인간의 활동을 바람직하고 정상적으로 펼쳐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체득(體得)해야 한다. ‘정신일도(精神一到) 하사불성(何事不成)’이란 옛 격언이 시사하는 바처럼, 정신을 한데 모으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 이룰 수 없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고도(高度)의 집중력은 모든 학문 및 예술적 활동을 펼침에 있어 중요한 근간(根幹)이다. 악곡을 접하여 이를 파악하고 연주하는 활동 역시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즉, 두뇌(머리)는 명철하고 이성적이되 가슴(마음)은 풍부하고 정신적 평정(平靜)을 유지해야 한다. 매순간 변화되는 악상에 신체적 대응(對應)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관건이다. 작품성을 성찰하는 과정이나 이를 악기(또는 인성)를 통해 표현을 준비해 나가는 모든 과정에서 심적 안정은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음악이 진행되면서 악상은 매순간 변화를 도모해 나간다.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창작의 기본 이념으로 간주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변화된다. 계절, 인간, 세상 등 어느 것 하나 변화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전무(全無)하다. 성공적인 연주와 실패한 연주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연주자가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깊이 자신을 성찰하고 이를 효과적이고 안정적으로 펼치느냐에 달려 있다.
템포가 빠르거나 느린 제각기 다른 악곡에서 악상의 변화무쌍함이 항상 요구된다. 연주자는 그에 따른 변화의 특성을 실현해야 하겠지만, 이 때문에 자신의 심적 평정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진행하지 않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참담(慘憺)한 실패를 초래하는 사례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연주자도 이런 상황이나 과정을 전혀 겪지 않고 완성 단계에 다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과정을 통해 점차 완성을 도모해 나가는 것이 인간의 속성으로 간주할 수 있다.


1. 출생 및 환경
사람은 제각기 다른 출생 및 환경에 처한 삶을 영위한다. 가족, 학교, 사회 등 어느 누구도, 심지어 쌍둥이라 하더라도 유사성이 많을 수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무언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어떤 환경에서 출생하여 성장 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인격 내지 인품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 필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환경론을 주창(主唱)하는 교육학자들은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흐가 음악가계(音樂家系)를 이룬 것도 이를 시사하는 바다. 또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역시 교육에서 출생 및 환경의 중요성을 역설(力說)하는 한 예로 간주되곤 한다. 그렇지만 누구나 음악적 환경에서 출생하여 음악가로 성장하지 않으며 전혀 그렇지 않은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후천적으로 또는 어떤 특별한 영향으로 인해 음악에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하더라도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면 실상 음악가로서 무대를 갖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무대는 작품을 통해 또다른 예술적 자아를 표출해 나가는 특별한 장소다. 즉, 자신의 출생이나 환경을 바탕으로 형성된 자아를 깊이 성찰하고, 나아가 무대 예술인으로서 자질과 성향을 갖춰 나감으로써 비로소 완성적인 예술가의 대열에 설 수 있게 된다. 제각기 유리함 내지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어느 누구도 온전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후천적으로 좋은 교육적 환경과 인격형성 과정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상을 정립해 나갈 수 있지만, 그보다 가정, 학교, 사회의 바람직한 환경의 정립이 이뤄지면 보다 효율적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인간의 정서적 성향은 가정에서 비롯되며 유년기 시절의 환경적 영향은 평생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그러므로 음악적 활동, 그 중에서도 연주를 지향하는 또는 자녀가 그 길을 걸어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환경을 조성(造成)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과거 음악사적으로 비중있는 음악가들 중에서도 자신의 소심함 때문에 연주가로서의 길을 중도 포기했던 사례를 익히 접할 수 있다. 또한 현 시대 역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함으로써 심한 무대 공포에 사로잡혀 결국 무대를 갖지 못하거나 또는 음악에의 길을 포기하는 사례 역시 비일비재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상황에 처하더라도 정신적 안정과 심적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습성을 갖추도록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스스로 자신을 정립해 나갈 수 있는, 즉 바람직한 자아형성이 가능하도록 끊임없는 자아 성찰이 중요한 요건임을 강조한다.

 

2. 정신과 신체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비록 출생이나 환경에 다소 문제점이 있다 하더라도 후천적으로 자신을 바로 세우고 창의적 사고와 풍부한 예술적 감성을 갖춘 예술가로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극복함으로써 또다른 예술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데, 이는 모든 음악가들이 이르러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다시 말하면 예도(藝道)를 수련함으로써 예술가로서 고매한 인격을 형성하고 자질 면에서 완성 지향적으로 정진해야 한다. 종교적 차원에서 정신을 수양하거나 또는 기도하는 것은 한편 이와 유사한 특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좋은 연주를 위해서는 신체적인 조건이나 체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 극도로 피로하거나 그야말로 연주가 불가피한 조건에서 어쩔 수 없이 연주를 감행해야 할 상황도 없지 않다.
항상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주력하고 애쓰지만, 인간은 신체의 바이오리듬이나 정신적 집중상태가 시시각각으로 변화되기 때문에 때로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당일 연주회 전 리허설할 때와 실제 무대 연주를 할 때조차 현격하게 다른 것이 인간이다. 물론 탁월한 연주자들은 무대에서의 설렘과 긴장을 음악적으로 승화하여 보다 생동하거나 또는 고도의 집중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이용(?)하는 사례들을 무대에서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 작품을 통한 철저한 자아 성찰과 완성 지향적인 예술성 실현이 가능하도록 주력해야 함이 필수적이다. 정신과 신체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또한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되 끊임없이 상승작용이 이뤄지도록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 즉, 모든 면에서 자신을 관리하는 습성이 이뤄져야 비로소 프로다운 면모를 드러낼 수 있다. 이런 상태 내지 상황에 이를 수 있도록 자아형성 및 심적 평정이 습관화되어야 비로소 무대연출에서 안정궤도에 진입 할 수 있게 된다.


3. 예도(藝道)
종교 또는 심신수련을 통해 상당한 경지에 다다른 사람을 대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속(世俗)의 범인(凡人)과는 큰 차이를 발견하거나 느낄 수 있다. 즉, 철저히 자신을 비워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를 체험함으로써 심적 평정에 이르게 된다. 때로 예술의 상업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즉 예술성의 가치를 확대 해석하여 흔히 말하듯 쇼업(Show-Up)하는 성향의 연주자들이 적지 않은 것이 오늘날 공연예술계의 현실이다. 물론 해석상 어느 정도까지가 적당하고 통념상 적정한 한계일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제각기 다른 견해를 드러낼 수 있다. 이를 생각하는 기준이나 정도에 대한 개인적 차이는 실로 제각기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예도(藝道)는 작품 본연(本然)의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진지한 음악가의 예술적 완성을 도모하기 위한 준비 내지 진행 과정을 말한다. 즉, 예술적 순수성이 배제된 순간부터 그 아티스트가 행하는 모든 예술적 행위 또는 준비과정은 여기서 말하는 예도와는 거리가 멀다. 좋은 연주를 준비하기 위해서 기술적 완성을 도모하고자 제반 테크닉적 관건을 해결함으로써 풀어 나가는 것은 물론 중요한 요건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작품성을 성찰하는 과정이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摸索)하는 과정을 통해 연주자가 수련하는 길 내지 방법은 진지하고 순수한 마치 구도자(求道者)의 심성(心性)으로 이뤄져야 한다. 물론 종교는 사랑의 실천과 믿음을 통한 구원이나 깨달음을 위한 또 하나의 방편으로 간주할 수 있다.
무언가를 지향하는 끊임없는 갈구(渴求) 내지 자신 수련을 통해 거듭나기를 염원하는 것이 종교를 갖는 일반적 이유일 것이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소원이 성취되거나 또는 내세의 구원이 이뤄지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진정한 연습과정을 통해 자신을 갈고 닦는 수련의 과정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작품성에 접근을 도모할 연습이 진행된다면 이는 바로 예(藝)를 통해 도(道)에 이르는 또 한 과정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런 상태의 연습 시간은 상당히 의미 있는 연습이 되고 정신적·신체적 안정을 도모할 또다른 방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방향이 설정되지 않고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거의 맹목적이고 반복적인 연습은 심신을 피곤하게 하며 음악적 완성을 도모하는 길과는 전혀 다른 비효율적이고 체력, 정신 및 시간의 낭비에 머무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거나 또는 신체적인 성장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그때마다 끊임없이 변화 가능성을 인식 내지 파악 능력을 겸비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형이하학(形而下學)적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이는 정체 내지 지체가 아니라 바로 퇴보를 의미하게 된다.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연습, 비효율적이고 발전적이지 못한 연습은 큰 차이가 있다. 물론 연주자들은 자신을 때로 발견하지 못하고 오직 연습의 노예(?)가 되는 사례들을 종종 무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연습의 중요성을 간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수행하는 마음으로 일관하되,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모든 관건들에 대한 철저하고 완벽을 지향하는 마음가짐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진정으로 실현되는 연습과정은 예도를 실천하는 과정으로서 이를 통해 희열(喜悅)과 충족감으로 갖게 되며, 이로써 정신과 마음의 평정을 깊이 체감할 수 있게 된다. ■

 

새로운 해석적 가능성의 추구


‘변화’는 21세기의 화두(話頭)이다.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변화의 넓이와 깊이는 급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현실이다. 정치·경제·사회·과학은 물론 음악을 포함하는 모든 예술세계에서조차 예외가 아니다. 과거 비르투오소로 간주(看做)되던 연주자들과 오늘날 국제적인 콩쿠르를 석권하여 무대 및 음반을 통해 새롭게 선보이는 젊은 연주자들의 음악적 표현, 해석적 성향, 고도로 완벽한 기술성의 실현 등, 비단 대중예술과 음악뿐만 아니라 고전음악의 모든 양상도 현격한 차이를 드러냄을 무대 또는 음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되는 이 시기에 연주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가능성의 실현을 목표로 정진해야 한다.
 

1. 음악적(예술적) 안목(眼')의 광대(廣大)
이의 핵심은 바로 자신의 예술적 안목을 넓혀가는 것이다. 이는 지적, 정신적, 감각적 성장과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끊임없이 많은 시간을 연습에 할애하지만 실제적으로 연습량과 음악적 발전은 반드시 정비례한다고 볼 수 없다.
즉, 무의미한 시간과 체력의 소모에 불과(?)한 사례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진정한 연습은 시간 대비(對比) 음악적 완성도의 효율을 높이며, 항상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추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때 가능하다. 단지 한 음(音)을 소리내기 위해서도 사전(事前)에 자신이 음상을 설계하고 스케치하는 정신적인 작용, 음이 진행하면서 화성적, 구조적, 형식적인 차원의 감각(감성)적 풍부함의 실현, 그리고 작품 전체를 통해 악상을 대별하고 세부적인 특성 및 가치의 표현 등 거시적(巨視的), 미시적(h視的) 안목에서 작품성을 고찰하는 마무리 단계까지 어느 한 가지 또는 단계도 소홀히 다뤄져서는 안 될 중요한 요건들이다.
완성도 높은 연주를 위한 기술적(테크닉적) 발전 역시 소홀해서는 안 될 부분이지만, 자칫 맹목적인 연습인지 발전 지향적 연습을 시행하고 있는지 매 순간 확인하고 점검해야 한다. 즉, 매 순간 연습의 목표가 분명하고 확실해야 한다. 이런 진지한 연습 시간들이 축적되면서 점차 예술적 안목은 넓혀지게 된다. 그보다 연습시간 이외에 많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연습시간은 여러 면에서 다소 제한적일 수 있다. 즉,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실현보다 자신이 현재까지 완성한 단계에 이르거나 또는 약간 상회하는 정도에 그칠 우려가 많다. 새로운 가능성의 실현은 삶 자체가 예술적인 관심과 갈증이 끊임없어야 하며, 음악 = 삶 또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
‘생활화’가 보다 적절한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음악가 또는 음악도들은 생활 가운데 끊임없이 자신이 연습하거나 연주할 악곡 및 자신의 진정한 음악적 발전을 지향하는 생각과 느낌들로 충만한 하루하루의 삶이 지속되어야 한다.
인간 누구에게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존재한다. 자연적인 변화 이외에 인간 자체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는 것이 속성이다. 즉, 생리적·심리적·신체적 등 모든 조건이 달라지는 것이 필연적이다. 이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내적 외적 변화 내지 변모를 확인하는 것 역시 새로운 가능성을 표출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2. 작품을 통한 자아 성찰 및 발견
작품을 탐구하면서 작곡가의 표현의도, 작가정신, 예술적 가치를 최고도(最高度)로 실현하는 것이 연주자의 책임이다. 그러나 인간의 속성은 개인적 차이가 필연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작품을 통해서도 다양한 연출 가능성이 이뤄지게 된다. 즉, 자신과 상이(相異)한 타인의 음악적 성향을 통해서, 또한 그들과 한데 어우러지면서 점점 자기의 실체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연주, 음반 등 직·간접적 체험을 통해 음 내지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점차 눈을 뜨게 된다. 즉, 작품의 특성 및 상황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끊임없이 변화되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자신을 작품과 상통(相通) 내지 일치하는 초점(焦點)을 이루고 또한 공감대를 형성하느냐가 작품을 통한 자아를 재발견하는 중요한 관건이다. 자신의 상태와 변화에 따라 연주는 필연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이른바 완성도(完成度)와 관련된 부분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한 작품을 여러 번 연주하더라도 그 때마다 내적·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요인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를 부정적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 연주 시의 컨디션 조절의 문제에 기인하는 불안정성 때문이 아니라면, 또다른 변화를 냉철하게 고찰하여 요인과 적합성 여부를 진지하게 되짚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연주를 위해 작곡가와 그의 작품을 선정하여 악보를 읽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작품은 연주자의 성향, 능력, 자질에 따라 때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연주자에 따라 자신과 비슷한 성향이나 표현양상을 발견하게 되고 미처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거나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 연주에 깊은 감흥을 느끼게 되며 선호(選好)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 연주자와 자신 사이에 공감할 부분과 상이한 부분이 어떤 요인들 때문인지 판단할 안목을 갖춰야 비로소 자아형성에 도움이 되는 체험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맹목적 수용 내지 비판은 음악가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덕목(德')으로 생각된다.
작품은 무수한 음들의 조합(組合)으로 이뤄진다. 뿐만 아니라 악상 및 음의 다양한 변화 등, 그리고 수많은 다른 출판으로 인한 해석적 상이성도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악보를 선택하는지 여부도 연주자의 성향을 가늠할 한 요인이다. 이런 조건들 이외에도 연주자의 감성, 감각, 개성 등 연주의 바탕을 확립하는 데 작용하는 요건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이런 모든 관건들이 연주자가 작품을 통해 예술적 자아를 성찰하고 발견하면서 점차 구체화되고 표현양상으로 드러나는 연주의 실상(實像)으로 간주된다.

 

3. 작품성의 자기화
연기자(탤런트, 연극배우, 영화배우 등)는 대본을 받아서 여러 번 읽으면서 전체 극의 내용, 전개, 특성, 분위기 등, 그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상대를 점차 파악하고자 주력한다. 그러나 연기자는 극중 역할의 비중과는 상관없이 전체에서한 부분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를 총괄하여 지휘하고 세부적으로 점검하며 의도하는 연출을 시도하는 것이 연출가 또는 감독이다.
그 밖에 무대세트, 촬영지 선정, 조명, 엑스트라 등 한 편의 영화 또는 드라마를 촬영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인원은 작게는 10여 명 안팎에서 수백 내지 수천 명 심지어 그 이상에 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촬영하면서 감독이 NG(No Good) 사인을 주는 것은 전체적으로 모든 상황을 판단할 때 어느 한 부분이라도 만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려지는 결정이다. 때로 불과 몇 초를 방영 내지 상영할 분량을 촬영하기 위해 하루 또는 그 이상이 소요될 때도 있다. 그만큼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하기 위한 감독의 집념이자 완성을 지향하는 예술가로서 투철한 정신으로 간주되곤 한다.
음악의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이처럼 총체적 내지 세부적 고찰이 요구되지 않는 분야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비록 새로운 해석적 가능성의 차원에는 못 이른다 할지라도, 현재 자신의 안목에서 작품성 통찰을 통해 판단한 근거를재현하는 과정에서도 이처럼 냉철한 고찰은 필연적이다. 물론 시간이 경과하면서 연주자의 음악적 경험, 사고, 판단력, 감각 등 모든 면이 변화되면 그에 따라 해석적 특성 역시 다르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작품성을 자기화하는 것은 그만큼 작품에 대한 깊고 정확한 이해 및 파악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물론 연주자의 개성, 능력과 자질 여부에 따라 또다른 변수로 작용하고 완성도에 현격한 차이가 드러날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완성도 높지 않고 표현력이 부족한 것, 그리고 작품을 통해 청중과 연주자 자신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거나 이해시키지 못하는 연주는 연주자 자신이 작품성의 자기화가 이뤄지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즉, 자신부터 우선적으로 작품에 대한 확신과 신념이 부족하므로 진정한 작품성의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의 웅변하는 모습 또는 정치인들의 선거를 대비한 후보자 연설을 보고 들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우선 대본이 잘 짜여지고 내용도 충실해야 하며 소신과 신념을 드러내는 음성으로 기복도 있어야 청중은 몰입하게 되고 그에게 찬사를 보내며 그를 지지하게 된다. 이를 작품과 연주에 연계하여 생각해 보는 것도 연주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한편 도움이 될 수 있다.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연주에서 이성 내지 감성 성향으로 차이가 드러나지만, 보다 완전한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의 상호 보완적이고 각각의 상황에 따른 탄력적인 변화 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실현하면서 풍부하고 깊은 감흥을 체험하게 할 연주 스타일로 생각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 및 해석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진지한 연주자야말로 작품성을 점점 자기화하고 이로써 많은 청중에게 예술적으로 깊고 다양한 체험을 선사할 능력 있는 연주자다. 연주자나 학생 모두 자신의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하고 염원한다. 또한 완성도 높은 음악적 표현이나 해석을 시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평생을 연주자의 삶을 살았던 어떤 누구도 완벽의 경지에 다다른 적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이는 인간 속성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한편 항상 무언가 다르게 변화 내지 발전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컨대 모차르트의 어느 작품을 연령 별로 연주하고 녹음한 연주자가 있다고 가정할 때, 필연적으로 다르게 나타날 것임을 진지한 연주자는 누구나 체험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변화 가능성을 긍정적 내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변화의 깊이와 폭을 넓히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면 발전은 가속화를 도모하게 될 수 있을 것이며,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함으로써 변화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할 연주자로 추앙받고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

 

작품의 해석과 영감


사람은 제각기 다른 환경에 처한 삶을 살아 나가는 것이 숙명이다. 타인(他人)은 물론 가족 심지어 쌍둥이조차 유사성은 있을지언정 동일한 삶의 형태를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사물이나 예술작품을 관조(觀照)하더라도 이에 대한 생각이나 반응 그리고 표현이나 느낌 등 모든 면이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화장, 헤어디자인, 의상코디 및 가구선택과 실내 인테리어 등 일상적 삶의 모습에서도 제각기 다른 양상과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연주자에 있어 연주에 초점을 맞춰 관찰하더라도 동일한 속성을 드러냄을 파악할 수 있다. 작품을 입수(入手)하여 연구하고 분석하여 자신의 예술적 가치와 판단에 따라 완성된 결과를 무대에 올리는 것이 연주의 속성이다. 그러나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연주를 위해 전후에 작용하는 해석과 영감의 작용은 상이성(相異性)을 드러내지만 이는 보완되어야 비로소 완성지향적인 작품성의 가치와 자신의 예술적 정신 및 창의성을 지향 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


1. 해석(解釋)
작곡가는 작품을 쓰기 전에 주제(부주제, 에피소드 등)를 생각하고 이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고심하며 아울러 적합한 형식을 선택하여 창작을 시도한다. 무(無)에서 유(有)를 지향하는 창작 본연의 활동으로 간주할 수 있다.
과거 비르투오소 연주자 겸 작곡가의 시대를 지나, 작곡과 연주의 영역이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대에는 작품을 재해석하여 제각기 다른 안목에서 재현을 시도하는 연주자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게 부각된다. 영화의 시나리오, 연극 및 드라마의 대본 역시 어느 정도 역량을 갖춘 감독이나 PD에 의해 제작되느냐에 따라 완성도는 제각기임을 실감할 수 있으며, 흥행이나 시청률에서 크게 좌우됨을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각기 다른 성향과 역량을 가진 연주자에 따라 연주의 내용 및 특성도 제각기 다른 양상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작품을 해석하는 과정은 연주자가 작품을 직시(直視)하는 관점, 표현의 다양성, 자질, 기술적 완성도, 음악적 기반 등 모든 요건에 의해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모든 면에서 완성된 조건을 갖춘 연주자는 없다. 연주에 있어 그 시기에 가능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예술적 완성은 절대 있을 수 없으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비르투오소적인 연주자 역시 동일한 레퍼토리를 끊임없이 성찰함으로써 연주하고, 기존 출반한 음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해석을 담아 재출반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해석은 연주자의 이성적인 사고와 논리의 영역이며 이론적 바탕이 작용하여 작품성을 파악하고 관조하고 성찰하는 작용으로 간주할 수 있다.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작곡가의 의도를 깊이 있게 파악하는 것이 주요 관건이다. 이는 수평적(선율) 내지 수직적(화성) 고찰,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 구성 및 전개 등 작품성과 관련된 총체적인 해부작업이 이뤄짐으로써 가능한 단계다. 즉, 작곡가가 작곡한 작품을 역(逆)으로 깊이 있게 재조명하는 작업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의 효율 및 효과에 따라 작품성은 제각기 다른 양상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즉, 연주자의 역량이 파악되고 가늠되는 중요한 첫 단계인 것이다. 이에 따라 작품성이 제대로(작곡가의 의도대로) 드러나 완성에 이를 수도 있고, 반대로 작품성을 연주자 임의대로(작곡가의 의도와 상반되게) 재현될 수 있는 중요한 갈림길로 드러남을 있음을 인식해야한다.
여기서 악곡의 ‘부분과 전체’를 어떻게 상호 연계성을 이해하느냐가 주된 관건이다. 즉, ‘나무(부분)를 보고 동시에 숲(전체)을 파악하는’ 지혜가 발휘되어야 한다. 지역과 환경에 따라 서식하는 식물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작곡가마다 제각기 다른 시대, 예술사조 및 환경 영향에 따라 작품성은 큰 차이를 드러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석적으로 뛰어난 역량을 갖춘 연주자라도 그 밖에 다른 요건을 실현하지 못하면 그의 연주는 냉철하고 차가운 인상을 줄 수 밖에 없다. 즉, 또다른 그 무엇이 갖춰져야 비로소 완성을 지향할 수 있다.


2. 영감(靈感)
앞서 언급한 해석은 앞선 악보의 성찰을 통해서, 그리고 연습을 통해 악보를 읽어 나가면서 점차 깊이 있게 이뤄지는 활동이다. 이 과정에서 맹목적 연습 내지 연주는 발전의 가속화를 도모하지 못하고 한계를 드러내기 쉽다. 창의적 연주를 위해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악보의 파악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사례를 많은 학생들의 연습과정을 관찰함으로써 쉽게 엿볼 수 있다. 즉, 훌륭한 선생은 학생의 연주를 통해 효과적인 방안을 점검하고 바르게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연주자 역시 자신의 문제를 항상 직시하는 태도와 발전 지향적 성향을 갖춰 나가도록 끊임없이 연구하여 개선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악보를 성찰함으로써 작품성 및 작의(作意)가 파악되면, 이를 토대로 생명력을 이입(移入)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도록 다음 단계의 정신적 및 예술적 작용이 이뤄져야 비로소 완성을 도모할 수 있다. 즉, 작품을 성찰한 후 연주자는 이를 자유스럽게 상상하고 마음으로 노래함으로써 영감을 얻고, 이를 연습을 통해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고 나아가 무대연주를 통해 청중과 함께 공유 내지 공감할 수 있다.
교육의 단계에 있어 처음에는 선생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모방을 거쳐 또다른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될 수 있지만, 나아가 연주자로서 진정으로 홀로서기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이의 방법 및 향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학생 스스로 자신이 연출하고자 하는 연주 스타일과 내용을 채워 나갈 수 있도록 교육됨이 이상적이고 바람직할 것이다. 앞선 해석 과정을 통해 세부적인 많은 정보(악보에서의 많은 가능성들)를 연주자의 두뇌에 기억하게 된다. 또한 연습을 통해 이를 명확하게 확인하는 과정도 거치게 된다. 그리고 난 후 악보와 악기(또는 인성)에서 이탈하여 연주 자체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스럽게 악보를 세부적으로 아울러 연계성을 도모한 성찰을 통해 음악적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재해석의 주된 관건인 영감(靈感)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즉, 작곡가가 작품 구상을 위해 상상의 날개를 펼치듯, 이와 반대로 작품성을 기반으로 연주자의 상상력이 이뤄지는 풍부한 상상과 영감이가(加)해져야 비로소 단순 악곡의 재현이 아닌, 완성을 지향하고 도모할 수 있는 예술적 가치 실현의 차원에 근접할 수 있다.
연주를 제2의 창작이라고 일컫는 것이 바로 이의 작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연주자 성향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어떤 선생의 여러 제자들에게서 음색이나 표현 등 여러 면에서 유사성이 드러남을 어떻게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인가!
즉, 연주에 있어 획일화된 틀에 학생들을 끼워 맞추지 않고 개개인의 취향이나 특성을 고려한 제각기 다른 모습이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실기교육의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바람직할 것이다. 영감은 인간의 모든 지적 정서적 활동 최고의 이상이자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연습 자체를 목표처럼 생각하는 학생이나 선생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진지하고 철저한 연습 자체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정한 연습은 해석과 영감을 통해 정립된 음악적 상을 악기(또는 인성)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연습이 지속적으로 진행됨으로써 또다른 표현, 해석 그리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즉, 고정된 관점이 아니라 항상 열려있는 새로운 가능성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의 한계는 항상 작품성 및 작곡가의 의도에 주안하되 그 한계를 임의대로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즉, 작품의 해석 및 연주에 있어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연주자의 진정한 발전과 가속화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3. 해석과 영감
이는 ‘바늘과 실’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양자 중 어느 한 부분이 결여되거나 공존하지 않으면 쓸모없거나 불 완전한 속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때로 잘 하는 듯 보이나 무언가 비어 있는 감을 느끼게 되는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물론 인간의 모든 활동은 완성을 지향하는 과정임을 우리는 이해하고 때로 기다림의 미덕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프로 아티스트를 지향하는 학생이나 연주자는 자신의 발전을 가속화(加速化)하여 진정한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주목될 수 있다.
연주의 내용이 상품(?)가치를 가진 예술적 이상의 목표에 근접하고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 정확한 작품성 및 작곡가의 의도 파악을 토대로 연주자 자신의 예술적 이상과 가치를 실현할 영감이 작용하여야 비로소 완성적인 단계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즉, 해석만을 추구하거나 또는 감각이나 감성 그리고 영감만을 추구하는 편향된 방식으로는 절대 완성을 도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한계에 봉착하게 되고 실망 내지 좌절을 맛보게 되어 결과적으로 연주자의 길을 포기하게 될 우려조차 없지 않다.
해석을 통해 영감을 이입하고 때로 영감을 임의대로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하게 해석적 바탕을 근거로 때로 축소 내지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즉, 양자는 상호 보완 내지 견제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함으로써 정상적인 작품성의 가치와 작곡의도 실현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 상반되는 두 개념이며 활동이지만 진정한 예술적 창의의 실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잣대를 통해 어느 정도 깊이 넓이 가능성 등을 실현할 것인가 하는 목표와 이상을 향해, 연주자는 항상 자신 및 작곡가와 작품을 성찰함으로써 자신의 몫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끊임없는 자성(自省)과 새로운 목표를 지향하는 연주자만이 이 시대에 진정한 연주자이자 아티스트로서 주목되고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다시금 생각했으면 한다. ■

 

음악적 심미안


내적·정신적 그리고 자신의 예술적 성향에 적합하게 표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기화에 주력해야 비로소 자신의 고유한 예술적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게 되며 나아가 음악적 심미안이 형성될 수 있다.


심미안의 사전적(辭典的) 의미는 ‘미(p)를 살펴 찾는 안목’으로 풀이되어 있다. 미적 안목(眼')은 음악가(모든 연주자 및 작곡가)의 폭넓은 관심과 세부적 고찰을 통한 체험에 의해 형성되고 이를 실현 가능하게 된다. 작품의 ‘세부(細部)와 전체의 상관관계를 통찰(洞察)’함으로써 작품특성을 통한 작곡의도를 파악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심미안이 작용할 때 비로소 ‘작품성 파악 및 가능성 실현’ 경지에 다다를 수 있게 되어 완성도 높은 연주가 가능하게 된다. 동일한 작품의 재현(연주)에서 모든 연주자의 특성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심미안’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즉, 동일한 사물을 데생(素描)하더라도 제각기 다른 화가의 성향 및 취향에 따라 현격(懸隔)한 차이가 드러남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연습과정을 통해 메커니즘(테크닉적 문제)의 해결 또는 악보에 드러나 있는 소극적인 표현에 국한(局限)할 것이 아니라, 작품성의 심미적 고찰을 통해 작곡가와 자신의 높은 차원에서의 합일(合一)을 이루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바람직한 연주자의 태도이자 사명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를 폭넓고 깊게 체험함으로써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것이 바로 연주자의 길이다.
작품의 분석(해체) 및 조합(통합)을 통한 작곡가의 의도 파악한 점의 미술작품(회화 또는 조각 등)을 자세히 감상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손길이 가(加)해져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술가는 우선 형상(形象)을 스케치(構想)하고 점차 세부적 완성을 지향(指向)함으로써 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게(出品) 된다. 역(逆)으로 이를 감상하는 사람들은 ‘멀리 때로 가까이(遠近)’ 작품의 전체와 세부를 통찰하며 작품성 파악 및 작품의도를 파악하고자 주력하게 된다. 연주자 역시 작품을 통해 ‘세부와 전체를 통찰’함으로써 작곡 의도를 정확히 파악 가능하게 된다. 이런 과정들을 끊임없이 반복 시행하고 또다른 가능성 여부를 사고함으로써 심미안을 확대할 수 있다. 즉, 연주자가 선택하여 탐구(探究)하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통해 수많은 변화의 요인 및 가능성을 접할 수 있으며, 이는 연주자의 폭넓은 음악적 체험으로 정립된다. 연주자는 ‘작품과 작곡가의 상관관계’의 고
찰(考察)을 통해 가능할 모든 특성을 파악하여 이를 연주를 통해 실현해야 한다. 즉, 작품을 직시(直視)하여 무한한 예술적 표현 가능성의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에서 음악적 심미안은 폭넓게(廣大) 실현될 수 있게 된다.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음악이론(악곡의 분석 및 형식에 대한 이해와 파악)의 선행(…行) 학습이 필연적이며 충분한 뒷받침이 되어야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활동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비단 이론에 해박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지 악곡을 파악하고 재현(연주)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활동으로 그 이상의 예술적 이상(理想)을 실현하는 과정에 이르기 위해서는 미적 고찰과 더불어 자신 성찰이 필연적(必然的)이다. 연주의 특성과 스타일 등, 모든 관건은 심미안의 폭과 넓이 그리고 음악적 경륜에 따라 상이(相異)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비르투오소 연주자들이 동일 작품을 여러 차례에 걸쳐 녹음하여 재출반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심미안의 변화로 작품성의 가치를 새롭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으로 간주(看做)할 수 있다. 즉, 원리를 이해하고 기능특성을 파악함으로써 작품은 또다른 가능성 실현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


성향이 다른 연주자들의 음악적 특성 파악
(적극적 감상을 통한 비교분석)

 

음악가와 자매예술 활동을 펼치는 예술가(화가, 무용가, 연출가, 연극인, 문학인, 디자이너 등)는 물론 여타 학문, 기업, 비즈니스 등 인간과 연관된 모든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자기 분야 또는 다른 분야에까지 폭넓은 이해와 관심 그리고 나름의 전문가적 안목을 표출함을 대화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즉, 지체(肢體)는 여러 갈래로 세분화 및 전문화되는 것이 이 시대의 일반적 특성이지만,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상당한 부분에서 공통분모 또는 연대(連帶)의 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패션 디자이너들은 다른 디자이너들의 패션쇼를 관람하며 특징과 독창성을 파악하고 아울러 그 시기에 유행할 정보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자신의 감각과 안목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도록 주력한다. 음악도(音樂徒)는 물론 전문 연주자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연주를 깊이 파악하며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생각된다. 물론 다른 연주나 음반을 모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다른 가능성’에 대해 눈을 뜨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인 감상이 필연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극적인 감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심미안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즉, 자신의 안목만큼 연주의 세계를 파악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깊이 있는 음악적 향수(享受)가 가능할 단계와 연주의 속성 및 특성에 대한 파악은 절대 불가분의 관계다. 그러므로 연령이나 경험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연주를 파악할 수 있는 심미안을 형성해 나가도록 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자신과 타인의 작품해석 및 연출의 상이성(相異性) 및 당위성을 인정하고 그 차이가 어느 요인으로 비롯되는지 끊임없이 고찰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과 타인의 예술적 특성의 차이를 실감하게 되며, 나아가 자신의 또다른
변화 가능성에 대해 추구하고 실현할 수 있게 된다. 폭넓게 모든 표현 및 연출의 상이성을 파악하고 체험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지향해야 할 또다른 가능성의 방향을 정립해 나가고, 향후 독자적인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를 창출할 음악적 심미안을 형성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신과 타인의 연출 특성 차이 파악 및 자신의 실현

앞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과 타인의 차이는 직·간접적 체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음악에서 이론(학습)과 실기(레슨)를 통해 기반을 쌓아 나가지만 실제적으로 많은 부분은 다른 연주의 감상을 통해 ‘또다른 가능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동일한 작품을 제각기 다른 특성을 갖는 연주 스타일을 체험하는 것이 자신의 심미안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연주자에 따라 가능성은 제각기며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또한 선천적, 환경적 내지 교육적 영향과 정도에 따라서도 큰 차이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필연적으로 제각기 다른 특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교육의 폐해(弊害)로 말미암아 마치 선생의 ‘판박이 내지 붕어빵(?)’처럼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례를 흔히 목격하곤 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철저히 자아표출 의지실현이 절대적 관건이다. 즉, 작품성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단계에 이를 수 있도록 연습과정에서 주력하고 남과 다른 자신의 표출의지를 항상 재인식해야 한다.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다른 스타일이나 해석적 특성을 모방하는 것도 음악적 표현 역량이 부족한 학생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오래도록 그 상황이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같은 디자인의 의상을 누구나 입어서 멋스럽고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신체적 특징과 개성성향에 어울리도록 소화하고 연출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음악작품이라는 의상(衣裳) 역시 자신에게 적합하도록 자기화를 실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자신과 같은 의상이나 소품을 착용한 타인을 발견하면 싫은 내색을 하기 마련이다. 같은 기성복이라 할지라도 화장(化粧), 헤어디자인 및어떤 소품을 부착하여 연출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여지듯, 연주는 외견상의 그것과는 물론 차이가 있지만, 내적·정신적 그리고 자신의 예술적 성향에 적합하게 표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기화에 주력해야 비로소 자신의 고유한 예술적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게 되며 나아가 음악적 심미안이 형성될 수 있다.
 

작품을 통한 작곡가·자신의 재발견 및 자기화
모든 유형(스타일, 표현의 디테일, 해석적 특성 등) 연주의 근본은 작품에서 비롯된다. 그만큼 작품을 통해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절대적이다. 모든 가능성은 작품의 특성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한계를 갖는 것도 때로 필연적이다. 그러나 그 밖의 ‘변화 가능성’은 무수히 존재한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철저하게 작품을 파악함으로써 작곡가의 영역에 대한 존엄성을 갖고 출발해야 한다. 이로써 정확하게 작품의 본질과 특성에 접근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다음 단계인 자기화의 과정이 이뤄지게 된다. 물론 작품성이 뛰어나지 못한 작품을 접할 때도 간혹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편곡(編曲)이나 개작(改作)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흔히 지칭하듯 완성적인 불후의 명곡들에서조차 완성도는 제각기다. 때로 연주자의 테크닉적 또는 표현의 한계가 요인일 수도 있다. 이를 완성하고 표현의 가능성의 폭을 넓히려는 끊임없는 추구가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음악을 보는 안목, 즉 심미안의 폭을 넓혀야 정상적인 단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작곡가와 자신의 재발견이 가능하게 되며 나아가 작품성을 자기화하여 분명한 자기표현이 이뤄질 수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단순 맹목적인 연습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작품은 작곡가의 이성과 감성을 담은 그릇과 그 안에 담긴 재료(식품)이다. 이를 어떻게 가공하고 장식함으로써 손님(청중)에게 맛깔스럽고 품위 있게 제공할 수 있을까 고심하고 연구하는 것이 연주자의 몫일 것이다. 요리사의 역량에 따라 맛이 제각기 달라지듯, 작품이라는 재료를 통해 어떤 스타일과 취향의 요리가 만들어지느냐가 결정되기 마련이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켜 나가도록 정진하는 자세로부터 자신 가능성의 한계를 초월하는 세계에 도달할 수 있으며, 비로소 자신을 재발견하고 자기화할 심미안의 세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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